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나는 공범이었다: Bab 21 - Bab 30

74 Bab

제21화

남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한 지붕 아래, 아이들은 점점 커가는데. 비밀은 애초부터 끝까지 지켜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그렇다면 차라리 선을 그어 주자. 그것도 확실하고 명백하게.자아가 완전히 자리잡기 전, 종류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식시키자. 그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일 저녁 식사 때. 그때 말해요. 당신 퇴근하고 오시면요.”“암, 쇠뿔은 역시 단김에 빼야지.”“아니요. 쇠뿔이고 나발이고 저는 엄마니까요. 부모니까요.”태호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당연히 가족에겐 미안하긴 했지만, 유영. 아이 덕분에 별이 하나 더 생겼다. 방법이야 어찌 됐든, 진급은 꽤 성공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그 쓰임은 또다시 있을 것이다. 견장의 별은 단 두 개로 끝나지 않는다.***“준호야, 보람아! 얼른들 내려와! 저녁 먹자!” 익숙한 목소리에 남매는 방에서 나와 계단을 빠르게 내려왔다. 식탁엔 갈비찜과 각종 나물, 밑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고 숙경과 태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많이 먹어. 오늘은 밥 먹고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보람이는 갈비찜에 홀린 듯 신이 나 보였지만 준호는 아니었다. 중요하다는 그 이야기가 불안했다.혹시 지하실을 드나드는 걸 눈치라도 채신 건가? 아니야. 그랬으면 이렇게 웃으실 리 없잖아.보나 마나 또 이거 조심해라, 저거 주의해라.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겠지 뭐.태호는 묵묵히 수저를 들었고, 숙경은 아이들 앞에서 괜히 더 상냥하게 굴었다.“실컷 놀다가 개학하니까 힘들지? 생활패턴도 얼른들 돌아와야지.”“네.”식사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말 없는 아버지, 이것저것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주는 어머니. 갈비뼈를 쪽쪽 빨며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여동생.3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아무리 부모라도 반말을 쓰는 건 예의가 아니야.”갑작스러운 말이었다.하지만 그 위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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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호통에 놀란 영이가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오자, 숙경은 책상 위에 쟁반을 툭 내려놓았다. 준호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영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빠! 쟤 누군데! 응? 뭔데!”“도움이 필요한 아이.”“도움? 무슨 도움? 왜 지하실에 있어? 여기서 사는 거야? 우리 집에서?”태호가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고는 아이들의 이름을 똑똑히 호명했다. “신준호, 신보람.”“응!”“네...”“엄마랑 아빠는 불쌍한 아이를 거둔 거다. 그래서 이 아이는 이 집에서 먹고, 자고, 배운다.”준호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고, 보람이가 영이를 향해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넌 이름이 뭐야?”“....유....영.”“유영? 그럼 우리 집에 사니까, 너는 신유영이야?”그 순간, 숙경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보람아! 신유영이라니? 얘는 유영이야! 유영!”“응? 성이 그럼 유 씨야?”“그런 거 없어. 그냥 유영이라고!”고개를 숙인 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기 이름이 여러 번 불리고, 여러 번 잘려나가는 동안에도 끝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보람이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봤다.“근데 왜 지하실에서 사는 건데?”“이곳이 이 아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곳이니까.”“허락?”“신준호, 신보람. 너희들은 앞으로 자유롭게 이곳을 드나들어라.”엥? 그동안 늘 잠가두던 공간을 이제는 자유롭게 드나들라고?준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의미지? 무슨 의도지?지금이 순간, 가장 기분이 좋아보이는 건 보람이었다.“진짜? 진짜 여기 놀러 와도 돼?”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이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너희들이 내려오는 건 자유다. 단 이 아이가 계단을 넘어서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야.”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영이를 제외한 모두는 선을 넘어도 되지만 영이만은 안 된다는 새로운 규칙.