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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본능의 손끝

작가: 데이지
last update 게시일: 2026-06-15 07:03:42

보류 통보 이후, 집 안의 공기는 조용해졌지만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하나는 표면적으로 아무 변화가 없는 듯 행동했다.

평소처럼 출근했고, 평소처럼 자료를 정리했고,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그러나 건우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졌고, 움직임이 더 절제되어 있다는 것을.

그건 방어가 아니라, 각오에 가까웠다.

“내일 기자 브리핑 잡았어.”

저녁 식사 후, 하나가 말했다.

“직접?”

건우의 물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질문이었다.

“응. 시간 끌기 프레임을 먼저 깨야 해.”

그녀는 담담했지만, 그 결정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건우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저쪽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하나는 잠시 생각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가만히 있지 않겠지.”

그 말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그녀는 위험을 계산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다만, 그 위험을 이유로 물러서지 않을 뿐이었다.

그날 밤, 건우는 잠들지 못했다.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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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169. 대답하지 않은 밤

    집 안이 완전히 잠든 시간이었다.시계는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고, 거실 한쪽에 켜둔 스탠드 조명만이 소파와 테이블의 가장자리를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창밖은 비가 올 듯한 눅눅한 어둠으로 가득했으며, 닫힌 유리창 너머로는 가끔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만 아주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조차 없어진 뒤부터는 집 전체가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사람이 잠든 집이라는 건 원래도 조용하지만, 어떤 날의 새벽은 단순히 조용한 수준을 넘어 마치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건우는 그 정적 한가운데에 혼자 앉아 있었다.노트북은 진작 덮어두었고, 휴대폰도 화면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놓은 채였다. 그는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두 손을 비워두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머릿속까지 비워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생각은 더 선명해졌다. 형의 녹음 파일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그걸 듣던 하나의 눈빛, 그리고 그 뒤로 몇 번이나 떠올랐다가 다시 지워지듯 사라진 서하의 얼굴까지. 오늘 하루는 이상할 정도로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고, 그 감정들은 밤이 깊어질수록 하나로 뭉치기보다 더 세세하게 갈라졌다.그중에서도 가장 거슬리는 건 서하였다.정확히는 서하가 뭔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는 감각이었다.건우는 그걸 이미 오래전부터 알아왔다. 서하는 원래 그런 식이었다. 필요한 말은 하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히려 더 적게 말하는 사람. 처음엔 그게 냉정하다고 생각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이 사람 나름의 방식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됐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하나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 선명해진 뒤에는 더 그랬다.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이 안 오는 이유가 단순한 예민함 때문이 아니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머릿속은 지나치게 또렷했다. 이런 날은 억지로 잠들

  • 형수의 밤   168. 내가 모르는 그 시간까지

    하나 안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시간 말고도,전혀 다른 결의 시간이 따로 있다는 걸.그는 아주 천천히 물었다.“너… 기억 안 나?”하나가 눈을 깜빡였다.“뭘.”“방금 전.”건우는 말을 고르다가 결국 솔직한 쪽으로 갔다.“내가 형 목소리 얘기했을 때.”하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이 건우의 얼굴을 훑듯 머물렀다가, 아주 잠깐 아래로 떨어졌다. 그 눈빛은 평소처럼 조용했지만, 건우는 그 안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 같은 걸 읽었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같은 질문을 자기 안에서 너무 오래 반복해온 사람의 피로.“기억은 나지.”하나가 낮게 말했다.“그 뒤가 좀… 멍했어.”건우는 그 대답을 곧바로 믿지 못했다기보다, 그 문장이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더 걸렸다. 하나는 지금 자기 상태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설명 가능한 범위 안으로만 끌어들이고 있었다.그건 꼭 형이 하던 방식과 닮아 있었다.건우는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스스로 놀랐다.닮았다는 사실이 불편했다.하지만 외면할 수는 없었다.그는 조용히 물었다.“너도 그렇게 느껴?”“뭘.”“가끔… 중간이 비는 것처럼.”하나는 이번엔 눈을 바로 들지 못했다.건우는 숨을 아주 얕게 들이마셨다.지금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형에 대해서만 묻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하나 자신에게, 하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묻고 있었다.한참 뒤에야 하나가 아주 낮게 말했다.“가끔.”그 짧은 한마디가 생각보다 훨씬 크게 가슴에 박혔다.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나는 시선을 내린 채 말을 이었다.“아예 기억이 없는 건 아닌데… 뭔가가 끊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건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젯밤 식탁에서 보았던 손끝의 떨림과, 오늘 방금 전 그 눈빛이 하나로 겹쳐지는 걸 느꼈다. 그건 단순한 스트레스 반응으로 보기엔 이상할 만큼 선택적이었다. 특정한 말, 특정한 결, 특

