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561 - Chapter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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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1화

[제수씨는 떼도 안 쓰고, 난리도 안 치잖아. 너 조상님 산소 한번 가 봐라. 진짜로 좋은 기운 올라오는 거 아닌가 싶다.]대현의 말은 과장되긴 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유호도 해인이 한마디 추궁도 하지 않고 이 일을 넘길 줄은 몰랐다.해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너무 좋아서 목숨까지 내주고 싶을 만큼.대현이 다시 말했다.[아, 맞다. 나 좋은 소식 있다. 오늘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할 수 있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나간다. 나 요즘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전화를 끊은 뒤, 유호는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달걀 프라이를 만들었다.핸드폰은 아직 통화 중이었다. 반대편의 주헌이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온라인 여론은 최대한 빨리 정리하겠습니다.]유호가 지시했다.“한 시간 뒤에 해인이 데리고 병원 검진 갈 거야. 이동 경로에 있는 기자나 파파라치들 전부 정리해. 우리한테 접근 못 하게 해.”[네, 문제없습니다.]해인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본 것은 유호가 주헌과 통화하는 모습이었다.해인은 어리석게 남이 저지른 잘못으로 자신을 괴롭힐 생각이 없었다.누군가의 거짓말 하나 때문에 곁에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화낼 이유는 없었다.함께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였다.유호를 믿기로 했다면 끝까지 믿어야 했다.의심은 마음을 갉아먹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까지 닳게 만든다.해인은 희정의 수법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해인은 유호 곁을 지나 거실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려는 참이었다.그 모습을 본 유호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유호가 해인의 손에서 우유컵을 가져갔다. 해인이 의아한 눈으로 보자 부드럽게 말했다.“날이 차가워. 우유는 데워서 마셔.”해인이 입술을 핥았다.요즘 찬 것이 당겼다. 시원한 것을 자꾸 마시고 싶었다.유호가 통화하는 틈을 타서 몰래 마시려고 했는데 그만 들키고 말았다.유호는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이제 한 달만 있으면 출산이야. 조금만 참아. 산후조리 끝나면 먹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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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아침을 먹은 뒤, 유호는 해인과 함께 병원 검진을 받으러 갔다.임신 개월 수가 찬 해인이 차 안에서 불편할까 봐 유호는 부드러운 쿠션까지 꺼내 등 뒤에 받쳐 주었다.유호의 보살핌을 보며 해인의 마음은 달콤하게 차올랐다.해인이 원했던 것은 사실 늘 단순했다. 지금 이 시간, 그 단순한 바람은 이미 손에 들어온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산전 검진은 순조로웠다. 의사는 아이가 잘 자라고 있고, 산모 상태도 괜찮다고 했다.지난번 조산 방지 시술 이후 해인의 수치들은 서서히 정상 범위로 돌아오고 있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면 출산할 수 있을 듯했다.다만 의사는 요즘 가볍게 많이 걷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나중에 자연분만을 하게 될 때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같은 시각, 다른 곳.차씨 저택은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차장섭은 희정을 병원에 데려가 유산 수술을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대문 밖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너무 많았다. 집에서 누군가 나오기만 하면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길을 틀어막아서, 차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결국 차장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경호원들을 내보내 사람들을 정리하게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언론사와 공식 채널까지 수백 군데가 달려들었다. 고작 경호원 몇십 명으로 상대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차장섭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질서 유지를 요청했다.전화를 끊는 차장섭을 보며 희정은 비웃었다.“내 뱃속 아이를 지우려고 부탁 한 번 안 하던 차 시장이 경찰까지 부르네.” “이러다 곧 천하메디컬그룹 천 회장한테 부탁해서 내 수술 기록까지 남의 이름으로 바꿔 달라고 하겠네? 시장 딸이 미혼모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 차 시장님 체면이 아주 우스워질 테니까.”수술을 진행하려면 희정은 아침부터 금식해야 했다. 