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동쪽에 핀 연꽃 : 서녀무사전: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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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남색이라니?

정귀인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본 순간, 중전이 배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마마! 왜 그러십니까? 어디가 좋지 않으십니까?”“배가… 배가…”식은땀을 흘리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중전을 안고, 김상궁이 소리쳤다.“이봐라! 어서 마마를 침전으로 모셔라! 그리고 어의를! 어의를 불러와라!”중궁전에 도착한 어의가 중전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중전은 고통에 신음을 흘렸고, 어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김상궁이 물었다.“어의 영감, 마마께서는 괜찮으십니까?”어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그가 우물쭈물하자 중전이 직접 그에게 물었다.“이보게, 어찌 그러는가? 어서 말해 보시게.”“저… 마마…”어의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거렸다.“복중 태아에게 이상이 생긴 것인가?”“그것이 아니오라, 이번 해산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히 이야기해 보시게.”“둘째 왕자님을 낳으실 때 워낙 난산이셔서 자궁이 상할 대로 상하셨습니다. 그런데 회복도 채 되기 전에 또 회임을 하셨으니… 이번에는 정말…”“……”“… 위험하실 수 있습니다.”충격적인 말이었다. 위험하다니. 위험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김상궁이 나서 먼저 물었다.“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영감? 마마께서 무사히 출산하실 수는 없으신 겁니까?”“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오나…”“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영감!”“해산이 시작되면 마마께서 위험해지시기 전에 복중 아기씨를 억지로 당겨 꺼내면…”“그게 무슨 소리인가!”중전은 소리쳤다. 자신이 살자고 용종을 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궁은 한 번 더 물었다.“그럼! 아기씨와 마마께서 모두 사실 수 있습니까?”“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아기씨께서 목숨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어찌… 어찌… 그런…”모두가 말을 잃었다.그때 눈을 질끈 감은 중전이 입을 열었다.“그럴 수야 없지… 전하의 핏줄인 왕손을 어찌…”침울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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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그의 정인

겸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뭐라 하셨소? 남색? 남색이라 하셨소?”“정귀인이 그러더군요. 전하께서 남색이 있어 소첩과 본인을 멀리하셨다고요.”겸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 년이 결국, 죽으면서 까지 이런 사달을 내고 말았구나."정귀인이 그리 말했다는 게요?"겸은 이 말에, 혼자서 끙끙 앓았을 중전이 안타까웠다."부인,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셨단 말이오?"“사실이 아니라 하시는 건가요? 그럼 이것은요? 전하의 정인이 홍연이라는 사실 말입니다.”홍연... 그의 상처이자 그리움의 근본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그의 표정이 애처롭게 무너지기 시작했다.이렇게 될까 무서워, 감히 스스로도 그 이름을 되뇌지 않았건만.그의 표정을 읽고 난, 중전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누르려했지만 쉽지 않았다.“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정귀인의 말이 사실입니까? 아니지요? 그렇지요, 전하?”눈이 벌겋게 충혈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겸은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어떻게 중전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까..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중전의 고통은 덜어줄 수 없었다. 부정하면 그뿐, 누구도 그를 몰아붙이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그는 도저히 연화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추억과 시산들을 뺀 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생이다.그에게 연화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니, 말을 해야지.중전이라면,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홍연... 홍연 그자가 전하의 정인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그건 맞소.”“어찌... 어찌 그런... 그럼, 전하께서 정말로 남색이란 말씀이십니까?”“그건 아니오.”말장난 같은 그의 말에 그녀는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얼굴이 붉어지고, 목청이 높아졌다.“어찌 소첩에게 말장난을 하십니까? 홍연 그자가 정인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맞습니다. 홍연. 그 아이의 진짜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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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너에게 간다.

