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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1화

심서준이 송학원으로 돌아왔을 때, 뜰 안은 고요했다.시녀들은 저마다 맡은 일을 하고 있었고, 안채에도 병간호를 위해 한 사람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원래 이 처소는 이보다 더욱 적막한 곳이었다. 시녀들은 일을 마치면 곧바로 물러났고, 뜰 안에 사람이 남아 있는 일도 드물었다. 하지만 계연수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로는 예전보다 훨씬 사람 사는 기운이 감돌았다.계연수는 아직 깊이 잠들어 있었다.몽롱한 의식 속에서 몸이 잠시 서늘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익숙한 품에 안겼다. 낯익은 체취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심서준의 검은 눈동자였다.그는 아직 조회에 입고 갔던 공복도 벗지 못한 상태였다. 옷자락에서는 은은하게 먹 냄새와 종이 냄새가 배어 나왔다.계연수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말을 꺼낼 기운도 없었다.하지만 심서준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놓였다.그러자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지만, 손끝만은 슬며시 심서준의 소매를 붙들었다. 마치 그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처럼.심서준은 그런 계연수를 내려다보았다.계연수가 이토록 기운 없이 늘어진 모습은 처음이었다.원래 그녀는 몸이 그리 약한 편이 아니었다. 이번이야말로 그가 처음 보는 제대로 된 병치레였다. 게다가 그 원인마저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심서준은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내렸다.그리고 침상 곁에 기대앉은 채 계연수가 품 안에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계연수는 한참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러다 약을 먹일 시간이 되어서야 심서준이 그녀를 조심스럽게 깨웠다.진한 탕약 냄새가 퍼지자 계연수는 얌전히 그의 품에 기대 앉았다. 약은 몹시 썼지만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끝까지 삼켜 냈다.심서준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어릴 적 계연수는 겁이 많은 대신 무척 응석받이였다.늘 아버지 품에 안겨 다녔고, 틈만 나면 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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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2화

계연수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어머님께서 절 부르셨어요.”병으로 잠긴 목소리는 가늘고 쉰 기운이 섞여 있었다.“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어머님께서 직접 키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까 꿈에서도...”말끝을 흐린 계연수는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심서준의 표정을 살폈다.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었다.심씨 노부인이 그 말을 한 뒤부터 줄곧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었다. 만약 심서준마저 같은 생각이라면, 그녀는 어쩌면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지도 몰랐다.이곳은 심가였다.힘으로도, 권세로도 그녀는 심서준이나 심씨 노부인을 이길 수 없었다.하지만 아이를 낳을지 말지는 적어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바라보았다.병색이 감도는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가련해 보였다.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맺힐 듯한 물기가 어른거렸고, 맑은 눈동자는 별빛처럼 흔들렸다.평소에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병든 기색이 더해지자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돌처럼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이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누그러질 것만 같았다.심서준은 괜히 가슴이 저려 왔다.가늘게 찌푸려진 눈썹이며, 하얗고 여린 얼굴까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처럼 보였다.그는 허리를 숙여 계연수의 미간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몸이 이렇게 아픈데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계연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무서웠어요.”작은 목소리가 옷깃 아래로 스며들자, 심서준은 입가를 옅게 당겼다.“그저 꿈이었을 뿐이다.”그는 계연수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말했다.“우리 아이는 당연히 우리 곁에서 키울 것이다.”계연수가 듣고 싶었던 말은 사실 그것뿐이었다.그 말이 없었다면 계속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곳에 머무는 것조차 불안했을지 몰랐다.원하던 대답을 들은 순간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병 때문에 감정이 평소보다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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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3화

아침에 심서준이 세수를 하러 나간 사이, 방 어멈이 침상 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오후 심서준은 돌아오자마자 내내 계연수를 품에 안고 있었다고 했다. 혹여 잠에서 깰까 봐 한 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지난밤 역시 그녀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사람은 심서준이었다.계연수는 원래 심서준이 누군가를 돌보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그리고 지금, 손에 들린 금팔찌를 바라보며 또다시 같은 생각이 들었다.본래 정이 옅고 냉담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심서준이 자신에게만은 이토록 마음을 쓰고 있었다.그렇다면 혹시 그 역시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 순간 손이 다시 붙들리더니,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목을 스쳤다.심서준이 직접 그녀의 손목에 금팔찌를 채워 주고 있었다.“마음에 드느냐?”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계연수의 뺨이 살짝 달아올랐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레 그를 올려다보았다.“고마워요, 부군.”심서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이 금팔찌는 꽤 공을 들여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이 고작 감사 인사 한마디라니.그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뿐이냐?”계연수는 아직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하지만 심서준의 표정과 말투를 보니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제가 부군께 향낭 하나 지어 드릴까요?”그제야 심서준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계연수는 약속한 이상 정성껏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창고에 가서 향낭을 만들 비단감을 직접 골라 보기로 했다.오전 내내 천을 고른 뒤 약까지 먹고 나자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머리를 짓누르던 어지러움도 거의 사라졌다.하루가 더 지나자 풍한은 대부분 나아 있었다.계연수는 오전에 주방 장부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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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4화

