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나는 공범이었다: Bab 41 - Bab 50

74 Bab

제41화

준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설마 때렸나. 감히 손을 댄 건가.하지만 손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토닥임의 리듬은 그대로였다. 대신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정리되었다.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사생아를 낳은 것도 모자라 위험 속에 방치했다.그것도 긴 세월, 영이의 인생을 부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 가지는 아직 믿고 싶었다.손을 올린 사람이 부디 아버지만큼은 아니길. 그래서 물었다. “누가 때렸어? 한 번? 한 번만 그랬어?”“지금 말해야 해요?”“아니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영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은 아직도 준호의 옷자락을 놓지 못했다.이마는 어깨에 더 깊이 파고들었고, 토닥임 역시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졸려?”“조금요.”“그럼 잠깐만 이러고 있자.”잠시 후, 셔츠를 쥔 손이 스르륵 풀렸고, 꼭 감은 두 눈엔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준호는 조심스레 영이를 안아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준호는 알았다. 무력함은 늘 잠을 불러온다는걸.그래서 이불을 끌어올려 주고, 흐트러진 머리칼을 하나하나 정리해 주었다. “어떡하지? 다.. 전부 다 죽여버리고 싶어. 영아.”***“뭐라? 명의가 신준호라고 했나?” “네. 등기 이전까지 완료되었습니다.”서류를 건네받은 손이 바르르 떨렸다.하지만 신태호는 거칠게 숨을 내쉬긴커녕, 책상을 내려치지도 않았다. 그 침착함이 더 섬뜩했다. 아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 집을 샀다. 그리고 보란 듯이 짐을 싸서 들어갔다.겉으로는 티를 내지 못했지만, 사실은 미칠 노릇이었다. 영이가 동생이라는 거짓말은 오히려 두 사람을 한 지붕 아래로 밀어 넣었다. 가장 피해야 할 형태로 말이다.“신준호.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VIP들은 어떻게 할까요. 오늘도 상담 예약이 잡혀있는데.”“연락부터 돌려. 당분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보류한다고.”집무실 안엔 시계의 초침 소리만 똑딱거렸다.똑, 똑, 똑. 그 소리가 태호의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긴 세월, 공
Baca selengkapnya

제42화

냉장고를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식재료도, 반찬도 아니었다. 가지런히 줄 세워진 페트병이었다.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오자마자 이거부터 버렸어야 했는데. 하나 둘 페트병을 꺼내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뚜껑을 비트는 순간, 영이가 팔뚝을 붙잡았다.“오빠, 그거는요...”“다시는 마시면 안 돼.”손에 힘이 풀리며 잡고 있던 팔을 놓았다.병을 기울이자, 배수구로 물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영이는 불안했다.오랜 세월 하루도 빠짐없이 마시던 건데 갑자기 왜 안 된다는 걸까. 표정은 왜 저리도 화가 나 있는 걸까.“그거 혹시... 나쁜 거예요?”맞다는 말이 섣불리 흘러나오지 못했다. 아버지가 한 행동임을 알았기에, 입이 잠시 다물렸다. 하나 둘, 페트병이 완전히 비워지고 나서야 영이의 눈을 바라보았다.“그냥. 필요 없는 거야.”“왜요?”“이제 오빠가 있잖아.”영이는 한참을 서 있다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빠는 제가 안 예뻐요?"준호가 헛 숨을 삼켰다.“예쁘지,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그런데 왜 표현을 안 해줘요?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이번만큼은 물어야했다. 그 표현이라는 방법에 대해서.“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데?”“오빠는 어른인데 왜 몰라요?”“사람마다 방법이 달라서 그래. 영이는 그동안 어땠는데?”이번에도 영이의 눈길이 침실쪽을 가리켰다.“침대에서요. 옷은 하나도 입으면 안 돼요. 간지럽고, 숨이 차고, 땀이 많이 나는데 기분은 좋아요. 제가 보여드릴까요?”젠장할, 아니야. 이런 말은 영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안 되는 말이란 말이야.“아니야, 오빠는 괜찮아. 근데 영아, 혹시... 중장님도 영이를 예뻐해줬어?”“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날만요. 바나나 모양으로 된 장난감도 많이 사주셨어요. 그걸 쓰는 날이면 저는 기절을 하기도 했는데, 중장님은 칭찬을 해주셨어요. 예쁨을 받는 모습도 예쁘다고요.”준호의 몸이 휘청거렸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영이를 건드렸구나. 믿고 싶지
Baca selengkapnya

