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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1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머리맡의 베개를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눌렀다.하지만 그런 행동은 자신의 성정과도 맞지 않았고, 하인들 입에 오르내릴 말이 생길까 걱정되어 억지로 화를 삼킨 채 몸을 일으켰다.그러다 문득 생각했다.심서준이 보지 말라고 한다고 정말 안 볼 이유가 있나.애초에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막아선 건 그였다. 그러니 계연수는 오히려 끝을 보고 말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계연수는 용춘을 불러 들였다.“이따가 가서 그 책 좀 사 오거라.”사실 용춘 역시 과부가 마지막에 누구를 선택하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결말을 모른 채로는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계연수의 속도 조금은 풀렸다.심서준이 이미 시어머니께 문안을 드리지 못한다고 전해 두었다고 하니, 계연수도 거리낄 것 없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사실 잠들기 전에도 그녀는 어젯밤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심서준에게 괜히 심술이 나서 한밤중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지만, 정작 심서준은 깊이 잠든 탓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까지 푹 잠들었고, 계연수만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분명 심서준을 골탕 먹이려던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고, 괜히 자신만 고생한 셈이었다.생각해 보니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어느새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용춘이 돌아와 침상 곁에 서 있었다.“못 샀습니다.”계연수는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요즘 제일 잘 팔린다는 서책이 아니었느냐 헌데 왜 못 산 것이냐?”용춘이 대답했다.“들리는 말로는 윗선에서 더는 판매하지 못하게 했답니다. 서점마다 전부 자취를 감췄다고 해요.”그러더니 허리를 숙여 계연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그 책이 너무 많은 남자들과 얽히고설켜 풍기를 해친다고 해서 금서가 됐다네요.”예전 괴담이나 귀신 이야기를 다룬 책들 가운데는 그것보다 훨씬 노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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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2화

“그래야 나도 하루빨리 통통한 손주를 안아 볼 수 있지 않겠느냐.”그 말에 계연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심서준이 노부인 앞에서 그런 이야기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심씨 노부인은 흐뭇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이 더욱 금슬 좋게 지내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다.온 방 안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는 상황에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계연수는 그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수줍은 기색만 내비쳤다.심씨 노부인은 곁의 어멈에게 보약을 가져오라 일렀다.“이 처방은 내가 사람을 시켜 어렵게 구한 것이다. 듣자 하니 효험이 아주 좋다더구나. 너도 한번 먹어 보거라.”잠시 후 탕약 한 그릇이 올라왔다.코를 찌르는 쓴 약 냄새에 계연수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릇을 받아 들었다. 사실은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심씨 노부인은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맞은편의 백씨도 웃으며 말을 보탰다.“동서도 어머님의 마음을 저버리면 안 되지. 듣자 하니 이 약을 먹으면 첫아들을 본다고 하더구나.”계연수는 애초에 그런 민간 처방을 믿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분위기를 깨뜨릴 수는 없었다.비록 손에 든 탕약에서 지독한 쓴내가 올라왔지만, 그녀는 결국 순순히 그 약을 들이켰다.심씨 노부인은 계연수가 약을 다 마시는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수는 쓴맛에 괴로운 듯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지만, 심씨 노부인은 오히려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약이 쓰다고 싫어할 것 없다. 좋은 약은 원래 입에 쓴 법이니라. 몸도 함께 보해 줄 테니 앞으로 아침 문안을 올 때마다 내가 사람을 시켜 준비해 두마.”계연수는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괴로웠다. 그녀는 한참을 참고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용춘이 차를 건네주자 입안을 헹구듯 몇 모금 마셨고, 쓴맛이 조금 가신 뒤에야 급히 입을 열었다.“어머님께서 처방만 주시면 제 처소에서 직접 달여 먹겠습니다. 괜히 어머님께 번거로움을 끼쳐 드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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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3화

