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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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설령 아이가 없더라도 신시아는 이 일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나중에 언니가 좋은 집안에 시집갈 수도 있잖아요!”정다슬은 답답한 나머지 신시아가 하씨 가문과 맺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뻔했다.한편 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팽팽한 압박에서 간신히 ‘벗어’났다.“할머니, 다슬 씨. 저는 제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부디 제 입장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들은 권미희는 그녀가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어르신은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신시아를 바라보았다.“알았어. 네 뜻이 확고하다면 이 일은... 더 이상 언급 안 할게.”그재야 신시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네 할아버지 생신 연회는 꼭 참석하렴. 다슬이 친구로서 말이다.”권미희는 신시아가 정씨 가문과 가까워질수록 하씨 가문으로 시집갈 희망이 커질 것이라고 여겼다.이제 막 손녀로 삼을 제안을 거부했는데 생신연회까지 거절한다면 권미희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도 몰랐다.신시아는 마지못해 응했다.“네.”“나한테 친구는 언니밖에 없어요! 정말이에요.”옆에 있던 정다슬이 활짝 웃었다.“시간 내서 같이 쇼핑해요. 연회 때 입을 드레스도 고르고 할아버지 생신 선물도 함께 골라요.”신시아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래요.”대화가 끝나갈 무렵, 사무실 문이 열리고 정우진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가서 얼른 준비해. 곧 진승현 씨가 와서 계약서에 서명할 거야.”그는 신시아를 힐끗 쳐다보고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신시아는 이 남자를 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는데 정작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설마 그녀와 한채은의 대화를 듣지 못한 걸까?“뭘 꾸물거리고 있어?”정우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는 신시아를 바라보았다.이에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돌려 권미희 일행에게 인사한 뒤 사무실을 나섰다.“너도 참!”권미희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정우진을 삿대질했다.“왜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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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문득 머릿속을 파고든 건 이혼을 요구하던 날 신시아의 하얀 얼굴에 서려 있던 서늘한 거리감과 냉담함이었다.결혼 생활 2년 동안 그녀는 마치 품 안의 인형 같았다.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그녀는 때때로 아무런 의도 없이 정우진을 흔들어 놓곤 했다.다만 신시아는 늘 선을 지킬 줄 아는 여자였다. 그래서 가끔은 그 매력에 마음을 뺏길 뻔하다가도 정우진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냉정을 유지했다.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흩어진 생각을 가다듬었다. 남자의 눈빛이 점차 맑아졌다....진승현이 장건우를 데리고 계약을 하러 왔다.신시아는 계약서를 준비한 후, 정우진을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장건우가 진승현 옆에 앉아 있었다.“정 대표님, 신 비서님.”장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우진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신 비서님’이라고 말할 때, 그의 말투가 선명하게 부드러워졌다.진승현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장건우를 한 번 쳐다보았다. 신시아와 장건우를 번갈아 보는 그의 눈빛에서 끈적하고 묘한 기류가 흘렀다.“진 대표님.”신시아는 진승현에게만 호칭을 붙였다.아직 장건우가 어떤 직책으로 진승현을 따라왔는지 몰랐으니까.이름만 함부로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진승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정 대표님, 앞으로 백영 그룹과의 협업은 장건우 씨에게 전담시킬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 프로젝트 팀장직을 맡고 있거든요.”정우진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장건우를 향한 그의 시선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깊은 속내가 담겨 있었다.“정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장건우는 허리를 굽혀 정우진에게 손을 내밀었다.“진 대표님, 이렇게 하시는 건 신 비서도 협력 업무에 투입시키라는 말씀이신가요?”정우진은 장건우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한편 진승현은 그의 말투에서 약간의 불쾌감을 느끼고 곧장 입을 열었다.“아니요. 대표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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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장건우의 목소리가 채 닫히지 않은 회의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신시아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축하해.”“나야말로 고마워.”장건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정말 어떻게 감사 표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혹시 내가 널 불편하게 한 건 아니지?”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두 사람이 회의실 문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진승현과 정우진의 대화가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상황에서 손님인 장건우를 혼자 덩그러니 남겨둘 수도 없었다.결국, 신시아가 먼저 제안했다.“내 사무실 가서 커피 한잔할래?”“그래도 될까?”장건우가 정중하게 되물었다.신시아는 앞장서서 걸으며 그에게 답했다.“당연하지.”몇 분 후, 신시아의 사무실.“미안, 커피가 다 떨어졌네. 따뜻한 물밖에 없는데 이걸로 괜찮을까?”그녀는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장건우에게 건넸다.이에 장건우는 서둘러 소파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물컵을 받았다.