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축축하고 비릿한 음식물 썩는 냄새가 좁은 뒷골목을 무겁게 맴돌았다.
지안은 커다란 검은색 쓰레기봉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손끝이 덜덜 떨렸고, 터진 고무장갑 틈새로는 끈적한 오물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불쾌감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당장 이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식당 주인의 불호령이 떨어질 터였다."야! 거기 굼벵이처럼 뭐 해! 홀에 그릇 쌓인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당장 들어가겠습니다."지안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앞치마에 젖은 손을 대충 문질러 닦았다.
식당 안으로 다급하게 발을 들이려던 찰나였다."여기 송학수 딸내미 숨어 있다는 거 다 알고 왔어! 문 안 열어?"
쾅! 쾅! 쾅!
셔터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쇳소리가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지안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숨이 턱 막히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사채업자들이었다. 아버지가 병상에서 눈을 감은 뒤, 성원테크의 막대한 부채는 오롯이 지안의 몫으로 떨어져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식당 주인이 황급히 뒷문으로 달려왔다."너, 너 이년아! 내 식당 다 박살 낼 일 있어? 당장 앞치마 벗고 나가!"
"사장님, 제발…… 오늘 일한 일당만이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어제도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일당은 무슨 얼어 죽을 일당이야! 당장 꺼져!"주인은 지안의 등을 거칠게 떠밀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로 지안이 속절없이 넘어졌다. 바닥에 쓸린 손바닥과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사채업자들이 셔터를 걷어차며 뒷골목으로 돌아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저기 있다! 잡아!"
지안은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미친 듯이 어두운 골목길을 향해 내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폐부가 찢어질 듯 아팠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건물 틈새에 몸을 구겨 넣은 지안은, 두 손으로 제 입을 꽉 틀어막았다. 벌벌 떨리는 손등 위로 차가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 내렸다. 지안은 숨을 죽인 채, 멀어지는 사채업자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철저한 밑바닥이었다.---
최고급 세단의 넓은 뒷좌석.
태경은 묵묵히 태블릿 화면의 사진들을 넘기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앞치마를 두른 채 식당 뒷골목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지안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태경의 시선이 화면을 짚은 채 길게 머물렀다. 지안의 손등에 난 붉은 흉터. 넘어져서 까진 무릎. 헝클어진 머리칼. 태경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이게 오늘 자 송지안의 동선입니까."
"예. 아침 6시부터 식당 주방 보조를 했으나, 오후 2시경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쳐 쫓겨났습니다. 이번 주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해고입니다."수석 비서의 건조한 보고가 이어졌다.
태경은 태블릿의 전원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렸다. 화면이 까맣게 죽었지만, 바닥을 기어 다니는 지안의 잔상은 태경의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속이 뒤틀렸다. 저 오만하고 꼿꼿하던 여자가 시궁창을 구르고 있다. 그것은 철저히 자신이 계획한 결과였다. 하지만 흙바닥에 넘어진 그녀의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불쾌감이 명치끝을 긁어내렸다."도와주려는 놈들은."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라는 자가 오백만 원을 융통해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측에서 그 선배가 다니는 회사에 압력을 넣자, 즉각 연락을 끊었습니다." "친척들은." "이미 송지안의 번호를 모두 수신 차단한 상태입니다.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비서의 대답에 태경은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긴 손가락으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어 내리며 창밖을 응시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완벽한 고립. 그 지독한 늪에 빠진 지안이 잡을 수 있는 동아줄은 이제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다."계속 감시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굳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쓸데없는 소리."태경의 서늘한 눈빛이 룸미러를 통해 비서를 찔렀다.
비서가 황급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태경은 차가운 가죽 시트를 손끝으로 규칙적으로 두드렸다.이것은 사랑이나 연민 따위의 얄팍한 감정이 아니다.
