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파리의 황금빛 야경은 한여름 밤의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귀국 후, 두 사람이 남은 돈과 영혼을 끌어모아 간신히 구한 보금자리는 서울 변두리의 낡은 다세대 주택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대낮에도 햇빛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우중충한 방안.
장판은 습기를 먹어 여기저기 울어 있었고, 벽지 구석구석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흉측한 얼룩을 피우고 있었다.
끼익거리며 낡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장마철 특유의 퀴퀴하고 습한 지하실 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찔렀다.
'우리가 함께라면 구석진 방갈로라도 천국'이라며 발리의 밤하늘 아래서 속삭였던 낭만적인 맹세는,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이 비좁고 탁한 공간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었다.
"와, 그래도 우리 둘만의 첫 집이네! 내가 금방 깨끗하게 치울게."
캐리어 두 개를 펼칠 공간조차 부족한 좁은 방 한가운데서, 신민아는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녀는 마트에서 천 원을 주고 사 온 복숭아 향 방향제를 방 안 곳곳에 뿌려대고, 물티슈를 뽑아 벽지에 핀 곰팡이를 벅벅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공적인 복숭아 향 방향제는 지독한 곰팡내와 섞여 오히려 구역질 나는 악취를 만들어낼 뿐이었다.
쪼그려 앉아 묵묵히 바닥을 닦는 신민아의 가녀린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한결은 심장이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리는 듯한 지독한 무력감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파리의 스위트룸에서 실크 가운을 입혀주었던 여자에게, 귀국하자마자 곰팡이 핀 반지하 방의 걸레질을 시키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짐승보다 못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뜸해진 깊은 밤.
두 사람은 이 불안하고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바닥의 한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좁고 딱딱한 매트리스 위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민아야..."
한결은 파리 스위트룸에서의 황홀했던 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보려 애쓰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새 거칠어진 민아의 손을 꽉 쥐고,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조심스럽게 티셔츠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민아 역시 차가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한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애무에 응했다.
키스를 주고 받으며 달콤한 타액을 교환했다.
뜨거운 열기를 잔뜩 머금은 민아의 봉긋한 유방을 주무르며 한결은 자신의 페니스가 빳빳하게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민아의 손을 가져와 자신의 페니스에 얹어 놓고, 그녀가 천천히 페니스를 문지르자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한결은 민아의 티셔츠를 걷어 올리고 그녀의 유방을 입 안 가득 머금었다.
입 속에서 혀를 굴려 유두를 빨고 핥으며 애를 태우자, 페니스를 쥔 민아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둘은 다시 한 번 키스를 주고받으며 속옷을 벗어던졌다.
한결이 민아를 눕히고 위로 올라가 두 사람의 본격적인 섹스가 시작되려던 찰나였다.
「크흠! 카아악- 퉤!」
「쏴아아아-!」
방음이라곤 전혀 되지 않는 얇은 합판 벽 너머로, 옆집 남자가 가래 끓는 기침을 뱉어내는 소리와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마치 귓가에서 울리듯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파리의 고요하고 완벽했던 야경을 채우던 낭만적인 침묵 대신, 하수구 배관을 타고 흐르는 오물 소리가 두 사람의 고막을 강타했다.
순간, 신민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한결 역시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던 손을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현실을 덮어보려던 로맨틱한 무드는 그 역겨운 소리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굳어버린 신민아의 시선이 천장 구석을 향한 순간이었다.
"꺄아악-!"
신민아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한결의 품에서 거칠게 벗어나 방구석으로 물러섰다.
그녀가 가리킨 천장 모서리에는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시커먼 바퀴벌레 한 마리가 더듬이를 움직이며 기어가고 있었다.
"하아... 씨발, 진짜..."
한결은 붉어진 눈시울로 욕설을 짓씹으며 바닥에 뒹굴던 슬리퍼를 집어 들고 벽을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벌레의 잔해가 낡은 벽지에 짓눌러 터졌다.
휴지로 그것을 대충 닦아내면서 한결은 비참함에 입술을 꽉 깨물어 피를 냈다.
여행지에서 끓어오르던 짐승 같던 성욕조차,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와 곰팡이 냄새 앞에서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육체의 쾌락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가난의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실체를 뼈저리게 체감하는 반지하의 첫날밤이었다.
"오빠... 나 씻고 올게."
