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박 회장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도면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공정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다이아그리드로 철골 물량을 줄이고, 공기 역학 디자인으로 구조비를 아끼고, 콜드 벤딩으로 마감비를 줄인다. 결과적으로 태영건설의 사각형 타워와 공사비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 디자인은 압도적이다.'
“...자네, 괴물인가?”
박 회장이 허탈한 듯 웃었다.
“이런 계산을 혼자서 다 했다고? 구조 기술사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몇 달은 걸릴 계산인데?”
“혼자가 아닙니다. 제 뒤에는 천재적인 파트너들이 있으니까요.”
나는 뒤에 서 있던 지현 누나를 가리켰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내 손짓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그 중심에는 데이비드 실버먼, 그리고 그의 뒤로 '뉴욕 건축 위원회'의 배지를 단 관리들이 서 있었다."강진호!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공중권을 불법적으로 행사해서 건물의 높이를 무단으로 올리다니! 이건 명백한 건축법 위반이야!"실버먼의 얼굴은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신이 헐값에 판 땅과 공중권이 일주일 만에 가치가 천 배로 뛰었으니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위반이라뇨. 회장님께 직접 산 공중권입니다. 뉴욕시 조례 74-711조에 따르면, 역사적 보존 건물을 리모델링할 경우 인근 대지의 공중권을 합산해 높이를 올릴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죠. 전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했을 뿐입니다.""이 건방진 놈! 위원회에서 허가 안 해주면 그만이야! 이 건물, 오늘부로 공사 중단 명령이다!"위원회 관리들이 공사 중단 표지판을 꺼내 들었다. 전형적인 권력의 갑질이었다. 자본의 논리로 해결되지 않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나는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가리켰다."그전에 저걸 좀 보시죠."실버먼과 관리들이 창밖을 보았다. 실버먼 타워 전면 전광판에는 실시간으로 너튜브 라이브 방송이 중계되고 있었다.[실시간: 월스트리트의 부패한 카르텔, 유망한 친환경 건축을 어떻게 말살하는가?]시청자 수 500만 명."지금 이 대화,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뉴욕 시민들이 '가장 조용하고 깨끗한 건물'을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어
나는 공항 밖에서 대기 중이던 검은색 캐딜락에 올랐다. 옆자리에는 이미 뉴욕 지사 세팅을 위해 먼저 도착해 있던 한재이가 날카로운 눈매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진호, 제정신이야? 아부다비에서 번 돈 절반을 여기 쏟아붓겠다고? 월스트리트의 늑대들이 동양에서 온 새파란 건축가한테 순순히 땅을 내줄 것 같아?""늑대들이 땅을 내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땅 자체를 흔들어버리면 돼. 재이 씨, 내가 찍어둔 그 건물, 현재 상황은 어때?"한재이가 한숨을 내쉬며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렸다."월스트리트 40번지 근처, '실버먼 타워'. 80년 된 노후 건물이야. 층고는 낮고, 유지비는 천문학적이지. 결정적으로 5년 전부터 원인 모를 진동과 소음 때문에 입주사들이 다 빠져나갔어. 지금은 유령 건물이나 다름없어.소유주는 '골드 캐피탈'. 유대계 자본의 핵심인 데이비드 실버먼이 쥐고 있지."『시스템: 「부동산의 제왕(Lv.1)」이 뉴욕 맨해튼 지역을 스캔합니다.』『대상: 실버먼 타워 (Silverman Tower)』『현재 가치: F등급 (유지비 과다, 공실률 95%)』『특이 사항: 초고주파 공명 현상으로 인한 거주 불능 판정. 해체 비용이 부지 가치를 상회함.』나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데이비드 실버먼. 전생에서 그는 이 건물을 처리하지 못해 파산 직전까지 몰렸었지.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 건물의 진동이 단순한 설계 결함이 아니라, 주변 마천루들이 만들어낸 바람의 길이 좁은 틈새에서 부딪히며 생기는 '에오리안 하프(Aeolian Harp)' 현상의 변종이라는 것을.'
