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판 / 천년의 기억 / Chapter 41 - Chapter 46

All Chapters of 천년의 기억: Chapter 41 - Chapter 46

46 Chapters

41. 내면의 파국

대비전의 문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무게를 가지고 닫혔다.문 하나가 닫힐 때 이수는 그것이 단순한 문이 아니라자신을 향한 세상의 경계가 ‘철컥’ 하고 잠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 작은 소리 하나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울렸다.'나는… 무사한 것일까.'걸음을 떼려 했으나 발끝이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마치 조금만 움직여도 쏟아질 것 같은 감정들을 간신히 붙들고 서 있는 사람처럼. 궁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빈마마… 밖으로 모시겠사옵니다.”이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회랑을 나와 대비전의 뜰에 발을 디디는 순간바람 한 줄기가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가며 심장이 한 번 크게 패였다.마치, 대비전에서 버텨낸 모든 담담함이 문밖에서 허물어지는 듯했다.그녀는 회랑 기둥 가까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섰다.궁녀들이 뒤에서 조심스레 거리를 두고 따르고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말을 걸지 않았다.달빛도, 햇빛도 아닌 그저 적막이 깔린 낮의 뜰.이수는 그 적막 속에 온몸이 잠겨버린 듯했다.'대비마마의 질문들…''나를 향한 눈빛…''그 침묵의 무게…'마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무도 듣지 못하게 속에서만 조용히 일어났다.그리고 그 무너짐의 틈 사이로 또다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도진.달빛 아래 서 있던 그의 옆모습.말없이 자신을 보던 눈.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또 다른 시선.그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금으로 이어지며 가슴을 조였다.'왜… 왜 그때를 떠올리면 이렇게 아픈가.'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정녕… 내 마음은 어제의 흔들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그러나 대답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이미 일어나 있었다.이수는 기둥에 손을 짚었다.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평소 같으면 단정한 동작으로 숨을 골랐겠지만 오늘은 숨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가슴이 조였다.목이 메였다.눈은 뜨거워졌다.하지만 울 수 없었다.궁은 눈물조차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Read more

42. 가늠되지 않는 불길한 그림자

궁궐 깊숙한 세자의 동궁에는 아침보다 더 깊고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현은 책상 위 펼쳐진 문서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나글자는 하나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먹물처럼 점점 퍼지는 마음의 불안이 글자를 흐릿하게 만들어버렸다.책상을 두드리던 손끝이 평소보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스스로도 느꼈다.'무엇 때문인가… 왜 이리 마음이 시끄러운가.'그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내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저하… 전하의 대비마마께서…방금… 빈마마를 불러 드셨사옵니다.”현의 손끝이 마치 차가운 물에 빠진 듯 굳었다.“…대비마마께서 빈을?”“예, 저하. 급히 들라 하셨다 하옵니다.”그 말은 도끼로 쪼개는 소리보다 더 무겁게 현의 귀에 내려앉았다.대비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궁 전체가 들썩이는 인물이다.그런 대비가 가벼운 이유로 누군가를 부르지 않는다.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빈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안에 실린 감정은 날카로운 철편 같았다.내시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빈마마의 처소 근처에서 어젯밤… 일이 있었던 모양이옵니다.”“일?”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내시의 말을 겨누듯 시선을 보냈다.내시는 더 말해도 되는지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저하께서… 어젯밤 빈마마 처소 주변을 거닐었다는 말씀이…궁인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 하옵니다.”현의 손이 책상을 강하게 눌렀다.탁~소리가 동궁 안을 울렸다.'소문이… 벌써 퍼졌단 말인가.'그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자신이 어젯밤 빈의 처소 근처를 거닐었던 것은 단지 마음을 정리하려는 걸음이었으나,궁은 사소한 숨결 하나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그것이… 대비마마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이냐.”“예, 저하. 전각에서 여러 궁인들이 그 움직임을 조금…예사롭지 않게 여겼다 하옵니다.”현의 표정이 굳어졌다.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으나너무 차가워지는 바람에 오히려 금이 가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궁이 빈을 향해 이렇게 빠르게 반응한
Read more

