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밖에서 경왕비가 당도했다는 전갈이 왔다.유정남은 미간을 찌푸리며 배현준을 슬쩍 바라보았다. 문득 지난 세월 동안 그에 관한 일은 소문으로만 들었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자연스레 후계 싸움이 연상되었다. 유정남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세자, 이 혼사는 지영이가 직접 선택한 길이라네. 나 역시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니, 자네도 몰랐던 정혼자 일로 자네를 탓하진 않겠소. 이 일은 이쯤에서 덮어두도록 하지.”“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공 어르신.”대청으로 돌아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왕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따르는 시종들이 한가득 예물을 들고 있었다. 경왕비는 미안한 기색을 가득 담아 유정남에게 말했다.“모든 게 오해였을 뿐입니다. 이제 경왕부에서도 정혼자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으니, 유국공께서도 부디 화를 거두어 주십시오. 현준이에 대한 노여움 푸시고, 귀한 인연을 그르치지 않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유정남은 여인들을 상대하는 데 서툴렀고, 어찌 되었든 경왕비가 딸의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니 너무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인 데다 태후 마마의 하사혼이니, 국공부 역시 혼사를 반대할 명분은 없습니다.”경왕비는 잔뜩 저자세로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유국공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그날 제가 다소 성급하게 찾아뵀던 것이 사실입니다. 현준아, 난 군주가 몹시 마음에 든단다. 너같이 무뚝뚝한 아이가 사리에 밝고 온화한 처자를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복 받았구나.”배현준은 가식적인 경왕비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현준아, 우리 경왕부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으니, 오늘 네가 국공부에 확실하게 사죄를 드려야지.”경왕비가 바닥을 가리켰다.“무릎을 꿇고 노부인과 유국공께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하거라. 그리고 앞으로 군주를 절대로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거라.”그 말에 유정남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옆에 있던 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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