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Bab 581 - Bab 590

686 Bab

제581화

해인은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차장섭은 세상 풍파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이었다.그런데도 해인의 목소리를 듣자 이상하게 긴장했다.[해인아, 나다. 아빠다.]해인의 미간이 곧바로 좁혀졌다.‘아빠’라는 호칭을 듣자 목소리는 차갑게 식었다.“죄송하지만, 제 아빠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네요.”말을 끝낸 해인이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전화 너머의 차장섭이 급히 말했다.[해인아, 네가 나를 원망하는 거 알아. 나도 변명할 생각 없어. 아버지로서 하루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그런데 네 엄마 몸이 많이 안 좋다. 의사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어. 네 엄마가 너를 한 번만 보고 싶어 한다.]그 말을 들은 해인의 손이 멈췄다.“많이 아프신가요?”당당한 시장이었지만, 차장섭은 해인 앞에서 한없이 낮아져 있었다. 목소리는 바닥까지 내려앉았다.[그래. 맞는 신장을 찾지 못하면 길어야 넉 달이라고 했다. 해인아, 네가 우리를 미워해도 좋다. 그래도 내가 부탁하마.][네 엄마가 후회만 안고 떠나게 하지는 말아 다오. 생사를 앞둔 일 앞에서는, 미움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니?]‘넉 달’이라는 말을 듣자 해인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그녀는 줄곧 도수희를 원망하면서 자신을 버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도수희가 찾아와도 말을 섞지 않았고,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다.그런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왜 있는 걸까? 친엄마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가슴 한쪽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답답했다.해인은 전에는 도수희의 병이 동정을 얻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차장섭이 도수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거짓말을 해 가며 자신을 만나려 들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해인의 마음속 응어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생각해 볼게요.”[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오늘 나랑 밥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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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역시 시장이라 사생활 보호를 철저히 챙겼다.차장섭은 이미 룸 안에 앉아 있었다.해인이 들어오자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은 해인의 얼굴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배로 내려갔다.“고생이 많구나.”차장섭의 눈에는 격한 감정이 일렁였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아 보였다.하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한마디뿐이었다.“어서 앉거라.”차장섭은 지나칠 만큼 다정하게 메뉴판을 내밀었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 아직 주문을 못 했다.”해인은 자리에 앉았지만 메뉴판을 받지 않았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그녀가 담담히 말했다.“저는 가리는 음식 별로 없어요.”차장섭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결국 유호가 손을 뻗어 메뉴판을 받았다.“본인이 안 가려도, 뱃속 아기는 가리잖아.”유호는 메뉴판을 훑고 서빙 직원에게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마지막에는 따로 당부도 했다.“참, 제 아내는 파를 못 먹습니다. 고명에서도 빼 주세요.”서빙 직원은 적어 둔 뒤 메뉴판을 들고 나갔다.그제야 차장섭의 시선이 유호에게 향했다.유호는 해인의 취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들어온 뒤부터 해인에게서 거의 눈을 떼지 않았다.테이블이나 의자 옆을 지날 때도 일부러 손으로 사이를 막아 주었다. 해인의 부른 배가 혹시라도 시야가 가려진 틈에 부딪칠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이런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고?’차장섭은 이 일에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몇 분 뒤 서빙 직원이 차 주전자를 들고 들어와서 세 사람에게 따르려 했다.해인의 잔에 따르려고 하자 유호가 손으로 막았다.“지금은 늦은 시간이라 제 아내는 차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 잡니다. 따뜻한 물로 바꿔 주세요.”룸 안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차장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최근 뉴스 말이다. 