벌레를 잡은 찝찝함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기 위해 신민아가 비좁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화장실 안에서 탁, 탁, 하고 보일러 스위치를 껐다 켜는 소리만 반복될 뿐 따뜻한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왜 그래? 물 안 나와?"
"...보일러가 고장 났나 봐. 따뜻한 물이 안 나와."
물기 젖은 목소리가 얇은 화장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결국 신민아는 얼음장 같은 찬물로 대충 몸을 씻고 나와야 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말없이 매트리스에 누운 그녀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얇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어두운 방 안, 얇은 이불이 규칙적으로 들썩이며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애써 밝은 척 방향제를 뿌리던 그녀가 결국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한결은 이불속에서 떨고 있는 신민아의 좁은 등을 차마 안아주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저 여자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온 건가?'
스스로의 무능함을 향한 지독한 원망과 혐오가 한결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청춘의 도피처가 악취 나는 지옥으로 변해버린 반지하의 밤.
한결은 아내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민아의 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비록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약간의 윤기는 잃어버렸을지라도 그 굴곡이 더해져 농염하고 섹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결은 민아의 팬티를 천천히 끌어내렸다. 그리고 속죄하듯 천천히 그녀의 가장 예민한 곳을 핥기 시작했다. 성숙한 여체에서 뿜어내는 야릇하고 농염한 향기. 그 작은 돌기가 한결의 입 안에서 점점 부풀어 올랐다. 민아의 허리가 뒤로 꺾이며 낮은 교성이 흘렀다. "하윽... 오빠..."상황에 따라 한결을 부르는 호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최소 '오빠'라는 표현은 지금 한결의 행동이 마음에 든 다는 뜻이다. 한결은 혀여 힘을 빼고 동글동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굴리다가 혀를 밑으로 내려 그녀의 질구에 살짝 집어 넣었다. "아흐읏!!"민아가 순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한결의 머리카락을 움켜 쥐었다. 하지만 한결은 혀에 더욱 힘을 주어 민아의 질구를 찔러대며 빨아댔다. 해외에서 매일같이 섹스를 했었지만, 이 지하 단칸방에서 한 섹스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랜만의 섹스에 민아의 질구에서 애액이 퐁퐁 솟아났다. 한결에게 맑은 물을 흘려주던 민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그의 상체를 일으켰다. "오빠도 벗어봐... 내가 오늘 정말 잘 빨아줄께."적잖게 흥분한 민아의 입에서 노골적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한결이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허름한 옷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꼿꼿한 페니스를 민아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민아는 야릇한 내음을 풍기는 한결의 페니스를 한 입에 삼켰다. 입안 가득한 타액으로 충분히 적신 후 혀로 기둥부터 천천히 핥기 시작했다. 늘어져 있는 고환도 부드럽게 핥아주고 기둥을 따라 올라와 맑은 물이 맺혀 있는 귀두 끝까지 핥아 올렸다. 한결의 양 다리가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꼈다. 민아의 입술이 귀두와 페니스 기둥이 연결되는 굴곡 부분에 걸쳐지고 천천히 왕복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흥분감으로 인해 한결의 허리가 활처럼 뒤로 휘었다. 민아는 손을 뻗어 한결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잡아
어떻게 집을 빠져나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등 뒤로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두 사람은 쫓기는 범죄자처럼 허겁지겁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38층에서 1층으로 수직 낙하하는 엘리베이터의 무중력감은, 마치 두 사람의 인생이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속도를 대변하는 듯했다.화려한 아파트 로비를 벗어나 단지 밖으로 걸어 나오는 길.두 사람 사이에는 숨이 막힐 듯한 끔찍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발걸음 소리조차 눈치를 보듯 조심스러웠다.정적을 깨는 유일한 소리는, 민아의 손에 들린 명품 쇼핑백이 바람에 흔들리며 민아의 허벅지를 스치는 소리뿐이었다.한결은 민아의 손에 들린 그 쇼핑백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꼿꼿하게 앞만 보고 걸었다.코트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그의 두 손은 터질 듯이 꽉 쥐어져 있었다.입술은 이미 형편없이 짓씹혀 비릿한 쇠맛이 입안을 맴돌았다.'내가…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찬란했던 20대의 유튜버 시절.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며 오만하게 굴었던 과거의 자신.