"이서현 상무에게 전해라. 덕분에 시청률 잘 나왔다고. 홍보비는 따로 청구하지 않겠다고 말이야.""이... 악마 같은 새끼...""악마? 아니, 나는 건축가야. 무너질 것 같은 세상을 바로 세우는 사람이지."나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 놈들의 장비와 자백을 모두 영상으로 남겼다. 이 영상은 내일 아침 전 세계 금융 시장을 강타할 핵폭탄이 될 것이다.***사건이 정리되고, 모래 폭풍도 조금씩 잦아들었다.나는 타워 1층의 메인 홀로 돌아왔다. 지현 누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진호야!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멀쩡해요. 누나, 냉각 시스템은?""어... 이상하게 놈들이 침입했는데도 시스템 수치는 더 안정됐어. 네가 바람의 탑 흡입구를 개방한 덕분에 지열 냉각 효율이 순간적으로 30%나 올라갔더라고. 이거 진짜 대단한 데이터야!"지현 누나는 공포 속에서도 공학적 성과를 찾아내는 천생 기술자였다."다행이네요. 내일 테스트는 완벽하겠어요."나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피로가 몰려왔지만, 머릿속은 다음 수로 가득했다.이서현은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렸다. 이 영상이 공개되면 그녀는 대성그룹에서도 버려질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꼬리 자르기에 능한 사람이니까.하지만 내 진짜 목표는 이서현이 아니다.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통해 대성그룹이라는 성벽 자체를 허물고, 나
인간이 자연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그리고 그 중심에 선 강진호라는 이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나는 밤바람을 맞으며 다음 수를 구상했다.이서현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가장 위험한 법이다. 그녀가 던질 마지막 발악은 무엇일까?생각에 잠긴 내 눈앞에,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수상한 불빛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동수, 서쪽 4번 구역. 무단 침입자 발생. 즉시 대응해."나의 명령과 함께, 사막의 적막을 깨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래의 자객들휘이이잉-!사막의 밤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 낮 동안의 열기를 머금었던 대지는 해가 지자마자 차갑게 식어버렸고, 그 온도 차가 만들어낸 기압의 소용돌이는 거대한 모래바람, 하무(Hammu)를 불러왔다.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누런 모래의 장막이 공사 현장을 집어삼켰다. 가설 전등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쇠파이프들이 부딪치는 소리는 마치 비명처럼 들려왔다.나는 타워 최상층 지휘 본부의 모니터를 응시했다. 열화상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은 온통 붉고 노란 노이즈로 가득했다. 하지만 내 망막 위에 떠오른 시스템 창은 달랐다.『시스템: 「기후 제어 시뮬레이션」이 외부 환경의 위협을 감지했습니다.』『식별되지
왕세자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수조 원이 더 들어가는 무리한 투자처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 눈에 담긴 확신을 읽었다."좋습니다. 강 대표를 믿어보죠. 자재 운송 비용과 활주로 건설 예산, 즉시 승인하겠습니다."***다음 날, 제벨 알리 항구 근처의 고급 요트.이서현 상무는 샴페인을 마시며 여유롭게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진호, 이제 어쩔 테냐? 설계가 아무리 뛰어나도 자재가 없으면 그건 그냥 모래성일 뿐이야. 일주일만 더 버티면 아랍 왕실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겠지."그녀의 옆에서 김영민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아부했다."상무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항만 노조까지 매수해두었으니 최소 한 달은 꼼짝 못 할 겁니다. 강진호는 아마 지금쯤 왕궁 바닥에 엎드려 빌고 있겠죠."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쿠우우웅-이서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부다비 왕실 문장이 새겨진 거대한 수송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항구를 지나 현장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저게 뭐야? 군사 훈련인가?"이서현의 의문은 곧바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깨졌다.-상무님! 큰일 났습니다! 강진호가 항구를 포기했습니다!"포기해? 그럼 공사를 중단했다는 거야?"-아뇨! 왕실 수송기를 동원해서 자재를 공중 보급하고 있습니다! 현장 바로 옆에 임시 활주로를 하루 만에