내가 희정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그 아이가 함부로 말을 했다.”실제로 이틀 동안 인터넷은 이 일로 들끓었다. KH그룹의 주가까지 영향을 받았다.오늘은 월요일이라 기자들이 KH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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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장인의 눈으로 보아도, 한유호라는 사위는 흠을 찾기가 어려웠다. 유호는 생각이 깊고, 매사 해인을 먼저 살폈다.식당 음식은 해인의 입맛에 맞는 듯했다. 해인은 꽤 맛있게 먹었다. 반면 차장섭은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다.유호가 희정의 뱃속 아이와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한 뒤, 차장섭의 해인에 대한 죄책감은 더 거세게 밀려왔다.그는 비서를 안으로 불렀다.서류 가방을 들고 들어온 비서가 그 안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냈다.차장섭은 그 서류를 해인 앞으로 밀어 놓았다.해인이 눈썹을 찌푸렸다. 노란 봉투에 싸인 서류를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이게 뭐예요?”차장섭이 말했다.“열어 보거라.”해인은 천천히 봉투를 풀었다.문서를 확인한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공증 서류였다.차장섭은 자신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을 공증해 두었다. 전부 해인에게 넘긴다는 내용이었다.해인의 미간이 더 깊게 좁아졌다.“무슨 뜻이에요?”차장섭이 말했다.“내가 가진 모든 재산이 여기 들어 있다. 많지는 않다. 하지만 내 마음이고, 너에게 진 빚을 갚고 싶은 뜻이기도 해.” “네가 받아야 할 몫이기도 하지. 거절하지 말고 사인하거라.”해인이 물었다.“전부요? 차희정 씨는요?”이 일을 준비하기 전까지만 해도 차장섭은 희정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었다.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는 일이 마음에 걸렸다.하지만 희정이 저지른 일을 알고 난 지금, 그 미안함은 사라졌다.차장섭은 해인에게 진 빚이 있고 희정도 해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그 아이에게 남겨 줄 건 없다. 해인아, 내가 이걸 주는 건 돈으로 너를 붙잡으려는 게 아니다. 내 진심을 보여 주고 싶었다.”“나와 네 엄마는 단 하루도 너를 키워 주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도 사정이 있었단다. 네 엄마가 일부러 너를 버린 게 아니야. 억지로 빼앗긴 거야.”“난 이걸로 단지 한 번의 설명할 기회를 얻고 싶을 뿐이다.”차장섭은 그해 자신과 도수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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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해인 자신도 곧 엄마가 될 사람이기 때문일까? 해인의 감정은 이전보다 예민해져 있었다. 그리고 도수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친어머니가 얼마나 억울하고 막막했을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그래서 그분이 거의 집착처럼 나를 되찾고 싶어 했던 이유가...’해인은 반년 전, 주여진이 세상을 떠나기 전 며칠을 떠올렸다.주여진은 해인의 손을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언젠가 자신마저 없게 되면 친부모를 찾아가라고 했다. 피로 이어진 인연은 가장 끊기 어려운 것이라고도 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그때 해인은 마음속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원하지도 않았다.그래서 차장섭과 도수희에게 계속 거리를 두었다. 그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았다.해인은 오래 침묵한 끝에 입을 열었다.“정말 넉 달밖에 안 남으셨나요?”차장섭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의사가 그랬다. 맞는 신장을 찾지 못하면 넉 달 정도라고.”해인이 물었다.“조직 검사를 받은 사람은 누구예요?”차장섭이 대답했다.“의사는 직계가족이 맞을 확률이 크다고 했어. 하지만 네 엄마의 두 오빠는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어. 조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신장 이식 대기 명단에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야.”해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돈과 이익 때문에 친동생의 갓난아이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도수희에게 잘해 줄 리 없었다.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조직 검사를 기대한다니. 가능할 리 없었다.해인의 얼굴에는 깊은 생각이 스쳤다.그녀는 테이블 위의 공증 서류를 다시 차장섭에게 밀어주었다.“이건 가져가세요. 저는 필요 없습니다.”차장섭의 미간이 좁아졌다.“해인아... 이건 아빠가, 아니 내가 너에게 해 주는 보상이다. 내 마음이야. 꼭 받아 줬으면 한다.”해인은 고개를 저었다. 대가 없이 받는 큰돈은 부담이었다. 더구나 차장섭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장섭과 도수희 역시 어느 면에서는 피해자였다.