심정민의 말이 끝나자 심정우는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사실 대왕산 산적들을 토벌하고 그렇게 많은 목을 벨 수 있었던 것도, 처음에는 계연수의 원수를 갚고 위오를 붙잡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거기에 오숙부의 조언까지 더해지자 병법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우칠 수 있었다.예전 군영에 있을 때만 해도 훈련을 어떻게든 피하고 꾀를 부릴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산적 토벌에 나선 뒤로는 생각이 달라졌다.이대로 되는대로 살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면 평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산적들을 모조리 소탕해야 했다.한때는 죽는 것이 두려웠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조차 두렵지 않았다.심정민의 설명이 끝나자 전당 안은 축하 인사로 가득 찼다.계연수 역시 웃으며 심정우에게 몇 마디 축하를 건넸다.사방에서 축하가 쏟아지는 가운데 심정우는 그저 멋쩍게 웃고만 있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칭찬받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다 문득 계연수의 목소리가 들렸다.심정우는 무심코 그쪽을 돌아보았다.계연수는 심씨 노부인 아래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줏빛 옷차림에 붉은 보석 장식을 갖춘 모습은 단정하면서도 화사했다.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봄바람을 머금은 듯 부드러웠다.심정우는 다시 한번 뒤통수를 긁적였다.지금의 계연수는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좋아 보였다.예전에 자신이 보았던 그 놀라고 불안해하던 모습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심씨 노부인도 연신 좋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밤에는 접풍연을 열어야겠구나. 내일은 청첩을 돌리고, 모레는 경축연을 열도록 하자. 백씨가 준비를 맡아라.”백씨는 당연하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공명이니 출세니 하는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요.”그녀는 눈가를 훔치며 말을 이었다.“사람만 무사히 돌아와 준다면 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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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5화

심씨 노부인은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계연수가 아니었다면 자기 아들이 대체 언제 장가를 갔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그 생각이 들자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다.하지만 지금 백씨는 심정우의 일로 정신이 없었다.결국 그녀는 계연수에게 저녁 접풍연 준비를 맡기고, 맞은편 큰방 식구들에게도 사람을 보내 부르라고 일렀다.계연수는 순순히 응했다.오늘 오후 내내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무엇보다 이번이 그녀가 직접 연회를 주관하는 첫 번째 자리였다. 혹여라도 실수가 생겨서는 안 됐다.계연수는 먼저 초청장을 써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전달하게 했다.오늘은 본래 집안 잔치였다.초대할 사람들도 대부분 심씨 일가 사람들이었다.맞은편 큰방의 대감을 비롯해 각 방의 숙부와 숙모들, 출가한 고모들까지 포함되었다. 여기에 인척과 오랜 친분이 있는 집안들까지 더하면 명단은 자연스레 채워졌다.다행히 예년 연회 때 사용했던 명첩들이 남아 있어 참고하기 어렵지 않았다.인원을 모두 정리한 뒤 계연수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일을 배분해 나갔다.방 어멈에게 연회 준비에 관한 조언도 구했고, 주방의 관사들까지 모두 불러 세세하게 지시를 내렸다.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녀는 직접 주방으로 가 음식 구성을 다시 확인했고, 창고에 들러 필요한 식재료가 충분한지도 꼼꼼히 살폈다.부족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사람을 내보내 사 오게 했다.심정우의 일 때문인지 심가의 남자들은 이날 모두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심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송학원에 들어와 보니 계연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물어보니 아직도 주방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계연수의 풍한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다.그런 몸으로 하루 종일 연회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심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그가 계연수에게 집안일을 맡긴 것은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였지, 이렇게 무리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그때 방 어멈이 들어와 전했다.맞은편 큰방 식구들은 거의 다 도착했고,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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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6화