한바탕 소란 끝에 어느덧 거의 정오가 다 되어 갔지만, 희정은 아침도 먹지 못했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차장섭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미혼 상태로 임신했다는 게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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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너...”차장섭은 화가 치밀어 올라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자기 손으로 키운 딸이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더 설득해 봐야 소용없다고 판단한 차장섭은 더는 희정과 말을 섞지 않았다. 곧장 서재로 올라가 업무를 처리했다.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차장섭은 다급하게 서재에서 내려왔다. 큰일이라도 생긴 듯 낯빛까지 달라져 있었다.희정은 거실 소파에 앉아 나이 든 중년 남자가 계단을 거의 뛰다시피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차장섭은 외투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 빠르게 차고로 향했다.뒤따라 나온 비서가 외투를 들고 급히 따라붙었다.“시장님, 천천히 가십시오.”“아내한테 일이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천천히 가? 그 무책임한 기자들이 병실까지 막았단다. 내 아내가 소식을 듣고 걱정이 심해서 병원에서 나오겠다고 난리야.”그 말을 남긴 차장섭은 집 밖으로 사라졌다.희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기자들이 도수희 병실까지 막았다고?’‘그럼 도수희도 이 일을 알았겠네.’차장섭은 도수희를 끔찍하게 아꼈다. 그러나 도수희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었다.요즘 도수희는 계속 병원에 입원해서 간병을 받고 있었다.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신장은 거의 망가졌고, 투석으로 겨우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적합한 신장 기증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희정은 도수희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도수희가 그렇게 고통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도수희가 아니었다면 희정의 어머니가 한을 품고 죽을 일도 없었다.도수희가 해인을 낳지 않았다면 희정이 차씨 집안의 유일한 딸이었을 것이다. 유호 역시 희정의 사람이었을 것이다.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도수희의 잘못이었다. 죽은 어머니가 도수희를 미워했듯, 희정도 도수희를 미워했다.하지만 희정은 도수희가 이렇게 쉽게 병으로 죽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살아 있어야 했다. 친딸에게 외면당하는 고통을 눈으로 보며 살아야 더 괴로울 테니까.병마에 시달리며 고통받아야 죽은 어머니의 죄값을 대신 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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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희정은 방 안에서 바깥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여유롭게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희정이 나오자 문 앞의 경호원이 바로 막아섰다.“아가씨, 시장님께서 마음대로 나가시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외출 금지는 아직 풀리지 않았고, 차장섭의 새 지시도 없었다.희정은 경호원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눈에는 조롱이 어려 있었다.“병원 데려가서 아이 지운다며. 내가 집 밖으로 안 나가도 수술이 돼?”경호원은 멈칫했다. 희정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아침부터 회장이 희정을 병원에 보내려 했던 건 사실이었다. 밖의 기자가 너무 많아 다시 집으로 들어온 것뿐이었다.경호원은 잠시 생각했지만 길을 비켜 주지 않았다.“하지만 시장님께서 방금 나가셨습니다. 돌아오신 뒤에 다시 말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희정은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려는 듯 말했다.“내가 안 기다리겠다면?”“그건... 죄송합니다, 아가씨.”말과 함께 경호원이 희정을 다시 안으로 데려가려고 했다.그때 멀리 있던 기자들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렸다.“차희정 씨가 나왔다!”누군가 크게 외치자, 기자들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저택 대문 쪽으로 달려왔다.경찰이 쳐 놓은 폴리스라인 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못했지만, 기자들은 선 밖에서 목청을 높였다.“차희정 씨, 뱃속 아이가 정말 한씨 가문 아이입니까?”“그동안 몸이 아프다며 촬영을 쉬신 게, 사실은 집에서 태교 중이었기 때문입니까?”“한씨 가문 쪽은 아직 반응이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이를 낳으실 건가요? 그쪽에서 인정하지 않으면요?”“...”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희정은 반쯤 연예계에 걸쳐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장면은 이미 익숙했다.