43. 시선의 교착

수련장에서는 아직도 대비전으로 향하던 소식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장 무사가 말을 이은 뒤에도 도진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마치 몸에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균열이 나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는 사람처럼.“빈마마가… 나오셨다오.”그 말을 전하는 궁인의 숨결이 흐트러진 바람처럼 스쳤다.도진은 손끝을 굳게 다물었다.“…어디로 가셨는가.”“대비전 뜰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하옵니다. 지금은 회랑 쪽으로 향하고 계신다고…”그 말이 끝나자마자 도진의 몸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걸음은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그러나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속도였다.대비전으로 이어지는 회랑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지만 오늘은 그 침묵이 지나치게 깊었다.바람 한 줄기도 멈춘 듯했고 궁녀들의 발소리는 한층 더 조심스러워져 있었다.도진이 회랑 모퉁이를 돌기 직전, 멀리서 작은 군집의 움직임이 보였다.궁녀들이 서너 명, 서둘러 길을 비켜 서고 있었다.그들 사이로 하얀 비단 옷자락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이수였다.멀리서 보아도 그녀의 걸음은 흔들리고 있었다.평소 그녀가 가진 단정한 걸음과 다르게오늘은 마치 숨을 고르는 매 순간마다 가슴 어딘가가 조여드는 듯한 움직임.도진은 무의식적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심장이 갑자기 쿵 하고 떨어졌다.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했다.'왜… 왜 저 얼굴을 보는데 이렇게 아프지.'이수는 가까이 오고 있었다.도진은 미동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이 닿은 곳 이수의 얼굴은 숨을 죽이며 견뎌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눈가에는 피로와 긴장의 자국. 입술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걸음은 흐트러지기 직전에서 간신히 균형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눈은 조용히, 아주 깊은 곳에서 무너진 뒤 아직 다시 서지 못한 빛을 띠고 있었다.도진의 가슴이 쓰렸다.근거도 없이, 이유도 없이.그저 그녀가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Read more

44. 마주 선 그림자들 사이

회랑을 가르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저하께서 나오신다! 길을 비켜라!”궁녀들이 서둘러 몸을 낮추고 양옆으로 갈라지며 조심스레 뒤로 물러섰다.그 순간 회랑의 공기는 누군가의 발걸음이 세상 전체를 장악하는 듯한 묵직하고 서늘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이수의 옷자락이 바람도 없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녀의 손끝에서는 체온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저하가… 이리 빠르게 나오시다니.'그녀는 대비전에서 받은 무거운 말들이 아직 어깨에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무게는 지금 세자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더 짓눌렸다.회랑 끝에서 현의 모습이 드러났다.단정한 의복, 나직하게 흩어진 머리장식,표정은 온화한 듯했으나 그 안에 감춰진 감정은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이수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그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던 조용한 공기들이 서서히 갈라져 나갔다.이수는 들숨을 한 번 억지로 목에 걸어 올렸다.그러나 그것마저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현은 마침내 그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바람 한 줄기도 없이 둘 사이에는 말하지 않은 수천 마디가 고요하게 떠 있었다.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빈.”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얼핏 부드러워 보였지만그 안에는 분명한 긴장이 깃들어 있었다.이수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저하.”현은 그녀의 모습을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따뜻하지 않았다.그러나 차갑지도 않았다.오히려 온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곳에서 천천히 심연을 드러내는 듯한 눈이었다.“대비전에서… 무슨 말씀이 오갔소?”직설적이지 않다. 그러나 회피도 아니다.궁에서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보통 감정이 개입되었음을 뜻했다.이수는 짧게 눈을 내리깔았다.“…대비마마께서는… 궁 안의 예를 어지럽히지 말라 하셨사옵니다.”현의 눈빛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예를… 어지럽히지 말라.”그는 그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 말은 세자 자신을 겨냥한 것이다.그리고 동시에 이수를 향한 경고이기도 했다.
Read more