제43화

밥을 먹고 난 뒤, 준호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화면에서 큰 소리가 터지자 영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어릴 때부터 TV라곤 본 적이 없었으니까. 볼륨을 살짝 낮추고 채널을 돌리자, 화면에선 귀여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다녔다.영이에게 꽤 어울리는 화면이었다. “잠깐 보고 있어. 오빠 설거지하고 올게.”대답이 없었다. 영이는 이미 소파에 바짝 붙어 앉아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었으니까.싱크대에서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접시가 맞부딪히는 소리, 수세미가 문지르는 사각거림.그 사이로 TV에서 들려오는 강아지 소리가 섞여들었다. 준호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거실을 확인했다.꼼짝도 하지 않은 채 화면에 집중한 모습.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눈은 깜빡이는 것도 잊은 듯했다.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자, 화면 속 강아지가 주인에게 안겼다.“강아지 귀엽지? 백구인가 봐.”“혹시 이게... 텔레비전이에요?”“응, 아네?”“책에서 봤어요. 엄청 신기해요.”눈동자가 화면의 움직임을 따라 좌우로 바쁘게 움직였다.준호는 소파 팔걸이에 앉아 영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책에는 뭐라고 쓰여있어?"“세상을 보여준댔어요. 감동도 준댔고요. 아, 바보상자라고도 했어요.”“도대체 몇 년 전 책을 읽은 거야.”준호의 말에 웃음이 섞였지만, 영이는 진지했다. “동화책보다 더 귀여워요. 쌍꺼풀도 있어요.”화면 속 강아지가 풀밭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지자, 영이의 입에서 작은 탄식 새어 나왔다.“아... 괜찮을까.”“괜찮아. 다시 일어나잖아.”강아지는 정말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꼬리를 흔들며 풀밭을 달렸다.영이가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고 가는 대화도, 펼쳐지는 상황도. 어른들의 모습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 영이 곧 안경 쓰겠네.”“아, 많이 보면 눈 나빠지는 거. 그것도 알아요.”영이는 결국 한참을 T
Baca selengkapnya

제44화

새벽녘, 집 안에 푸르스름한 빛이 가득 찰 무렵. 잠에서 깨어난 준호는 눈앞의 광경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너무도 가까운 곳에 영이가 있었다. 그것도 옆에 누워 몸을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일단은 이불부터 덮어주었다. 그 기척에 영이가 살짝 몸을 움직여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젠장,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언제 깬 거지? 혹시 나쁜 꿈이라도 꾼 건가. 그래서 익숙한 온기를 찾아온 건가.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 큰 남매는 같이 자지 않는다.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 걸까.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일단 거리가 더 좁혀지지 않도록 선을 지켰다. 심장이 제 속도를 찾을 때까지 몇 번이나 호흡을 반복해야 했다.영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마치 여기까지 오는 데에 온 힘을 다 써버린 사람처럼.반대로 준호는 방안이 밝아질 때까지 같은 자세로 머물렀다. 선은 지키되, 온기는 남겨둔 채로. AM 8 : 00.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지만, 알람을 끄지 않았다. 영이가 깨야 하니까. 일어날 시간이니까.규칙적인 알람음에 영이의 눈꺼풀이 떨렸다. 이마가 찌푸려지고 숨이 한 박자 어긋났다. 완전히 눈을 떴을 때, 준호는 이미 상반신을 일으킨 상태였다. “오빠...”“일어날 시간이야.”어제와 달리, 조금은 무뚝뚝한 목소리였다.영이는 그 변화를 느꼈는지, 눈치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화 났어요...?”“아니, 화는 안 났어. 근데 영아.”“네”“오빠 방에는 왜 온거야? 꿈꿨어? 잠이 안 왔어?”영이가 고개를 저었다.“목이 말라서 깼는데, 오빠랑 같이 자고 싶었어요. 예쁨도 받고 싶고요...”준호는 그 말을 들자마자 눈높이를 맞추듯 자세를 낮췄다. 예쁨이라는 그 아름다운 단어가 자꾸만 불편해졌고, 확실한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그랬구나. 근데, 오빠랑 같이 자는 건 안 돼.”“왜요...?”“우리는 어른이니까. 지켜야 하는 선이 있어.”“어른은 같이 자면 안 되는
Baca selengkapnya