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절대로 섞일 수 없는 관계는 가족은 아니라는 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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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등교 준비를 마친 준호와 보람을 향해 아버지가 다가왔다. 오늘도 잘 다려진 군복 위엔 별 두 개가 반짝였다. “지하실 이야기는 집 밖으로는 절대 발설해선 안 된다.”“응! 아빠! 그럼 나 학교 끝나고 영이랑 놀아도 돼?”“물론이지.”그리곤 고개를 돌려 준호를 바라보았다. “신준호? 대답해야지.”“네.”대답은 했지만, 목소리는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태호는 그걸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대답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자. 늦겠다.”보람이는 가방을 멘 채 정원을 거닐며 콧노래를 불렀다.“영이한테 뭐 알려주지? 숨바꼭질? 아니면 그림 그리기?”준호는 바닥만을 보고 걸었다. 놀다. 그 단어가 유난히 가볍게 들렸으니까.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아이와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아이. 그 사이를 그따위 단어 하나로 지워버릴 수 있을까. 어쨌든, 어제부터 새로운 규칙이 생겨났다. 지하실은 이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영이에게 마음껏 사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하지만, 이상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방학 때는 새벽만을 애타게 기다렸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계단을 내려가는 그 순간이 하루의 전부였는데. 자유가 생긴 지금은 오히려 숨이 턱 막혔다. 숙경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자마자 지하실을 향했다.그리고 아침 일찍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는 영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얘.”“....”대답 없는 모습에 속에서 또 다시 화가 부글부글 치밀어 올랐다. “얘!”“네....”“앞으로 준호랑 보람이한테 버릇없게 굴어선 안 될 거야.”“네....”“넌 잠자코 도움만 받으면 돼. 알겠어?”“네...”반복되는 대답에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다시 위층을 향해 멀어졌다. 남겨진 영이는 조심스레 침대 아래로 몸을 낮춰 준호와 비밀을 공유하던 노트를 꺼내들었다.그리고 사각사각, 연필을 움직여 무언가를 적었다.- 도운 반는다틀린 글자, 틀린 받침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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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일주일쯤 지났을 때, 평소답지 않은 시끄러운 소리가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방 안에 있던 준호는 인상을 쓰며 거실로 향했고, 거실에선 팔에 새하얀 깁스를 한 보람이가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으앙.... 으아앙....!”“괜찮아. 엄마가 호 해줄게.”“이게 다 유영 때문이야... 으아아앙... 다 유영 때문이라고!”숙경의 표정이 단숨에 굳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응? 보람아?”보람이는 깁스 한 팔을 들어 올리며 더욱 더 서럽게 엉엉 울었다.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말과 울음이 엉겨 붙었다.“걔가 그랬단 말이야! 내 팔을 보면서 아야해서 운다고! 하얗다고!”숙경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곧바로 아이들을 향해 단호하게 경고했다.“내려오지 마.”지하실을 내려가는 소리는 빨랐고, 다급했다.뒤이어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는 소리,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동안 울렸다.소리는 가볍지 않고 둔탁했다. 그때, 준호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지하실을 향해 달려갔다.“오빠!”이를 악 물고 계단을 내려갔을 때, 영이는 침대 아래 몸을 말아 웅크리고 있었고, 이불은 반쯤 끌려나와 있었다.책과 의자도 평소와 다르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내려오지 말랬잖아!”“엄마! 얘는 지하실에만 있었는데,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저주라도 퍼부었는지 누가 알아? 당장 안 올라가?”준호가 영이와 엄마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싫어요.”“준호야!”“도와주라고 하셨잖아요! 도와주라고!”그 말에도 숙경은 멈추지 않았다. 준호를 지나 영이를 향해 살기 어린 말을 내뱉었다.“어떻게 알았어? 어? 어떻게 알았냐고!”“...”“당장 말 안 해?”“엄마.....!”서늘하고 위협적인 분위기에 영이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는 오빠가 있었으니까.“봤어요.... 아야 하는 거....”“봤다고? 뭘?”“팔... 아야 해서.... 우는 거.... 하얀 거.....”