45. 시선의 폭력

회랑 모퉁이에 멈춰 선 도진은 발끝에서부터 이상한 떨림이 차올라 몸속을 조용히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그 떨림은 공포도 아니고 피로도 아니고 전쟁터에서 수없이 맞닥뜨린 긴장조차 아니었다.이 감정은 그 어느 것과도 닮지 않은 그러나 몸이 가장 먼저 알아채는 감정“불길함과 분노가 섞인 뜨거운 통증”이었다.도진은 회랑과 뜰 사이의 그림자 속에서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을 마주 보았다.이수와 세자 현. 둘 사이의 공기는 어떤 바람도 흔들지 못할 만큼 짙고, 무겁고, 서늘했다.멀리서 보아도 느껴졌다.이수의 어깨에 내려앉은 고요한 떨림,그리고 현의 눈빛에서 번지는 불길한 감정의 흔적.도진은 자신의 손이 검도 없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무엇 때문에… 이토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처음에는 마음이었다.그 다음은 통증이었다.그리고 지금은 분노.이유도 모르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불붙듯 치솟았다.이수는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현이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순간도진의 심장이 마치 단단한 방패를 뒤에서 맞은 듯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 한 걸음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걸음인데도 도진의 눈에는 위협 그 자체로 보였다.이수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지고,현의 시선이 그녀를 깊이 압박하는 모습은 도진에게는 누군가를 억누르는 폭력처럼 느껴졌다.현은 이수의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말하지 않은 질문들이 공기 속에 침처럼 가라앉았다.잠시 뒤, 현이 손을 들어 이수의 뺨에 닿을 듯 말 듯 멈추는 순간 도진의 숨이 아예 멎어버렸다.'그 손을… 왜 들었지.'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그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무엇인지,이수가 느끼는 두려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현의 눈빛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그 손이 이수에게 닿으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시작될 것 같았다.도진은 처음으로 회랑에서 발을 한 걸음 떼었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그러나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그의
Read more

46. 숨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회랑을 벗어나는 순간, 이수는 마치 오래 달린 뒤 갑작스레 멈춰 선 사람처럼 한 걸음조차 제대로 떼기 어려웠다.바람도 불지 않는 낮인데 옷깃이 스스로 흔들릴 만큼 가슴 깊은 곳에서 떨림이 올라왔다.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그러나 들이마신 공기가 폐끝에 닿기도 전에다시 밖으로 쏟아지는 것처럼 호흡이 자꾸 끊겼다.'왜 이리… 숨이 막히는가.'세자와의 대면. 그 속에서 감춰야 했던 감정들.대비전에서 들은 무거운 말들. 궁인들의 시선.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이 조여들었다.회랑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이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둥에 손을 붙들었다.흰 손끝이 단단한 목재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궁녀들이 뒤에서 그녀를 부르려다 이수의 어깨 떨림을 보고 입술을 다문 채 그대로 물러났다.이수는 고개를 숙였다.눈을 감으면 방금 전 세자의 눈빛이 그대로 떠올랐다.살갑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러나 절대 가벼워지지 않는 감정의 무게.그가 물었다.“그대가… 나를 피한 것이오?”그 말이, 지금도 가슴에서 날카롭게 비어 있었다.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에 닿으려 했던 순간그 손이 닿지 않았음에도 이수의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저하께서…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시는가.'그것은 군주의 눈빛이 아니었다.마음이 요동치는 한 사람이 감정을 억누르며 내비치는 눈빛이었다.그 눈빛은 이수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전했다.지켜주고 싶다.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다.그 두 문장이 이수의 마음을 더 무너뜨렸다.그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왜 이리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하옵니까…”속삭임은 바람처럼 작았다.하지만 그 작음 속에 오랜 압박과 불안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이수는 기둥에 기댄 채 잠시 숨을 정리하려 했다.그러나 숨은 정리가 아니라 오히려 더 뒤섞여 갔다.머릿속에 장면들이 흩어진 실잣기처럼 풀렸다.대비전의 차가운 공간. 눈빛 하나로 사람을 꿰뚫는 대비마마.“궁의 예를 어지럽히지 말라.”그 말의 무게가 손끝까지 내려
Read more
PREV
12345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