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동쪽에 핀 연꽃 : 서녀무사전: Chapter 121 - Chapter 130

135 Chapters

121화. 청혼

그의 당장에, 연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녀의 공간에 스며든, 그의 존재가 너무 낯설어 입을 벌린 채 그를 올라다 보았다.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벌써 잠자리에 드는 것이냐?”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이 목소리를 들며, 그의 품에 안겨 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전하.”“반갑지 않아?”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이 등불에 아른거렸다.“이 늦은 시각에, 어찌…”연화는 혹여, 누가 보지는 않을지 문 뒤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그런 연화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그가, 수줍게 등뒤에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전하, 이게 무엇인지요?”“꽃이다.”“그건 알지만…”“오다 꺾었다.”“예?”“하하, 농이다. 너에게 주려고 화원에서 몇 송이 꺾어왔다.”“아, 예.”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그저, 꽃을 받아 든 손이 어색하고 쑥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아니, 붉게 타오르는 얼굴이 들킬까, 고개를 들지 못했다.연화는 이 늦은 밤, 그가 왜 꽃을 들고 온 건지 묻고 싶었다.“반응이 그게 다 인 것이야? 좀 서운한데.”그의 해맑게 웃는 장난기 어린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좋은데, 너무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그녀는 그녀 꽃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겸은 꽃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 연화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고개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장난스럽던 표정은 사라지고, 그의 눈엔 진지한 빛이 어려 있었다.“연화야.”“……”“나와 혼인해 주겠느냐?”깊고 짙은 갈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자신을 향한 애정과 그리움, 많은 것들이 담긴 사연 짙은 눈동자.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화는 아직 그를 향한 낯간지러운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전하, 혼인을 해 달라니. 그게 무슨. 내, 내일이면 이미 궁에 들어갈 것이고, 또…”할 말은 많았지만, 도무지 조리 있게 나오지 않았다.그에게 ‘네’라고 당신의 짝이 되어 기쁘다고, 그 하찮은 말이 도무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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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너를 품에 안고.

그는 드디어, 그녀와 온전히 하나가 되기 위해 배를 맞부딪혔다.훅- 그가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자, 연화의 가는 허리가 휘어졌다.맞닿은 몸이 질척거렸다.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그녀의 세포들이 깨어나 그녀를 더욱 부추겼다.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그의 몸에 더욱 매달리며 신음을 토해냈다.방안에 질퍽한 살내음과 소리로 가득 찼다.숨은 점점 거칠어지고, 욕망을 고점에 치달았다.“윽-”단발의 비명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사랑이 완성되었다.긴긴밤, 서로를 품에 안은 그들의 작고 간지러운 웃음소리가 번졌다.오랜 시간 말하지 못했던 서로의 안부를, 그리움과 사랑으로 대신 나누었다.밤이 새도록—***연화의 입궁 날. 홍양의 집은 새벽부터 분주했다.가장 먼저 일어난 막둥어멈이 연화의 방 앞에 다가갔다.“아씨, 일어나셨어요?”“어, 어멈. 나 일어났어. 물 좀 떠다 줄래?”“예, 금방 다녀올게요.”막둥어멈이 물을 뜨러 간 사이, 연화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겸의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전하, 누가 보기 전에 서둘러 나가셔야 합니다. 얼른요.”다급한 그녀와 달리, 그는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뭐가 그리 무서워 안절부절이냐? 어차피 곧 부부가 될 사이인데.”그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화를 다시 한번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미끈한 살결이 맞닿자, 그의 불이 다시 불끈- 달아올랐다.“안됩니다!”“큽- 아쉽구나.”“아직은 부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아랫것들 얼굴보기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전하도 마찬가지시고요. 어 그러니, 어서요. 어서 일어나세요.”연화가 겸을 억지로 일으키자, 마지못해 어기적 몸을 세웠다.“알았다, 알았어.”그녀의 이마에 작게 입을 맞춘 뒤, 그녀가 건네준 옷을 받아 들었다.그녀의 재촉에, 빠르게 환복을 마쳤다.미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의 팔을 잡으며 간절한 눈으로 말했다.“전하, 한 가지만 부탁드릴 게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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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다시, 입궐.