숙경도, 준호도 영이가 하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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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태호는 영이의 집요한 시선이 불편하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빨갛고 큰 거.... 콜록콜록....”꼭 기침소리를 흉내 내는 모습이었고, 아무래도 장난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기에,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펼쳐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마음이 급했다.“그려. 보이는 거 당장 그려 봐.”영이는 잠시 망설였다. 정말로 연필을 집어 들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듯 태호를 올려다봤다.“괜찮으니까 그리라고.”곧바로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처음에 그려진 건 큰 직사각형의 네모였다. 선은 삐뚤빼뚤했지만 형태는 분명했다. 이어서 그 네모 안에 채워지는 또 다른 작은 네모들. 5개의 층, 창문 같은 것.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 이건 부대 건물이구나.가장 아래쪽에는 검게 덧칠된 무언가가 표현됐다. 연필이 그 부분에서만 수십 번 왕복했다. 마지막으로 건물 옆, 커다란 네모 하나가 더 그려졌다.바퀴가 달린 자동차 모양엔 살짝 기울어진 119라는 숫자가 그림처럼 적혔다.모든 그림이 완성됐을 때, 지하실이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부대, 아래층, 연기, 소방차. 머릿속에서 장소와 상황이 자동으로 맞물렸다. 논리보다 빠른 속도였다. “이게 언제지?”“몰라요....”“언제냐고!”“몰, 몰라요....”영이의 얼굴은 고집이 아니라 정말로 모른다는 얼굴이었다.정확한 시기는 모르는 건가. 그렇다면 대비할 방법이 없는데. 아니, 아니지. 대비가 되면 안 되지.그럼 이 그림이 맞는지, 유영의 능력이 진짜인지 확인할 길이 없잖아.태호는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를 찢으며 이렇게 말했다.“앞으로 보이는 게 있으면 무조건 말해. 알겠어?”“네...”그게 시작이었다.하굣길에 넘어져 깁스를 한 보람이의 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의심은 결국 2주 뒤, 부대에서 발생한 화재로 확신이 되었다. 태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림을 본 이후 1층 좌측 식당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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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노트북 화면 안을 가득 채운 코딩들, 급하게 정리하다 멈춘 소스들. 영이를 안전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한 번에 수많은 CCTV를 제어할 수 있는 코드가 필요했다. 준호는 영이를 만나고 온 이후, 온전히 이 일에만 몰두했다.카메라 ID를 해킹하고, 접속 권한을 우회하고, 로그 기록을 조작하길 수백 번. 모니터 한쪽에 작은 창들이 연달아 떠올랐다.대문, 정원, 뒷마당, 그리고, 2층 테라스 난간에 서 있는 영이.“추운데 밖에서 뭐해. 외투라도 좀 걸치던가”화면을 확대하자, 영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바람에 머리카락만 가볍게 흔들릴 뿐, 추위에 움츠린 기색조차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준호는 자꾸만 애가 탔다. “춥다니까. 들어가지 좀.”목소리는 사무실 안에서만 공허하게 흩어졌다. 아무리 애가 타도 전해질 수 없는 말이었다. 얼마나 넋을 놓고 바라봤을까, 우측 하단에 메일이 도착했다는 팝업창 하나가 떠올랐다.- 방문자 리스트 및 출입기록. 본문에는 TF팀 팀장의 짧은 안내가 덧붙어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최근 6개월 내 기록만 첨부해 전달드립니다. 이전 기록 또한 최대한 빠르게 정리한 후 보고드리겠습니다.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첨부파일을 열었다. 젠장, 더 볼 것도 없었다.가장 상단에 있는 이름은, 가장 출입 기록이 많은 인물은 역시나 신태호. 아버지의 이름이었다.다른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영관장교인 소령, 중령, 대령. 그리고 장군 계급인 준장, 소장, 중장, 대장. 모든 계급이 너 나 할 것 없이 고스란히 섞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찰과 검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핵심 인물도 한둘이 아니었다.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속도를 늦춘 건 놀라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패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날짜는 제각각이었고 시간대도 일정하지 않았다.유일한 공통점은 하나. 모두 영이를 찾아 산속까지 직접 발걸음을 했다는 것. “씨발....”한두 명의 일탈이 아니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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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준호의 행동이 잠시 멈췄다.