그래서 이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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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차장섭은 한숨을 내쉬었다.희정에게 할 말은 이미 오래전에 다 했다. 하지만 희정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억지로 잡아 온다 해도 또 도망칠 방법을 찾을 것이다.게다가 이미 집에 두 달이나 가둬 둔 셈이었다. 정말 평생 가둬 둘 수는 없을 것이다.아이도 유호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차장섭은 조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희정이 서진과 함께 있다면 당장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일단은 놔둬. 집사람 몸이 좋지 않아. 지금은 희정이에게 기운을 쏟을 여력이 없어.”차장섭은 공무로도 바빴고, 틈틈이 도수희 곁을 지켜야 했다. 아버지로서 희정에게 실망이 컸지만, 그렇다고 딸의 마음까지 마음대로 바꿀 방법은 없었다.희정은 아이를 낳겠다고 버티고 있고, 아이가 사생아도 아니라면 일단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서진은 차장섭도 어릴 때부터 봐 온 아이였고 희정에게 잘했다. 희정이 서진과 결혼한다면, 차장섭으로서도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차장섭이 지시했다.“사람을 붙여서 희정이를 잘 지켜봐. 해인이 생활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비서가 물었다.“그럼 만약 희정 아가씨께서 계속 언론 앞에서 이상한 발언을 하신다면요?”차장섭은 잠시 침묵했다. 이번 일은 자기 딸이 잘못한 것이었다. 아버지로서 묵인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다.“온라인 실시간 검색어는 모두 내려. 기자회견을 열고 희정이 정신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발표해.”“지난번 발언은 증세가 심해져서 나온 망언이었다고 해. 또 내 명의로 한유호 대표에 사과의 뜻을 담은 선물을 보내.”그 말은 사실상 대중에게 아이가 유호와 무관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차장섭이 개입하자 상황은 정말로 바뀌기 시작했다.기자회견은 다음 날 오전 8시에 열렸다.회견이 끝난 뒤 온라인은 다시 떠들썩해졌다.[차희정 씨한테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처음 듣는데?][그렇게 멀쩡해 보였는데 정신질환이라니 말이 돼? 그냥 위기관리용 해명 아니야?][근데 이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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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희정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왜... 왜 내가 차씨 집안의 장녀인데, 아빠는 나를 깎아내리고 남을 감싸?”“강해인이야. 분명히 강해인이 그랬어. 아빠를 완전히 세뇌시킨 거야!”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희정은 안색마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서진은 아파트에서 희정 곁을 지키고 있었다. 가사도우미가 식탁 위에 반찬과 국을 차려 놓자, 서진은 희정의 손을 잡고 식탁 쪽으로 데려갔다.“지금 임신 중이잖아. 마음을 너무 몰아붙이면 몸에도 안 좋아.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으면 네 몸부터 챙겨야 해.”서진이 어떻게든 희정을 달래 보려고 했지만 희정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아빠가 나한테 정신질환이 있다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내가 짜 놓은 계획이 전부 망가졌어.”“유호가 아직도 나를 찾지 않는 것도, 아이의 정체를 확신하지 못해서 그런 거야. 너는 유호가 이 아이를 인정할 것 같아?”서진의 눈매가 가라앉았다.“희정아, 한유호가 너랑 잔 적 있어?”희정이 멈칫했다.“그게 무슨 말이야?”“한유호가 애초에 너랑 잔 적도 없는데, 네 배속 아이가 어떻게 한유호의 아이가 돼?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멍청하다고 생각해?”“유호가 술에 취했던 적이 한 번 있었어. 비서도 곁에 없었고. 그날 유호가 나를 임신시켰다고 말할 수 있어.”그 무렵 희정은 유호와 자주 만났다. 대부분은 주헌이 따라붙었지만, 주헌도 늘 곁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빈틈은 분명히 있었다.서진은 고개를 저었다.“남자는 마음에도 없는 여자 앞에서는 아무리 여자가 옷을 다 벗어도 반응하지 않아.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서진은 이를 악물었다가 말을 끝냈다.“너한테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뜻이야.”그 한마디에 희정은 완전히 폭발했다. 벌떡 일어난 그녀가 젓가락을 식탁 위로 내던졌다.“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해!”“사실을 말하는 거야. 지금 당장은 어찌어찌 속인다고 쳐. 아이가 태어나면?”“한유호가 친자 확인을 하자고 하면 그때는 어쩔 건데? 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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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식당에서 돌아온 뒤, 유호의 머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이번에는 유호도 경험이 있었다. 