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선우는 그 날 이준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 다음날도 여전히 선우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은은 선우에게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사랑하는 엄마를 잘 보내드리기 위해 엄마와의 이별에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
선우도 더 이상 나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나은은, 모든 장례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흐느낌 한 번 없이 꾸역꾸역 참아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만큼은 제 힘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으나, 모든 소리를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켜내며 버텨냈다.
<안세희 전 회장이 오늘 내일 한다던데.. 저세상 가면, 입양한 딸은 어떻게 되는 거야?>
<끈 떨어진 뒤웅박이지.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냉정한데..>
우연히 들은 기업가 사모들의 대화에 나은은 두렵기 보다 쓸쓸했다.
4살부터 26살인 지금까지 끊임 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입양 딸".
그런 딸이 혹시나 상처 받을까 봐 더 많이 사랑해 주고 표현해 주며, 내 딸이 최고라고 해 주던 부모님.
넌 내가 끝까지 책임질 거라며, 두려워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던 사촌오빠.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의 진심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듯 싶었다.
그래서 그랬다.
엄마의 마지막 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으면 해서...
뒤에서 또 자신에 대해 이런 저런 하는 얘기들을 엄마가 듣지 않았으면 해서...
***
엄마가 돌아가시고 사흘 째.
나은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질 못했다.
첫 날 엄마 방에 들어가 협탁 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는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흐느낌에 결국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아빠, 엄마, 어린 나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가족 사진 안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이 여전히 함께 웃고 있었다.
"...나 혼자...어떻게 살라고...흐흐흑...엄마...으..."
*
그 시간 아론리빙 본사, 회장 집무실에는 선우와 이준이 불려와 안서후 회장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은이를 솔의나라(아론 화장품) 전략기획팀 과장으로 승진 시킬 생각이야."
"그럼, 나은이한테 언제 쫌 솔의나라 맡기실 생각이세요?"
"6년 후로 보고 있다."
선우와 이준이 고갤 끄덕였다.
솔의나라는 안세희 전 회장이 오래도록 애착을 갖고 키워온 브랜드였다.
회장이 되어 본사로 출근할 때에도, 솔의 나라에 집무실을 따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끝까지 놓지 못했다.
나은이 졸업 후 처음 출근을 희망한 곳도 솔의나라였고, 안세희 전 회장 또한 평소 자신의 딸이 솔의나라를 맡아주길 바라왔다.
"선우는, 1월 말에 들어올 계획이었잖아. 다시 나갔다 올 생각이야?"
"아니요 회장님. 부모님께 부고 소식 듣고, 그날 바로 짐 다 부치고 출발 했습니다."
"그래... 그럼, 필요한 준비는 다 된 거야?"
"네. 물론입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다. 건강은... 괜찮고?"
선우는 단단한 눈빛으로 안서후 회장을 바라보았다.
"네. 덕분에 완치 판정까지 완벽하게 받고 들어왔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이준이 선우의 어깨를 툭! 치며 미소를 지었다.
Drrrrr Drrrrrr
그 때, 이준의 휴대전화가 울려왔고, 발신자를 확인한 이준이 놀란 듯 말했다.
"어? 나은이네 송집사님 인데요?"
연초라 밀린 업무들을 쳐 내느라 정신이 없었던 이준은, 장례식 다음 날부터 나은에게 간간이 연락을 했지만, 그 때마다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을 안심시키던 나은이었다.
내일 쯤 방문해 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걸려온 송집사의 전화에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안이준 입니다."
-저, 송집사 입니다 이사님.-
"네 송집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나은 아가씨가 걱정 되서 고민하다가 연락 드렸습니다.-
통화를 마무리한 이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선우도 함께 가겠다며 따라 나섰다.
이준의 차량에 함께 올라탄 두 사람은 걱정스러움에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숨만 쉬었다.
그러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이준이었다.
"후회 되지 않아?"
선우는 이준의 질문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후회...해..."
"...."
"그런데, 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깊은 한숨을 쉬어낸 이준이, 선우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
"나은이가 3일 째 방 안에만 있다고요?"
급한 마음에 대문에서 부터 뛰어 들어간 두 사람을 송집사와 사용인들이 맞았다.
"네, 3일 동안 식사도 안 하시고...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어요 이사님."
장례식장에서도 이준이 끌고 가 강제로 먹여야만 몇 술 뜨던 나은 이었기에 그 후로도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가 들어가 볼게요."