제45화

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쉽사리 숨을 고르지 못했다.이대로 멈춰 있고 싶었다.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동생인데 뭐 어때? 이 정도는 충분히 해도 되는 거잖아.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괜찮아?”“네.”“머리 말리고 있어. 오빠도 씻고 올게.”“네.”간신히 정신을 다잡고 욕실 문을 닫았다. 가슴에 남은 영이의 체온이 가시지 않았다. 분명 물처럼 흘러가야 할 온기인데, 짧은 순간이 꼭 기억처럼 달라붙었다. 심장이 뛴 이유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다.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이러면 안 된다. 이건 뭔가, 위험한 방향이다. 영이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야. 그래서 심장이 뛰었던 거야.그 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위로와 욕심은 다르다. 안전과 의존은 다르다.‘정신 차려.’나는 보호자다. 오빠다. 마지막으로 그 결심을 되뇌며 수건으로 머리를 거칠게 털어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주방으로 향하던 순간, 도어락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나가자 자연스레 현관문이 열렸고, 중년의 여성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누, 누구세요...?”“집주인이요. 그쪽은 누구신데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오시는 겁니까?”여자는 당황한 얼굴로 준호를 올려다보다가, 급히 집 안을 살폈다.“영이 아가씨는요? 네?”그제야 손에 들린 장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아, 이 여자구나.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해 집안일을 봐준다는 그 이모님.“이야기를 못 들으신 모양인데요, 앞으로는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청소든, 식사든, 관리든. 이제는 다 제가 합니다.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시죠.”“그, 그럼 잠시만요...”여자가 장바구니 안을 급히 뒤적였다. 봉지째 꺼내 든 건 사과였고, 잘 닦아 놓은 듯 반짝반짝 윤이 났다. “아가씨가 유독 사과를 좋아하셔서요.”준호는 받지 않았다. “마음은 감사드립니다.”“네...?”“안녕히 가세요.”여자는 뭐
Baca selengkapnya

제46화

시간이 제법 흘러 문이 열렸을 때, 준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영이를 향해 다가갔다.후드티 소매는 손끝을 완전히 덮고 있었고, 바지는 바닥을 질질 끌었다. 사람이 옷에 완전히 파묻힌 꼴. 그나마 허리는 잘 묶은 것 같아 그 앞에 바짝 쪼그려앉았다.“화 풀렸어요...?”“화 안 났어. 잠깐만, 바지만 좀 접자.”바짓단을 몇 번 더 접어올리고 마지막으로 야상을 여며주었다. “다 됐다. 장보고, 예쁜 옷도 사자.”영이의 손이 야상 자락을 꼭 쥐었다. 불안인지, 기대인지 모를 표정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현관 앞에 나란히 섰을 때, 이번엔 신발이 문제였다.신발장 안에는 고작 낡은 슬리퍼 하나. 그게 전부였으니까.“영아, 양말 하나만 더 신자.”“양말을 두 개나 신어요? 그래도 돼요?”“아직 추워. 얼른.”결국 양말을 한 겹 더 신긴 뒤 집을 나섰다.하지만 마당까진 곧잘 따라오던 영이가 대문 앞에서 뚝, 발걸음을 멈췄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손을 내밀었다.“괜찮아. 가자.”손끝이 허공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발끝이 슬리퍼 안에서 움찔거렸다.한 발만 내디디면 되는 거리였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자동차도 태워줄게.”“자동차요...?”“응. 자동차.”그제야 두 손이 맞닿았고, 대문에서 벗어나 산길을 걸었다. 영이는 걷는 내내 손에 힘을 꽉 주었고, 고개를 자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에도 시선이 따라갔다.“여기까지도 안 나와 봤어?”“네. 대문을 나간 건, 그날이 처음이었어요.”“그날?”“오빠가 처음 온 날이요.”아, 십 년 만에 영이를 찾았던 날. 애틋한 재회는커녕 몇 마디 말도 제대로 나누지도 못한 날.그날의 영이는 도망치기 바빴다, 피하고 숨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 그 사실이 기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나오고 싶으면 언제든 나오면 돼.”“혼자는 싫어요. 오빠랑 같이.”“그래, 오빠랑 같이.”잠시 후, 주차된 차를 보았을
Baca selengkapnya