처음 입어보는 화려한 의복에 연화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차림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전하의 여인이시니, 이처럼 화려한 복색으로 교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마마.”연화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 정부인이 부드럽게 말했다.“아, 네. 그렇지요. 허나, 너무 불편해서요. 이게 정말, 예뻐 보이려고 입는 옷이 맞긴 맞나요, 어머니?”“그럼요. 자, 거울을 보세요. 참으로 곱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러러볼 것입니다.”연화는 조심스럽게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확실히 평소보다 붉어진 볼과 생기 어린 얼굴이 눈에 띄었다.“어머니. 소녀가 정말, 곱게 보입니까?”“그럼요. 너무도 아름다우십니다.”“전하고, 그리 봐주실까요?”발그레한 그녀를 향해, 정부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반하지 않을 사내가 어디 있을까요?”정부인의 따뜻한 말에 연화의 불안했던 마음이 차츰, 안정을 되찾아갔다.그때, 문이 열리고 나인 하나가 들어왔다.“마마,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연화가 대청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많은 대신들과 궁인들이 모여 있었다.그리고 그들 너머로 배가 불룩한 중전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중전마마를 뵙는 것이 이리도 송구스러울 줄이야.’연화는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중전 앞에 섰다.그러나 끝내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바닥에 꽂았다.중전은 자신을 향해 다소곳이 다가오는 연화를 바라보았다.오랜만에 본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사내인 줄 알던 이가 단아하게 여인의 모습으로 서 있으니, 묘한 이질감이 밀려왔다.‘분명히 내가 알던 그 얼굴이 맞는데, 이렇게 단장을 시켜놓으니 곱기도 하구나.이런 모습에 전하께서 마음을 뺏기신 걸까.’감탄이 끝나자, 서글픔이 밀려왔다.중전은 한동안 신기하다는 듯 연화를 바라보다, 이내 말을 건넸다.“얼굴을 들어보세요.”하명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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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다시, 입궐 2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지가 않군.’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며, 거센 피로감이 중전을 덮쳤다.“마마,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연화의 말에 중전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아, 괜찮네. 회임 중이라 그런가 보네.”“늦었지만, 감축드리옵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마마.”“그래.”연화가 물러간 후, 중전은 머리를 풀고 자리에 누웠다.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정작 잠은 오지 않았다.이 모든 계획은 자신이 세운 것이었다.왕실을 지키고, 주상과 아이들을 지키며 동시에 자신의 안위까지 고려한 선택.그러나 막상 연화가 눈앞에 앉아 있으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지아비의 다정한 눈빛.그리고 해산 후 닥칠 생사의 불확실성과, 남겨질 아이들.그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내가 죽는다면, 그 아이들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연화는 좋은 사람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그녀를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었다.멀리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자꾸만 가슴이 저미는 상상이 떠올랐다.자신이 떠난 후, 서로 마주 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주상과 연화.그리고 ‘어머니’라 부르며 연화를 따를 자신의 아이들.그 상상에 가슴이 저릿했다.‘이건, 질투인가. 투기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무엇하겠는가.’제 처지가 가련했다. 그리고, 복중의 용종이 불쌍했다.그녀는 불룩하게 솟은 배 위에 손을 얹었다.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아가야, 미안하다. 못난 어미라서, 끝까지 너는 지킬 수 없어서…’그 시각, 겸은 연화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결국, 체통도 없이 연화의 처소로 빠르게 향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처소는 텅 비어 있었고, 연화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처소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는 임금을 본 상선이 조심스레 말했다.“전하,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시지요.”그러니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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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첫날밤