심씨 노부인은 백씨를 한번 바라보았다. 방금 백씨가 한 말은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린 듯했다.게다가 일부러 백씨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일종의 경고였다.큰방이 가져야 할 것은 큰방의 몫으로 두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주방 장부 역시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녀는 속으로 다 알고 있었지만 굳이 깊이 따지지는 않았다. 그러니 큰방 사람들도 그 정도면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더구나 그녀가 계연수에게 주려는 것은 자신의 사재이자 혼수 재산이었다. 애초에 심가의 재산도 아니니 백씨가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었다.요즘 들어 심씨 노부인은 계연수를 보는 눈이 확실히 달라졌다.성품은 온순했지만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빈틈이 없었고, 무엇보다 전체를 살필 줄 알았다. 주방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정리하면서도 백씨의 체면까지 세워 주었으니, 집안이 시끄러워질 일도 없었다.원래 한집안 식구라면 한집안 식구답게 살아야 하는 법.그녀는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총애를 믿고 교만해지지도 않았다.그래서 심씨 노부인은 앞으로 집안 살림을 조금씩 계연수에게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송학원을 나온 뒤에도 계연수는 심씨 노부인이 자신에게 이토록 후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곧 또 다른 걱정이 떠올랐다.앞으로 매일 아침 심씨 노부인 처소에 가서 약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었다.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그 약은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은근한 신맛까지 섞여 있어 정말 마시기 힘들었다.지금도 입안에는 약 기운이 남아 있어 도무지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게다가 반년이나 일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 기간 내내 매일같이 약을 마셔야 할지도 몰랐다.차라리 그렇다면 그 차 농장은 안 받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돌아온 뒤 계연수는 대추고 두 조각을 더 먹고 나서야 입안에 남아 있던 쓴맛을 겨우 눌러 버릴 수 있었다.그날 밤 심서준이 돌아왔을 때, 그는 은근히 누군가 자신을 맞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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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4화

오늘 공연의 압권은 바로 이 충신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극이었다.무대 아래는 무척이나 떠들썩했다.점소이들은 찻쟁반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능숙하게 오갔고, 객석에서는 떠드는 소리와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계연수가 앉은 관람석은 이층에 마련된 귀빈석이었다.원래 그녀는 연극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하지만 오늘은 최씨가 직접 함께 가자고 권했고, 마침 당분간 심서준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데다 바람도 쐴 겸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따라나선 것이었다.반면, 심소연과 최씨는 유난히 공연을 좋아하는 듯했다.두 사람 모두 무대에 푹 빠져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최씨는 아래를 바라보며 계연수에게 작게 속삭였다.“저 사람은 화춘반의 무생 상생이에요. 화춘반에서도 가장 이름난 간판배우랍니다.”계연수는 고개를 내려 무대를 바라보았다.마침 상생이 몸을 날려 화려하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등 뒤의 깃발이 바람을 가르며 휘날렸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무장 차림 역시 늠름하고 기백이 넘쳐 절로 시선을 끌었다.과연 간판배우라 불릴 만했다.계연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최씨에게 답하려고 고개를 돌렸다.그런데 최씨는 여전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넋을 잃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계연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물었다.“연극을 자주 보러 오는 모양이네?”최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저랑 셋째 아가씨는 원래 자주 와요. 오늘 공연은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라 가장 볼거리가 많거든요. 그래서 숙모님께서도 좋아하실까 싶어 일부러 모시고 왔어요.”그러더니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저 상생이라는 배우를 반년 전에 성 서쪽 수륙법회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공연 분장을 하지 않았거든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천도를 위해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는데, 무대 위 모습과는 달리 학자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숙모님께서도 보셨다면 분명 좋아하셨을 거예요.”그때 아래에서 다시 한번 우레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상생이 창을 휘두르며 무예 동작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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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5화

그때 최씨가 또 비밀이라도 나누듯 작은 책자 하나를 계연수의 손에 슬며시 쥐여 주었다.“이건 밖에서 그린 초상화예요. 제가 보기엔 네다섯 할은 닮았더라고요. 숙모님도 한번 보세요.”계연수는 화첩을 쥔 채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아니나 다를까. 심서준이 두 손을 뒤로 한 채 바로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얼음장처럼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내려다보는 눈빛에, 가늘고 긴 봉황 같은 눈매가 살짝 좁혀져 있었다.그 사이에도 최씨는 여전히 상생이 얼마나 늠름한 분장을 하는지, 무대 밖에서는 또 얼마나 준수한 사람인지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계연수는 급히 최씨의 손을 꼭 쥐었다.최씨도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듯 계연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놀라 소리를 질렀다.그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다.정말로 깜짝 놀란 것이 분명했다.심소연과 넷째 아가씨도 한창 공연에 빠져 있다가 최씨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았고, 곧바로 화들짝 놀랐다.평소에도 그들은 심서준을 가까이하지 못했다.한 지붕 아래 살고는 있었지만 일 년 내내 나누는 말이 몇 마디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항렬도 높았기에 그들에게 사실상 집안 어른과 다를 바 없었다.계연수는 또래라 편하게 말을 섞을 수 있었지만, 심서준은 달랐다. 높은 권세를 지닌 데다 늘 말수가 적었고, 좀처럼 웃는 법도 없었으니 말이다.항상 차갑고 거리감 있는 모습이었기에 최씨 역시 그를 마주할 때면 괜히 긴장부터 됐다.최씨는 급히 몸을 일으켜 예를 올렸다.심서준은 최씨를 한번 바라본 뒤 다시 계연수에게 시선을 돌렸다.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원래도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는데, 말없이 서 있기만 한 지금은 더욱 엄숙하게 느껴졌다.계연수 역시 심서준이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저런 표정까지 짓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방금 자신과 최씨가 나눈 이야기를 들었을까?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들었다고 해도 특별히 문제 될 말은 하지 않았다.계연수는 긴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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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6화

