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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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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유지영은 예를 표하려는 경왕비를 이를 슬쩍 피해 유씨 노부인의 뒤로 물러섰다. 유씨 노부인은 손녀의 거침없는 태도에 속으로 너무 무모하게 군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지영이가 저리 말했으니 이 일을 인정한 셈입니다. 경왕비 마마, 우리 진국공부는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 번복하지 않습니다!"송씨가 가로채듯 서둘러 입을 연 것은, 태후가 사사건건 유지영의 편만 들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유선주가 담시령 때문에 서러움을 삼켜야만 했으니, 유지영 역시 좋게 시집가게 둘 수 없었다.정왕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이리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지 않나. 군주가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 공언했으니 우리가 모두 증인이네!"뭇 사람들의 눈앞에서 스스로 함정을 파다니, 정왕비는 속으로 유지영을 멍청하다 욕하며 경왕비를 돌아보았다."날이 벌써 저물어 가니 경왕비는 입궁하려거든 서두르는 게 좋겠군. 우리도 어서 기쁜 소식을 듣고 싶구려.""암요, 그렇고말고요."몇몇 부인들이 옆에서 부추기자, 경왕비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몸을 돌려 민경주를 류 부인에게 잠시 부탁한 뒤,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경왕비가 떠나자, 류 부인은 서둘러 분위기를 수습하며 연극을 관람하고 꽃을 구경하도록 좌중을 이끌었다. 어린 규수들은 정자 아래 모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그 무리에는 민경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싸늘한 얼굴로 앉아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기세를 풍겼다. 간간이 유지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오만과 멸시가 가득했다.“큰언니, 이따가 정말로 경왕비께서 민 소저의 혼약 허락을 받고 돌아오시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정 안 되면 파혼하면 되잖아요.”유선주가 곁으로 바짝 다가와 소근거렸지만 그 어투에는 고소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마침 곁에 유씨 노부인이 앉아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분명 이보다 더한 망언을 쏟아냈을 것이다.유지영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무시로 일관했다.그러자 송씨가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지영이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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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참으로 격 떨어지고 무모한 행위였다.“군주께선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방금 상황은 저희 모두 똑똑히 보았는걸요. 저 시녀가 주인을 지키려 나선 것이니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좌중에 있던 한 부인이 유지영을 두둔하며 나섰다.상황이 묘하게 흘러가자, 류 부인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분위기를 수습했다.“아마 민 소저가 검무 솜씨를 선보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결코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거예요.”말을 마친 류 부인은 재빨리 민경주에게 눈치를 보냈다. 그제야 주변의 싸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민경주는 어깨 통증을 참으며 억지미소를 지어 보였다.“오해하지 마세요, 장녕군주. 유국공께선 워낙 용맹한 장군이시니, 그 따님 역시 당연하게 아버님의 비범한 재능을 이어받은 줄 알고 대련을 청한 것뿐입니다.”제법 그럴싸한 변명이었으나, 유씨 노부인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잘랐다.“우리 지영이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무예를 익힐 엄두도 내지 못했어.”민경주는 은근히 입을 삐죽이며 검을 거두었다.“그건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군주께선 국공 나으리의 훌륭한 무공 솜씨를 전혀 이어받지 못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군주께선 무엇에 능하십니까? 그림이나 악기를 잘 다루십니까? 아니면 시 짓기를 잘하십니까?”가시 돋친 어조에서 팽팽한 불꽃이 튀었다.누가 봐도 대놓고 유지영을 저격하는 심보였다.“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많은데 민 소저는 어찌 그리 군주만 걸고넘어지는 거지?”조령 장공주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매섭게 쏘아붙였다.“장수 가문의 여식이라면 마땅히 도량이 넓어야 하거늘, 군주가 네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리 옹졸하게 구는 게야. 민 소저는 참으로 심보가 고약하군.”조령 장공주의 호된 질책에 민경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변명하듯 말했다.