“전하께서도 아름다우십니다.”겸이 실소하며, 연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하하. 내가 아름다우냐?”“그럼요. 소첩이 태어나 만나본 사내 중에 가장 아름다우신걸요.”“네가 만나 본 사내가 나 말고 또 있다는 말이냐?”“예? 아니, 그것이 아니라…”“하하! 당황하는 모습마저도 예쁘다. 연화야.”얼굴이 붉어진 그녀를 보며 그가 맘껏 웃었다.발그레하고 수줍게 웃는 것이 영락없는 여인이었다.그 모습이 퍽 어색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이 참 서글펐다.“이리도 어여쁜 아이를 사내로 살게 하였으니,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것인지…”“그런 말씀 마세요.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전하와 소첩도 없사옵니다.”“……”“전하와 소첩의 시간을 부정하지 말아 주세요.”“그래. 하지만 조금은 후회가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구나.너를 마음에 품었을 때 그때 바로 조치를 취했어야 했어. 내가 어리석었고, 겁쟁이었다.나는 너를 버리고, 이 자리를 선택했다. 그래서 괴로웠어.”“그 시절은 소첩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입니다.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와 함께 했으니까요. 그 무엇도 아닌,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았습니다.”“네그 그리 생각한다니, 다행이구나. 그래도, 그래도 미안하다.”겸은 연화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가 그의 품에 얼굴을 부볐다.“오늘은 공식적인 너와 나의 첫날밤이 아니냐? 오늘은 마음껏 너를 안고 사랑할 수 있겠구나.”“그동안은 마음껏 안지 않으셨나요?”“눈치를 조금 보긴 했지.”연화가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환한 웃음이었다.“네 웃는 모습이 좋다. 앞으로도 이렇게 웃어다오. 아니, 네가 웃을 수 있도록 하마.”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연화의 눈가를 쓸어내렸다.그녀를 짓누르는 무거운 가채를 내리고 옷고름을 풀었다.사르륵- 부드럽게 풀려나간 옷고름 사이고 하얗고 뽀얀 살결이 드러났다.오늘은 욕망을 절제하지 않아도 된다.마음껏 그녀를 안고 사랑하리라.연화에게 입을 맞추는 겸의 숨소리가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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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해산

궁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한가했다.겸이 틈틈이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긴 했지만, 정사에 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연화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연화는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훈련 중인 병사들의 움직임을 멀리서 지켜보며 한참을 서 있던 그때, 따뜻한 온기가 등을 타고 전해졌다.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전하?”연화는 놀라 주변을 둘러보고는 재빨리 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그가 서운한 듯 시무룩한 얼굴을 하자, 연화는 그 손을 다시 잡아주었다.그제야 그가 환하게 웃었다.“여기 있을 줄 알았지. 처소에 없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여기 있었구나.”“딱히 할 일이 없어서요.”“궁 안이 꽤 무료하지?”“조금요. 그래서 말인데요, 전하.”잠시 망설이는 듯한 그녀가, 새침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응, 말해보아라.”“검술 교본을 써보려 합니다.”“검술 교본?”“예. 지금 사용하는 건 청나라나 왜국의 방식을 참고한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조선인의 체형, 무기,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새롭게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그가 사뭇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좋은 생각이긴 한데, 쉽진 않을 텐데? 할 수 있겠느냐?”“그래도 해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한글로 써서 궁 밖 백성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검술,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그가 기특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훌륭한 뜻이다. 필요한 것 있으면 뭐든 말하거라. 전부 도와줄 터이니.”“그런데, 소첩은 그림 솜씨가 부족해서요.”“그건 도화서에 맡기자. 바로 말해둘 터이니 걱정 마라.”연화가 환히 웃으며 겸의 허리를 꼭 안았다.그 모습에 상선이 조심스레 기침을 했다.“전하, 보는 눈이 많사옵니다.”그는 보란 듯 그녀를 한번 꽉, 품에 안은 후 놓아주었다.“연화야, 오늘 저녁엔 다시 안아주겠느냐?”연화가 그를 올려다보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였다. 중궁전의 김상궁이 다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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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해산 2