계연수는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해져 슬쩍 고개를 들어 심서준의 옆모습을 살폈다.그러나 심서준의 얼굴은 늘 그렇듯 담담하고 서늘하기만 해서,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곰곰이 생각해 봐도 최씨와 함께 극장에 나와 연극을 본 것이 그리 잘못된 일 같지는 않았다.심서준에게 이끌려 마차에 오르자,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심서준은 곁에 앉은 채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래도 체격이 큰 사람이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는데, 말까지 없으니 더욱 숨 막히게 느껴졌다.결국 계연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극장에 가는 걸 원치 않으셨나요?”계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정말 싫었다면 처음부터 말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랬다면 이번만큼은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는 연극 감상에 큰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을 뿐이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한번 바라보더니, 문득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화첩을 가져가 버렸다.계연수는 순간 멍해졌다.아직 한 장도 펼쳐 보지 못했는데...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심서준을 바라보았다.“부군께서도 보고 싶으신가요?”심서준의 손끝이 잠시 멈칫했다.그는 화첩을 펼치고는 몇 장을 대충 넘겨보았다.계연수가 옆으로 바짝 다가와 들여다보려 하자, 심서준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그 장군이 그렇게 좋으냐?”계연수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장군이 좋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부군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심서준은 그녀를 깊이 바라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화첩을 그대로 마차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차 안은 그리 밝지 않았다.게다가 심서준이 너무 빨리 덮어 버린 탓에 계연수는 가까이 들여다봤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제는 화첩마저 내던져 버리자 그녀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또 왜 던지시는 거예요?”심서준이 그녀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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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7화

그 생각이 스친 순간, 심서준은 문득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길고 곧은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시선은 곧장 눈앞의 고운 얼굴에 머물렀다.작고 단정한 얼굴이었다. 희고 깨끗한 뺨에 또렷한 눈썹과 눈매.그를 바라보는 살구빛 눈동자에는 마차 안의 희미한 불빛이 잔잔하게 비치고 있었다.예전처럼 눈길을 피하거나 주눅 든 기색은 없었다.오히려 당당했다.게다가 눈빛에는 약간의 분함과 못마땅함까지 담겨 있었다.심서준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보면 볼수록 지금 이 순간의 계연수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그리고 자신이 오래도록 바라 왔던 것이, 마침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음을 느꼈다.하지만 계연수가 다른 사내를 뚫어져라 바라본 일은 아직 넘어가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자신을 노려보는 것도, 당당하게 말대꾸하는 것도 굳이 따지지 않은 채 물었다.“먼저 말해 보거라. 다른 사내를 그렇게 보는 게 옳은 일이냐?”계연수는 심서준의 험상궂은 표정을 바라보았다.이 사람은 원래 늘 이런 식이었다.좋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언제나 저런 무뚝뚝하고 서늘한 얼굴로 사람을 압박하곤 했다.계연수는 이제 심서준의 성격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문득 그녀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다.그녀는 억울한 듯 눈을 들어 올리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좋게 말하면 될 일을 왜 그렇게 무섭게 말씀하세요?”심서준은 순간 멈칫했다. 다시 바라본 계연수의 얼굴은 어느새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마치 정말로 그에게 겁을 먹은 사람 같았다.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자신은 전혀 무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원래부터 이런 표정이었는데, 계연수는 그걸 무섭다고 했다.게다가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시선을 내리고 몸까지 뒤로 물리고 있었다.심서준은 잠시 굳어 있다가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한층 누그러뜨렸다.“널 겁주려던 게 아니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그는 낮게 덧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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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8화

