로그인“내가 먹기 전에 이 샐러드 잎사귀 수부터 세어 와라. 난 짝수 아니면 안 먹는다.” 미친 황제의 시종으로 구르던 한 달, 원래 모습인 루체른 공녀로 돌아오면 다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황제는 내 백금발 한 올까지 기억하고 있었고, 나를 ‘특별 보좌관’이라는 인질로 삼아 다시 옆에 두었다. “내 것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거든. 엘리노아, 네가 다른 놈 이름을 외우는 건 불쾌해.” 질투에 눈먼 황제와, 조카 바보가 된 마탑주 숙부님, 그리고 엘리노아만 바라보는 사고뭉치 오빠들 사이에서 나의 평화로운 백수 라이프는 영원히 멀어져만 간다!
더 보기뀨가 내 어깨 위에서 작게 울었다.“뀨우.”나는 뀨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다.“그래. 나도 알아.”뀨는 내 손목의 문양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앞발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문양 주변의 별무리가 희미하게 반짝였다.벨리안의 눈이 커졌다.“잠깐.”“왜?”“저 작은 생물, 아니, 정령입니까? 마수입니까? 대체 정체가 뭡니까?”뀨가 벨리안을 노려봤다.“뀨.”“아니 보십시오!! 방금 문양이 반응했습니다!”대현자 K 숙부님도 눈을 가늘게 떴다.“그렇군.”나는 뀨를 품에 안았다.“뀨한테 이상한 짓 하시면 안 돼요.”“아무 짓도 안 한다.”숙부님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뀨를 유심히 보았다.“다만 저 아이도 열쇠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 듯하군.”“뀨가요?”뀨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가슴을 폈다.“뀨.”카시안 오빠가 중얼거렸다.“쟤도 이제 평범한 털뭉치가 아니었군.”“원래 평범한 털뭉치 아니었어.”“그래. 우리 집안에 평범한 게 있겠냐.”그 말에 나도 모르게 조금 웃음이 나왔다.정말 이상했다.조금 전까지 신의 파편이 사라지고, 검은 가시가 솟고, 내 손목에 문양이 새겨졌는데, 지금 이 순간 여기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아주 잠깐은 숨을 쉴 수 있었다.대현자 K 숙부님이 지팡이를 짚었다.“일단 황후궁으로 돌아가자. 이 정원은 봉쇄해야 한다.”카엘루스가 바로 명령했다.“엘릭.”“예, 폐하.”“북쪽 정원은 즉시 폐쇄한다. 공식 사유는 마력 오염으로 하지. 황실 마법사단과 기사단 외에는 접근 금지다.”“받들겠습니다.”“벨리안.”“예.”“정원에 남은 잔향을 빠르게 분석해라. 자하크가 어느 틈으로 손을 뻗었는지 찾아.”벨리안이 고개를 숙였다.“명령 받들겠습니다.”카시안 오빠도 짧게 손짓했다.“이클립스는 귀족가 움직임을 감시해. 특히 데뷔탕트 초대장을 받은 집안들. 최근 수상한 접촉이 있는 자들을 전부 추려.”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누가 자하크의 입이 되어 들어올지 모른다.”그 말을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숙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기억의 기록은 상징을 따라 움직인다. 데뷔탕트란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 세상에 처음 공표되는 의식이지. 루세티아가 남긴 기록은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그럼 제가 사람들 앞에 서는 순간,”“첫 번째 문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벨리안이 조용히 덧붙였다.“그리고 자하크도 그걸 알고 있을 겁니다.”정원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조금 전까지 흩어졌던 백금빛 조각들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수의 물은 아직도 검게 일렁이고 있었다.자하크의 잔향과 루세티아의 파편을 찢어버린 그 어둠에 짓눌린 나는 손목을 움켜쥐었다.그때 카엘루스가 낮게 말했다.“데뷔탕트는 예정대로 진행한다.”“폐하!”카시안 오빠가 바로 반발했다.“지금 제정신이십니까?”“그래.”“막내를 미끼로 쓰겠다는 말로 들립니다만.”그 말에 황실 기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엘릭 경이 아주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하지만 카엘루스는 흔들리지 않았다.“미끼가 아니다.”“그럼 뭡니까?”“전장이다.”카시안 오빠의 눈빛이 싸늘해졌다.“그게 더 나쁩니다.”카엘루스는 천천히 나를 보았다.“자하크는 어차피 움직일 거다. 우리가 도망치면, 그는 우리가 준비하지 못한 순간을 고를 것이다.”“…”“하지만 데뷔탕트라면 다르지. 장소와 시간, 참석자 모두 우리가 정할 수 있어.”그의 붉은 눈동자가 깊어졌다.“그날 밤을 함정으로 만든다.”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숨이 트였다.무서운 건 똑같았다.하지만 조금 전까지는 내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아주 희미하게나마 발밑에 길이 생긴 것 같았다.카시안 오빠는 나를 보았다.“막내야.”“응.”“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나는 손목의 문양을 내려다보았다.아직도 루세티아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첫 번째 문이 열린다.사실 지금 당장 방으로 돌
