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의 모든 챕터: 챕터 631 - 챕터 640

689 챕터

제631화

주영도는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강루인을 잃은 것도, 아내를 잃은 것도 결국 자초한 일이었다.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온 탓에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주영도의 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시야는 순식간에 하얗게 번져 갔다.안개처럼 흐릿한 그의 시선에 낯익은 여인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떠올랐다.주영도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이름을 불렀다.“강루인, 여보...”최지호는 자신이 던진 말이 주영도를 쓰러뜨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선샤인 빌리지를 떠나 곧장 함지율의 집으로 향했다.강루인의 죽음으로 무너진 사람은 주영도뿐이 아니었다.함지율 역시 그 못지않게 무너져가고 있었다.사실 최지호가 주영도에게 그토록 독한 말을 쏟아낸 이유도 결국 함지율 때문이었다.주영도의 자기중심적인 선택들이 결국 강루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그 비극으로 인해 함지율까지 함께 상처를 떠안게 되었다.결국 그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다른 사람들까지 나누어 짊어지게 된 셈이었다.최지호는 침대 위에 앉아 있는 함지율을 바라보았다.눈은 심하게 부어 있었고 얼굴에는 짙은 슬픔이 내려앉아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려 왔다.예전에는 제법 말주변이 있다고 생각했던 최지호였지만 지금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위로의 말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그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강루인의 죽음이 남긴 상실감을 지워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최지호는 결국 침대 위로 올라가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고 아무 말 없이 그저 곁을 지켜주었다.어느새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공항 주차장에서 노윤환은 백미러 너머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주영도를 힐끗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대표님, 집으로 모실까요?”주영도는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에서 시선조차 떼지 않은 채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회사로 가.”노윤환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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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여긴 무슨 일이야?”주영도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물었다.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구연정이었다.그녀는 들고 있던 보온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도시락 가져왔어.”주영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내가 말했잖아. 식사는 노윤환이 챙길 거라고. 앞으로는 가져오지 마.”하지만 구연정은 마치 그의 거절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태연하게 도시락 뚜껑을 열며 말했다.“영양 전문가한테 따로 부탁해서 준비한 거야.”주영도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필요 없어.”구연정은 그의 냉정함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여전히 부드럽게 말했다.“이미 다 준비해 온 거니까 이번 한 번만이라도 먹어. 다음부터는 안 가져올게.”주영도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이 말은 처음 듣는 것도 아니었다.구연정은 늘 마지막이라 말했고 그 마지막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주영도는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가져가.”이번만큼은 그 역시 단호했다.구연정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네가 싫다면 앞으로는 안 가져올게. 하지만 음식은 잘못이 없잖아. 굳이 그렇게까지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 음식은 낭비하지 마.”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노윤환이 점심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그는 구연정을 보자마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오셨어요, 구연정 씨.”인사를 마친 노윤환은 테이블 위의 도시락을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자신이 들고 있는 음식 봉투에 시선을 옮겼다.오늘도 어쩔 수 없이 이 인분을 먹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사 올 걸 그랬네.’“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주영도가 말하기 전에 먼저 자리를 피해 주려는 의도였다.하지만 이내 냉정한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잠깐!”노윤환은 즉시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대표님, 무슨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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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3화