이상을 느끼자마자 그는 해인 몰래 핑계를 대고 서재로 들어갔다. 아픈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해인은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요즘 그녀는 금방 배가 고파져서 냉장고에서 간식통을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뚜껑이 도무지 열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유호를 부르러 갔다.해인이 서재 문밖에 섰다.“당신 일 끝났어?”안쪽에서 남자의 나지막한 대답이 들렸다.그 짧은 목소리만으로도 해인은 이상을 알아차렸다. 유호의 음성에는 억누른 고통이 섞여 있었다.해인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서재 안에서 유호는 책상 위에 몸을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관자놀이에는 식은땀이 촘촘히 맺혀 있었다.“요 며칠 사이 벌써 세 번째지? 당신 통증 간격이 전보다 훨씬 짧아졌어.”해인은 그에게 다가갔다. 표정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해외에 가서 검사 받자. 지금 바로 비행기표 알아볼게.”그녀는 더 이상 그가 미루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유호는 통증 때문에 숨을 한 번 고르며 해인을 바라봤다.“그런데 너를 혼자 국내에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려.”해인은 지금 만삭에 가까웠다. 열 몇 시간 동안 비행기에 앉아서 함께 떠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유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조금 더 참을 수 있어. 네가 아이 낳고 나서 가도 돼.”“안 돼. 나는 동의 못 해.”출산 예정일까지는 아직 한 달가량 남아 있었다. 그런데 고작 2, 3일 사이에도 그는 여러 번 통증을 겪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변수가 늘어났다. 해외 연구소에서 준 기간도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결정해야 했다.“당신이 걱정되면 매일 나한테 전화해. 그러면 당신도 내 상황을 알 수 있고, 나도 당신 상태를 알 수 있잖아.”유호에게 해외 치료를 권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해인도 속으로는 불안했다. 위험도가 있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에게 또 다른 사고가 생길까 봐 두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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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권영자가 웃으며 말했다.“유호야, 이제 아빠가 될 사람이라 그런지 제법 철이 들었구나. 앞으로는 함부로 굴면 안 된다.”희정이 언론 앞에서 유호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을 때, 이 집도 한바탕 뒤집혔다.천하솜과 왕단영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식탁에서 유호 흉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한원랑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채찍을 들고 신혼집으로 달려가 유호를 혼내려고 했다.하지만 신혼집은 텅 비어 있었다. 한원랑은 유호를 찾지 못했다.다행히 차장섭 쪽에서 곧 사람을 보냈다.차장섭이 비서를 직접 보내서 한씨 가문에 사정을 설명했고, 한원랑은 그제야 자신이 유호를 오해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 뒤 왕단영과 천하솜은 한원랑에게 단단히 한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은 예전보다 훨씬 조용해져 있었다.해인이 유호에게 문을 닫으라는 눈짓을 보냈다.문을 닫자, 해인은 권영자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할머니, 사실 유호 씨가 예전에 저한테 그렇게 차갑게 굴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권영자는 의아해했다.“무슨 이유?”해인은 칩에 관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권영자에게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권영자의 안색이 무겁게 내려앉았다.“세상에, 누가 이렇게 간이 크단 말이냐? 감히 우리 집안 사람을 건드려? 이 일은 반드시 파헤쳐야 한다. 끝까지 캐야 해!”권영자는 곧 유호를 안쓰럽게 바라봤다.“몸은 어떠니? 이렇게 큰일을 이제야 할머니한테 말하다니, 참...”유호가 짧게 말했다.“해인이 해외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어요.”권영자가 곧바로 답했다.“치료해야지! 당연히 해야 한다. 빠를수록 좋아.”“하지만 해인이가 곧 출산해요.”“그건 어렵지 않아. 해인이를 다시 여기로 들어오게 하면 돼. 내가 돌보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집에 있는 그 두 여자도 요즘은 얌전해졌다. 네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면 출산할 때까지 잠시 내보내면 돼.”