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회군한 대군의 후회: Bab 1 - Bab 10

15 Bab

[1화] 악마와의 조우(1)

빗방울이 최고급 통유리창을 거칠게 때렸다.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형 로펌 ‘태산’의 대표 변호사 탑층 집무실.차태경은 짙은 회색 슈트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넣은 채, 창밖의 흐린 도심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태경 변호사님. TK그룹 측에서 의뢰한 적대적 M&A 건, 타겟 기업의 분석이 끝났습니다.”뒤에 선 수석 비서가 조심스럽게 서류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태경은 천천히 몸을 돌려 책상으로 다가갔다.테이블 위를 스치는 그의 길고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이 서류의 첫 장을 넘겼다.[타겟: 성원테크. 대표: 송학수. 실질적 경영 대행: 송지안 본부장.]태경의 시선이 서류 우측 상단에 클립으로 고정된 증명사진에 머물렀다.송지안.단정하게 묶은 머리, 옅은 화장기,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기울어가는 가업을 살리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는 스물일곱의 여자였다.“현재 성원테크의 재무 상태는 바닥입니다. 주거래 은행에서 대출 연장을 거부하면 당장 다음 주에 1차 부도가 납니다.”“기술력은.”“확실합니다. TK그룹이 노리는 것도 성원테크의 미공개 특허 기술 세 건입니다. 껍데기는 버리고 핵심 기술만 집어삼키는 것이 이번 합병의 목표입니다.”태경은 서류를 덮으며 낮게 입꼬리를 올렸다.완벽한 사냥감이었다.숨통을 조이면 조일수록 발버둥 치겠지만, 결국 스스로 목줄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약자.그는 책상 위의 만년필을 집어 들며 서늘하게 명했다.“은행 쪽에 손을 써둬. 내일 오전 중으로 대출금 상환 압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라고 해.”“예. 그리고 성원테크 측에는 어떻게…….”“내가 직접 가지.”태경의 짙은 눈동자에 서늘한 흥미가 스쳤다.가장 완벽한 파멸은, 사냥감이 제 발로 사냥꾼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다음 날 오후, 장대비가 쏟아지는 K은행 본점 로비.지안은 물에 젖은 서류 가방을 품에 끌어안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낡은 정장 재킷을 적셨지만,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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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악마와의 조우(2)

캐비닛에는 태경이 지시한 방어 방안과 법률 서류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지안은 두 손에 뜨거운 인스턴트 커피가 든 종이컵을 쥐고, 탁자 맞은편에 앉은 태경을 바라보았다.“오늘도 늦게까지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매번 이렇게 저희 회사 일에 매달려 주시고…….”“컨설팅 비용은 추후에 특허가 상용화되면 정식으로 청구할 테니, 벌써부터 빚진 표정 지을 필요 없습니다.”태경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서류에서 눈을 뗐다.지안의 피로한 얼굴 위로 희미한 안도감이 번져 있었다.지난 한 달간 태경은 채권자들의 독촉을 법적으로 막아내고, 얽힌 소송들을 깔끔하게 지연시켰다.물론 그것은 성원테크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TK그룹이 흡수하기 좋도록 덩치를 다듬고 타 세력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고도의 밑작업일 뿐이었다.하지만 지안은 철저히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그를 신앙처럼 의지하고 있었다.“변호사님 아니었으면…… 저희 아버지, 그리고 우리 공장 식구들 전부 길거리에 나앉았을 겁니다.”“…….”“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지안이 컵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지치고 갈라진 입술 위로 번지는, 티 없이 맑고 맹목적인 신뢰.그 미소를 마주한 순간, 태경은 넥타이를 풀던 손가락을 멈칫했다.심장 한구석이 까끌하게 긁히는 듯한,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이질적인 감각이 정맥을 타고 흘렀다.그녀의 얇은 손목, 지친 어깨, 그리고 오직 자신만을 향해 열려 있는 무방비한 시선.그것들을 모조리 짓밟아 부숴버리고 싶다는 파괴 충동과, 동시에 제 품에 가두고 싶다는 기형적인 소유욕이 엉켜 들었다.태경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턱을 굳혔다.‘건방진 착각이다.’그는 속으로 차갑게 선을 그었다.저 여자를 향한 이 불쾌한 시선은 연민이나 끌림 따위가 아니다.오직 완벽하게 길들여진 사냥감의 목줄을 틀어쥐었을 때 느끼는, 포식자 특유의 정복욕일 뿐이다.태경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지안을 직시하며 손을 내밀었다.“은혜를 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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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철저한 기만과 배신(1)