젠장, 저렇게 또 잠이 들어버렸구나. 또 꿈속으로 도망치길 선택했구나. 재킷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영이의 말대로 하긴 싫었다. 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은 더 이상 그의 선택지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사무실을 박차듯이 나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내려가는 숫자가 하나씩 바뀌는 동안에도 시선은 태블릿 화면에만 박혀 있었다. 새하얀 이불 속, 잠에 든 모습은 고요했지만 동시에 외롭고도 서글퍼 보였다.엔진이 걸리고 차가 튀어나갔다. 신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밤길을 가르며 질주했다. 그러다 산길을 올라 시동을 껐을 때, 주차된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헤드라이트는 꺼져 있었지만 차체는 너무도 익숙했다. 준호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뒷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낯익었다. 신태호 중장. 자신의 아버지. 영이를 이곳에 가둔 주체자.“왔구나.”“할 말 없습니다. 영이 데리러 왔습니다.”태호는 자리에 서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감정이라곤 읽히지 않는 시선이었다.산바람이 지나가며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더 차갑게 만들었다. “영이를 데려갈 자격이 있던가?”“그건, 아버지한테도 똑같이 없으시죠. 이곳에 가둘 자격은 더더욱이요.”“말 조심하거라. 가둔 게 아니라, 보호다.”보호?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준호가 실소를 흘렸다.“감시에, 진정제에, 수면유도제에. 아, 방 안에 이상한 기구들도 잔뜩이던데 설마 아버지가 사용하신 건 아니시겠죠.”태호가 잠시 머뭇거렸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등골마저 서늘해졌다. “제발 살던 데로 살거라. 영이한테도 그편이 더 나을 테니까.”바람이 다시 불며, 나뭇잎이 서로를 긁는 소리를 냈다.두 사람 사이엔 더 이상 물러설 자리도, 타협도 없었다.“아뇨, 더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가지 않을 겁니다.”준호가 그대로 뒤를 돌려던 찰나, 태호의 목소리가 어둠 속을 갈랐다.“가족이냐, 영이냐.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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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태호는 잠시 말을 잃은 듯 준호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아들이 아니라 계산에서 벗어난 변수처럼. 그 사이, 준호는 이미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신준호.”낮게 깔린 부름에도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묵묵히 산속으로 걷고, 또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크게 들렸다.그러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새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 심지어 수는 필요 이상이었다.이건, 보호가 아니라 봉쇄임이 분명했다.“비켜.”“죄송합니다. 출입 통제 중입니다.”“꺼지라고.”“죄송합니다.”더는 참을 수 없어 경호원의 멱살을 움켜쥐던 찰나, 무전기 너머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터지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신준호,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해.”그는 곧바로 바지춤에 걸린 무전기를 빼앗아 들고,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그 아이가 원치 않는다.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가.”경호원들이 하나둘 움직였다. 반 걸음씩, 준호를 중심으로 포위가 조여들었다. 꼭 숨 쉴 틈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대표님. 돌아가 주시지요.”무력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이. 이 안에 영이가 있는데, 영이가 잠들어 있는데. 그런데 영이는... 내 동생이다. 부정했던 진실이 뒤늦게 도착한 것처럼,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자꾸만 숨구멍이 꽉 조여드는 기분이었다.천천히 뒤로 물러섰다.한 걸음, 또 한 걸음. 발걸음이 떨어질 때마다 무언가를 떼어내는 기분이었다.나는 또 이대로 도망치는가.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음 수를 생각해야 했다. 감정에 앞서 아무런 준비없이 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럴 시간이 대비한 무언가 증거라도 만들었어야 했는데.차를 세워둔 곳으로 향하자, 이미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준호는 시동을 걸지 못한 채, 핸들 위에 이마를 기댔다. 그리곤 조수석에 놓인 태블릿을 켰다. 