심서준은 계연수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눈빛에는 별다른 파문이 없었고, 미간만 살짝 찌푸린 채 그녀의 손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솔직히 말해 이번 일은 그저 조카 하나가 공을 세운 것뿐이니, 계연수가 앞뒤로 뛰어다니며 이토록 애쓸 이유는 없었다.지금처럼 직접 연회를 꾸리고 살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심서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한동안 묵묵히 걷던 그는 갑자기 계연수를 안아 들어 그대로 처소로 향했다.계연수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늘 그렇듯 얼굴선은 차갑고 단단했다. 말수도 적었고, 다정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도 아니었다.하지만 자신을 찾으러 와 주었고, 손에 쥔 짐을 대신 내려놓게 했으며, 직접 안고 돌아가고 있었다.그 행동들만으로도 심서준이 자신을 얼마나 살피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계연수는 그의 목을 감싼 손에 힘을 조금 주었다.익숙한 체향이 코끝에 스며들자 괜히 더 기대고 싶어졌다.송학원에 도착하자마자 문밖에서 또다시 전갈을 들고 온 시녀가 찾아왔다.하지만 심서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는 계연수에게 먼저 쉬고 있다가 연회가 시작되면 그때 나오라고 말한 뒤, 자신만 전당으로 향했다.아무래도 한 번쯤은 얼굴을 비춰야 하는 자리였다.계연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곧고 반듯한 등이 어스름한 빛 속에 길게 드리워졌다.그녀를 안고 돌아오는 내내 몇 마디 하지도 않았지만, 예전 같았으면 그런 무뚝뚝함이 거리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것이야말로 심서준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온기와 배려처럼 느껴졌다.그때 용춘이 다가와 물었다.“허리 좀 주물러 드릴까요?”계연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던 것이다.오후 내내 뛰어다닌 탓에 머리도 아직 약간 어지러웠다.게다가 밤이 되면 또 한 차례 연회가 이어질 터였다.그녀는 체면도 잊은 채 침상 위에 엎드려 용춘에게 어깨와 허리를 맡겼다.작은 탁자 위에는 한입 크기로 썰어 놓은 배가 담겨 있었다.계연수는 몇 조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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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7화

주변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마다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는 심정우가 복이 두터운 사람이라며 앞으로 더 큰 운이 따를 거라고 입을 모았다.예전의 심정우는 확실히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 모든 일을 대충 넘기고 늘 느슨하게 굴어, 심가의 자제들 가운데서도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공을 세웠다 하니 다들 놀라워하면서도, 이제는 정말 그에게 무언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목숨까지 걸고 얻어낸 공이니, 그 자리에 시기나 질투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생과 사를 걸고 쟁취한 결과였다.백씨는 예전에 바깥에서 둘째 아들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전과 달리 당당하게 허리를 곧게 세운 채, 화청 안을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그때 심씨 노부인이 계연수를 따로 불러 조용히 물었다. 연회 준비는 잘 마쳤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하나하나 짚어보는 말투였다. 계연수는 아는 대로, 있는 그대로 차분히 답했다.심씨 노부인은 그녀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자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고, 오늘은 그 시작일 뿐이니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계연수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노부인은 이어 초대한 사람은 누구인지, 상은 어떤 식으로 차렸는지, 그리고 그 많은 일을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정리했는지까지 세세하게 물었다. 계연수는 하나하나 빠짐없이 답했다. 사실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예년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 위에 상황에 맞게 조금씩 조정했을 뿐이었다.주방 장부 안에 모든 내역이 정리되어 있었기에, 화려하게 꾸미려 애쓰지는 못했어도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도 절대 허투루 넘어갈 일은 없었다.심씨 노부인은 계연수가 설명하는 모습을 끝까지 듣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이 일을 갑자기 맡긴 만큼 당황할 거라 생각했지만,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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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8화

예전, 아버지는 늘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녀 같은 성정은 고생이나 고단한 일과는 맞지 않으니, 애초에 그런 삶을 지게 할 생각도 없었다고. 집안에서는 그녀를 너무 편하게 키운 탓에 게으른 성격이 되었지만, 괜찮다며 웃어넘기곤 했다.그리고 언젠가, 온갖 풍족함을 다 담은 혼수를 마련해 주겠다고도 했다. 설령 시집을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편하게 지내는 ‘게으른 며느리’로 살아도, 손에 쥔 돈으로 평생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아버지는 진심으로 그게 가장 좋은 미래라고 믿고 있었던 듯했다.그런 삶은 제법 완벽해 보였다.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는 듯한 부군, 겉으로 보기엔 성품도 괜찮아 보이는 사위감, 그리고 평생 써도 남을 만큼의 혼수. 거기에 그녀는 외동딸이었기에 언제든지 돌아갈 친정도 있었고,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예의만 지키고 크게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세상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처음부터 정해둔 설계처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굴러가는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계연수는 자신이 원래부터 게으르고, 큰 뜻도 없으며, 누구처럼 대단한 능력이나 출신을 가진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마음 한쪽에서는 늘 바랐다.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조용하고 평온하게 한평생을 보내고 싶다고.그걸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이 허전해지고, 때때로는 자신이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조차 모를 만큼 막막해지곤 했다.발아래로 번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함께 달 아래에서 차를 마시던 밤,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들. 그때의 그녀는 먹고 자는 일이 전부였고, 아버지 서재에 있는 책 중 무엇이 재미있을지 고민하며 끝까지 읽어보는 게 전부였다. 가끔은 몰래 어머니 품으로 들어가 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그 시절 그녀에게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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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9화

