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되어 이수네 가족은 어김없이 소박한 외식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자리에서 이수는 선물 대신 '오키나와'라는 폭탄을 선사했다."엄마, 아빠. 나 내년에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 다녀올게. 1년 정도."아침에 이수가 나갈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도대체 어딜 다녀왔길래, 반나절만에 이런 결정을 했을까."뭐?! 너 혼자, 그것도 1년을?! 안 돼! 절대 안 돼!!"재희는 부르르 떠는 상열의 팔을 붙잡으며 눈짓으로 그를 만류했다."이수야, 이렇게 갑자기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는 거야?"사실 재희는 그동안 집, 학교, 도서관만 다니던 이수가 못마땅하긴 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안쓰러웠다. 모스 문에서 일할 땐 연애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는 것 같더니만 현준과 헤어진 뒤로는 다시 건조한 생활로 돌아간 이수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자기 좋다는 남자가 있으면 그냥 한 번쯤 만났으면 좋겠는데, 그걸 안 한다. 준호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던 재희는 내심 이수가 준호를 만나 이별의 아픔에서 회복했으면 했었다. 그런데 그게 이수는 어려운가 보다. 어쩌겠어, 이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니까. 이 워킹홀리데이도 아픔에서 파생된 결정이라면 너의 회복을 위해 허락해 주고 싶어."그냥… 과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많이 얘기하더라구. 궁금해졌어."그래, 다 좋아. 그런데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무려 1년을 너 혼자 다녀오도록 허락해 주기엔 엄마, 아빠가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됐어. "타국 살이, 한 번쯤 꿈꿔볼 수 있지. 일본이 먼 곳도 아니고. 하지만 지방에서 갑자기 서울살이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야. 하물며 외국은 더 하겠지. 차라리 여행으로 한두 주 다녀오는 건 어때?""...미안. 이미 티켓 끊었어. 난 갈 거야."흔들림 없이 재희의 눈을 응시하던 이수는, 이내 시선을 식탁 위 빈 접시로 돌렸다. 자신을 걱정하는 어른의 따뜻한 눈빛 앞에 억지를 부리는 아이가 된 것 같아 묘한 수치심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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