주영도의 표정은 순간 굳어져 버렸다.하지만 최지호는 여전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태도로 자랑하듯 입을 열었다.“우리 아들이 한 달 된 기념으로 연회도 열 거야. 근데 넌 오지 마라. 우리 아내가 너 보는 걸 싫어하거든. 이 백설기는 그냥 소식 전하려고 예의상 들고 온 거야.”주영도는 바구니에서 시선을 거두어 최지호의 얼굴로 옮겼다.그는 잠시 스쳤던 당황함을 거둔 채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물었다.“함지율이 너랑 결혼했어?”그 물음에 최지호의 얼굴에 번졌던 여유로운 미소가 잠깐 굳어졌다.하지만 그는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우린 아들까지 생겼어.”주영도는 손에 들고 있던 액자를 다시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그러고는 사진 속 강루인이 자신을 향해 미소 짓도록 액자의 각도까지 세심하게 바로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들은 있는데 아직 명분 하나 못 얻었잖아. 굳이 자랑할 건 없는 것 같은데. 아들 덕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못 받고 있고.”최지호는 속으로 억울함을 삼켰다.분명 아들은 생겼지만 함지율은 여전히 그를 같은 호적에 올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최지호가 조금이라도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아마 아이만 남기고 그는 이미 버려졌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자신의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끝까지 강한 척을 하며 말했다.“그게 뭐가 어때서? 어쨌든 난 아들이 있잖아.”이 말은 주영도에게 대놓고 아무것도 없는 독거노인이라고 비웃는 말이었다.주영도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이제 꺼져!”그는 더 이상 최지호의 자랑을 듣고 싶지 않았다.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라기보다는 원수에 더 가까웠다.얼굴만 마주하면 최지호는 어김없이 한마디씩 비꼬며 주영도를 긁어댔다.그 이유는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최지호는 오히려 물러나지 않고 한 발 더 다가서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백설기를 받았으면 너도 뭐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삼촌이 어디 있어?”주영도는 눈꺼풀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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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4화

최지호는 결국 주영도의 주머니에서 자기 아들을 위해 이것저것 값진 물건들을 한가득 챙긴 뒤에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떠나기 전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백설기라도 많이 먹어. 그래야 복도 쌓일 테니까.”그 말은 어쩐지 주영도의 귀에 거슬렸다.최지호가 떠난 뒤 넓은 사무실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주영도는 몸을 숙여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바구니에서 백설기 하나를 집어 들고는 강루인의 사진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말했다.“함지율이랑은 친한 친구라며. 친구가 아이까지 낳았다는데 왜 보러도 안 오는 거야? 나도 좀...”그는 포장을 뜯어 백설기를 천천히 입에 넣었다.맛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주영도는 끝까지 다 먹어버렸다.한편, 최지호는 차를 몰고 주선 그룹 주차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회사 정문을 지나치던 순간 그는 길가에 서 있는 구연정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길모퉁이에 멍하니 서 있었다.최지호는 굳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구연정에게 특별한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얽히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구연정과 강루인의 관계는 늘 그랬다.구연정이 직접 강루인을 해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강루인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상처와 비극의 이면에는 언제나 구연정의 존재가 얽혀 있었다.그녀는 결코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함지율과의 관계를 떠올려 보면 애초에 그리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던 만큼 한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최지호는 시선을 거두고 그대로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다.주씨 가문 연회에서 주영도는 마지막에야 모습을 드러냈다.박정금은 오랜만에 마주한 아들의 초라해진 얼굴을 보고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노 비서 말로는 네가 일만 시작하면 밥도 제대로 안 먹는다더라. 그러다 몸이 다 망가지면 어떡하려고 그래?”주영도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노윤환, 요즘 일이 너무 한가한가 보네?”모두가 그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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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5화

매번 주영도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박정금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강루인이 떠올랐다.그를 챙기는 일에 있어서는 그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강루인은 지나칠 정도로 꼼꼼했고 완벽에 가까울 만큼 주영도를 챙겼다.박정금 역시 그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과거에 불과했다.강루인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오 년이 지났고 아무리 그리워해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니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였다.주영도는 박정금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집에 아주머니도 계시잖아요. 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굶어 죽을 정도로 자기 관리 못 하진 않아요.”“제 걱정은 이제 그만하시고 주초원이나 잘 단속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그 이름이 나오자 박정금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아들은 아들 대로 걱정이고 딸은 딸대로 골칫거리였다.주초원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반항적으로 변해갔다.그녀는 해외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철이 들기는커녕 점점 더 제멋대로 행동했고 매일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자식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걸까.’마치 그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듯 주초원이 마침 모습을 드러냈다.밤새 밖에서 놀다 돌아온 주초원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본가에 들어섰다.그녀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 나른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엄마, 오빠.”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에 박정금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물었다.“어젯밤 또 어디 갔다 온 거니?”주초원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엄마, 저 이제 성인이에요.”그 말 속에는 그만 좀 간섭하라는 노골적인 불만이 담겨 있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옆에 있던 주영도가 박정금의 말을 가로채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까지는 엄마 말 들어야 해.”주초원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했다.“오빠도 주씨 성을 가졌고 나도 주 씨잖아. 그런데 오빠는 집에 돈을 마음대로 쓰면서 왜 나는 안 되는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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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6화