주인을 몰라보고 발톱을 세우던 고양이를 철저하게 길들이는 과정일 뿐이다.독한악취가 퍼져 나갔지만, 이헌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아니,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소름 끼치도록 다정하고 황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는 차가운 우물물을 길어 올렸다.그리고 맨손으로,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오물통 안을 박박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더러운 오물과 구정물이 튀어 올라 그의 비단옷을 더럽히고, 잘생긴 뺨과 턱선에 묻었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오직 그녀가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그를 구원받은 순교자처럼 벅차오르게 만들고 있었다.“하아…… 아아…….”창문 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서연은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에 주저앉았다.다리에 힘이 완벽하게 풀려버렸다.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거칠게 요동치고,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끔찍한 한기가 전신을 휘감았다.차라리 화를 냈어야 했다.대군의 자존심을 운운하며 내 뺨을 치거나, 분노에 미쳐 칼을 뽑아 들었어야 했다.하지만 저 남자는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행복에 겨워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저건, 연기가 아니야.’서연의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이 미치광이의 광기는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그의 맹종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가짜가 아니었다.자신의 자존심, 권력,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서연의 발밑에 기꺼이 처박고 희열을 느끼는 진짜 맹종.비틀리고 일그러진 지독한 집착의 끝이었다.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리 끔찍한 모욕을 주어도 이 남자는 절대 나를 놓지 않을 것이다.내가 내쫓으려 발버둥 치는 그 행동조차, 그는 자신에게 뻗은 구원의 동아줄로 착각하며 더욱 맹렬하게
안채에 감도는 공기는 언제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서연은 두꺼운 이불을 무릎까지 끌어당긴 채, 가림막 너머의 텅 빈 마루를 응시했다.의금부로 끌려간 대신들의 비명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자신을 괴롭혔던 자들을 향한 이헌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그것은 결코 통쾌한 복수가 아니었다.자신의 등 뒤에 거대한 과녁을 그려 넣는 잔혹한 짓이었다.이대로 저 미치광이의 살육에 편승하여 웅크리고 있다간, 결국 자신도 저 피바람에 휩쓸려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확인해야 해.’서연은 창백한 입술을 꽉 깨물었다.저 남자가 내 발밑에 엎드려 바치는 복종이 과연 어디까지인지.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대군의 오만한 자존심을 짓밟았을 때, 과연 그가 언제까지 이 가증스러운 연극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시험해야 했다.차라리 그의 분노를 사서 이 끔찍한 밀실에서 쫓겨나거나, 단칼에 베여 죽는 것이 나았다.그것이 이 숨 막히는 지옥의 족쇄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다.“……거기 있습니까.”서연의 건조한 목소리가 가림막 너머를 향했다.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루 바닥에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예. 아가씨, 쇤네 여기 엎드려 있사옵니다.”이헌의 목소리였다.그는 서연이 먼저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결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서연은 그 맹목적인 떨림에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꼿꼿하게 말을 이었다.“당신이 진정으로 내 발밑의 개를 자처한다면, 내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까.”“……무엇이
이헌이 궤짝을 발로 걷어차 열었다.그 안에는 병조판서가 방금 불태운 장부와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는, 또 다른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이, 이게 무엇이오……!”“자네가 불태운 본장부는 하나뿐이겠지. 허나, 그 돈이 흘러간 객주의 은표 발행 기록, 상단의 물류 이동 대장, 자네가 차명으로 사들인 전라도의 토지 대장을 모조리 긁어모아 교차 검증(交叉檢證)하여 복원해 낸 내역서요.”병조판서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현대 법조계에서 기업의 이중 장부를 잡아낼 때 쓰는 파생 데이터 추적 방식.이헌은 그들의 돈줄과 연관된 모든 외곽 기록을 털어 완벽한 ‘백업 데이터’를 법적 증거로 조립해 둔 상태였다.“본장부 하나 태운다고, 네놈이 저지른 살육의 흔적이 지워질 줄 알았소?”“아, 아닙니다! 이것은 조작이오! 대군이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의금부로 끌고 가라.”이헌의 서늘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사들이 달려들어 병조판서의 무릎을 꺾고 포박했다.“놓아라! 나는 병조판서다! 이놈, 대군! 네가 이리 피바람을 일으키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끌려 나가는 병조판서의 단말마 같은 절규가 밤하늘을 찢었다.이헌은 화로의 불씨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입가를 비틀었다.시작에 불과했다.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던 자들, 그녀의 가족을 찢어발겼던 자들.그 모든 배후의 숨통을, 오직 빈틈없는 율법의 칼날로 도륙 낼 참이었다.---같은 시각, 대군저의 안채.가림막 너머로 짙은 어둠이 깔린 방 안에서, 서연은