“장공주 전하, 소녀는 그저 여기 모인 규수들 중에 그나마 아는 분이라고는 장녕군주 뿐이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랬을 뿐입니다. 장군가 출신이라 성격이 직설적이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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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유지영은 유씨 노부인을 부축하여 객실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게 했다.곧 도착한 의원은 유씨 노부인을 진맥한 후, 크게 놀란 것이 맞다며 안신탕을 처방했다. 탕약을 마시고 한참이 지나서야 유씨 노부인은 안색이 겨우 돌아왔다.곁에 있던 류 부인은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민 소저가 워낙 거침없는 성격이라 결례를 범했나 봅니다. 부디 어린애의 치기라 여기고 너그러이 양해해 주십시오."유씨 노부인은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표했다.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나도 경왕비는 돌아오지 않았다.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초조해진 류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 일렀다. 이때 유씨 노부인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어차피 다 같은 경성에 사니 그리 조급해할 것 없네. 우리는 이만 먼저 돌아갈 테니, 소식이 오는 대로 사람을 보내 알려주게."다른 이들 역시 진작 자리를 뜨고 싶었던 터라, 이를 기회 삼아 너도나도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진국공부의 연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유지영은 유씨 노부인을 모시고 류 부인이 특별히 마련해 준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국공부에 도착하자마자 유씨 노부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노부인은 송씨를 매섭게 손가락질하며 호통쳤다.“네가 굳이 마차를 바꿔 타라고 해서 타고 가다가 말이 미쳐 날뛰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예상치 못한 추궁에 가슴이 철렁한 송씨가 급히 변명했다."어머니, 억울합니다. 마차가 통제를 잃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사실 송씨 역시 영문을 몰라 답답했다. 문제의 마차는 진작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했는데, 대체 왜 또 말이 미쳐 날뛰었단 말인가. 의아해진 송씨는 즉각 유지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할머니, 다 제 탓이에요. 제가 갑자기 연회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할머니께서 이런 화를 당하셨네요."유지영이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사죄했다. 이 말이 도화선이 되어 송씨를 향한 노부인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노부인이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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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예, 노부인."송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젯밤 유지영의 마차에 사람을 보내 손을 쓴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유지영은 옆에 서 있는 유선주를 슬쩍 바라보았다. 유선주는 조금 전부터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불똥이 제게 튈까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밖은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유씨 노부인은 마차 사건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철저히 조사를 명했으나,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말을 먹이던 마부가 덜컥 자백해 버렸다. 어제 실수로 여물에 약초를 흘려 넣는 바람에 말들이 잘못 먹었다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그 약초를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마부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미리 숨겨둔 독을 삼키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로써 실마리는 허망하게 끊어지고 말았다.그 소식에 송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지영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오늘 일부러 홍주를 먼저 집으로 보내 마차 사건을 조사하게 한 것은 소동을 크게 키워 삼촌 유정혁의 귀에 들어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자신과 유씨 노부인이 진국공부의 연회에 가 있는 시간은, 유정혁에게 이 난장판을 수습할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상대로 단서는 깔끔하게 끊어졌다."어머니,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송씨가 다시금 억울한 시늉을 해 보였다.유씨 노부인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마부의 허술한 자백 따위는 전혀 믿기지 않았으나, 유일한 증인이 죽었으니 지금은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다."