플래시가 과할 정도로 터졌지만, 희정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물론 차장섭에게 감금당해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말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희정은 나오기 전 거울 앞에서 일부러 병약해 보이는 화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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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처음에는 별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이 사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희정의 창백하고 억울한 얼굴이 각종 화면에 떠올랐다.TV, 핸드폰, 여러 앱의 인기 화면까지 장악했다. 화제성이 큰 탓에 주요 플랫폼에서도 계속 밀어 올렸다.사건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유호는 그때 백화점에서 아내 해인과 함께 유아용품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유호는 주헌에게 병원에서 백화점으로 이어지는 길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백화점은 병원 바로 옆에 있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경호원들은 그 사이에서만 열 명이 넘는 기자와 파파라치들을 끌어냈다.해인의 뒷모습 하나라도 카메라에 담기면 경호원들이 바로 삭제하게 했다.희정이 기자들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유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이 옷 예쁘다.”요즘 해인은 소녀 같은 취향이 되살아나 아이 물건도 온통 핑크색으로 고르고 있었다. 해인은 아기용 핑크 조끼를 가리키며 옆에 선 유호에게 물었다.“당신 생각엔 어때?”검진에서 뱃속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게 된 뒤, 해인은 아이를 핑크빛으로 예쁘게 꾸미고 싶어 했다.어릴 때 집에서 가족들이 해인을 그렇게 꾸며 주었기 때문이다.해인은 집에서 공주님이었다. 아버지는 늘 예쁘다고 칭찬했고, 두 오빠는 귀여운 물건을 보면 꼭 사다 주었다.어머니 주여진은 예쁜 머리도 잘 묶어 주었다. 유치원 친구들이 해인의 머리를 부러워할 정도였다.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안목이 좋네. 고른 옷도 예뻐.”해인은 핑크 양말을 또 들었다.“이건?”“그것도 예뻐.”유호는 옆에 걸린 핑크 원피스 몇 벌도 집어 들었다.“이것들도 다 사자.”눈 깜짝할 사이에 매장에 걸려 있던 핑크색 옷들이 쇼핑 바구니로 들어갔다.해인이 볼을 살짝 부풀렸다.“한 대표, 너무 손이 크신 거 아니야? 아기들은 금방 큰다던데, 이렇게 사면 좀 낭비 아닐까?”유호는 해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낭비 아니야. 내가 돈 버는 건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에게 쓰려고 하는 거야. 옷 몇 벌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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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희정은 연예계에 발을 걸친 사람답게 여론을 움직이는 법을 잘 알았다. 어떤 말을 해야 기사가 더 커지는지, 무엇을 흘려야 사람들이 자극받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생중계로 퍼진 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중에게 확대 해석될 것도 알고 있었다. 나비효과처럼 예상 밖의 결과를 끌어낼 수도 있었다.그게 바로 희정의 목적이었다.해인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자 승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해인아, 생방 봤어? 차희정 그 여자 진짜 어디가 아픈 거 아니야?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해?] [그렇게 연기를 잘하면 감독을 할 게 아니라 배우를 했어야지.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한참을 쏟아낸 승아는 곧 해인이 임신 후반이라는 걸 떠올리고 목소리를 낮췄다.[그리고 화내지 마. 지금 개월 수도 다 찼잖아. 다 애 낳고 나서 생각하자. 그나저나 한 대표 쪽은 뭐래? 너한테 설명은 했어?]해인이 말했다.“본인이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래. 난 믿기로 했어.”승아도 어젯밤 처음 기사를 보고 희정이 유호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에 화가 났다. 유호를 쓰레기라고 생각했고, 해인이 너무 억울하다고 느꼈다.하지만 분노가 지나가자 승아는 차분해졌다.승아는 기자였다. 어떻게 남이 던진 프레임에 그대로 끌려갈 수 있겠는가?아이의 아버지가 정말 유호라면 희정은 왜 바로 유호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왜 먼저 언론에 흘려 여론부터 만들었을까?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게 분명했다.승아는 기자답게 핵심을 짚자마자 사건에 뭔가 숨겨진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문제는 언론도 희정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다.설령 희정이 정말 유호의 아이를 임신했다 해도 희정은 내연녀였다.그런데 왜 언론은 내연녀를 피해자처럼 만들며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 걸까?승아는 같은 기자로서 그런 무책임한 보도 행태가 부끄러웠다.다행히 승아가 다니는 곳은 공신력 있는 매체라 함부로 따라 나서지는 않았다.승아가 말했다.[해인아, 기다려. 내가 바로 기사 하나 쓸게. 