이준이 나은의 방 쪽으로 몸을 틀자, 송집사가 이준을 붙잡았다.
"이사님. 그 쪽이 아니라... 전 회장님 방이요."
머리를 한 대 얹어 맞은 듯 멍하게 송집사를 바라보던 선우와,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는 이준이 천천히 안세희의 방으로 걸어갔다.
이준이 방문에 손을 가져가려는 순간.
-흐윽...흑...-
방 안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에 일순 몸이 멈추고 말았다.
"3일 동안... 저렇게 서럽게 울기만..."
마음이 아픈 송집사는 말 끝을 흐리며 눈물을 닦아 냈고, 손에 힘이 풀린 이준은 손잡이에 가져갔던 손을 내려놓았다.
문 옆, 벽에 기대 고갤 들고, 시선을 천장에 가져간 선우의 목울대가 오르내린다.
주륵.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눈물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장례식장에서는 그렇게 꾹꾹 참아내기만 하던 나은이, 제 엄마의 방에서 며칠 째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두 사람은, 가만히 문 옆에 서서 나은이 진정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누구도 그러자고 먼저 말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나이가 나보다 많으니까, 편하게 조카 오빠라 불러. 발음 때문에 간혹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긴 하지만"언제부터 와있었는지, 나은의 주위에 소식을 들은 같은 반 여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아, 그러네... 조카 발음 잘해야겠다"순간, 눈을 굴려 주위를 둘러본 나은은 기겁을 했다."헉""안이준 선배랑 친척이야?""와.. 어쩐지 나은이 너 외모도 심상치 않더라니."이건 또 무슨 말? 나랑 안이준은 피가 섞이지도 않았는 걸?.하지만, 이런 말은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그럼, 안이준 선배는 너한테 뭐라고 불러?"여기저기서 질문 세례가 터져 나왔고, 나은은 처음으로 오빠들에게 아는 체 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당고모...라고도 하고, 보통 때는 그냥 나은이라고...""그러고 보니까, 나은이 너도 안씨지? 안이준, 안나은."점점 난감해지는 분위기를 알아챈 유림이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인지한 듯 몸을 일으켜 큰 소리로 말했다."그대들!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가시지? 이러다 우리 나은이 돌아가시겠다! 가 이제 훠이~ 훠이~"그 모습에 나은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주말 오전,침대 위에는 나은이 펼쳐 놓은 옷들로 인해 앉을 자리도 없어 보였다.옷을 몇 벌 째 갈아입고 있는 중인지...똑똑"네."나은의 목소리에 세희가 문을 열고 들어와 눈을 키웠다."아직도 못 골랐어?""응... 뭐 입지?""드레스룸에 예쁜 원피스 많잖아.""근데 놀이공원 갈 거라, 편한 옷 입어야 돼. 편한데 예쁜 거.. 엄마가 좀 골라 주라."잔뜩 휘어진 눈으로 미소를 짓던 세희가 청바지 하나와, 크롭 스타일 티셔츠, 길지 않은 재킷을 골라 내어 주었다."와! 역시 우리 엄마 센스! 자리가 길어 보여 이 청바지."그 때, 문 밖에서 도련님들이 도착했다는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희가 먼저 방을 나서고, 얼른 옷을 갈아입은 나은은 야무지게 머리를 묶고, 작은 크로스 백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고3인데 나은이 챙기느라 공
[안나은 17살]사립 중학교에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준과 선우를 따라 나은도 결국 오빠들이 다니는 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입학 첫 날.여러 벌 걸려 있는 똑같은 교복 중, 한 세트를 꺼내 입고 몇 번이나 거울 앞을 얼쩡거렸다.새로운 학교 생활의 설렘 보다 나은을 더욱 들뜨게 하는 것은..."기다려 남선우! 내가 간다."책장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소방차 장난감과, 경찰차 장난감을 바라보고 서서 경찰차 장난감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 때리고, 예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책가방까지 야무지게 메고 방문을 나서자 모친 세희가 환한 얼굴로 교복 입은 나은을 향해 걸어 온다."안 떨려?""엄마 나 무진장 떨려~ 근데 신나!.""호호 학교에서 오빠들 만나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진 마? 고3이라 둘 다 정신 없을 거야.""네~ 걱정 마요. 갔다 올게!."제 엄마를 꼭 한 번 끌어 안고는 잽싸게 현관 쪽으로 뛰어 나가는 나은의 뒤를 바라보며 세희가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아는 친구라곤 하나도 없었던 나은이었지만, 등교와 동시에 특유의 해맑음으로 친구를 2명이나 사귀었다."그런데 고3 교실은 어디야?""여기 3층. 우리 위에 위에."김유림이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말했다."아...""근데, 등교시간이나 점심시간 외에는 거의 볼 일 없을걸? 맨날 교실에 붙어 있느라.""그렇구나..."같은 학교로 오면 뭐하나, 같은 건물에 있어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것을...*점심시간이 되어 김유림과 온다예와 함께 급식실로 이동한 나은은 주위를 힐끔거리며 오빠들을 찾았지만, 역시나 오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잔뜩 풀이 죽은 채 음식을 입속에 쑤셔 넣으며 의무적으로 씹고 삼키길 반복했다."다예 너는 왜 이렇게 조금 먹어?"유림이 다예의 식판을 바라보며 물었다."아... 나 원래 양이 좀 적어서...""와. 부럽다."나은은 슬쩍 자신의 식판을 내려다 보았다.다예가 퍼온 밥에 정확히 두 배는 되는 양을 깨끗하게 먹어 치우고