침소로 돌아온 겸은 질끈 눈을 감았다.연화가 떠난 이후, 그녀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하지만 이따금,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거나 눈앞이 흐려지기도 했다.그의 영원한 비밀이 되기 위해 떠난 그녀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무겁고 심란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홀가분한 생각도 들었다.중전과 연화,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이 엄청난 비밀을 혼자 짊어지고 버텨야 했던 그 감옥 같은 시간 속에서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조금 생겼기 때문이다.그리고 연화.억지로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연화가 다시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겸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연화가, 보고 싶다.’분노로 눈이 멀어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연화를 떠나보냈던 그는 그녀를 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결국 아무런 소용없었다.시간이 지나 분노가 사그라들자, 남은 것은 오로지 연화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후회뿐이었다.애써 누그려고 했던 그리움이 사무쳐, 그녀를 보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었다.연화를 보러 가자.겸은 상선을 불러 명했다.“홍양을 데려오라.”홍양은 갑작스러운 왕의 부름을 받고 대전으로 가고 있다.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단순, 군신의 관계로 그를 부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자신의 주군이자, 하나밖에 없는 딸의 정인이라.만약, 연화가 서녀가 아니었다면, 둘 사이에 신분의 차이가 없었다면 연화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중전의 자리까지도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홍양은 머리를 흔들었다. 가당치도 않은 상상 따위를 해서 무엇하랴.머리를 비우고, 발걸음에 속도를 높였다.홍양이 대전에 도착했다.그저 고귀한 분이라 생각했던 그가, 훤칠한 청년으로 보였다.연화와 나란히 서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한쌍이었을까.“어서 오시오, 홍 판서 대감. 여쭤볼 것이 있어 급히 모셨습니다.”“말씀하시옵소서, 전하.”“대감. 아니, 스승님. 연화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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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함께 가자.

연화는 동자승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이제 솜씨가 늘어,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기특했다.“보살님! 어떻습니까? 이제 장수 같아 보입니까?”“하하, 네. 곧 전장으로 나가셔도 되겠는걸요?”“헤헤. 다 보살님 덕분입니다.”숨을 고르며, 땀을 닦는 동자승을 보며 물었다.“그런데 어찌 무예를 가르쳐달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생명을 중히 여기라 하셨는데요.”“소승은 부처님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백성이기도 합니다. 눈앞에서 부모님이 오랑캐에게 목숨을 잃는 걸 보았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으리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다시는 무력하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연화는 동자승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그는 연화가 전장에 있을 때,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숨죽여 울고 있던 아이였다.제 새끼를 살리기 위해 소리가 새어 나갈까, 아이의 입을 틀어막은 채 죽어 있던 어미를 기억하고 있었다.그렇게 사후경직 된 그 손을 떼어내기 위해, 연화는 그 어미의 손을 부러뜨릴 수밖에 없었다.부모를 잃고 울던 그 아이를 , 병사에게 금강암으로 데려가달라 부탁했던 것이다.“그런데 보살님, 여인의 몸으로 어찌 힘 좋은 사내들의 칼을 다 받아내셨습니까?”“검술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사실, 사내보다 여인이 더 잘하는 일일지도 몰라요.”“아, 그런데 보살님은 힘도 좋으시던데요?”“하하, 맞습니다. 여인치고는 힘도 꽤 센 편이지요.”연화가 동자승을 번쩍 안아 올렸다.그가 발버둥을 치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그때, 암자 쪽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평소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한 곳이라, 작은 소란도 크게 느껴졌다.“근데, 어찌 암자 쪽이 시끄럽네요. 가봐야겠습니다.”연화는 그를 내려놓으며, 함께 암자로 향했다.그곳엔 승려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스님, 어찌 이리 분주하십니까?”“아! 보살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갑자기 주상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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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소문