“커피를 쟁여놓는 스타일은 아니구나. 난 또 이렇게 으리으리한 빌딩에 있는 사람들은 고강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커피로 해소하는 줄 알았거든.”“전에는 마셨는데 지금은 잘 안 마셔.”신시아는 그의 옆에 앉았다.“프로젝트 담당자를 불렀으니 곧 도착할 거야. 프로젝트 후속 진행에 관해서 마음껏 이야기 나눠.”그녀는 어쨌거나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니 장건우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가 제한적이었다.“그렇다면 잠깐 시간이 비어있을 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장건우는 물컵을 내려놓고 잠시 말을 골랐다.“엄마가 지난주에 수술받으셨어. 이후에도 계속 항암 치료를 받으셔야 한대. 일단 고비는 넘겼다지만 상황이 낙관적이진 않아.”신시아는 의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주변에서 비슷한 경우를 여럿 들어본 적이 있었다.결국, 돈으로 시간을 사는 일.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버티며 생명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닥친 현실이었다.“혹시 또 내 도움 필요해?”“자꾸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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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정우진의 시선을 감지한 장건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안녕히 계세요, 정 대표님.”정우진은 전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목울대를 살짝 굴리며 대답을 대신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한마디도 없었다.장건우를 무시하려는 듯한 노골적인 의중이 읽혔다.한편 장건우는 굳이 상대의 심기를 건드려가며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어쩌면 정우진 같은 거물들은 원래 저런 식의 거만함을 두르고 살겠지.애초에 자신 같은 평범한 사람이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장건우와 진승현이 차에 올라탄 후, 신시아는 곧장 회사로 돌아가 팀원들과 회의를 잡아야 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마디가 선명한 남자의 손이 불쑥 끼어들었다.문이 다시 열리고 정우진이 성큼 걸어 들어왔다.신시아는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가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미 그는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더구나 맨 위층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고 비좁은 공간에 남자의 은은한 솔향이 퍼져 흘렀다.그와 단둘이 마주하게 되자 신시아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한 듯 두근거렸다.그녀는 무심코 구석으로 물러섰다.띵.엘리베이터가 17층에 멈추자 신시아가 앞으로 나섰다. 정우진의 몸을 스치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먼저 가보겠습니다, 대표님.”그녀는 정중하게 말하고 안에서 내렸다.한편 정우진은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시선은 천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서둘러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꽂혔다.신시아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회의를 마치고도 몇 번이나 갑자기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에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저녁이 되어 회사를 나설 때는 이미 일곱 시 반이었다.경원의 초여름은 해가 늦게 지는 편이었다. 신시아가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왔을 때, 하늘은 아직 희미하게 밝았다.자동차가 붐비는 도로에 합류하고 도시의 소음이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왔다.갑자기 울린 휴대폰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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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아니, 그게 아니라...”하선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대체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나도 도와줄 수 있잖아.”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신시아를 직접 만나야만 했다. 만나서 이 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어야 하니까....은씨 저택.신시아의 병원 진료 기록 사본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제대로 들은 거 확실해?”손연경이 은유라에게 물었다.“임신한 것 같긴 한데 배가 아직 많이 안 나와서 100퍼센트 확신은 못 하겠어요.”한 명이 잘못 봤거나 다른 한 명이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진단서에는 임신이라는 글자가 없었으니까!은유라는 단호하게 말했다.“아니요! 신시아 백퍼 임신이에요. 이 진단서가 잘못됐어요. 뭔가 이상해!”“진단서가 잘못됐다기보단 네가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더 커.”그도 그럴 것이 요 며칠 은유라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손연경은 그런 딸을 보며 애가 탔다.“유라야, 너 왜 이렇게 예민해졌어? 혹시 엄마한테 숨기는 거라도 있니?”“그건...”은유라는 답답함에 목이 메어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한참을 씩씩거리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시아 걔 분명 임신했어요. 내가 사람 붙여서 계속 뒷조사하고 있으니 조만간 증거가 나올 거예요!”그녀는 말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앞으로 매일 신시아 따라다녀. 그년 일거수일투족을 즉시 보고해!”“네, 알겠습니다!”전화기 너머에서 통쾌한 대답이 돌아왔다.“자, 이제 다 맡겨 뒀으니 걱정 붙들어 매. 엄마 말 듣자. 와서 과일 좀 먹어.”손연경이 과일 접시를 내밀며 사과 한 조각을 은유라의 입가로 가져갔다.다만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신시아의 임신 생각으로 가득 차서 넋이 나간 채 허공만 응시했다....신시아는 연속 이틀이나 하선재가 만나고 싶다는 약속을 거절했다.그녀는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겨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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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어서 오세요...”