집안 살림을 믿고 맡겼더니 점점 허술해지는구나. 오늘부로 내원의 곳간 열쇠를 모두 내놓거라." 유씨 노부인은 그 말을 마치고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유지영은 즉각 고개를 저었다."할머니, 전 지금 큰댁 살림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걸요. 이 넓은 국공부의 안살림을 도맡기엔 제 능력이 부족할 듯 싶습니다."결국 유씨 노부인이 당분간 곳간 열쇠를 직접 회수해 관리하기로 했다. 송씨는 이를 악물었으나 노발대발하는 유씨 노부인의 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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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사당 안은 사람 숨소리조차 들릴 만큼 고요했다.탁.염주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경왕비는 떨리는 가슴을 다잡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서 태후를 올려다보았다.“태, 태후마마.”서 태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책망 대신 안쓰러운 얼굴로 친히 경왕비를 부축해 일으키더니 소 상궁을 향해 넌지시 한마디 했다.“경왕비가 이리 꿇어앉아 있는데 어찌 내게 귀띔 한번 해주지 않았느냐?”소 상궁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소인의 불찰이옵니다. 태후마마께서 불공을 드릴 때는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시기에 감히 고하지 못하였습니다. 경왕비 마마, 송구합니다.”경왕비는 감히 소 상궁을 탓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태후마마를 모시고 곁에서 불공을 올린 것만으로 제게는 과분한 복인데 어찌 소 상궁을 탓하겠습니까. 그간 며느리로써 곁에서 모시지 못해 불효가 컸사옵니다.”“그랬지. 경왕부 일가는 오래도록 경성을 떠나 있었으니. 그래도 현준이 그 아이는 효심이 지극해 틈나는 대로 찾아와 효도하더구나.”서 태후는 배현준을 언급하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그 모습을 본 경왕비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으로 차올랐으나, 도로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바로 그때, 경왕이 당도했다는 전갈이 들렸다.잠시 후, 화려한 관복을 차려입은 경왕이 들어와 서 태후에게 공손히 예를 행했다.“신, 태후마마께 문안인사 올립니다.”“안 그래도 방금 그대들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네.”서 태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경왕비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경왕비는 참 복도 많지. 몇 년 만에 보는데도 경왕의 풍채는 여전하고 경왕비도 서른이 넘은 나이인데 어찌 이리 소녀 같은지. 경왕이 그만큼 왕비를 아껴주었다는 뜻이겠지.”칭찬이 이어지자 경왕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그러나 앞에 선 경왕의 표정은 미세하게 찌푸려졌다.황제를 알현하고 막 자녕궁으로 넘어온 참이었다.경왕비가 입궁한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는 소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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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처음에 경왕비는 민경주를 세자비로 삼겠노라 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 태후의 서슬 퍼런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감히 호기를 부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마지못해 평처로 말을 바꾸었다.“현준이가 철이 없었다?”서 태후는 차갑게 비웃으며 경왕비의 말을 가차 없이 반박했다.“그대들이 경성을 떠날 때 그 아이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 먹은 어린애가 혼사에 대해 무얼 안단 말이냐?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내게 미리 귀띔해 주었다면 내가 교지까지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의 혼인을 하사하는 교지가 내려진 건 온 조정이 다 아는 사실이거늘. 또한 나는 장녕군주에게 십 년 안에는 첩을 들이지 않는다고 약조하였다. 그런데 지금 감히 내 얼굴에 대놓고 먹칠을 하겠다는 것이냐?”갑작스러운 서 태후의 불호령에 경왕비는 크게 당황하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저… 저는 절대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경왕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레 청했다.“태후마마, 고정하십시오.”“경왕, 지금 내게 고정하라 하였는가?”서 태후는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가슴을 움켜잡았다.바로 그때, 문밖에서 선명한 용포 자락이 모습을 드러냈다.“짐이 기억하기로 경왕에게는 아직 혼기가 찬 적자가 둘이나 더 있는 거로 아는데. 굳이 현준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어마마마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느니, 차라리 민 처자를 차남에게 보내는 것이 어떠냐?”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건양제였다.전각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예를 행했다.