“해야 할 일이라니, 네 모친을 이곳에 모셨다더니, 그 때문이냐?”“...”"연화야."그녀는 그저 말없이 빙그레, 그리고 어여쁘게 웃을 뿐이었다."전하, 이제 정말 돌아가셔야 합니다. 전하와 소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이제 소녀를 잊고 사세요. 소녀도 그러겠습니다.”어렵게 온 걸음이었다. 다시 얼굴을 마주하면, 그녀도 마음이 동할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모든 것을 해탈한 듯.“너를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네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더 부탁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연화야, 가끔 이렇게 너를 보러 오는 것도 안 되겠느냐?”그는 그녀를 끌고오기 보다, 그녀가 스스로 다가오기를 기다릴 것이다.“기약 없는 기다림은 형벌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잊히게 됩니다. 하루에 한 번 떠오르던 기억이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그러다 닷새에 한 번, 결국 꺼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될 것입니다.”“그럴 리 없다. 난 널 잊지 않아.”연화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모든 대답을 삼킨 듯한 미소였다.연화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이제 궁으로 돌아가세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셔야 하잖아요.”“서신이라도 보내마.”“답장하지 않을 것입니다.”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에, 그의 마음이 바스스 무너져 내렸다.“하- 연화야. 너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나에게 왜 이리도 모질게 구는 것이냐? 당장 내게 오라 채근하지 않으마. 이렇게 가끔, 너를 생각하는 것도 안된다 하는 것이냐?”겸은 자신의 이마를 연화의 이마에 가만히 가져다 댔다. 숨결이 무척 가까웠다.연화는 그의 체취가, 그의 숨결이 견디기 힘들었다.이내 겸을 밀어내며 단호하게 말했다.“어서 떠나세요.”그녀의 단호함에 겸은 무력감을 느꼈다.험한 산자락을 오르며 수없이 예상했던 장면이었다.하지만 현실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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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소문 2

중전의 우려대로 소문은 곧 궁 전체로 퍼졌고, 결국 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편전에서는 이 문제로 인해 연일 시끄러웠다.그동안 권력의 뒤로 물러나 있던 서인 세력들이 이번 기회에 왕을 압박하고자 나섰다.“전하, 감히 입에 올리기도 낯부끄러운 소문이 궐 안에 파다합니다. 이 소문이 궐 밖 도성까지 퍼진다면 전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 자명합니다.”“그렇습니다. 진상을 소상히 밝혀야 합니다.”“홍연 그 자를 불러와 심문하시고 상황을 수습하셔야 합니다.”대신들이 연신 떠들어대자, 겸은 더는 듣기 힘들어 그들의 말을 끊어냈다.연화의 이름이 그들의 입에 함부로 오르내리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그 아이는 이런 상황을 우려해 떠났던 것인데, 그녀와 자신의 고통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래서!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다들 신나서 떠들고 있는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인가?”“전하, 신이 나다니요. 어찌 그런 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십니까? 홍연 그자를 심문하면 전하께서 그... 남... 아니, 아니시란 것을 증명하셔야 합니다. 설마 전하께서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과인더러 과인의 충직한 신하이자 벗을 가당치도 않은 이유로 심문하라 이 말이오?”“사실이 아니라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맞습니다. 전하. 만 천하에 전하의 결백을 알려셔야 합니다.”“내가 그대들의 속셈을 모르는가? 홍연을 볼모로 나를 겁박할 테지!”“전하, 어찌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시옵니까?”“그만! 더는 그대들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홍연은 그냥 놔두시게. 소문이야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것을...”겸의 말에 대신들이 웅성댔다.“전하, 그리 말씀하시면 오해가 생기실 수 있습니다.”겸은 이 사안이 간단히 정리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오랜만에 토끼를 잡은 사냥꾼이 그것을 놓아줄 리 없었다.겸은 골머리를 앓았다.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 할지 도모지 감이 오지 않았다.그때였다. 편전의 문이 열리며 중전이 안으로 들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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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추문