화면 속 영이는 여전히 잠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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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손놀림이 뚝 멈췄다. 그냥 묻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런데 자신의 미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고? 영이의 말이 장난일 리 없었다. 그동안 장난 섞인 대화는 단 한 번도 나눠본 적 없었으니까. “안 보여? 나만?”“네...”“다른 사람들은 다 보이잖아.”“네...”이상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모두가 영이에게 미래를 맡겨놓은 듯, 정해진 정답을 받기 위해 지하실을 드나드는 모습은 늘 불편했으니까.“됐어. 오빠 건 몰라도 돼.”영이는 그런 준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엔 안도도, 미안함도 아닌 알 수 없는 표정이 섞여 있었다.“오빠는 무서워하지 않아서 좋아요.”“뭘?”“미래요. 다들 그걸 궁금해하면서도 또 무서워하거든요.”그때만 해도 어렸던 준호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영이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타인과 공유한 걸까.어릴 땐 비밀처럼 지켜오던 집안의 지하실은, 이제는 아버지 지인들의 상담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한글을 공부하던 책상엔 마주 볼 수 있는 의자가 몇 개 더 놓였고, 그 변화는 볼 때마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꼭 아이의 자리에 어린의 자리가 끼어드는 느낌이었다. “안 답답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네. 궁금해하지 말랬어요.”그 덤덤한 대답에 준호는 ‘누가?’라고 묻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발소리는 더 늘었다. 비슷한 시간, 비슷한 차림, 비슷한 질문들.“아이는? 피아노 학원은 계속 보내야 하나?”“진급은 잘 되겠지?”“운전? 운전을 조심하라고? 언제! 왜!”미래를 묻는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더 정확한 답을 알기 위해 스스로를 계측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지내는 대부분의 공간에 시계를 배치했고, 태호의 조언 역시 한몫했다.“핸드폰 화면은 최대한 오래 켜지게 설정하고, 틈만 나면 바라보십시오. 그래야 조심해야 할 일들은 정확도가 높아집니다.”영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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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미래를 본다고.”영이가 고개를 들어 혁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눈을 마주쳤고, 눈 맞춤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유세 장소를 바꾸라고 지시하셨어요. 듣던 남자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어요.”“...”“바뀐 장소에서 누군가 달려들어요. 그 순간엔 분명히 놀라셨는데, 차 안에선 또 활짝 웃으시고요.”소름이 끼쳤다. 선거에 유리하고자 계획한 일들. 일정 변경은 물론 사람을 써 화제 하나를 만들 생각까지.고작 열한 살의 여자아이가 너무도 술술, 아무렇지 않게 흘려내고 있었다. “웃는다라.”“네. 연기가 아주 좋았다고 말씀하시네요.”정확했다. 너무 정확해서 몸이 굳었다.그가 고개를 돌려 태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이 아이는...”“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의심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었고, 그는 깨달았다. 앞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아이임이 분명하다고.“앞으로도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는가.”영이는 고개를 숙였고, 태호가 대답을 대신했다.“조건이 있습니다.”“말해보게.”“전역은 하셨어도, 제 남은 진급은 아직 의원님 손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거래로군.”“맞습니다.”혁도는 다시 영이를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인 채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아이. 마치 자신이 할 일은 끝난다는 듯 입을 앙다문 모습이었다. 신태호의 중장 진급만 힘써준다면, 선거는 물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임이 분명했다. “좋네. 약속하지.”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영이를 바라보는 눈빛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 세 개. 그토록 원하던 중장 진급을 약속받은 태호의 표정은 누구보다 밝았다. “감사합니다. 의원님.”“대신, 틀리면 끝일세.”“이 아이는 틀리지 않습니다.”***집으로 돌아온 준호는 침대에 기대앉아 태블릿 화면만을 바라보았다. 영이가 깨어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았다.푸르스름한 여명 빛이 방안을 물들일 무렵, 화면 속 영이의 손가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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