“예?”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그녀의 말에 번뜩- 제 치부가 들춰졌다. 왕의 여자로서 치명적인 치부가.“그래서 자네를 빈의 자리에 앉혔네.”“……”“자네가 중전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말이네.자네가 중전이 되는 것이 내 아이들을 지키는 가장 좋은 선택지라 생각했지.”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연화는 그녀의 말을 곱씹어 봤다.불임의 몸인 자신을 중전자리에 앉히려는 이유. 그것은 왕자들에 대한 안위였을 것이다.그 의중을 파악하고도 불쾌하지 않았다.오히려, 쓸모 없어진 제 몸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제 역할을 찾을 것일 테니 말이다.“마마.”“서운한가?”연화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내가 말했지 않았나.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이네. 자네를 이용했어. 미안하네. 미안하지만 이 자리와 왕자들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 주시게.”“아닙니다, 마마. 소인은 압니다. 그리 말씀하셔도, 마마는 좋은 분이십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셔요.”“약속해 주시게.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마마! 옥체를 회복하시는 게 먼저입니다.”“어서. 내 약조를 받아야 눈을 편히 감을 수 있지 않겠는가?”“안됩니다. 약조할 수 없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세요. 마마!”고집스러운 그녀에게 그저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자네 뜻 알겠네. 기운 차리고 일어나야지.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때는 그 약조를 지켜주겠는가?”“예, 마마. 그리하겠습니다.”“그래. 고맙네. 이제 좀 쉬어야겠어.”“예, 마마. 부디 왕자마마를 안아보시기 위해서라도 일어나셔야 합니다.”중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자 연화가 조심스럽게 산실을 빠져나왔다.힘에 겨운지, 중전이 눈을 감자, 내의녀들이 다가와 중전의 옥체를 살폈다.연화가 밖으로 나오자 어의 영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여의 영감, 마마께서는 괜찮으시겠지?”“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허나...”“말해 보시게.”“장담하긴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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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승하

중전이 정신이 들었다는 말에 겸이 곧장 중궁전으로 찾아왔다.그곳에는 이미, 연화가 중전과 다소곳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어? 빈도 계셨구려.”빈과 중전이 그를 향해 인사를 하자, 겸이 연화의 곁에 앉았다.“중전, 몸은 좋아지신 겁니까?”“예.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한결 나아 보이는 그녀의 안색을 보며,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닙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예, 전하. 전하와 빈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연화와 겸이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는 건 둘 다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의 시선이 중전을 향해있었지만, 어쩐지 그녀는 주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그리고 이내, 갈색 동공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전하, 혹여라도 소첩이 잘못된다면 빈을 중전의 자리에 올려주십시오.”“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만에 하나 말입니다.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그리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누구도 문책하지 말아 주십시오.”“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몸을 추스르세요.”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중전의 침소를 나섰다.그는 중전을 여인으로서 사랑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신뢰하고 존경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세 왕자의 어머니였다.중전으로서 그녀는 완벽했다.좋은 동료이자 반려자였다.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날 것처럼 말하는 것을, 그는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연화와 중전이 그가 떠난 자리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내가 그동안 보아온 자네 모습에 거짓이 없다면, 자네는 중전의 자리에 앉을 충분한 자질을 갖췄네.”“마마, 어찌 또 그러십니까?”“좋은 왕후, 그리고 좋은 어머니가 되어 주게.”연화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오랜만에 기운을 차린 중전과 또다시 입씨름을 할 수는 없었다.파리하게 질린 얼굴이 걱정스러웠다.“예, 마마.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좀 쉬셔야 합니다. 오늘 무리하셨습니다.”“그래. 고맙네.”연화는 중전 가까이로 다가가, 중전이 자리에 눕도록 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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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중궁전