“초원아...”박정금이 곧장 뒤를 쫓아 나갔지만 그녀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주초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당장 차를 몰고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주초원이 또다시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주세웅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영도야, 네 동생이 방금 한 말은 그냥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주초원의 말은 단순히 주영도의 가슴만 찌른 것이 아니었다.박정금의 가장 깊은 상처까지도 함께 헤집어 놓았다.남편의 목숨을 앗아가고 아들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그 교통사고는 그녀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박정금은 남편이든 아들이든 누구 하나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그해 남편이 몸을 던져 아들을 감싸지 않았더라면 주영도 역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결국 주초원의 말은 이미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다시 한번 후벼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주영도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지만 동생의 말에 대해서는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들어가죠.”박정금은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주세웅에게 주초원이 오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주세웅도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부터 하자고 말했다.비록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무슨 일이 있었든 본가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완전히 덮어질 수는 없었다.주세웅은 단호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여기서 어른은 너밖에 없으니까 안쪽 살림은 네가 알아서 잘 챙겨.”박정금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말했다.“네, 아버님.”식사가 끝난 뒤 주세웅은 주영도를 서재로 불렀다.그가 서재에 들어서자 주범수가 차를 따르고 있었다.주세웅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상인 그룹에서 왜 계속 우리 프로젝트를 빼앗아 가는지 조사해 냈어?”주영도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차분하게 대답했다.“아직입니다.”프로젝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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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7화

다음 날 해 질 무렵, 주세웅은 미리 주영도에게 전화를 걸어 공항에 조금 더 일찍 도착하라고 재촉했다.일을 마친 뒤 그는 결국 직접 공항으로 향했다.정해진 시간에 맞춰 차가 도착했고 주영도는 차에서 내려 출구 앞에서 사람을 기다렸다.하지만 이 순간까지도 그는 자신이 누구를 마중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주세웅은 그저 상대가 먼저 그를 알아볼 테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연락처도 이미 전달된 상황이라 혹시라도 엇갈리면 전화로 연결하면 그만이었다.십여 분쯤 지났을 때였다.사람들 사이에서 맑고 경쾌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영도 오빠!”그 소리에 주영도의 미간은 미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어디선가 그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영도 오빠, 저 여기 있어요!”주영도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캐리어를 끌고 오던 한 젊은 여성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주영도의 미간은 더욱 깊게 찌푸려졌고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녀는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서더니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언제부터 와 있었어요? 오래 기다렸죠? 우리 이제 나가요.”주영도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녀는 그제야 무언가 떠올린 듯 웃음을 터뜨렸다.“아, 죄송해요. 자기소개도 안 했네요. 한지은이라고 해요. 오빠 할아버지의 친구이신 한철민의 손녀예요.”그러고는 거침없이 손을 내밀었다.주영도는 그 손을 잡지 않는 대신 뒤에 서 있던 노윤환을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을 알아챈 노윤환은 즉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한지은 씨, 짐은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주영도의 냉정하고 거리감 있는 태도에도 한지은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노윤환을 향해 공손하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공항을 나서는 내내 주영도는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도 한지은은 화를 내거나 분위기를 흐리지 않았고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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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8화

주영도의 마음속에서 강루인은 이미 집착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노윤환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사람이나 그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는 이미 강루인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방금 들었던 여자의 목소리는 분명 거칠고 낮게 갈라져 있었고 과거 강루인의 맑고 투명한 음색과는 전혀 달랐다.그 두 사람은 같은 인물일 리 없었다.노윤환은 주영도의 돌발적인 반응에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는 입술을 한 번 적시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그러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주영도가 단호하게 끊어냈다.“차 키 줘봐!”“그건...”주영도는 그에게 망설일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손을 뻗어 키를 낚아채더니 두 사람을 그 자리에 남겨 둔 채 바로 몸을 돌렸다.“저기... 대표님...”노윤환이 뒤에서 급하게 불렀지만 돌아온 건 점점 멀어지는 차량의 배기가스뿐이었다.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던 노윤환은 이내 시선을 돌려 자신과 함께 남겨진 한지은을 바라보았다.주영도는 아무 말 없이 떠나버렸지만 그렇다고 자신까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은 씨, 제가 호텔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주영도는 사라진 차량을 끝까지 뒤쫓았다.하지만 공항 주변 차량 흐름이 워낙 많았던 터라 쉽게 속도를 낼 수도, 차선을 바꿀 수도 없었다.결국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에서 차가 멈춰 섰고 그가 뒤쫓던 검은 차량은 점점 멀어지더니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주영도는 길가에 차를 세워 창문을 내린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이내 회색 연기가 차 안에서 천천히 피어올랐다.그때 노윤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한지은 씨는 호텔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그래.”주영도의 짧은 대답은 한지은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노윤환은 통화를 바로 끊지 않고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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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9화