내연녀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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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유호는 생각에 잠겼다. 희정이 이렇게 한 이유는 뻔했다. 자신이 먼저 연락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희정이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유호의 마음에는 본능적인 혐오감이 올라왔다.해인은 유호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조용히 소매를 잡았다.“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기분 망치지 마. 우린 우리 일상을 잘 지키면 돼.”사실 이 일로 더 화가 나야 할 사람은 해인이었다. 그런데도 해인은 오히려 유호를 위로하고 있었다.임신 중에 이런 일을 겪고도 화내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해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호를 원망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유호는 해인의 어깨를 감싸 품으로 끌어당겼다.고개를 돌려 해인의 검은 머리카락에 입술을 눌렀다.해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유호는 두 사람이 예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세세한 기억은 없었다.하지만 운명 때문인지, 아니면 해인 자체가 유호에게 치명적인 끌림을 주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사랑하게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유호는 해인에게 마음이 움직였다.예전 기억이 없어도, 피할 수 없이 해인을 사랑하게 되었다.“해인아.”유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이어 해인의 어깨를 감싸 더 깊이 품었다.“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한테 시간 좀 줘. 기자회견을 열어서 차희정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할게.”“기자회견은 신중해야 할 것 같아.”해인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당신 생각해 봤어? 차희정이 일부러 당신을 몰아붙이는 걸 수도 있어. 당신이 강하게 부정할수록 차희정은 더 피해자처럼 보일 수 있어.”유호가 미간을 좁혔다.“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거야? 차희정이 나를 깎아내리게 두고?”“물론 아니야. 하지만 언론 앞에서 말로만 아이가 당신과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증거를 모아서 이 아이가 당신 아이가 아니라는 걸 밝히는 게 나아.”유호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증거로 말해야 했다.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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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해인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가 뒤따라오는 유호가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겼다.해인은 배를 받치고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유호를 찾았다.공동현관 입구에 선 유호가 아이의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해인의 낯빛이 바로 변했다.“왜 그래? 어디가 안 좋아?”해인은 서둘러 다가가 유호를 붙잡았다.유호는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몸이 빠르게 추락했고, 주변은 숨 막히게 막혀 있었다. 눈앞도 갑자기 캄캄해졌다.괴로웠다. 머릿속도 웅웅 울리면서 견디기 힘들었다.하지만 해인의 목소리가 어둠을 찢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처럼 유호를 다시 끌어올렸다.눈앞의 안개가 조금씩 걷혔다. 유호는 해인에게 기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유호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해인이 유호의 손을 잡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유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는 해인의 얼굴이 있었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눈물도 고여 있었지만, 울음을 삼키려 애쓰고 있었다.유호의 마음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자신이 또 해인을 걱정시켰다.“괜찮아. 방금 머리가 조금 아팠을 뿐이야.”유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해인의 손바닥을 가볍게 눌렀다.하지만 그런 모습은 아무리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해인이 불안하게 물었다.“정말 괜찮아?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머리가 아픈 거야? 아니면 다른 데가 안 좋은 거야?”“진짜 괜찮아. 머리가 바늘로 찌른 것처럼 잠깐 아팠어. 우리 먼저 올라가자.”유호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우려고 했다.해인도 급히 쪼그려 앉아서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유호가 곧바로 해인의 팔꿈치를 붙잡았다.“내가 할게. 너는 배도 불러서 불편하잖아.”유호는 고집스럽게 물건들을 몇 번에 나눠 다시 주워 들었다.