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681 - Chapter 689

689 Chapters

제681화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강루인은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이홍섭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결국 불안해하던 그의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그 과정에 온갖 신경을 쏟다 보니 강루인은 자연스럽게 지수현의 연락을 놓쳐버렸다.그녀가 다시 휴대전화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부재중 전화가 십여 통이나 쌓여 있었다.이런 일은 워낙 익숙했던 탓에 강루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전한 뒤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그 열몇 통의 부재중 기록은 차성열도 보게 되었다.의도한 것은 아니고 그저 시선이 스치듯 우연히 본 것이었다.하지만 화면에 찍힌 이름을 확인한 순간 차성열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강루인이 복도로 나가 전화를 걸자마자 통화는 바로 연결됐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지수현의 불쾌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다.“많이 바빠?”불만을 억누른 듯한 그의 말투에 강루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돌려 말하지 말고 왜 전화 안 받았는지 물어보면 되잖아.”지수현은 즉시 받아쳤다.“네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 내가 억지로 강요한 거 아니야. 나중에 또 내가 막무가내로 몰아붙였다는 말은 하지 마.”강루인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래, 안 할게.”지수현은 금세 태도를 바꾸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뭐 하고 있었어? 전화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왜 안 받은 거야?”강루인은 장난스럽게 눈빛을 반짝였다.“비밀이야.”지수현은 이를 악물며 말을 받아쳤다.“지금 나 놀리는 거야?”강루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들켜버렸네.”지수현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너 진짜 왜 그래? 나 상처받잖아. 내가 상처받으면 달래기 힘들 텐데.”강루인은 태연하게 받아쳤다.“그럼 달래지 않으면 되지.”늘 그랬듯 지수현은 자신을 스스로 달래며 말했다.“됐어. 내가 마음이 넓으니까 그냥 넘어갈게. 나 같은 사람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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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지수현은 백미러로 차성열을 흘깃 바라보더니 마치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모습에 입술을 삐죽였다.“네 선배라는 사람 좀 이상한 거 아니야?”강루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말해?”지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아무 문제 없으면 남의 아내를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데? 얼굴은 멀쩡한데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니야?”강루인은 그를 흘겨보더니 입을 열었다.“은우가 널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네. 넌 말을 참 거슬리게 하는 재주가 있어.”“선배는 나한테 친한 친구 같은 사람이야. 이상하게 말하지 마.”지수현은 입을 삐죽거렸다.같은 남자로서 그는 차성열의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 없었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네 친구면 내 친구나 다름없지.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어린이집 문 앞에서 강루인은 선생님에게서 지은우를 건네받았다.아이는 마치 새가 품으로 날아들듯 그녀에게 달려와 안기며 애교를 부렸다.“엄마, 떨어져 있는 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엄마는 저 안 보고 싶었어요?”강루인은 그의 말랑한 얼굴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당연히 보고 싶었지.”순수한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 강루인의 마음도 덩달아 맑아지는 듯했다.지은우는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했다.“엄마, 이리 와 봐요. 제가 줄 게 있어요.”강루인이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굽히자 아이의 따뜻하고 촉촉한 입맞춤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지은우는 동그란 눈을 초승달처럼 접으며 말했다.“엄마, 제가 준 선물 마음에 들어요?”강루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아주 마음에 들어.”그때 옆에 서 있던 지수현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이렇게 듬직한 사람이 여기 버젓이 서 있는데, 네 눈에는 안 보여?”“내가 말했지? 남녀 사이에는 선이 있어야 한다고. 다 큰 남자가 엄마한테 뽀뽀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건 변태 짓이야.”지은우는 그의 품 안에서 몸을 비비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다 큰 남자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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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주영도의 시선은 세 사람 사이를 천천히 오가다가 결국 지은우에게 멈췄다.그는 마치 아이에게서 익숙한 흔적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아이의 이목구비에는 분명 강루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섞여 있었다.그 특유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세 사람의 추격전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그들의 차량은 자연스럽게 도로 흐름 속으로 섞여 들어갔고 어린이집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주영도의 어둡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차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조사한 건 어떻게 됐어.”노윤환은 아직도 강루인이 살아 돌아왔다는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장면의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갑작스러운 주영도의 목소리에 노윤환은 순간 움찔했다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조사 결과를 차분히 보고하기 시작했다.“지수현이 강루인 씨의 개인정보를 철저히 숨겨 둔 탓에 지난 몇 년간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부부 사이가 상당히 좋다고 하던데요. 또한 지수현은 아내와 아이를 지극히 아끼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노윤환은 말을 이어가면서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주영도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그의 얼굴은 여전히 읽기 어려울 만큼 담담했지만 손끝을 반복적으로 문지르는 작은 습관이 그의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긴 듯한 불쾌감이었다.“강루인 씨의 개인정보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대신 지수현 쪽 자료는 꽤 많습니다.”강루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수현은 소문난 바람둥이였다.여자가 바뀌는 속도가 옷을 갈아입는 것보다 더 빠를 정도였고 대외적으로 백수처럼 빈둥대며 먹고 마시기만 즐기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그런 모습이 오히려 스턴 가문 내부 경쟁에서 그가 뜻밖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다만 그 가면이 지나치게 완벽했던 탓에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진짜라고 믿고 있었다.