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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Autor: ddingjak30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6-06 09:48:06

귀국 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심하게 흘렀다.

꿈만 같던 여행지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곰팡내 나는 반지하에서의 현실의 시계는 지옥처럼 느리면서도 잔인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돌아갔다.

형광등을 켜도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 오직 창백한 노트북 모니터 불빛만이 수염도 깎지 못한 한결의 퀭하고 초췌한 얼굴을 유령처럼 비추고 있었다.

새로고침을 누른 화면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메일이 떠 있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우스를 쥔 한결의 손등에 시퍼런 핏대가 섰다.

'구독자 10만 명을 앞두었던 해외여행 유튜버'라는 20대 시절의 화려했던 이력은, 냉혹한 한국의 취업 시장에서 철저히 독으로 작용했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그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가 아니라, 그저 '현실 도피성 공백기가 비정상적으로 긴 몽상가' 혹은 '조직 생활의 쓴맛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튕겨져 나갈 부적응자'로 치부될 뿐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수십, 수백 군데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밀어 넣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복사해서 붙여넣은 듯한 기계적인 불합격 통보뿐이었다.

그사이,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마이너스의 늪으로 속절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당장의 생계비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밀린 대출 이자가 급해진 신민아는 결국 알량한 자존심마저 모두 바닥에 접어버렸다.

낮에는 편의점 바코드 스캐너를 쥐었고, 저녁에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고깃집의 기름진 불판을 수십 개씩 닦아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눈부시게 빛나던 20대의 아름다운 여자는, 이제 화장기 하나 없는 푸석한 얼굴로 한결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기꺼이 이 비참한 반지하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자처했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1시.

쇳소리를 내며 낡은 현관문이 열리고 파김치가 된 신민아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온종일 무거운 불판을 나르고 서빙을 하느라 퉁퉁 부어오른 종아리를 애처롭게 절뚝이며 들어온 그녀의 몸에서 찌든 고기 기름 냄새와 매캐한 숯불 향이 비좁은 방안으로 훅 끼쳐왔다.

신발을 벗을 힘조차 없는 듯 현관에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르던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핏발 선 눈으로 노트북 화면만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한결의 어두운 뒷모습을 발견했다. 민아가 지친 숨을 내쉬며 물었다.

"오빠... 안 자고 있었어? 밥은 먹었어?"

온몸이 부서질 듯 피곤한 와중에도 끼니를 거른 남편을 먼저 걱정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다정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수십 번째 불합격 통보를 받고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던 한결에게, 그 따뜻한 말은 오히려 무능함을 잔인하게 찌르는 날 선 비수처럼 심장에 꽂혔다.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결의 꾹 다문 입에서 기어코 가시 돋친 말이 튀어나갔다.

"밥? 네가 온종일 남들 비위 맞추고 불판 닦아서 벌어온 돈인데, 그 돈으로 산 밥이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냐?!"

"오빠, 왜 말을 그렇게 해? 난 그냥 밥 챙겨 먹었냐고 물어본 건데..."

"그냥 묻는 게 아니잖아! 속으로는 '나는 밖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데, 너는 집구석에서 밥이 넘어가냐'고 욕하고 있는 거 다 알아! 내가 모를 줄 알아?!"

스스로에 대한 비참함과 혐오감을 고스란히 눈앞의 신민아에게 투사하며, 한결은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민아는 이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깊게 상처받은 붉어진 눈빛으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귀국 후, 두 사람 사이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끔찍하고 신경질적인 싸움이었다.

"오빠 진짜... 사람을 너무 비참하게 만든다."

물기가 가득 배어 울먹이는 민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한결은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아차 싶었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빌고 싶었지만, 이미 바닥에 엎질러진 물이었다.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역겨운 자괴감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한결은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구겨진 겉옷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고,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으며 도망치듯 집을 박차고 나갔다.

찬 바람을 맞으며 한결이 충동적으로 향한 곳은 집 근처의 허름한 편의점이었다.

낡은 지갑에 꼬깃꼬깃 남은 마지막 지폐 몇 장으로 가장 싼 플라스틱 페트병 소주 하나를 사 들고,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공원 구석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씨발... 병신 새끼. 좆같은 새끼..."

플라스틱 뚜껑을 거칠게 따고 미지근하고 독한 소주를 물처럼 목구멍으로 들이켜며, 한결은 스스로의 뺨을 짝, 짝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때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소주와 함께 입안으로 들어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 앞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전 세계의 아름다움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당당하고 매력적이었던 청년, 강한결의 모습은 이제 그 어디에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가난이 주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찌든 채, 싸구려 플라스틱 소주병에 의지해 어두운 밤거리를 비틀거리는 짐승만도 못한 패배자 한 명만이 그 차가운 벤치 위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통이 깨질 듯한 지독한 숙취와 위장을 뒤틀리게 하는 메스꺼움과 함께 번쩍 눈을 뜬 한결은 습관처럼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텅 빈 방 안에는 이미 서늘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어젯밤 자신에게 그토록 모진 말을 듣고도, 민아는 동이 트기 무섭게 아침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 뒤였다.

갈라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던 한결의 시선이 머리맡에 놓인 낡은 접이식 교자상에 스르르 머물렀다.

그 위에는 민아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일찍 일어나 정성스레 끓여둔 소박한 콩나물 해장국과 흰쌀밥이 식지 않도록 투명한 랩으로 덮여 있었고, 그 랩 한가운데에는 꼬깃꼬깃한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이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

[오빠, 어제 피곤해서 예민했어. 미안해. 밥 꼭 챙겨 먹고 오늘 하루도 힘내. 내가 항상 응원하는 거 알지? 사랑해.]

피곤함에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그 비뚤빼뚤한 글씨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한결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덩어리를 참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헌신적이고 착하고 예쁜 여자를, 이 냄새나고 끔찍한 지옥의 밑바닥으로 끌고 들어온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혐오스러웠다.

그렇게 방바닥을 치며 한참을 바보처럼, 참회하듯 울고 있을 때였다.

한결의 스마트폰 액정이 환하게 켜지며, 정적을 깨는 경쾌한 알림음이 짧게 울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 한결의 시선이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에 멈췄다.

[진우: 한결아! 귀국했다며? 잘 지내지? 우리 이번 주말에 집들이할 건데 제수씨랑 꼭 와라! 너 좋아하는 와인도 사놨어 임마. ㅋㅋㅋ]

대학 시절만 해도 어딘가 어리숙해 보여 자신이 은근히 한 수 아래로 무시했었지만, 묵묵히 스펙을 쌓더니 이제는 굴지의 대기업에 번듯하게 취업해 탄탄대로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동창, 진우가 보낸 메시지였다.

스마트폰 액정의 하얀 백라이트 불빛 위로 선명하게 떠오른 '집들이'와 '와인'이라는 호화로운 활자가, 현재 한결이 숨 쉬고 있는 이 방 안을 채운 지독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눈앞에 놓인 싸구려 콩나물 해장국과 잔인할 만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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