신시아를 향해 다가서던 손연경과 은유라는 앞을 가로막은 종업원 탓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손연경은 딸의 팔을 낚아채며 나직이 속삭였다.“침착해. 아직은 때가 아니야. 괜히 자극해서 일을 그르치지 마.”은유라의 안색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신시아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손연경에게 이끌려 향한 곳은 반대편의 다른 의상 구역이었다.다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신시아는 그녀들이 왜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왜 그래요?”정다슬이 갈아입은 드레스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신시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주변을 천천히 훑었다.이내 맞은편 의상 구역에서 드레스를 고르고 있는 은유라와 손연경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어머, 이런 우연이! 여기서 다 만나네.”입으로는 ‘우연’을 운운했지만, 정다슬의 얼굴 어디에도 반가운 기색이 없었다.그저 예의상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고 손연경에게 다가갔다.“아줌마, 유라 씨.”신시아와 함께 있는 정다슬의 모습을 보자 손연경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어머, 다슬이구나. 뭘 그렇게 서먹하게 굴어? 이제 곧 한 식구가 될 텐데 유라한테는 ‘새언니’라고 불러야지.”“아직 결혼식 안 올렸잖아요...”만에 하나 파혼이라도 하게 되면 어쩌려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정다슬은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삼키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에이, 결혼 날짜라도 정하거든 호칭 바꾸죠 뭐.”그녀의 농담 섞인 말에 손연경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얘는 여전히 장난스럽긴! 그렇지만 말이야, 앞으로 신시아랑은 좀 거리를 두는 게 나을 것 같구나.”정다슬은 그 말의 본뜻을 단번에 알아챘다. 신시아가 정우진의 전처라는 점을 꼬집는 것이었다.“저는 유라 씨처럼 살갑지가 못해서요. 엄마랑 다정하게 쇼핑할 수 있는 유라 씨와는 다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찾아야죠.”그녀의 말에는 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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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손연경은 급히 발걸음을 옮겨 딸의 뒤를 쫓았다.“유라야, 엄마 여기 있잖아. 엄마가 뒤봐줄 테니 신시아 같은 애는 신경 쓸 거 없어!”...신시아와 정다슬은 드레스 쇼핑을 마치고 정태석을 위한 선물까지 골랐다.점심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헤어지고 난 뒤 신시아의 마음은 영 개운치 않았다.은유라와 손연경 모녀를 마주친 이후로 그녀의 신경은 온통 곤두서 있었다.정다슬이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말했다.“언니랑 우리 오빠는 이미 과거일 뿐이잖아요. 지금은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려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 언니 편이니 아무 걱정 말아요.”“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라 다슬 씨네 집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신시아가 차분하게 덧붙였다.“은유라가 언젠가 정씨 가문 사람이 될 텐데 제가 끼어들면 괜히 불편해질 거잖아요. 피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정다슬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그래도 할머니 소원인데 할아버지 생신 연회에 꼭 참석해주셔야 해요. 약속한 거잖아요.”“약속한 건 당연히 지키죠. 꼭 가요.”신시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정다슬에게 부탁했다.“하지만 앞으로 이런 자리가 또 있다면 저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을 거예요. 그때는 할머니께 잘 좀 말씀드려줘요.”“네?”정다슬은 금세 시무룩해졌다.“곧 내 생일인데 언니도 초대하고 싶었단 말이에요.”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다슬 씨 생일은 생일대로 즐겁게 보내고 우린 나중에 따로 만나서 밥 먹어요. 그때 제대로 축하해 줄게요.”신시아는 정다슬이 내미는 그 순수한 마음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그녀의 말에 정다슬은 비로소 안도하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정씨 가문과 엮이는 자리에 신시아를 억지로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정태석의 생신 연회 당일.경원 호텔 전체를 대관한 성대한 연회는 신시아가 도착했을 무렵, 아직 시작 전이었다.입구에서 기다리던 정다슬이 신시아를 맞이해 2층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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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신시아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우윳빛처럼 뽀얀 얼굴에 혈기가 조금씩 가시더니 이내 창백해졌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결혼식은 언제예요?”“넉 달 뒤, 팔구월쯤.”정다슬은 기현주에게 흘려듣듯 들었던 터라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했다.팔월 말에서 구월 초라니, 공교롭게도 신시아의 출산 예정일과 겹치는 시기였다.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정태석과 권미희의 대화에 맞장구를 쳤다.잠시 후, 정태석에게 인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삼삼오오 들어왔다.신시아는 그 틈을 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리를 뜨려 했다.하지만 막 아래층으로 내려섰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정우진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몸에 딱 떨어지는 검은색 오뜨 꾸뛰르 슈트를 입은 남자는 훤칠하고 탄탄한 체격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했다.손에는 핑크색 파우치가 들려 있었는데 아마도 은유라의 가방인 듯싶었다.다만 정작 그 주인인 은유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대표님.”