건양제의 말에 경왕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폐하,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이 혼사는 원래 현준이를 위해 정해진 것인데, 어찌 동생이 형의 부인 될 사람을 가로챌 수 있겠사옵니까?”건양제의 수려한 용안에 묵직한 그림자가 드리웠다.그는 높은 곳에서 경왕비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경왕비가 정 싫다면 그 민가네 딸을 십 년 후에 시집오라 할 수밖에 없겠구나.”경왕비는 넋이 나갈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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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경왕비의 얼굴에는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저는 괜찮습니다.”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부축하며 자녕궁을 빠져나갔다.그들이 물러가자 팽팽하게 굳어 있던 건양제의 안색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는 차를 한잔 따라 서 태후의 앞으로 내밀며 나직하게 말했다.“고작 혼사 하나뿐인데 어마마께선 어찌 이리 진노하십니까.”서 태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경왕비의 꼴이 괘씸해서 그럽니다. 특히나 오늘은 수많은 이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장녕군주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결국엔 현준이가 잘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겠지요!”“어마마마께선 경왕비에게 다소 편견이 있으신 듯합니다.”건양제는 서 태후가 예로부터 경왕비를 탐탁지 않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서 태후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몸이 좀 불편하군요. 경왕비도 엄연한 황가의 며느리이니, 내일부터 궁으로 들어 수발을 들라 해야겠습니다.”단호한 어투에 건양제는 내심 허탈한 웃음이 나왔지만,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궁문이 닫히기 직전, 경왕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 오른 경왕비는 휘장이 내려지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그녀는 손수건을 꽉 쥔 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전하, 민경주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리 모진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저는 그저 선왕비께서 생전에 남기신 유지대로 혼사를 몇 마디 거들었을 뿐입니다. 현준이가 정 원치 않는다면, 제가 사석에서 미리 경주를 잘 달래보았을 텐데요.”경왕은 급히 경왕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경주가 참한 아이라는 건 나도 알지. 현준이 놈이 복을 제 발로 걷어찬 게요. 하지만 태후의 서슬 퍼런 태도를 부인도 똑똑히 보지 않았소? 형님조차 감히 태후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데 우리가 굳이 그분들의 뜻에 맞설 필요는 없지 않겠소.”부군의 거듭된 위로에 경왕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경주는… 며느리로 맞을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내 양녀로 삼으면 그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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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문안을 드리러 온 유지영은 만면에 화색을 띤 노부인을 보고 덩달아 웃으며 물었다.“할머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지영아, 어제 경왕비가 궁으로 가서 혼인 허락을 받아내지 못했다더구나. 경세자와 그 민가네 딸 사이의 혼약은 아마 없던 일이 될 듯하다.”어제 유씨 노부인은 민경주에게 크게 데인 터라, 그녀를 몹시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정말로 두 사람이 같이 경왕부로 시집을 간다면 손녀가 밀릴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유지영은 진즉에 혼인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시녀가 유선주가 찾아왔다고 고했다.잠시 후, 유선주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안으로 들어와 노부인에게 큰절을 올렸다.“할머니.”유씨 노부인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할머니, 어젯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마차 사건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물으시며 사당으로 가서 삼일이나 무릎 꿇고 반성하라고 하셨어요.”유선주는 눈물을 닦으며 유지영에게 눈치를 주었다.“큰언니, 원래 오늘 아침 조회에서 몇몇 대인들이 아버지를 위해 선처를 청해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상소를 안 올린다고 하셨다네요.”그 일을 떠올리자 유선주는 울화가 치밀었다.아무 잘못도 없이 아버지에게 한 시진이 넘도록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분명 아버지를 위해 힘써주겠다고 약조했던 대인들은 모두 등을 돌렸다.알아본 결과, 유정남이 직접 그들에게 전갈을 전해 선처를 구하는 상소를 취소하라고 했다고 했다.