  • 형수의 밤   167. 모르는 표정

    하나는 물을 마신 뒤에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아주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아까보다 호흡은 조금 안정된 것 같았지만, 건우는 이상하게도 더 쉽게 안심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눈앞에 있었던 그 낯선 결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같은 얼굴이었다.같은 목소리였고, 같은 손이었고, 같은 눈이었다.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 그 안에 전혀 다른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건우는 소파 옆에 선 채로 하나를 내려다봤다.하나는 아직도 물컵을 쥔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가 있었다. 손등 위 얇은 혈관이 드러나 있었고, 마른 입술은 컵 가장자리를 아주 천천히 따라 움직이다가 멈췄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피곤한 밤처럼 보였을 장면인데, 지금은 그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전부 다르게 읽혔다.건우는 결국 천천히 하나의 옆에 앉았다.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 닿는 건 오히려 무언가를 망칠 것 같은 거리.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하나는 컵을 내려놓지 않았고, 건우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방금 전 자기 눈앞에서 지나간그 이상한 순간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게 될까 봐, 건우는 침묵 쪽을 택했다.그 정적은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지금 필요한 건 질문보다 관찰이라는 걸 건우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얼마쯤 지났을까.’하나가 아주 낮게 말했다.“왜 그렇게 봐.”건우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뭘.”“계속.”그 말은 평소의 하나로 돌아온 것처럼 들렸다. 목소리도, 호흡도, 말 끝의 결도 방금 전과는 달랐다. 그래서 건우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정말 자기가 잘못 본 건가. 긴장과 피로가 겹쳐서 순간적으로 이상하게 느낀 것뿐이었나.하지만 그런 식으로 넘기기엔, 방금 전 하나의 눈이 너무 선명했다.건우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아까 너 좀 이상했어.”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형수의 밤   166. 손끝의 기억

    식탁 위의 공기가 완전히 가라앉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둘 다 알고 있었다. 방금 지나간 짧은 순간이 단순한 대화의 끊김이 아니라, 어떤 경계를 건드린 뒤에 남는 정적이라는 걸. 말 몇 마디로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종류의 틈이 이미 생겨 있었다.건우는 컵을 다시 들지 않았다.물은 그대로였고,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반대로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받아들였을 때 오는 묘한 고요함에 가까웠다.그는 눈앞의 하나를 바라봤다.하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보다 더 움직임이 적어졌고, 손은 식탁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건우는 이상하게 그 고요함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너무 조용한 사람은 안에서 이미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을 때가 많다.건우는 그 생각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형수님.”하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네.”대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 짧은 한 음절 안에 미세하게 숨이 섞여 있었다. 건우는 그걸 듣고 잠시 말을 멈췄다. 질문을 이어가는 게 맞는지, 아니면 여기서 멈추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그는 결국 아주 단순한 쪽으로 돌아갔다.“괜찮아요?”하나는 그제야 시선을 들었다.눈빛은 여전히 정돈되어 있었다. 흐트러진 흔적은 없었고, 눈가도 마른 상태였다. 그런데 건우는 그 눈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괜찮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는 걸. 다만, 괜찮은 것처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 가까웠다.하나는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대답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매끄러웠다.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은 답을 끌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답이 나오는 방식을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하