비슷했던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상대를 걱정할 때의 말투, 다정하게 달래는 방식,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끝까지 챙겨주던 그 습관, 모든 것이 강루인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주영도가 말한 것은 단순한 음색의 유사함이 아니었다.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오직 과거의 기억만으로 살아왔다.그 덕분인지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이제는 오히려 기억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고 있었다.그랬기에 목소리가 같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상하리만큼 익숙함을 느낀 것이다.나민재는 물 한 잔을 따라 건네주며 차분하게 말했다.“비슷한 사람은 세상에 많습니다. 비슷한 목소리는 훨씬 더 많을 거고요.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식으로 착각한 것도 한두 번은 아니었잖아요.”틀린 말은 아니었다.이런 식의 착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지난 몇 년 동안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가장 심했을 때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상대를 끝까지 따라간 적도 있었다.심지어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쫓아가다가 남편에게 변태로 오해받아 얻어맞기까지 했었다.자칫하면 경찰서까지 갈 뻔한 일이었지만 다행히 노윤환이 뒤늦게 나타나 상황을 수습하면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지난 몇 년 동안 노윤환도 그의 뒤처리를 적지 않게 수습해 왔다.다행이라면 그런 일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점차 잦아들었고 이후 몇 년간은 미친 듯이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그렇다고 노윤환의 삶이 그때부터 편안해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주영도는 사람을 쫓는 대신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 집착은 고스란히 노윤환에게 향했다.그는 업무량을 끝없이 늘렸고 노윤환을 소처럼 부려 먹었으며 휴가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다.그렇게 하루 24시간 대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느새 노윤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주영도 본인이야 그런 삶을 선택했다고 치더라도 노윤환까지 끌어들인 것은 누구라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그는 몇 년 동안 돈은 많이 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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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0화

강루인은 손을 들어 검지를 그의 입술 위에 가볍게 올렸다.지수현은 더는 이어가지 않고 그저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채 몸을 숙여 강루인의 어깨에 기대더니 애교를 부리듯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나 안 보고 싶었어?”강루인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은우는 자?”지수현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더니 못마땅하다는 듯 물었다.“네 눈엔 내가 안 보여?”강루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응.”지수현은 투덜거리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괜찮아. 난 너만 있으면 되니까.”강루인은 그의 머리를 밀어내며 말했다.“무거워.”지수현은 이상하게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비비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무겁다는 말에 결국 고개를 들긴 했지만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은 그대로였다.강루인을 바라보는 지수현의 눈동자는 별빛처럼 반짝였다.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 잘 거야?”지수현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했다.“같이 자려고.”강루인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의 반짝이는 눈빛과 시선을 마주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지수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은우랑 약속했잖아. 오늘 밤은 우리가 같이 자주기로.”강루인은 담담하게 말했다.“그 약속은 네가 한 거잖아.”지수현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어른이면 아이와 한 약속은 지켜야지. 나중에 은우가 나쁜 것부터 배우면 어떡하려고 그래?”강루인은 그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그녀는 지수현을 힐끗 흘겨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난 아직 안 졸려. 졸리면 먼저 들어가서 자.”지수현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받아쳤다.“나도 아직 안 졸려. 같이 있을게.”강루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바 캐비닛 앞으로 다가가더니 술을 한 잔 따르며 물었다.“마실래?”지수현은 그녀 곁의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호텔 난방이 제법 잘 되어 있는 탓에 그는 얇은 아이보리색 울 니트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적당히 파인 넥라인 아래로는 선명한 쇄골이 드러나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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