편전의 무거운 공기 속, 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용상 아래, 붉은 곤룡포를 입고 선 진안대군 이헌.그의 목덜미에는 새하얀 붕대가 두껍게 감겨 있었다.핏물이 배어 나온 붕대는 묘한 위압감을 풍기며, 편전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대군, 그 목의 상처는 어찌 된 일인가.”왕 이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헌은 상처에 손을 얹은 채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간밤에, 제 숨통을 노리는 쥐새끼가 한 마리 숨어들었사옵니다.”“……!”대신들의 어깨가 흠칫 굳어졌다.이헌은 그들의 흔들리는 동공을 서늘하게 훑어 내리며 목소리를 높였다.“하여 소신은 전하께 청하옵니다. 지난 서상서의 역모 사건에는 아직 그 배후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사옵니다. 제 목을 노린 자들 역시 그 잔당일 터.”“그래서, 어찌하자는 것인가.”“의금부 내에 기존의 지휘 체계를 벗어난 ‘독립 추국청(獨立推鞫廳)’을 신설하여 주시옵소서. 사헌부의 간섭도, 의금부 판사의 결재도 받지 않고 오직 율법의 잣대로만 배후를 캐낼 독자적인 수사 권한을 원하옵니다.”편전이 발칵 뒤집혔다.현대의 ‘특별검사(특검)’ 제도를 조선의 조정에 들이미는 파격적인 요구였다.“저, 전하! 불가하옵니다! 어찌 한 명의 대군에게 사법의 전권을 쥐여준단 말이옵니까!”“이는 조선의 수사 체계를 무너뜨리는 기만이옵니다!”병조판서와 대사헌이 사색이 되어 엎드렸다.서연의 가문을 모함하여 몰락시키는 데 앞장섰던 핵심 배후들이었
가림막 너머로 길고 무거운 밤이 이어졌다.서연은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긴 채 얕은 선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단 한 순간도 평온을 허락하지 않았다.[너는 평생, 내 통제 아래에서 숨을 쉬어야 해.]꿈속에서, 붉은 피를 뒤집어쓴 이헌이 그녀의 목을 옥죄어왔다.서늘한 뱀처럼 얽혀드는 그의 손길이 숨통을 조이고, 발버둥 칠수록 수렁으로 깊이 빠져드는 끔찍한 환각.“으윽…… 흐아악!”서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 짐승처럼 헐떡이는 거친 호흡.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킨 바로 그 순간이었다.찌이익-!대나무 발이 부서지고 두꺼운 명주 가림막이 거칠게 찢어지는 파열음이 방 안을 진동시켰다.“서연아!”가림막을 짐승처럼 찢어발기며 튀어 들어온 것은 이헌이었다.그녀의 비명 단 한 마디에 완벽하게 이성을 잃어버린 얼굴.핏발 선 그의 두 눈은 미친 듯이 방 안의 사각지대를 훑고 있었다.자객? 독사? 그녀를 위협하는 것이 무엇이든 당장 제 손으로 찢어발길 기세였다.“누가, 누가 널 해치려……!”이헌이 붉은 곤룡포 자락을 휘날리며 침상으로 뛰어들었다.그가 서연의 어깨를 붙잡으려 커다란 두 손을 뻗는 찰나였다.“오지 마!!”서연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그녀의 손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허공을 갈랐다.베개 밑에 숨겨두었던, 끝이 날카롭게 갈린 긴 은비녀였다.서연은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비녀를 꽉 쥔 채, 이헌의 목을 정면으로 겨누었다.“다가오지 마……
대신들은 이헌의 압도적인 두뇌 앞에 완벽한 패배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그날 오후, 대군저.가림막 너머에 웅크려 있던 서연의 귀로, 마당을 청소하던 하인들의 은밀한 속삭임이 흘러 들어왔다.“들었는가? 오늘 아침 편전에서, 대군 자가께서 우의정 대감을 율법 하나로 완벽하게 짓눌러버리셨다네.”“암, 듣고말고. 안채의 아가씨를 관아로 빼돌리려는 법안을, 무슨 재산권이니 소급이니 하는 무서운 법 논리로 원천 봉쇄하셨다지 않은가.”“글 한 줄로 만조백관의 입을 꿰매버리시다니, 진정 사람의 머리가 아니신 게지.”서연의 호흡이 일순간 멎었다.그녀의 붕대 감긴 두 손이 파르르 떨리며 이불깃을 꽉 움켜쥐었다.조정의 대신들이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법까지 만들려 했다.하지만 이헌은 칼 한 번 뽑지 않고, 오직 율법의 조항과 논리만으로 그 거대한 국가 권력의 시도를 산산조각 내버렸다.‘법을…… 가지고 놀고 있어.’서연의 텅 빈 눈동자에 극심한 공포가 일렁였다.칼이 아니라 법과 권력으로 사람의 퇴로를 모조리 막아버리는, 지금 눈앞의 이헌이 선택한 바로 그 방식이었다.그는 언제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상대를 파멸시켰다.그런 그가, 이제는 조선의 율법을 제 입맛대로 비틀고 조립하며 자신을 가두는 완벽한 성벽을 세우고 있었다.드르륵.안채의 문이 열렸다.서연의 어깨가 강하게 튀어 올랐다.가림막 너머로, 붉은 곤룡포를 입은 거대한 짐승의 그림자가 스며들었다.이헌은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늘 그렇듯 차가운 마루 위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밖에서 만조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