해인은 계속 유호를 바라보며 불안해했다.마지막 물건까지 주운 뒤, 해인은 유호의 팔을 꼭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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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꿰맨 자리는 이미 다 아물어 있었다.수술한 사람의 실력이 뛰어난 것이 보였다. 봉합선도 깔끔했다.정수의 말에 따르면 유호의 이 부위는 두 번이나 째고 다시 봉합했다.칩을 꺼내려면 세 번째로 또 열어야 한다. 과연 버틸 수 있을까?불과 반년 안에 세 번의 개두 수술. 아무리 몸이 건강한 사람이라도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다.해인은 확신할 수 없었다. 칩을 꺼낼 수 있을지, 꺼내다 알 수 없는 위험이 생기지는 않을지 두려웠다.유호는 얌전히 해인의 손길을 받았다. 차가운 눈물 한 방울이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낀 유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바로 고개를 들었다.“왜 그래? 왜 갑자기 울어?”“안 울어.”해인은 볼을 살짝 부풀렸다.“침이 실수로 떨어진 거야.”하지만 해인의 눈시울은 분명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유호는 해인을 품으로 끌어안았다.“괜찮아. 그냥 머리가 조금 아팠던 것뿐이야. 별일도 아니야. 평범한 사람도 머리 아플 때 있잖아. 봐, 지금은 네 앞에 이렇게 멀쩡히 있잖아. 아까 많이 놀랐어?”해인은 입술을 깨물더니 그대로 유호의 품에 파고들었다. 유호의 허리를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해인은 전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일 앞에서 무력했다. 노력은 했지만, 성과는 너무 작았다.태상에게서 칩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태상은 너무 깊게 숨었다. 해인은 태상과 쉽게 척을 질 수 없어서 겉으로는 맞춰 주어야 했다. 심지어 태상의 회사에 투자하겠다고까지 했다.그 외에는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체스판이 막다른 수에 몰린 것처럼, 어쩔 수 없이 한 수 한 수 버티며 나아갈 뿐이었다. 판을 뒤집을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물론 전혀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인은 태상이 과거 야마모토 교수의 실험실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칩은 아마도 야마모토 교수 실험실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유호에게 칩을 이식했다는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국경을 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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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호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낯선 번호였다.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 같았다.유호가 전화를 받자, 상대는 유창한 영어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가까이 있던 해인은 그 말을 또렷하게 들었고, 곧 눈빛이 서서히 밝아졌다.상대는 자신이 해외의 한 큰 연구소 접수 담당자라고 밝혔다.지금 해인에게 ‘연구소’라는 단어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들렸다.해인은 더 잘 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해당 연구소 자료를 검색했다.M국에 있는 연구소였다. 상대는 상세한 주소와 이메일도 알려 주었다.검색한 정보와 모두 맞아떨어졌다. 실제 연구소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보이스피싱은 아니었다.유호가 전화로 물었다.“저에게 전화한 이유가 뭡니까?”상대가 말했다.[정수 고객님께서 저희 연구소에 신체 검사를 예약하셨습니다. 변경 사항이 있으신가요? 예약일에 오지 않으셔서, 결석 사유를 기록해야 합니다.]유호는 미간을 찌푸렸다.“신체 검사요? 언제 예약했다는 겁니까?”상대가 답했다.[한 달 전입니다.]유호는 잠시 침묵했다.전화를 끊자 해인의 눈에는 다시 희망이 떠올랐다.“당신이 예약한 연구소가 아니야?”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난 이 일은 전혀 몰라.”연구소 측은 유호의 대략적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신상 정보도 모두 맞았다.그쪽은 유호의 머릿속에 칩이 이식되어 있으며,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수술을 위해 정밀 검사를 제공할 수 있다고도 했다.해인은 그 말을 듣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유호의 핸드폰을 받아 다시 전화를 걸고, 상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상대는 비슷한 실험을 해당 연구소에서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칩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사례도 있었다. 물론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 열 명 중 세 명이 실패했다고 했다.다시 말해 회복 가능성은 70%였다.해인은 아주 자세히 물었다.질문하는 동안 계속 검색했다. 이 M국 연구소가 야마모토 교수 실험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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