손목 안쪽의 문양은 아주 작은 눈물방울 하나였다.그리고 그 주변을 감싼 별무리가 희미한 백금빛을 내며 내 피부 아래에서 숨 쉬듯 깜빡이고 있었다.나는 한동안 그 문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분명 처음 보는 문양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았다고 하면 내가 미친 건가.“아직도 아프지 않나.”카엘루스가 내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낮게 물었다.당장이라도 내가 어딘가로 사라질까 봐 확인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감싸고 있었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프진 않아요.”“그 말은 다른 이상은 있다는 뜻이군.”“폐하께서는 왜 항상 그렇게 정확하게 들으세요?”“네가 항상 그렇게 허술하게 숨기기 때문이다.”“지금처럼 말이지.”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아프진 않았지만 손목 안쪽에서 아주 가는 실 하나가 심장까지 이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실 끝에서 누군가 아주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열어 달라는
정원 어딘가에서 움직이는 검은 기운인 자하크의 잔향을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루세티아의 파편은 카엘루스를 보았다.정확히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루세티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선명하게 떨렸다.— 검은,카엘루스의 표정이 굳었다.나도 숨을 멈췄다.검은.그 뒤에 이어질 말은 무엇일까.검은 기록?검은 조각?검은 운명?하지만 루세티아의 파편은 끝내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빛이 거칠게 흔들렸다.대현자 K 숙부님이 낮게 말했다.“아직 아니야.”“뭐가요?”“저 기록은 아직 열리면 안 된다.”카시안 오빠가 이를 갈았다.
“공녀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내 방 문 앞에 서 있던 기사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번듯한 제복을 입은 황실 기사단의 모습이었으나,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기사단장 엘릭이 달고 있었던 비슷한 모양의 검은 그림자가 슬금슬금 촉수처럼 뻗어 나오기 시작하던지 점점 내 방 안쪽 내 침대를 향해 탐욕스럽게 일렁이고 있었으니 말이다.‘아, 진짜 오늘 일진 왜 이래?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루세티아 여신님께 좀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뒷걸음질 치는 대신 턱을
“오라버니, 일단 진정해요. 저도 지금 엄청 황당하긴 한데, 어찌 되었든 황제는 제 정체를 알고도 돌려보냈잖아요. 그리고… 사실 카시안 오빠 문제보다 더 급한 건이 있어요.”나는 아까 응접실에서 보았던 검은 실타래가 정화되었음에도 끈질기게 다시 살아나던 모습을 떠올렸다.“황궁이 아무래도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아. 작은 오빠가 말한 그 ‘불순물’이… 사실은 내 빛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두 오빠에게 오늘 황궁 응접실에서 목격한 그 기괴한 검은 거미줄에 대해 털어놓아야
“카시안 루체른, 당장 나와라!”그가 집무실 문을 향해 거칠게 손을 뻗자 육중한 문은 단숨에 얼음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음, 황실 청구서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우리 집 수리비 걱정을 해야 할지도…’나는 속으로 수리비를 계산하며 조용히 큰오빠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히익! 형님, 형님! 진정하세요, 제발! 이건 다 거시적 관점에서 가문의 미래를 위한……!”집무실 안에서는 카시안 오빠가 소파 뒤에 처박힌 채 덜덜 떨고 있었다.그는 이미 칼라일이 돌아올 것을 예상했는지 온갖 방어 아티팩
큰오빠 칼라일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다.문을 통째로 날려버린 그 무식한 파괴력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성스러운 구원의 빛처럼 느껴졌다.칼라일은 제국의 태양이라는 카엘루스를 향해 고개만 까딱이며 최소한의 예의만 보인 뒤 빙하보다 차가운 시선으로 황제를 꿰뚫어 볼 뿐이었다.“황궁의 보안이 이토록 허술해서야. 감히 출처를 모르는 검은 벌레들 따위가 내 동생의 옷자락을 넘보게 한단 말인가.”칼라일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옆에 서 있던 기사단장 엘릭마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 살기의 과녁인 카엘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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