차가운 조명이 내리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민사부 법정.피고석에 앉은 지안은 초조하게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재판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서류를 훑는 동안, 귓가에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불규칙하게 울렸다.자신의 유일한 구원줄.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태경은 단정하게 정돈된 서류 뭉치를 들고 원고 측 대리인석에 앉아 있었다.지안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어째서, 왜 저 자리에…….’마주친 그의 짙은 흑안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일말의 동요도, 지난 한 달간 보여주었던 다정한 신뢰의 흔적도 없었다.법정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태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존경하는 재판장님. 원고 측 대리인 차태경입니다. 본 사건의 피고 성원테크의 실질적 경영 대행자인 송지안 본부장은,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고의로 배임 행위를 저질렀습니다.”“……!”지안의 숨이 턱 막혔다.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그녀의 어깨를 옆에 앉은 국선 변호사가 다급히 억눌렀다.태경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준비한 서류들을 재판장 앞으로 내밀었다.“제출한 증거 자료 4호부터 12호까지. 이는 피고 측이 직접 작성한 이중 장부의 원본이며, 비자금 조성 경로가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그것은 다름 아닌, 지안이 그를 온전히 믿고 넘겨주었던 휴대용 금고 속의 내부 기밀들이었다.태경은 성원테크를 회생시킬 방어 논리를 짠 것이 아니라, 그 자료들을 완벽하게 재조립하여 지안의 가문을 파멸시킬 칼날로 벼려낸 것이다.“피고는 해당 비자금을 은닉하여 고의 부도를 유도하고, 알짜배기 특허 기술만을 빼돌리려 했습니다. 이에 원고 TK그룹은 성원테크의 파산을 선고하고 즉각적인 자산 압류를 청구하는 바입니다.”“거짓말! 그건 전부 거짓말입니다!”지안이 억눌렸던 비명을 터뜨렸다.법정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지안의 눈동자가 분노와 배신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태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오열했다.“당신이……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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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시궁창 속의 추적(1)

축축하고 비릿한 음식물 썩는 냄새가 좁은 뒷골목을 무겁게 맴돌았다.지안은 커다란 검은색 쓰레기봉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손끝이 덜덜 떨렸고, 터진 고무장갑 틈새로는 끈적한 오물이 스며들었다.하지만 그녀는 그 불쾌감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당장 이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식당 주인의 불호령이 떨어질 터였다."야! 거기 굼벵이처럼 뭐 해! 홀에 그릇 쌓인 거 안 보여?""죄송합니다. 당장 들어가겠습니다."지안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앞치마에 젖은 손을 대충 문질러 닦았다.식당 안으로 다급하게 발을 들이려던 찰나였다."여기 송학수 딸내미 숨어 있다는 거 다 알고 왔어! 문 안 열어?"쾅! 쾅! 쾅!셔터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쇳소리가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지안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숨이 턱 막히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사채업자들이었다.아버지가 병상에서 눈을 감은 뒤, 성원테크의 막대한 부채는 오롯이 지안의 몫으로 떨어져 있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식당 주인이 황급히 뒷문으로 달려왔다."너, 너 이년아! 내 식당 다 박살 낼 일 있어? 당장 앞치마 벗고 나가!""사장님, 제발…… 오늘 일한 일당만이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어제도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일당은 무슨 얼어 죽을 일당이야! 당장 꺼져!"주인은 지안의 등을 거칠게 떠밀었다.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로 지안이 속절없이 넘어졌다.바닥에 쓸린 손바닥과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사채업자들이 셔터를 걷어차며 뒷골목으로 돌아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저기 있다! 잡아!"지안은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미친 듯이 어두운 골목길을 향해 내달렸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폐부가 찢어질 듯 아팠다.빛 하나 들지 않는 건물 틈새에 몸을 구겨 넣은 지안은, 두 손으로 제 입을 꽉 틀어막았다.벌벌 떨리는 손등 위로 차가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 내렸다.지안은 숨을 죽인 채, 멀어지는 사채업자들의 발소리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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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시궁창 속의 추적(2)