그리고 지금, 아내가 다른 여자의 동정 어린 적선을 받으며 수치심에 떨고 있을 때 단 한 마디도 나서지 못한 채 침묵했던 방관자.완벽한 패배자.거대한 자본주의의 성벽 앞에서, 그들이 영원할 것이라 맹세했던 찬란한 사랑과 젊음은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서로 말이 없었지만 생각하는 것은 비슷했다.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예민한 문제였다."오빠... 저기..."민아가 뭐라 말도 하기 전에 한결이 민아를 등지고 누웠다.그가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민아 역시 예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오빠, 나 할 말 있다고..."민아의 손이 한결의 팔을 잡자 그가 거세게 뿌리치며 말했다."나 무시해? 너도 내가 우스워 보이냐고!"한결의 날 선 반응에 민아 역시 더욱 예민해지며 말투가 격해졌다."무슨 무시를 해? 내가 언제 널 무시했다고 그래?"잠자코
최고급 한우 안심 스테이크가 담긴 포셀린 접시 위로 은은한 조명이 부서져 내렸다.트러플 오일을 곁들인 매쉬드 포테이토와 완벽하게 구워진 고기의 육향이 거실을 가득 채웠지만, 한결과 민아의 입안에서는 그저 모래알처럼 서걱거릴 뿐이었다."이번에 싱가포르 지사 쪽으로 발령 날 것 같아서 고민이야. 혜택은 좋은데, 당장 이 집은 어떡하나 싶고."진우가 미디엄 바디의 레드 와인을 여유롭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을 가장한 명백한 성취감과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맞아. 그래도 주재원 나가면 애들 교육이나 우리 커리어에도 좋잖아. 참, 한결아. 너 예전에 미국장 주식 조금 한다고 하지 않았어? 요즘 엔비디아 쪽 수익률 장난 아니던데, 재미 좀 봤어?"서연이 생긋 웃으며 한결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그녀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그것이 한결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차라리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했다면 같이 화라도 냈을 텐데, 그들의 일상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여유는 굳이 칼을 들지 않고도 한결의 심장을 난도질하고 있었다."아… 어. 뭐, 조금. 요즘은 바빠서 잘 못 봐."한결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나왔다.바빠서 못 보는 것이 아니라, 통장 잔고가 바닥나 라면 한 묶음을 살 때도 수십 번을 고민해야 하는 처절한 현실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바빠도 재테크는 필수지. 우리는 다음 달에 호캉스 가려고 예약해 놨어. 거기 스파가 진짜 예술이거든. 민아야, 너도 나중에 한결이랑 꼭 가봐. 진짜 피로가 싹 풀린다니까."해외 발령. 주식 수익률. 고급 호텔의 스파.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은 한결과 민아에게는 철저히 차단된,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언어였다.민아는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손바닥에 축축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자신의 낡은 원피스가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초라하게 느껴졌다.짧고 긴 문장들이 교차하며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숨이 막혔다.이
외출을 앞두고 전신 거울 앞에 선 신민아는 신경질적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몇 년 전, 한결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할 때 입었던 화사한 플로럴 원피스였다.당시에는 영상 속에서 그녀의 눈부신 젊음과 어우러져 찬사를 받았던 옷이지만,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얇은 쉬폰 소재는 잦은 세탁으로 보풀이 일고 윤기를 잃었으며, 허리선에 잡힌 주름은 낡은 티를 내고 있었다.단순히 예쁜 옷을 입지 못해서가 아니다.존재 자체가 초라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린 듯한 그 지독한 위축감.민아는 자신의 뽀얀 살결 위로 반지하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배어날까 두려워, 아침부터 몇 번이나 바디워시를 짜내어 문질러 씻었다.하지만 아무리 향수를 뿌려대도, 피부 모공 깊숙한 곳에서부터 가난의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한결아. 우리 진짜… 그냥 가지 말까?"민아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나 오늘 아침부터 속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장염이라고 핑계 대면 진우네도 이해해 줄 텐데……."구차한 변명이었다.하지만 민아는 어떻게든 이 외출을 피하고 싶었다.대학 시절, 그들과 몰려다니며 누구보다 빛났던 것은 자신과 한결이었다.졸업과 동시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도서관에 처박혀 있던 진우와 서연 부부를 보며, 속으로는 '청춘을 낭비한다'며 묘한 우월감마저 느꼈던 그들이었다.그런데 지금, 입장이 완벽하게 역전되어 버렸다.낡은 운동화 끈을 매고 있던 한결의 손이 우뚝 멈췄다.그의 턱관절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볼우물이 깊게 파였다."무슨 소리야. 우리가 무슨 죄지었어?"한결이 애써 목소리에 힘을 주며 일어났다.하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짙은 열등감과 불안감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진우 그 자식, 대기업 좀 들어갔다고 벌써부터 유세 떠는 거 짜증 나서라도 가야 해. 우리가 뭐 돈 빌려 달라고 가는 것도 아니고, 축하해 주러 가는 건데 왜 기죽고 그래? 당당하게 다녀오자. 어깨 펴."그의 말은