선우는 그 날 이준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 다음날도 여전히 선우는 그 자리에 있었다.나은은 선우에게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오로지 사랑하는 엄마를 잘 보내드리기 위해 엄마와의 이별에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선우도 더 이상 나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저 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나은은, 모든 장례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흐느낌 한 번 없이 꾸역꾸역 참아냈다.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만큼은 제 힘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으나, 모든 소리를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켜내며 버텨냈다.우연히 들은 기업가 사모들의 대화에 나은은 두렵기 보다 쓸쓸했다.4살부터 26살인 지금까지 끊임 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입양 딸".그런 딸이 혹시나 상처 받을까 봐 더 많이 사랑해 주고 표현해 주며, 내 딸이 최고라고 해 주던 부모님.넌 내가 끝까지 책임질 거라며, 두려워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던 사촌오빠.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의 진심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듯 싶었다.그래서 그랬다.엄마의 마지막 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으면 해서...뒤에서 또 자신에 대해 이런 저런 하는 얘기들을 엄마가 듣지 않았으면 해서...***엄마가 돌아가시고 사흘 째.나은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질 못했다.첫 날 엄마 방에 들어가 협탁 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는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흐느낌에 결국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아빠, 엄마, 어린 나은.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가족 사진 안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이 여전히 함께 웃고 있었다."...나 혼자...어떻게 살라고...흐흐흑...엄마...으..."*그 시간 아론리빙 본사, 회장 집무실에는 선우와 이준이 불려와 안서후 회장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앙상한 뼈만 남은 메마른 가지에도 이 겨울을 잘 견디어 내면 또 다시 봄이 오고, 또 새로운 내일과 풍성한 다음이 기약 되어 있기에 두렵지 않은 것일 테지.그러나 나은은 오늘 몹시도 두렵고, 슬펐고, 또 아팠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일지 모를 그녀가 부디 평온하게 웃으며 떠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어 내보려 한다.아론서울병원 VIP실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여 두 모녀를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터져 나오는 눈물도, 흐느낌도 최대한 절제하며 가는 목소리들에 집중하려 애쓰고 있었다."엄마.. 내 엄마가 되어 줘서 고마웠어."엄마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사랑하는 딸의 눈, 코, 입, 귀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이고이 가슴에 새겨 넣으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찬찬히 얼굴을 훑어 본다.그리고, 그녀가 진심을 꾹꾹 담아 내어 놓은 마지막 말,"우리... 딸... 사랑...해..."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띠---"안세희님. 20**년 1월 10일 오전 10시 12분 사망하셨습니다.""흐으...으...엄마..."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 소식이 적었다.한 달 전부터 병실 안에서만 시간을 보낸 엄마는, 어느 날인가 창가를 보며 혼잣말을 했었다.그렇지만 한 달 내도록 엄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창밖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던 나은은, 아까부터 흩날리고 있었던 새하얀 눈 발을 눈치채지 못했다.***=아론그룹 전 회장 안세희, 78세로 영면. 장례는 회사장으로 간소하게==아론그룹 안세희 전 회장이 작고 하자, 전 세계 아론 직원 애도 이어져==(故)안세희의 유일한 직계 가족은 올해 26세가 된 딸 안나은=아론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끊이지 않는 화환과, 애도의 발길로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한 상황이었다.안세희의 유일한 직계 가족인 나은과, 안세희의 조카이자 나은의 사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