심서준이 그런 태도를 보이자 계연수 역시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그녀는 살며시 심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다음에 또 저한테 무섭게 구시면 어떻게 할 겁니까?”심서준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되물었다.“네가 말해 보거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하지만 계연수는 막상 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그녀가 심서준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심가는 그의 것이었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 역시 그의 것이었다.게다가 심서준의 마음은 늘 헤아리기 어렵지 않았던가.무엇이 그를 고개 숙이게 만들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녀는 늘 이렇게 한발 물러서고 부드럽게 달래는 방법으로 그의 태도를 누그러뜨릴 뿐이었다.애초에 심서준에게 무언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그저 심서준과 잘 지내며 평생을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계연수는 조용히 말했다.“생각해 보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심서준은 눈을 내리깔았다.그는 계연수가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심서준은 그녀를 어깨에서 떼어 내어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어스름한 마차 안에서 심서준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아름다운 얼굴이었다.혼인한 뒤로 계연수는 언제나 무심한 듯 담담했다. 늘 평온했고, 세상사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그 얼굴 위에 아주 옅은 근심이 내려앉아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소리 없이 내리는 비 같았다. 빗줄기는 너무 가늘어 몸을 적시지 못하지만 분명 비는 내리고 있었다. 아련하고 흐릿한 산안개가 사람을 감싸듯, 희미한 슬픔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심서준은 계연수가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가느다란 눈썹 아래 드리운 슬픔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아래로 향한 눈길을 바라보았다.짙고 검은 눈동자와 살짝 올라간 눈꼬리. 눈 아래로 부서진 빛이 어른거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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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9화

예전의 그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생각했다. 계연수는 마땅히 자신을 사모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자신뿐이어야 한다고.설령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보다 더 나은 사내는 만나지 못할 테니까.하지만 훗날에야 그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내가 있었고, 계연수에게는 자신 말고 다른 이를 선택할 권리도 있었다.그는 우습게도 그녀 앞에서 냉담한 척했고, 무심한 척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때의 그는 그녀를 원망했다.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면서 왜 자꾸만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걸까? 그렇게 자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왜 자꾸 가까이하려는 걸까?계연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열등감마저 품게 만들었다.그녀가 물에 빠진 뒤로 그는 수도 없이 그런 감정에 빠져들었다. 마치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사람처럼.그리고 누구보다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이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늘 계연수 앞에서만큼은 자존심을 놓지 않던 자신도, 언젠가는 더 이상 오만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어쩌면 그날이 오면 계연수의 눈에도 자신은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 될지 몰랐다.그녀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내이자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한때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사람 역시 이미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 버렸으니까.심서준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여 계연수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리고 가장 다정한 힘으로 그녀를 품 안에 단단히 끌어안았다. 마치 자신의 뜨거운 체온으로 그녀를 녹여 내기라도 하려는 듯.계연수 역시 그런 심서준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에게서 이런 부드러움을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받아들였다.이토록 부드럽고 다정한 온기는 사실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그녀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애틋하게 보듬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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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0화

심정민은 최씨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막상 반박하려 해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사실 조금 전 보았던 장면은 심정민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도찰원에서의 오숙부는 누구나 인정하는 철면염라였고, 인정이라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건을 꿰뚫어 보는 눈을 지녔고, 아무리 교묘한 수를 써도 그 앞에서는 숨길 수 없었다.심정민은 줄곧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 모두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사람.그런데 그는 오숙부가 직접 여인을 안아 드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조정에서 풍운을 뒤흔드는 사람이 바로 오숙부였다.후택의 일은 기껏해야 여인들 사이의 자질구레한 집안사일 뿐인데, 그런 일에까지 마음을 쓰다니.심정민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최씨를 번쩍 안아 들고는 저택으로 걸어갔다.최씨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심정민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녀는 얼떨결에 그의 목을 끌어안았고, 가슴은 사정없이 쿵쾅거렸다.*한편, 계연수는 심서준에게 안긴 채 침상으로 옮겨졌다.망토 아래 감춰진 몸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고, 희고 고운 피부는 등불 아래 은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당시 여인들은 대부분 가슴을 단단히 동여매었다.풍만한 체형일수록 더 심했고,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계연수는 답답한 것이 싫어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허리는 가늘었지만 풍성해야 할 곳은 충분히 풍성했다.심서준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에 머물렀다.소년 시절에도 그는 무심한 척하면서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그때는 처음 사랑을 알게 되던 시절이었다.빠져들면서도 스스로를 못마땅해했고, 마음을 억누르려 했다.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그때 조금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방법을 썼더라면, 계연수는 진작 자신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면 사옥현이 끼어들 틈도 없었을 것이다.심서준은 계연수를 품에 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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