귀국 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심하게 흘렀다.꿈만 같던 여행지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곰팡내 나는 반지하에서의 현실의 시계는 지옥처럼 느리면서도 잔인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돌아갔다.형광등을 켜도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 오직 창백한 노트북 모니터 불빛만이 수염도 깎지 못한 한결의 퀭하고 초췌한 얼굴을 유령처럼 비추고 있었다.새로고침을 누른 화면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메일이 떠 있었다.[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마우스를 쥔 한결의 손등에 시퍼런 핏대가 섰다.'구독자 10만 명을 앞두었던 해외여행 유튜버'라는 20대 시절의 화려했던 이력은, 냉혹한 한국의 취업 시장에서 철저히 독으로 작용했다.기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그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가 아니라, 그저 '현실 도피성 공백기가 비정상적으로 긴 몽상가' 혹은 '조직 생활의 쓴맛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튕겨져 나갈 부적응자'로 치부될 뿐이었다.밤을 새워가며 수십, 수백 군데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밀어 넣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복사해서 붙여넣은 듯한 기계적인 불합격 통보뿐이었다.그사이,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마이너스의 늪으로 속절없이 빠져들고 있었다.당장의 생계비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밀린 대출 이자가 급해진 신민아는 결국 알량한 자존심마저 모두 바닥에 접어버렸다.낮에는 편의점 바코드 스캐너를 쥐었고, 저녁에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고깃집의 기름진 불판을 수십 개씩 닦아내고 있었다.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눈부시게 빛나던 20대의 아름다운 여자는, 이제 화장기 하나 없는 푸석한 얼굴로 한결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기꺼이 이 비참한 반지하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자처했다.시곗바늘이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1시.쇳소리를 내며 낡은 현관문이 열리고 파김치가 된 신민아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온종일 무거운 불판을 나르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파리의 황금빛 야경은 한여름 밤의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귀국 후, 두 사람이 남은 돈과 영혼을 끌어모아 간신히 구한 보금자리는 서울 변두리의 낡은 다세대 주택 반지하 단칸방이었다.대낮에도 햇빛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우중충한 방안.장판은 습기를 먹어 여기저기 울어 있었고, 벽지 구석구석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흉측한 얼룩을 피우고 있었다.끼익거리며 낡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장마철 특유의 퀴퀴하고 습한 지하실 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찔렀다.'우리가 함께라면 구석진 방갈로라도 천국'이라며 발리의 밤하늘 아래서 속삭였던 낭만적인 맹세는,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이 비좁고 탁한 공간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었다."와, 그래도 우리 둘만의 첫 집이네! 내가 금방 깨끗하게 치울게."캐리어 두 개를 펼칠 공간조차 부족한 좁은 방 한가운데서, 신민아는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소매를 걷어붙였다.그녀는 마트에서 천 원을 주고 사 온 복숭아 향 방향제를 방 안 곳곳에 뿌려대고, 물티슈를 뽑아 벽지에 핀 곰팡이를 벅벅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하지만 인공적인 복숭아 향 방향제는 지독한 곰팡내와 섞여 오히려 구역질 나는 악취를 만들어낼 뿐이었다.쪼그려 앉아 묵묵히 바닥을 닦는 신민아의 가녀린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한결은 심장이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리는 듯한 지독한 무력감과 죄책감에 휩싸였다.파리의 스위트룸에서 실크 가운을 입혀주었던 여자에게, 귀국하자마자 곰팡이 핀 반지하 방의 걸레질을 시키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짐승보다 못하게 느껴졌다.어느덧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뜸해진 깊은 밤.두 사람은 이 불안하고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바닥의 한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좁고 딱딱한 매트리스 위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민아야..."한결은 파리 스위트룸에서의 황홀했던 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보려 애쓰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그새 거칠어진 민아의 손을 꽉 쥐고,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