주영도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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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그 가능성을 떠올린 순간 주영도는 온몸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끓어오르던 피가 단번에 얼어붙으며 차갑게 식어갔다.‘강루인이 어떻게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을 수 있지? 어떻게 나를 두고?’강루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은 주씨 가문 안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특히 주세웅에게는 더욱 그랬다.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스턴 가문의 실권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었다.주세웅에게 강루인은 그저 날개가 꺾인 채 아무 저항도 못 하는 포획된 짐승 같은 존재였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그런 존재가 이제는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그는 강루인의 능력을 얕본 대가로 스스로 자신을 겨눌 무기를 만들어낸 셈이었다.“네 시도 안 됐는데 뭐 하러 나갔어?”주세웅은 말도 없이 회사를 나간 주영도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는 주범수가 따라 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가 입안에 퍼지는 쓴맛에 미간을 찌푸렸다.“이 차 너무 오래된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쓰죠?”주세웅은 비웃듯 말을 받아쳤다.“차가 쓴 게 아니라 네 마음이 쓴 거겠지.”주영도는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찻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왜 부르신 겁니까?”주세웅도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았다.“지수현이 주씨 가문을 건드리는 건 강루인을 대신해서 복수하는 거야.”그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지수현 그놈도 별수 없는 놈이더군. 여자 하나에 휘둘려 살고 있으니.”주세웅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가득했다.그의 말에 주영도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주세웅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주영도를 한 번 더 바라보더니 손에 든 염주를 천천히 굴리며 말을 이었다.“내가 달력을 좀 봤거든. 3월 15일이 약혼하기에 딱 좋은 날이더라. 아직 석 달 정도 남았어. 한지은과의 혼사를 잘 준비해 두어라.”그는 원래부터 주영도와 한씨 가문의 혼인을 계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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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주영도는 주세웅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려 놓은 채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주세웅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치며 소리쳤다.“거기 서! 내가 가라는 말 안 했잖아!”주영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발은 제게 달려 있으니 제가 가고 싶으면 가는 겁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문을 나섰다.“이놈의 자식이 정말 하늘이 무섭지도 않구나!”뒤이어 욕설이 쏟아졌지만 주영도는 단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저 녀석 좀 보게. 갈수록 날 안중에도 안 두잖아. 점점 더 예의도 없어지고 말이야.”주세웅이 주범수에게 던진 말이었다.주범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담담하게 차를 따르며 말했다.“영도 도련님은 그래도 아직 회장님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다만 성격은 회장님께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우신 영향도 있을 테죠. 이미 자란 나무를 인제 와서 뿌리째 뽑으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습니까?”주세웅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내가 안 가르쳐서 저 모양이 됐단 말이야? 버릇없는 게 내 탓이라는 거니?”주범수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며 일부러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저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주세웅은 흐릿해진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왜 뒤로 물러서는 건데? 말 잘 못 했다고 내가 컵이라도 던질까 봐 그러는 건가?”주범수는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고 태연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제가 맞아서 피가 나는 건 괜찮습니다만 회장님께서 아끼시는 컵이 깨지면 아까워하실까 봐서요.”주세웅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주제 파악은 잘하네.”주범수는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은 채 일부러 시선을 낮추며 조용히 말했다.“제 위치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그의 말에 주세웅은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진 무당 좀 모셔 와. 점을 좀 봐야겠어.”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미신에 기대는 법이라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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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강루인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일이라면 누구보다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어 결국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었다.지수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얼굴에는 그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믿지. 내가 어떻게 안 믿겠어. 내 아내의 능력이야 더 말할 것도 없잖아. 난 지금까지 너처럼 대단한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그는 입만 열면 듣기 좋은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람이었다.“생각해 보면 나 정말 복도 많아. 내가 전생에 대체 무슨 덕을 쌓았길래 이렇게 좋은 아내를 얻은 걸까?”강루인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그만 좀 해.”사업장에서 보여주는 지수현의 냉철하고 진중한 모습은 강루인 앞에만 서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늘 장난스러운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강루인은 그를 재촉하듯 말했다.“얼른 가서 네 일이나 해.”두 사람이 귀국한 이유는 국내 사업 확장을 준비하기 위해서였고 지금처럼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해 질 무렵, 강루인은 비서와 함께 거래처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어디에서든 인맥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힘이었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원래라면 이렇게 순조롭게 협상이 진행되기는 어려웠다.