세자가 자신을 알아본 건 아닌지 잠시 걱정을 하던 연화는,이내 생각을 지우고 세자에게 다가가 작은 두 손을 꼭 그러잡았다.담담한 표정뒤에 보이는 그 슬프고 공허한 눈빛이 안쓰러웠다.“세자저하, 잠은 잘 주무십니까? 힘들진 않으시고요?”“예. 괜찮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연화는 물끄러미 세자를 내려다보다가 무릎을 굽혀 세자와 눈을 맞추었다.“어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괜찮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모의 죽음은 당연히 슬픈 일인데요. 울어도 괜찮습니다.”“하지만, 세자는 강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울지 않습니다.”“눈물을 흘리는 것이 약한 것입니까?”“그렇지 않습니까?”눈을 반짝이며 묻는 말간 얼굴이 예뻤다. 연화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눈물은 그저 감정을 표현할 뿐입니다.”“하지만 제가 눈물을 흘린다면 모두들 세자가 약해빠졌다고 비난할 겁니다.”“비난을 하는 자들이야말로 약해빠진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의 말을 거를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강인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자께서 보시기에 주상 전하는 강인한 분이신가요? 약한 분이신가요?”“아바마마께서는 아주 강인한 분이십니다. 그런 아바마마를 본받을 것입니다.”“제가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무엇인데요?”연화는 세자의 어깨를 잡고 자신의 입을 세자의 귀 가까이로 가져갔다.세자가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렸다.“사실, 주상 전하께서는 눈물이 아주 많으시답니다.”“예?”세자의 놀란 표정을 본 연화가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쉿! 이건 비밀입니다.”연화는 세자의 한 손을 잡고 걸어갔다. “후원에 단풍이 아주 예쁘게 들었답니다. 같이 보러 가시겠어요?”세자가 고개를 그녀를 끄덕이며 따라갔다. 작은 보폭에 맞춰 걸음을 걸었다.선선하고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후원을 거닐고 있으니, 세자의 답답했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빈마마께서 이제 왕후가 되시는 건가요?”“예? 글쎄요. 아직 그것을 논하기엔 이른 듯합니다. 지금은 애도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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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혼례

‘내가 정말 이곳에 있어도 되는 것인가? 앞으로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하늘로 솟은 용마루를 보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처음, 궁에 발을 딛던 그 어린 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이런 결과를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제 인생을 살고 싶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그러다 마음이 통하는 정인을 만났다.처음부터 제 뜻대로 흘러간 인생은 아니었다.그러나 열심히 살았고,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이었다.그러다 보니 결국, 이곳까지 발이 닿았다.“흠-”연화는 몸을 돌렸다. 저 시선이 닿는 끝에 그가 있다. 그토록 품에 안기고 싶던 그가.그것이면 되었다. 그를 위해 살고자 결심했던 삶이었으니.연화는 천천히 대청마루에 올라섰다.***연화의 그간 행적과 출생을 문제 삼아 연화의 중전 책봉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하지만 전 부원군이었던 좌의정의 강력한 추천과 왕의 확고한 의지를 바꿀 수 있는 대신들은 없었다.겸이 용상에 앉은 이후 건국 이래 가장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백성들은 평안했고, 그들의 지지로 왕권은 더욱 강력해졌다.신조차 그를 지지하듯 몇 년 사이 기근이 줄고 전국에 풍년이 들었다.강력한 왕권을 쥐고 있는 왕을 반대하기란 쉽지 않았다.그의 강인함이 연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연화가 중궁전으로 향할 때, 겸은 동궁전으로 발길을 옮겼다.아들들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어미 잃은 자식의 눈치까지 안 볼 수야 없었으니.어느 날, 세자가 겸에게 찾아와 말했다."빈 마마라면, 어마마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겸은 세자의 손을 꼭 잡았다."어미 잃은 세자의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았겠지만, 왕후의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는 없다.""예. 아바마마 알고 있습니다.""빈은 좋은 왕후이자 좋은 어머니가 될 것이다. 이 아비가 보장해."붉은 혼례복을 곱게 차려입은 연화는 천천히 궁궐의 행랑을 따라 걸었다.길을 따라 늘어선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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