관직 복귀가 또 무산되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유정혁은 송씨와 그녀를 호되게 몰아세웠다.유선주는 유씨 노부인의 앞으로 다가가 억울함을 호소했다.“큰언니, 듣기로 큰아버지께서 어제 유수각을 나서실 때, 얼굴에 분노가 가득 서려 있었다던데, 혹 언니가 무슨 말이라도 해서 큰아버지를 오해하게 만든 것 아닌가요?”유씨 노부인은 즉시 유지영을 쏘아보며 물었다.“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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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분노로 이글거리는 유정남의 얼굴을 보며 유씨 노부인은 감히 대놓고 유정혁의 편을 들지 못했다.“큰애야, 만약 이 일이 정말로 둘째가 저지른 짓이라면 형인 네가 알아서 처분하거라. 다만 내 바람은 딱 하나뿐이다. 절대 밖으로 소문이 안 나가게 하거라. 이 일이 알려져서 남들의 비웃음을 산다면 혼기를 앞둔 집안의 아이들에게도 해가 갈 것이니.”그 말은 유정남을 달래는 듯하면서도 은근한 협박이 담겨 있었다.유지영은 이제 막 정혼만 했을 뿐, 아직 혼례를 올린 게 아니었으니 국공부에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 유지영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유정남은 치미는 화를 억지로 삼켜야 했다.바로 그때, 소식을 들은 유정혁이 황급히 달려왔다.유씨 노부인은 즉시 불호령을 내렸다.“둘째 너, 마침 잘 왔다! 마차 사건이 너희와 연관이 있다고? 네 형님이 이미 다 알고 왔으니 어찌 된 일인지 해명하거라!”유정혁은 원래 자신을 위해 상소를 올려주기로 했던 관료들이 상소문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이 일이 유정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당장 따지고자 씩씩거리며 찾아온 참이었다.그런데 유씨 노부인의 불호령을 들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어떻게 알았지?’그는 고개를 들어 유정남을 바라보았다. 유정남의 얼굴에는 분노가 역력했다.“형님, 오해입니다. 지영이는 제 조카딸인데 제가 어찌 해하려 했겠습니까?”유정혁은 억울함을 호소했다.유정남은 교묘하게 동생을 싸고 도는 노부인을 슬쩍 바라본 후, 유정혁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서재로 가자.”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떴다.유선주는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그저 유지영을 불만스럽게 흘겨볼 뿐이었다.한 시진 뒤, 유정남이 유정혁에게 곤장 서른 대를 치게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유선주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큰아버지는 참 너무하세요.”유씨 노부인 역시 얼굴에 원망스러운 기색을 띠었다.“아버지는 원래 정 많고 아량이 넓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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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아직 시집을 가기도 전에 경왕비의 눈 밖에 났으니, 아무리 태후가 뒤를 봐준다고 한들 향후 고부간의 갈등이 시작되면 유지영의 앞날은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유선주는 은근히 고소해하며 한마디 툭 뱉었다.“그 민 소저가 경왕부에 살면서 경세자와 매일 마주치다 보면, 없는 정분도 절로 생겨날지 누가 알겠어요?”유지영은 눈곱만큼도 걱정하지 않지만, 겉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씁쓸한 안색을 지어 보였다.“경왕부의 일을 내가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순리에 맡겨야지.”경왕부.민경주는 경왕부의 서쪽 별채에 머물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경왕비를 보지 못하고 그저 태후가 사람을 보내 경왕비를 모셔갔다는 소식만 들었다.오후가 다 되어서야 경왕비가 돌아왔다.민경주는 곧바로 왕비의 처소로 급히 달려갔다. 경왕비는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고 온화하고 고운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민경주는 황급히 다가가 경왕비를 부축했다.“왕비마마,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경왕비는 피곤한 기색으로 안채를 가리켰다.방으로 들어와 평상에 앉은 후에야 경왕비는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오늘 입궁하여 무려 다섯 시진 동안이나 꿇어앉아 있었던 탓에, 무릎이 시리고 아픈 데다 한기까지 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그러나 민경주는 경왕비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급하게 추궁했다.“왕비마마, 태후께서 혼인을 하사하는 교지는 언제 내리신다 합니까?”그 말에 경왕비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 그녀는 민경주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경주야, 태후께서 이미 장녕군주에게 혼인을 하사하셨으니, 이제 현준이는 그만 단념하거라. 내 나중에 너를 위해 더 좋은 자리를 알아봐 주마.”그 말을 듣자마자 민경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그 장녕군주라는 사람은 어찌 그리 염치가 없답니까? 감히 남의 정혼자를 가로채다니요! 겨우 생모를 잃어 가엽다는 이유만으로 태후께서 이토록 그 사람을 편애해도 되는 건가요?”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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