예측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과 발언에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다.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겸과 홍양이었을 것이다.그녀의 돌발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호조판서 홍양에게 쏠렸다.회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양은 '후궁'이라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하지만 이내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더욱 고개를 내리고야 말았다.그때 좌찬성이 나서, 홍양을 향해 물었다.“이 판께서 무슨 말씀이라도 해보시지요. 이 판 댁 여식이 아닙니까?”좌찬성이 홍양에게 화살을 돌리자, 이때다 싶었던 대신들이 홍양을 압박했다.“맞습니다. 애초에 전하의 후궁으로 들이실 것이지, 왜 남장을 시켜 호위무사로 들여보낸 겁니까?”“그리고 홍연은 서자... 아니 서녀가 아닙니까?”"입궁한 경위를 소상해 밝혀야 합니다!"홍양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제 자식과 제 못난 행동에 수치심으로 온몸이 벌벌 떨렸다.그를 향한 거센 비난에 겸이 나섰다.“다들 그만하시오. 모든 것은 과인의 불찰이오. 홍연이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술 실력을 높이 사, 홍판서에게 과인이 직접 간곡히 부탁드렸던 것이니 , 잘못을 따지려거든 과인에게 따지시오.”“전하,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조정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해보기로 했다.“과인의 불찰로 그대들과 중전께 혼란을 드려 미안하게 생각하오. 세자시절, 궁지에 몰린 내게 온전한 편이 필요했고 홍연은 그런 과인에게 적임자였소.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궁에 들인 것도 과인이고, 그런 그와…”“……”“마음을 나누게 된 것은 불가항력이었소. 하지만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으니, 그를 탓하지는 마시오. 모두가, 과인의 탓이오.”꼿꼿했던 왕이 그들에게 몸을 낮춰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중전께서 어려운 결정을 해주셨으니, 나머지는 내명부에 맡기고 이 일에 대해서 더는 따지지 마시오.”“허나,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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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양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진도 홍 씨 가문에 이익이 될 일이기 때문이다.“어찌 그러십니까? 부인께서도 홍연화를 아끼신다 들었습니다.”“예, 살갑지는 않지만 그 아이를 아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어미가 중인입니다. 양반의 씨가 아니니 저희 가문에 입적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마마도 아시겠지만, 사대부 가문에선 혈통이 목숨보다 중요합니다. 지금껏 그 아이를 양녀로 삼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중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하, 부인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강요할 수는 없겠지요.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겠군요.알겠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정부인이 물러나자, 중전은 김상궁을 불렀다.쉽게 풀리지 않는 일에 고심을 해서인지, 배가 조여왔다.“김상궁. 홍연화의 어미에 대해 알아보았느냐?”“예, 마마. 그 어미는 50여 년 전 몰락한 양반 가문의 여인이라 합니다. 마마께서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해령 윤 씨 가문이지요.”“그래, 들어본 적 있지. 한때는 세도가였으나 역모에 연루되어 가문이 몰락했다 들었어.”“예. 그 당시 세자 저하 말고 봉성대군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역모에 몰려, 몰락했다 합니다.”“하지만 결국 봉성대군께서 왕위에 오르셨으니, 실상은 역모가 아니 된 셈이지.”“결국 그렇지요. 당시 세자께서, 세력이 봉성대군에게 몰릴까 두려워 해령 윤 씨를 본보기로 삼은 것이라 합니다. 그 가문이 진짜 역모를 저질렀다면, 가문과 재산뿐 아니라 삼족까지 멸하는 것이 당연하니 말입니다.”“그렇다면, 그 가문을 복권시키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겠구나. 알겠다. 전하를 찾아뵈어야겠어.”중전은 곧장 겸을 찾아갔다.“중전 말씀대로라면 복권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그런데, 중전. 이렇게까지 하시는 연유가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하와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전하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곧 이 나라와 소첩의 안녕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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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양녀 2