하지만 심서준의 걸음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의 취기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단정하고 안정적이었고, 오히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또렷했다. 하지만 옷깃에 밴 술 냄새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계연수는 정말로 넘어질까 봐 몇 번이고 그에게 내려달라고 했지만, 심서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붙잡고 있는 팔만큼은 단단하고 견고했으며, 거부할 수 없는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집으로 돌아온 뒤, 심서준은 계연수를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늘 담담하고 느슨해 보이던 눈빛, 세상일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듯한 얼굴. 그런 그녀에게도 분명 근심이 있었고, 지나온 시간 속에 상처도 있었다는 걸 그는 문득 떠올렸다.계씨 가문에 일이 터졌을 때, 그는 그녀 곁에 없었다. 위로조차 건네지 못했고, 그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어떻게 버텼는지도 알지 못했다.그 생각에 이르자, 심서준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그녀를 더욱 깊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낮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연수야, 푹 쉬거라. 나는 술을 마셨으니 먼저 씻고 오겠다.”계연수는 그 쉰 듯한 목소리를 듣고 작게 답했다. 그리고 멍하니 그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곧장 방씨 어멈에게 가서 해장국을 준비해 달라 이르고,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정리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인 뒤 다시 침상으로 돌아와선, 용춘에게 허리를 좀 주물러 달라며 엎드렸다.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오던 터라, 용춘이 조금만 힘을 주어도 시원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계연수는 기분 좋게 몇 번 신음을 흘리며 이대로는 목욕도 건너뛰고 그냥 잠들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손끝에 닿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자, 그녀는 작게 소리를 내며 다시 힘을 빼 달라고 했다.용춘은 난처한 듯 서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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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0화

계연수는 사실 심서준의 취향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그녀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 잠깐 스쳐 지나갔던 인연 역시 대부분 피상적인 기억에 지나지 않았다.그녀는 다시 한 번 천을 골라보다가, 은빛이 도는 천을 집어 들었다.“이건 어때요?”생각해보면 심서준이 입는 옷은 대부분 검은색 아니면 흰색이었고, 가끔은 관복처럼 짙은 보라색을 걸치곤 했다. 그런 그에게 그나마 어울리면서도 조화로운 색이라면 은색 정도가 가장 무난해 보였다.이번에는 심서준도 크게 이견이 없는 듯 잠시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계연수는 안도의 숨을 조금 내쉬었다.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터였다.그녀는 물건을 정리해 들고 나가려 했다. 김이 빠지기 전에 해장국도 함께 가져다주려는 생각이었다. 아까부터 느끼기에 심서준은 분명 적지 않은 술을 마신 듯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목욕까지 마친 뒤에도 은은한 술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을 정도였다.막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하려던 순간, 심서준이 다시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계연수는 뒤를 돌아보았다.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늘 사람을 짓누르듯 내려다보던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얼마나 걸리느냐.”뜻밖의 질문이었다. 계연수는 그가 왜 갑자기 향낭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도 이미 골랐고, 이제 남은 건 자수와 마감이었다. 서두른다 해도 최소 닷새, 엿새는 걸릴 일이었다.“급하신 건가요?”그녀가 되묻자, 심서준은 붙잡고 있던 손을 느슨하게 놓으며 그녀를 한 번 바라봤다.“아니.”짧게 떨어진 한 마디였다.그제야 계연수는 방을 나섰다.밖에는 방씨 어멈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해장국이 담긴 그릇을 들고는 그녀에게 낮게 설명했다. 아까 목욕을 마친 뒤 심서준에게 한 번 올렸지만 그가 손도 대지 않았기에 새로 데워 다시 준비했다고 말했다.계연수는 심서준이 무슨 뜻인지 끝내 알지 못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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