그녀가 완전히 꺾인 채, 제 발로 찾아와 발밑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꼴을 봐야만 이 불쾌한 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다른 놈들의 동정 어린 손길 따위가 그녀에게 닿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오직 자신만이 그녀를 부술 수 있고, 자신만이 그녀를 건져 올릴 수 있어야 했다.태경의 입가에 잔혹한 소유욕이 서린 서늘한 호선이 그려졌다.---딸깍.공중전화 부스 안. 남은 동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지안은 수화기를 쥔 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선배님, 제발 한 번만…… 당장 방 뺄 돈조차 없어서 그렇습니다."[지안아. 나도 돕고 싶지만, 갑자기 회사에서 내 직위를 걸고 넘어지잖아. 네 주변에 엮이면 다 박살 난다는 소문이 파다해. 나도 처자식이 있는데 어쩌겠어.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뚜- 뚜- 뚜-.매몰차게 끊어진 통화음이 귓가를 무자비하게 때렸다.지안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벌써 열 번째 거절이었다.평소 자신을 살뜰하게 챙겨주던 이들조차 약속이나 한 듯 하루아침에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자신의 목을 서서히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지안은 낡은 운동화를 끌며 공중전화 부스를 나섰다.비에 젖은 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빛나고 있었다.고개를 든 지안의 시선 끝에, 도심 한복판을 장악한 거대한 전광판이 들어왔다.'TK그룹 합병 성공, 태산 로펌 차태경 대표 변호사 전격 영입.'거대한 전광판 속, 태경의 서늘한 눈매가 마치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그 거대한 빌딩 숲의 꼭대기 어딘가에, 차태경이 있을 것이다.자신을 파멸시킨 악마.지안의 눈동자에 차가운 불꽃이 일었다.그녀는 비에 젖어 덜덜 떨리는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와도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우연히 모두가 등을 돌린 것이 아니었다.이 모든 고립은 철저하게 차태경, 그 남자가 조종하고 있는 판이었다."내가 네 뜻대로 될 것 같아?"지안은 피가 맺힌 입술을 악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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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비틀린 소유욕(1)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장 한구석.지안은 제 몸집만 한 시멘트 포대를 짊어지고 비틀거렸다.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지만, 목장갑을 낀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낡은 작업복 위로 허연 시멘트 가루가 엉겨 붙어 엉망이었다.현장소장의 고함이 날아들었다."어이, 새댁! 똑바로 안 날라? 그렇게 빌빌거릴 거면 당장 꺼져!""죄송합니다. 금방 옮기겠습니다."지안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이를 악물었다.사채업자에게 쫓겨 당장 방을 비워줘야 할 처지였다.식당 일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모두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났다.마치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으며 밥줄을 끊어놓는 것 같았다.그래서 찾은 곳이 신분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일용직 공사판이었다.그때, 거친 엔진음을 내며 새카만 최고급 세단 한 대가 공사장 입구로 미끄러져 들어왔다.흙먼지가 날리는 공사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광경에 인부들의 시선이 쏠렸다.운전석에서 내린 비서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차 안에서 내린 남자는 완벽하게 재단된 슈트 차림의 태경이었다.태경의 시선은 곧바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지안에게 꽂혔다.지안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역광을 받으며 서 있는 태경의 서늘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지안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시멘트 포대를 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당신이 여긴 어떻게."지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태경은 구두 끝에 묻는 흙먼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안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그의 짙은 시선이 지안의 흙투성이 얼굴과 낡은 작업복을 차갑게 훑어 내렸다."꼴이 볼만하군. 여기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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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부러진 날개(1)