“실은, 그 아이가 전하를 따라 전장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스스로 그리 만든 것입니다.”“스스로? 그게 무슨 말입니까?”“약을, 먹었습니다. 불임이 되도록 말입니다.”“자궁을 스스로 망가뜨렸단 말씀이십니까?”“예. 전하와 함께 전장을 누비기 위해 여인의 몸이 거추장스럽다 여겨 약을 먹었다고 합니다.”“약을. 하- 어찌 그런, 선택을…” 여인의 몸을 포기하면서까지 전하 곁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군요...”중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여인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까지, 그녀는 제 주군과 함께 하고자 했었다.그렇다는 말은, 그녀가 그의 여인이 되고자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연화가 보여준 헌신 앞에서 중전은 말문이 막혔다.그 지고지순한 사랑 앞에 중전은 무력함을 느꼈다.그건 그녀를 대할 자신의 자아비는 얼마나 그녀가 안쓰럽고, 미안할까.그러나 동시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불임이라니, 그것은 자신에게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었다.자신이 세상을 떠난다면…중전은 어의의 말이 떠올랐다. 이번 출산은 난산이 될 것이라는.만약, 새로운 중전이 왕자를 낳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아들들의 자리는 위태로워질 수 있다.그러나 연화가 불임이라면, 세자의 자리는 더욱 굳건해진다.그녀의 불행 앞에서, 자신과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그 사실이 중전의 마음을 더 확고하게 만들 뿐이었다.그러니, 더욱 정부인을 설득해야 했다.“부인, 연화 그 아이를 후궁으로 들이신다면 머지않아 부부인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예? 어찌 그런 말씀을... 중전 마마께서 이리 강녕하신데요.”“이번에 해산을 하면, 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마마!”자신의 기막힌 처지를 담담히 내뱉는 그녀를 보며, 정부인은 한동안 망설였다.하지만 중전의 사정이 안타깝더라도 이 제안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송구하오나 마마, 그렇다면 더더욱 연화를 후궁으로 들일 수 없습니다.”“부인!”“이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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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홍가 연화.

모든 것을 버리고 온 터였다. 이제 겨우,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려 했다.연화는 그들에게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양녀가 된다 해도 무엇이 변하겠습니까? 서녀는, 아니! 여인은 관직에 나갈 수 없지 않습니까.”“무관이 아니다.”정부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무관이 아니라니요? 대체 이게 무슨…”“전하의 후궁으로 들일 것이다.”“!”‘후궁’.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그 단어에, 연화는 온몸이 굳어버렸다.어리둥절 놀라, 흔들리는 눈으로 겸을 바라보았다.그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왔다.“내 후궁이 되어 달라 하는 것이다. 연화야, 이번에도 나를 거절할 셈이냐?”연화는 그저 눈을 끔뻑거리며, 입을 움찍거렸다.후궁이라니. 연화는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그 모습을 본 홍양이 차분히 설명을 덧붙였다.“전하와 중전 마마께서 모든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아버지!”“궁에 너와 전하에 대한 사실이 모두 밝혀졌다.”“!”“이 모든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네가 전하의 여인이 되는 것이라는 중전마마의 결심이시다.”“제가, 여인이라는 사실도…”아직도 멍하니 말을 더듬는 그녀를 향해 겸이 다가가 말했다.“그래. 네가 여인이라는 사실도, 네가 나의 정인이라는 사실도. 모든 것이 밝혀졌다. ”홍양은, 그간 궁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설명했다.정귀인이 중전을 해하려 했고,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분탕질을 쳐놓고 참형에 처했다는 사실까지.“정귀인께서, 그렇게 까지…”“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다.”홍양은 딸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다독였다.“그러니, 너는 그저 입궁만 하면 된다.”“이번엔 거절할 명분이 없지? 연화야.”겸은 어리둥절한 연화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그녀가 그의 품에 폭- 들어왔다.“가자! 연화야. 이제 궁으로.” ***“이곳은 변함없이 아름답네요.”연화는 집으로 돌아와 정부인과 함께 뒤뜰을 거닐고 있었다.“네가 없는 동안 내가 손수 가꿨단다.”“더 아름다워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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