제47화

영이는 준호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운전에 집중한 얼굴, 핸들을 쥔 손. 오빠를 만난 뒤, 자꾸만 마음이 몽글거린다.옛날의 그 집에서도 그랬었는데. 그때보다 더 간지럽고 분명하게 생글거린다.‘오빠가 있으면 다 이런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중장님은 왜 그랬을까. 왜 자신은 오빠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수도 없이 경고했을까. 묻고 싶었다.하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은 왠지 그 물음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오빠. 우리 오늘 사과 사요. 빨간 사과요.”“응. 복숭아 맛 젤리도.”***차가 대형 마트 주차장에 멈춰 섰다. 사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선택한 곳.준호는 몸을 틀어 영이의 안전벨트를 풀어주며 한 가지를 당부했다.“영아, 영이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 그게 당연한 거고. 그러니까 뭐가 보이든,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 없어.”“혹시 다치면요? 안 좋은 일이 생기면요?”“그건 그 사람들이 이겨내야 할 개인적인 문제야. 오빠 말대로 할 수 있지?”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어릴 때랑 달라요. 이제는 집중해야 보여요. 집중하지 않으면 돼요.”“다행이다. 가자.”차 문이 열리자, 시끄러운 소음과 밝은 빛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준호는 재촉하지 않았다. 말없이 앞에 서서 기다렸다가, 발을 내딛는 순간 어깨를 감싸안았다.“먹고 싶은 거, 필요한 거 다 사자.”“네.”카트를 끄는 소리와 함께 형광등이 하나둘씩 머리 위를 지나갔다. 영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일부러 진열대만 쳐다봤다.라면, 우유, 쌀. 이름이 붙은 것들.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물건들.“오빠, 사과요.”“응. 영이가 골라서 넣어.”과일 코너 앞, 봉지를 하나 들었다가 내려놓고 또 다른 걸 집어 들었다. 손에 잡히는 무게, 표면의 매끈함. 최대한 예쁜 걸 골라 담았다.카트는 빠르게 채워졌다. 당분간 해먹을 식재료와 생활용품들.한 사람이 더 늘어났을 뿐인데 생각보다 양이 상당했다. 그러
Baca selengkapnya

제48화

집에 돌아오자, 해가 이미 기울어 있었다.주방 테이블 위, 장바구니와 쇼핑백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사과 봉지, 우유, 쌀, 각종 비닐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영이의 시선이 따라왔다. 물건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 무언가 새롭게 채워지는 의식 같아서.“이건 냉장고. 이건 팬트리.”준호를 따라 움직이는 손놀림은 서툴렀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고, 새 옷들은 탭을 다 제거하고 한데 모았다. “영아, 세탁기 돌릴 줄 알아?”“네. 알아요.”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탁실로 향했다. 밝은색, 어두운색. 옷을 분류하는 손길이 꽤나 익숙했다.그러고는 세제를 계량컵에 따르며 말했다.“이 정도면 돼요.”“잘하네. 누가 알려줬어?”“이모님이요.”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따뜻한 음식이 차려졌다.잘 구워진 스테이크와 따뜻한 수프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마지막으로 냉장고 안쪽에 숨겨둔 작은 미니케이크 하나를 꺼내 초를 꽂았다.영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이거... 생일 케이크...”“응, 오빠가 우리 영이 생일 만들어주려고.”“생일은 태어난 날이잖아요. 저는 그런 거 모르는데요...”준호가 초에 불을 붙이며 작게 웃었다.“괜찮아, 의미 있는 날로 만들면 돼.”“그럼, 어제로 할래요.”“어제?”“네. 오빠가 데리러 온 날이요.”초에 불이 붙고, 작은 불꽃이 흔들렸다. 그렇게 영이의 생일은 2월 28일로 정해졌다. “축하해, 영아. 생일도, 그리고... 늦었지만, 어른이 된 것도.”“어른...”“얼른 소원 빌고 초 불자.”영이는 어른이 됐다는 걸 왜 축하해 주는지 몰랐지만, 두 손을 모아 눈을 꼭 감았다. ‘어른이면 이제 혼자가 아닌 건가요.’그 생각을 소원처럼 마음속으로 흘려보냈다. 불꽃이 꺼지고,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그 사이로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소원 빌었어?”“네.”“꼭 이루어질 거야.”오늘도 영이는 한참 동안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리모컨을 쥔 손이 힘없이 늘어지자 침대 위에 눕혀주고, 고르게 이어지는 숨결을
Baca selengkapnya