  • 형수의 밤   165. 내가 잘못한 건가 싶었지

    하나는 그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눈을 피했다.건우는 그 작은 움직임에 심장이 천천히 조여드는 걸 느꼈다. 그녀는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창 쪽을 봤고, 손끝이 컵 손잡이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그리고 아주 오래 걸려서야 대답했다.“그땐 그걸 무섭다고 생각 안 했어.”건우는 목 안이 마르는 걸 느꼈다.하나는 다시 그를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그냥…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었ㅈ;.”그 말은 조용했지만, 건우에게는 거의 정면으로 꽂혔다.사람을 직접 다치게 하지 않고도 무너뜨리는 방식이 있다.상대가 자기 감각을 의심하게 만들고, 자기가 과민한 건지, 오해한 건지, 쓸데없이 예민한 건지 계속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방식.건우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하나는 지금도 너무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아팠다. 이건 갑자기 떠오른 상처가 아니라, 오래전에 이미 몸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감각이었다.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중간에 멈췄다.식탁 위, 하나의 손까지는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그런데 그 짧은 거리조차 쉽게 넘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를 위로하는 건 너무 쉬운 방식 같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너무 잔인한 것 같았다. 그 어중간한 거리에서 건우는 자기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하지만 하나는 그걸 봤다.그녀의 시선이 잠깐 건우의 손끝에 머물렀다가, 다시 그의 얼굴로 올라왔다. 그 짧은 움직임 안에 너무 많은 말이 담겨 있어서, 건우는 순간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그 침묵은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감추기 위한 침묵이라기보다, 서로가 서로 안의 어떤 부분을 너무 선명하게 봐버린 뒤에 생기는 정적에 가까웠다.건우는 아주 늦게서야 입을 열었다.“오늘…”하나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건우는 시선을 잠깐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형 목소리 들었어.”그 말이 떨어진 순간, 하나의 표정이 처음으로 눈에 띄

  • 형수의 밤   164. 진짜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하나는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침묵했다.그녀는 시선을 컵에 두고 있었고, 손끝으로 컵 가장자리를 아주 느리게 쓸고 있었다.유리 표면에 맺혀 있던 작은 물기가 손끝에 묻었다. 그 동작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지금 그녀가 말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줬다.“사람마다 다 다르게 대하긴 했는데.”하나가 마침내 말했다.“그게… 그 사람 마음이 움직여서 다르게 대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그럼.”“필요한 방식으로.”건우는 그 말 앞에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필요한 방식으로. 오늘 하루 동안 여러 번 비슷한 결의 문장을 들었다. 정리. 결재선. 선 넘기 전에 자른다.감정 섞이면 일이 커진다. 그리고 지금 하나의 입에서 나온 이 말까지.윤신우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상황 안에 배치된 변수처럼 다뤘을지도 모른다.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건우는 자기 안쪽이 아주 얇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그는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너한테도?”하나의 손이 멈췄다.정말로 아주 잠깐, 컵을 쥐고 있던 손끝이 그대로 굳었다. 건우는 그 짧은 멈춤을 보고 나서야 자기가 얼마나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말은 나온 뒤였다.하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건우는 괜히 후회 비슷한 걸 느꼈다. 지금 자기가 원하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단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하나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긋남 자체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한참 뒤에야 하나가 아주 낮게 말했다.“모르겠어.”건우는 그 대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거의 본능적으로 느꼈다.하나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덧붙였다.“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건우는 숨을 멈춘 듯 그녀를 바라봤다.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말은,어느 순간부터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하나는 여전히 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

  • 형수의 밤   10. 의심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 형수의 밤   9. 진동

    비는 오지 않았는데도,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건우는 창문을 열어두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걸 느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9:129:189:37그 아래, 어젯밤 그가 덧붙인 한 줄.‘조용했다.’그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보았다.조용했다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움직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하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건우는 문득 물었다.“그날… 진동 느

  • 형수의 밤   8. 잠긴 문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 형수의 밤   7. 6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9시 12분.9시 18분.6분.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그녀가 먼저 물었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근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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