하지만 지수현이라는 든든한 배경은 그들의 사업 확장 과정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벨라크는 정부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었고 국가라는 거대한 배경을 등에 업고 있으니 어떤 일이든 비교적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술자리에서 거래처 대표는 강루인에게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물론 아직 완전히 숨기지 못한 가벼운 경멸의 시선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강루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의 무시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레스토랑 직원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의 손에 들린 쟁반 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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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강루인은 마치 주영도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철저하게 그를 외면했다.오윤재 역시 이 자리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그렇다고 주영도의 말을 대놓고 흘려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그는 바로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주영도 대표님께서 직접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옆 룸에 계신 걸 미리 알았다면 체면이고 뭐고 진작에 먼저 찾아가 인사드렸을 겁니다.”강루인은 그가 이 자리에서 주영도에게 아첨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곧바로 그들의 대화를 끊어버렸다.“오윤재 대표님, 사업 이야기는 이제 끝났으니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시죠.”말을 마친 강루인은 비서를 데리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섰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는 순간, 누군가 문틈 사이로 손을 뻗어 닫히려는 문을 붙잡았다.강루인이 무심하게 시선을 들어 올리자 문밖에 서 있던 주영도와 눈이 마주쳤다.그렇게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고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비서는 강루인을 바라보며 조용히 지시를 기다렸다.하지만 강루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그녀는 여전히 철저하게 무시할 뿐이었다.주영도는 강루인의 왼쪽에 서서 자기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사람은 너한테 잘해줘?”좁고 답답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영도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는 강루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았지만 막상 앞에 서니 남은 것은 걱정뿐이었다.질문은 던져졌지만 엘리베이터 안은 여전히 고요했고 강루인은 마치 듣지 못한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주영도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지도 바라보지도 않았다.자신을 철저히 외면하는 강루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주영도는 마음 한구석이 시리도록 아팠다.하지만 그의 눈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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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이번에는 오히려 강루인이 그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헤어 왁스를 도대체 얼마나 바른 거야? 너무 딱딱해서 만지는 느낌도 별로야. 난 그래도 자연스럽게 내린 머리가 훨씬 보기 좋은데.”지수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넌 정말 변덕쟁이야. 예전에는 네가 올백으로 넘긴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했었잖아. 내린 머리는 어려 보이고 가벼워 보인다고 싫어했으면서.”강루인은 전혀 인정할 생각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기억도 안 나는데. 혹시 네가 잘못 들은 거 아니야?”지수현은 마치 어린 늑대 새끼처럼 이를 살짝 드러내며 말했다.“나쁜 여자.”강루인은 피식 웃더니 마치 그 말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갈 거야 말 거야? 안 가면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지수현은 결국 자세를 바로잡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매며 투덜거렸다.“역시 너는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나쁜 여자야.”강루인은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받아쳤다.“그걸 이제야 알게 된 거야?”지수현은 차에 시동을 걸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알면 또 어쩌겠어. 하필이면 내가 그런 나쁜 여자를 제일 많이 사랑하는데.”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루인의 비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주영도가 조금 전까지 그들이 탄 차 근처에 계속 서 있었고 차가 완전히 떠날 때까지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강루인은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굳이 주영도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며 비서에게 일찍 돌아가 쉬라고 말했다.주영도의 이런 가식적인 태도에 그녀는 그저 코웃음을 쳤다.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이런 가식적인 다정함을 연기하는 것이었다.같은 시각, 호텔 밖에서 주영도는 마치 온몸이 굳어버린 사람처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어두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강루인이 지수현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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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지수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지은우!”지은우는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재빨리 내려놓고 몸을 돌려 강루인의 품속으로 숨었다.마치 그녀만 있으면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듯한 태도였다.“엄마, 저 지켜줘요. 저기 괴물이 있어요.”강루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침부터 왜 이렇게 화를 내? 그러다 화병 나겠어.”지수현은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화병 나는 건 괜찮아. 걱정되는 건 내 권법 실력이 녹슬어 버리는 거야.”“지은우, 너 또 엉덩이에 불나는 맛을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지은우는 무서워서 이미 강루인의 품에 숨어 있었지만 작은 입만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여자는 다정하고 신사적인 남자를 좋아하거든요. 아빠가 이렇게 무섭게 굴어서 엄마가 아빠를 싫어하면 그건 아빠가 자초한 거예요.”그러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덧붙였다.“봐요. 저는 작은 신사잖아요. 그러니까 엄마가 저를 좋아하는 거죠.”지수현은 코웃음을 치며 손목을 천천히 돌리더니 금방이라도 손을 쓸 것 같은 분위기를 보였다.“오늘은 피를 보기 딱 좋은 날이네.”그 모습을 본 지은우는 더 이상 강루인의 품에 숨어 있지 않고 의자에서 내려오더니 짧은 다리로 재빨리 방을 향해 뛰어가며 소리를 질렀다.“사람 살려요! 누군가 어린아이를 죽이려고 해요! 엄마, 빨리 은우 대신 신고...”쾅!묵직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거칠게 닫혀버렸고 곧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강루인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아침 식사를 이어갔다.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이었기에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던 것이다.지수현 역시 몇 걸음 뒤쫓는 시늉만 하다가 겁에 질려 도망간 아이를 비웃으며 몸을 돌려 두 팔을 낀 채 식탁 앞에 기대섰다.그는 아침을 먹고 있는 강루인을 내려다보며 투덜거렸다.“너 요즘 갈수록 은우만 편애하는 거 알아? 그 꼬맹이한테는 아주 심장까지 떼어줄 기세잖아.”강루인은 태연하게 부인하며 말했다.“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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