제49화

영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일주일에 적으면 두 번, 많으면 다섯 번.서재에서 한 시간쯤 이루어지는 상담이 끝나면 누군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연스레 욕실로 향했다.그때마다 늘 신태호가 있었다.신태호는 그들에게 하얀 봉투를 건네받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고,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영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가거나 자신 역시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우리 영이, 오늘은 소리가 죽여주던데. 기분이 유난히 좋았나 봐?"기진맥진한 영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저 벌거벗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방금 막 받아낸 누군가의 정액이 허벅지 사이로 끈적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그 모습을 집요하게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바지 버클을 풀더니, 영이의 다리 사이에 비집고 들어 앉았다."중... 중장님.... 저... 너무 힘이 없어서...""예쁨은 줄 때 받는 거야. 거절은 뭐라고 그랬지?""상...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힘이 빠진 손에 깍지를 끼우고, 허리를 움직이는 신태호. 그의 모습은 이미 인두겁을 뒤집어 쓴 악마였다.죄책감은 커녕,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과 신음. "읏, 하... 하.... 이상해.. 이상해요...""지금 영이 구멍이 흥분한 상태라 그래. 기분은 좋잖아? 응?""하으으응.... 으응.... 아.... 아아..."신태호의 영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준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묵직하고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증오. 용서라는 단어는 진작에 머릿속을 떠났는데,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 미친듯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이성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기어가듯 주방으로 향해서는 비닐봉투 하나를 입에 대고는 헉헉거렸다. "하아... 하아...."뺨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한참을 맥없이 앉아있던 중,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 하나.저 더러운 새끼들이 아무렇지 않게 샤워를 하고, 영이의 침실로 향하는 장면.그
Baca selengkapnya

제50화

영이는 고개를 숙인 채, 한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신태호는 그런 영이를 향해 바짝 몸을 붙였다.“유영. 아직도 이렇게 유도리가 없어.”“...”“궁금한 것만 말해주는 게 네 역할이더냐? 이렇게 또 VIP를 잃어?”잠시 침묵하던 영이가 고개를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중장님... 저요... 저.... 상담하기 싫어요...”찰싹─순식간이었다. 두꺼운 손바닥이 뺨을 올려쳤다. “또 그딴 말이 튀어나와. 또.”영이는 벽에 기대선 채, 손바닥으로 붉어진 뺨을 눌렀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그 말이 튀어나오는 날엔, 먹여주고 재워주는 건 물론 예쁨을 주는 것도 영영 끝이다.”영이의 손목을 붙잡고 망설임없이 침실로 향하는 발걸음.인상을 쓰면서도 군복 단추를 풀어내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재생이 멈췄다.준호는 마우스를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 속 정적이 그대로 방 안에 내려앉았다.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지고, 턱이 굳게 잠긴 건 순간일 뿐.“하아.... 씨발.....”이 정도면 직원들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파일들을 정리했을까.저런 아버지를 둔 나라는 존재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고작 침실 CCTV만 잠그만 되는 일이 아니었거늘.같은 파일에 담긴 다른 영상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날짜만 바뀌었을 뿐, 대부분 구조는 같았다. 의자에 등을 붙은 채 눈을 감았다.화면 속 장면들이 눈꺼풀 안쪽에 겹쳐졌다.모진 말을 듣고, 아무리 위협을 받아도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상담자’ 역할을 수행하는 영이의 모습.그러고 나면 침실로 향해 그들의 욕정을 받아내던 처량하고 지독하게 무력한 모습.혀에서는 자꾸만 쓴맛이 올라왔다. 그동안 버텨온 밤의 수가 지금의 평온을 만들었다고 치부하기엔, 그 시간은 너무 길었고 강도는 비참했다.평온이 아니라 마비. 견딘 게 아니라, 닳아
Baca selengkapnya
Sebelumnya
1
...
345678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