신시아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정우진은 찰나의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버건디 컬러 드레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욱 투명하게 비추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지만 그 자체로 완벽하게 다듬어진 이목구비가 빛을 발했다.가늘게 휜 눈매에는 은은한 고혹미와 순수한 분위기가 절묘하게 섞여 있었는데 상반된 두 매력이 그녀의 얼굴 위에서는 위화감 없이 어우러졌다.정우진의 눈동자가 서서히 짙게 가라앉았다.한편 신시아는 그가 자신의 등장을 못마땅해한다고 여겼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할아버지께 선물만 전해드리고 막 돌아가던 참이었어요.”“이왕 온 김에 할아버지랑 식사라도 하고 가.”정우진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두 분이 너를 기다리시는데 굳이 분위기 깨지 말고.”신시아는 수 초간 침묵하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는 또 볼일이 있어서요.”그녀가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하던 찰나였다.정우진의 곁을 스쳐 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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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하선재는 요사스러운 미남형 얼굴에 비굴할 정도로 살가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하 대표님.”신시아가 손을 빼내며 냉랭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시죠?”하선재가 멋쩍게 웃었다.“아니, 그냥 사과라도 좀 할까 해서. 물론 나도 그 당시에는 방관자이긴 했지만 나름 신 비서 편을 들어줬잖아. 은유라 일도 따지고 보면 다 내가...”“고마워요.”신시아는 그의 말을 자르며 아래층으로 두어 계단 내려가 거리를 벌렸다.“만약 고맙다는 말로 퉁치는 게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앞으로는 저 안 도와주셔도 돼요.”고맙다는 말 외에 그녀가 하선재에게 줄 수 있는 ‘보답’ 따위는 없으니까.하선재는 그녀의 말 속에 담긴 뼈를 알아차리고는 더욱 민망해졌다.“내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게 좀 비겁하긴 했지. 그래도 세상 살다 보면 구경할 거리는 다 챙겨 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저기 신 비서! 잠깐만 있어 봐.”하선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시아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좀 천천히 가. 조심해야지...”신시아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에 하선재는 가슴이 다 철렁했다.하지만 그녀는 남자의 말을 무시한 채 주차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하선재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맛을 다시며 호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신시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진심이었다.나중에라도 다른 방식으로 제대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하선재 씨! 시아 언니한테 또 무슨 짓 하려는 거예요?”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다슬이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하선재에게 쏘아붙였다.남자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넌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시아 언니 괴롭히면 그땐 내가 가만 안 둬요!”정다슬은 두 사람의 일에 참견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신시아의 편을 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언니를 얼마나 아끼시는데! 선재 씨가 계속 언니 괴롭히면 그건 우리 집안을 적으로 돌리는 거나 다름없다고요!”하선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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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권미희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 상황을 넘기려 했다.“선물까지 사 왔어?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겠네. 얼른 열어볼까?”정태석도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닫고 권미희의 장단에 맞췄다.“그래, 어디 봐봐.”그는 선물을 받아들고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뜯었다.한편 은유라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곁에 선 정우진의 눈치를 살폈다.“앉아.”정우진이 얇은 입술 사이로 무심하게 말을 내뱉었다.정태석이 이름을 잘못 부른 걸 정말 못 들은 건지 아니면 권미희처럼 모르는 척 덮어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은유라의 가슴속은 그야말로 뒤집힐 듯한 통증으로 일렁였다.신시아가 전까지 눈엣가시였다면 이제는 아예 살을 파고드는 가시가 되어버렸다.심장 한가운데 박혀서 건드리지 않아도 은근히 찌릿하게 저려오는 그런 고통스러운 가시 말이다.“할아버지, 할머니, 시아 언니...”휴게실의 정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다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시아의 이름을 부르며 성큼성큼 들어오던 그녀는 안에 은유라가 있는 것을 보고는 바로 입꾹닫 모드로 변했다.방 안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너는 애가 왜 이렇게 부산스러운 거니?”권미희가 손녀에게 눈짓을 주었다.“어서 와서 유라가 가져온 선물 좀 풀어보렴.”정다슬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꾹 삼키며 ‘네’ 하고는 정태석의 곁으로 다가가 선물 상자를 풀기 시작했다.은유라가 준비한 선물은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다기 세트였다.푸른 바탕에 금색 가루를 뿌린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한눈에도 값비싼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정태석에게 가장 넘쳐나는 것이 바로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이런 종류의, 심지어 이것보다 더 비싼 다기들은 집에 차고 넘쳤다.그럼에도 어르신은 예의를 갖춰 말했다.“유라 안목이 참 좋네.”“집에 가서 예쁘게 진열해 둬야겠어요.”권미희도 싱글벙글하며 맞장구쳤다.은유라의 속은 쓰렸지만, 얼굴에는 억지웃음을 띄웠다.“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다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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