권영자는 빠짐없이 생각하고 있으며, 해인과 같은 편이 되어 유호가 하루라도 빨리 해외에서 치료받기를 바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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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눈앞의 이 여인이 바로 내 친어머니일까?’해인은 도수희와 함께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도수희를 마주해도 낯설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그녀는 병상 옆 의자에 앉아 도수희의 누렇게 가라앉은 얼굴을 바라봤다. 도수희의 두 눈은 깊게 팬 눈두덩 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흰자위마저 누르스름했다. 그 눈에는 예전 같은 생기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바싹 말라 시든 꽃 같았다.해인이 자신을 바라보자, 도수희는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 보이고 싶어 하는 몸짓이었다.“진작 알았으면 내가 좀 몸단장이라도 했을 텐데. 이렇게 보니까 많이 놀랐지? 한동안 제대로 꾸밀 정신이 없었어.”도수희는 병색을 숨기려고 애를 썼다.해인은 병실에 들어오기 전 간호사에게 도수희의 상태를 대략 들었다.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았고, 며칠 전에는 큰 충격을 받아 응급실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이런 몸 상태를 꾸민다고 감출 수 있을 리 없었다.조심스럽게 해인의 손을 잡으려던 도수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손을 거두었다.“해인아, 네 마음속에는 엄마를 많이 원망하는 마음이 있겠지. 네가 그렇게 어렸을 때 버려졌으니까.” “나는 변명하고 싶지 않아. 다만 네가 원망 속에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도수희는 떨리는 숨을 삼켰다.“이제 네 친정에는 너 혼자 남았잖아. 한 대표가 너한테 잘해 주니? 네가 혹시라도 서러운 일을 당할까 봐, 그게 너무 걱정돼.”해인이 이렇게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도수희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모녀가 눈물로 끌어안는 장면 같은 것은 감히 바라지도 못했다. 그저 어른으로서, 잃어버린 딸을 걱정하는 마음만 조금 전할 수 있으면 됐다.해인은 차장섭에게서 과거의 사정을 들었다.이제 해인도 알았다. 그때 자신을 버린 사람은 도수희가 아니라 도수희의 두 오빠였다는 것을. 그 두 사람은 그저 작은 이익 때문에 갓난아기였던 친조카를 길가에 버렸다. 도수희는 그 뒤로도 딸을 찾기 위해 긴 세월을 보냈다.예전에 해인도 분명 원망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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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도수희는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기 위해 고향을 떠나 홀로 살았다. 그런데 출산을 앞두고 또 누군가가 끼어들었고, 아이를 낳자마자 품에서 빼앗겼다.그렇게 반평생을 아이를 찾아 헤맸고, 반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어렵게 사랑했던 남자와 다시 이어졌지만, 그때는 이미 몹쓸 병이 찾아온 뒤였다.해인의 눈빛에 안쓰러움이 스며들었다. 핏줄이란 참 이상했다. 도수희의 초라한 모습을 보자 해인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제가 머리 빗겨 드릴게요.”해인이 문득 말했다.도수희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는 기색이 얼굴에 떠올랐다.“임신 중인데,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돼...”해인은 이미 빗을 집어 들고 천천히 도수희에게 다가갔다.“머리가 헝클어졌어요. 머리 빗는 게 힘든 일도 아니잖아요.”도수희의 머리카락은 거칠고 푸석했다. 오래 병상에 누워 있는 데다가 영양이 부족한 탓인지, 건강한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윤기가 없었다.해인이 고집하자 도수희도 더 말리지 못했다.도수희는 기쁨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인은 머리를 빗겨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수 헤어 에센스까지 발라 주었다.도수희의 가슴이 따뜻하게 차오르면서 눈가가 다시 떨렸다.‘내 딸이 이렇게 다정하구나. 이렇게 곱게 자랐다니.’도수희는 강정국 일가에 너무 큰 빚을 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 강정국 일가는 모두 세상을 떠나서 은혜를 갚을 기회조차 없었다.유호는 병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는 길에 두 사람은 대충 식사만 했다. 유호는 해인이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할까 봐 먹을 걸 사 두고 싶었다.막 입원동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유호야.”희정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손에는 검사 결과지를 들고 있었다.유호가 고개를 돌렸다. 희정을 본 남자의 눈매가 싸늘하게 식었다.희정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뉴스 봤지? 나 임신했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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