 지안은 편의점 계산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바코드 리더기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며칠 전 공사장에서 쫓겨난 뒤, 간신히 구한 심야 아르바이트 자리였다.“계산 안 합니까?”“아, 죄송합니다.”지안은 황급히 바코드를 찍고 거스름돈을 내밀었다.손님은 불쾌한 표정으로 잔돈을 낚아채듯 받아 들고 나갔다.지안은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며 점장이 들어섰다.그의 얼굴에는 짙은 난처함이 서려 있었다.“저, 지안 씨.”“예, 점장님.”“미안한데, 오늘까지만 일해야 할 것 같아.”지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바코드 리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갑자기 왜…… 혹시 제가 실수라도 한 건가요?”“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그래. 우리 같은 직영점은 본사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잖아. 정말 미안해.”점장은 시선을 피하며 봉투 하나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이틀 치 일당이 든 얇은 봉투.지안은 봉투를 응시하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알겠습니다.”편의점을 나선 지안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발걸음이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머물던 허름한 고시원 앞이었다.“뭐야, 왜 아직도 안 나갔어?”고시원 주인이 문을 막아서며 언성을 높였다.“보증금 가압류 들어온 거 몰라? 당장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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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돌이킬 수 없는 선(1)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안내 방송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뒤섞인 소음 속에서, 지안은 두 손으로 여권과 탑승권을 꽉 쥐고 있었다.[방콕행 탑승 수속을 시작하겠습니다.]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안의 핏기없는 입술 사이로 옅은 숨이 새어 나왔다.선배가 마지막으로 융통해 준 편도 티켓이었다.이곳을 벗어나면, 그 지독한 차태경의 시야에서 영영 도망칠 수 있었다.지안은 캐리어 손잡이를 고쳐 쥐며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그 순간이었다.“출국 수속, 취소합니다.”등 뒤에서 들려온 낮고 서늘한 음성에 지안의 전신이 벼락을 맞은 듯 굳어버렸다.주변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은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지안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게이트 앞을 철통같이 가로막았다.갈라진 인파 사이로, 태경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완벽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한 치의 구김도 없는 슈트.하지만 그의 짙은 흑안은 짐승의 그것처럼 시퍼런 광기를 번뜩이고 있었다.“누구, 마음대로.”태경의 시선이 지안의 손에 들린 탑승권에 꽂혔다.지안은 뒷걸음질을 쳤지만, 태경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뱀처럼 낚아채는 것이 더 빨랐다.“놓으십시오. 이거 놔!”“쥐새끼처럼 제법 잘도 숨어 다녔더군. 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태경은 지안의 손에서 탑승권을 빼앗아 들었다.지직, 지지직.종이가 무참하게 찢겨 나가는 소리가 지안의 귓가를 때렸다.두 조각, 네 조각으로 찢긴 탑승권이 공항 바닥 위로 눈송이처럼 흩뿌려졌다.“당신 미쳤어? 당신이 뭔데 내 출국을 막아! 이거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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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돌이킬 수 없는 선(2)

 발버둥 치던 지안의 두 주먹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툭.지안의 두 팔이 카펫 위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할퀴고 밀어내던 저항이 완벽하게 멈췄다.그녀의 이질적인 반응에 태경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거친 숨을 몰아쉬는 태경의 시선 아래로, 지안의 얼굴이 들어왔다.지안은 울지 않았다. 분노하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그저 천장 어딘가를 텅 빈 눈으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인형 같았다.눈동자에는 어떠한 생기도, 빛도 남아있지 않았다.“……송지안.”태경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안은 눈 깜빡임조차 없이 그 자리에 누워 허공만을 바라보았다.태경의 등줄기를 타고 기묘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자신이 원했던 것은 그녀의 완벽한 굴복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굴복이 아니라,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고 있었다.태경은 애써 그 불쾌한 감각을 오만함으로 덮어버렸다.“쉬어. 문 밖에는 경호원들을 깔아뒀으니, 도망칠 궁리 같은 건 지우는 게 좋을 거야.”태경은 구겨진 셔츠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지안을 바닥에 내버려 둔 채, 굳게 닫힌 펜트하우스의 육중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철컥, 쿵.도어록이 잠기는 무거운 파열음이 넓은 거실을 울렸다.---완벽한 정적이 펜트하우스를 채웠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지안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턱 끝에 말라붙어 있었다.지안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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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마지막 저주(1)

 분노도 원망도 모두 하얗게 타버려 차가운 재만 남은 상태.오직 이 지옥을 스스로 끝낼 수 있다는 서늘한 안도감만이 그녀를 지배했다.사각, 사각.만년필 촉이 종이 위를 긁고 지나가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지안의 입술 사이로 조용한 읊조림이 새어 나왔다.“다음 생이 있다면…….”차태경이 이 종이를 보게 될 순간을 상상했다.오만하고 완벽한 그의 세상에 자신이 남길 유일한 오점.“절대 너 같은 악마와 얽히지 않기를.”만년필에 힘이 들어갔다. 종이가 찢어질 듯 날카로운 필체가 이어졌다.“네가 평생, 내 피를 뒤집어쓰고 지옥에 살기를.”탁.만년필의 촉이 종이 끝을 강하게 찌르며 마침표를 찍었다.지안은 만년필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마지막 저주가 담긴 유서였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펜트하우스의 거대한 통유리창 쪽을 응시했다.바깥으로 연결된 넓은 베란다.지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유리문을 밀어 열었다.훅 끼쳐오는 차가운 고층의 바람이 그녀의 낡은 흰 셔츠를 매섭게 흔들었다.난간 너머로는 까마득한 서울의 빌딩 숲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지안은 난간을 짚고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공포는 없었다.차태경의 곁에서 숨을 쉬는 것이, 저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것보다 백 배는 더 끔찍한 지옥이었으니까.---같은 시각.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원고 측이 제시한 증거는 법적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피고 법인은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태경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변론을 이어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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