정적이 흐르는 사막 위.라시드 왕세자가 천천히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놀랍군요. 정말 놀라워요. 강 대표, 당신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사막의 영혼을 이해하고 있군요."라시드 왕세자가 내 손을 꽉 잡았다."마스다르 2.0의 총괄 설계자로 당신을 임명하겠습니다. 밴스 경께서는 기술 고문으로 협력해 주시겠습니까?"줄리안 밴스는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의 타버린 모형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장의 오만이 꺾이는 순간이었다."내가... 졌군. 자네의 그 나선형 타워, 확실히 흥미로워. 내 기술력이 자네의 아이디어를 보조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영광이겠지."그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역시 거장은 거장이었다.***낙찰 성공.전 세계 건설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대규모 프로젝트가 내 손에 들어왔다.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이서현 상무의 시선이 매서웠다.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하며 자리를 떴다.'이걸로 끝날 여자가 아니지. 사막의 건설은 설계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이제 물자 보급과 인력 관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암투가 시작되겠군.'나는 하늘로 솟구친 나의 나선형 타워 모형을 바라보았다.이제 사막 위에 기적을 세울 시간이었다.『시스템: 퀘스트 「사막의 오아시스」 성공!』『보상: 아부다비 왕실의 전폭적 지지 확보, 명성도 +20
나는 손을 뻗어, 내가 한 달 동안 밤새워 만든 모형의 지붕을 잡았다.우지끈-!“야! 강진호! 너 뭐 해?!”옆에 서 있던 동기가 비명을 질렀다. 스튜디오 안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최무진의 시선도, 김 교수의 당황한 눈빛도 느껴졌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형을 짓이겨버렸다.바사삭, 툭.정성스럽게 붙인 창문이 떨어져 나가고, 기둥이 꺾였다.“미쳤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달려온 조교가 내 팔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가볍게 뿌리쳤다.“쓰레기를 치우는 중입니다.”내 목소리는 차분했다. 스튜디오가 찬물을 끼얹은 듯
* 무너진 탑, 그리고 다시 쌓아 올리는 기초쿠르르릉-!세상이 뒤집히는 소리였다.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내 인생의 역작이라 불렸던 ‘센트럴 팰리스’의 B동이 먼지 구름 속으로 주저앉았다. 콘크리트가 비명을 지르고,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강진호 소장님!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현장 관리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내 눈앞에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3년.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설계한 건물이, 완공을 코앞에 두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백 회장의 눈이 커졌다. 주변에 있던 덩치들도 입을 딱 벌렸다.단순히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서의 지분을 요구한 것이다.'건방진 놈. 새파랗게 어린놈이.'“이 건물, 이대로 두면 똥값 됩니다. 하지만 제가 손대면 강남 랜드마크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선택하시죠. 평생 귀신 나오는 건물 주인으로 남으실지, 아니면 저랑 손잡고 돈방석에 앉으실지.”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 회장은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녀도 급했다. 이미 들어간 돈이 수십억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좋다. 30
나는 국물을 들이키며 눈을 번뜩였다.당장 큰돈을 만질 방법이 필요했다.주식? 비트코인?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아직 대중화되기도 전이고, 주식으로 큰돈을 불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나는 지금 당장 현금이, 그것도 억 단위의 현금이 필요했다. 그래야 곧 발표될 강남 개발 계획에 숟가락이라도 얹을 수 있었다.내 전공을 살리면서 단기간에 목돈을 챙길 방법.기억을 더듬었다. 2013년 겨울. 대한민국 건축 업계와 부동산 시장에 돌았던 흉흉한 소문들. 그리고 내가 실무에서 들었던 수많은 비사(秘史)들.뇌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