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Bab 571 - Bab 580

603 Bab

제571화

신수빈과 이도현은 동시에 멈칫했다. 설마 이 꼬마까지 기어와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이준우는 있는 힘껏 고개를 치켜들고는 입을 벌려 까르르 웃었다.신수빈은 그런 부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참 뒤 발끈하며 말했다.“이 녀석, 설마 왕야의 편을 드는 건 아니겠죠?”이도현은 제 어미의 팔을 누르고 있는 꼬마를 내려다보았다.녀석은 심지어 이도현을 따라 하듯 신수빈에게 달라붙어, 이도 없는 잇몸으로 그녀를 깨물려 하고 있었다.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런 것 같군.”신수빈은 기가 막혔다. 그녀는 발을 뻗어 이도현을 툭 걷어찼다.“다 왕야 때문이에요! 분명 제 흉을 봤을 거예요. 아니고서야 어째서 왕야만 따르고 저는 안 따르는데요!”이도현은 웃으며 그녀와 이준우를 한꺼번에 품에 안았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문득 그는 생각했다. 닮았느니 안 닮았느니 하는 건 결국 피의 문제가 아니라고.앞으로 이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 될 것이다.그날 밤도 이도현은 신수빈 모자와 한 침상에서 잠들었다.요 며칠 내내 그래 왔다.병을 앓는 동안 그는 무척 절제하고 있었다.이날 밤도 손길은 그녀를 쉬이 떠나지 못했지만, 끝내 그녀의 잠옷 매듭을 풀지는 않았다.신수빈은 그의 손길이 멈춘 것을 느끼고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왕야께서는 오늘 밤은 생각이 없으신가요?”“있지. 헌데 태의가 그러더군. 큰 병을 앓고 막 회복한 뒤에는 부부관계를 삼가는 게 좋다고. 자칫하면 수명을 해치고 심계항진이나 흉통 같은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조금만 더 몸을 추스르거라.”신수빈은 그 말을 듣고 이준우를 안쪽으로 조금 옮겨 눕혔다. 이내 몸을 돌려 이도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조용히 이불을 들추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잠시 뒤, 이도현은 직접 그녀를 챙기며 손을 씻게 해 주었다.한결 편안해진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이 서려 있었다.“부인, 수고했다.”신수빈은 그를 흘겨보았다.“방금 전에는 그렇게 말씀 안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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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느냐?”신수빈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왕야, 장씨 가문은 하천 공사 자금을 빼돌린 일부터 시작해서, 이후 양회 염세에 손을 댄 일, 사광과 위조 은괴 사건, 이번 역병 때 약재를 사재기한 일까지... 왕야께서는 정말 장씨 가문이 왜 그토록 많은 은을 모으려 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신가요?”이도현은 잠시 멈칫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제가 조정 일에 관여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에요. 지금 황제 폐하께서도 이미 장씨 가문과 혈연으로 이어져 계시고, 장씨 가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까지 많은 돈이 필요한 걸까요? 게다가 그들이 저지른 일은 하나같이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것들이었어요. 왕야께서는 정말 장한월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이도현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손을 들어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그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너무 많은 걱정은 하지 말거라. 지금은 몸을 잘 추스르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조정 일은 내가 있으니, 괜한 근심은 하지 말고.”말을 마친 이도현은 더 이상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 그녀에게 쉬라고 이르고는 밖으로 나갔다.신수빈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끝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침상으로 돌아갔다.*이준우는 신수빈과 함께 다시 호국사로 돌아갔다.그리고 이틀 뒤, 신병문이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해 왔다.장한월이 복직되었다는 것이었다.예전과 같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다시 조정에 발을 들였고, 죄를 묻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게다가 진하빈은 이번 역병 사태에서 황제를 정성껏 보필한 공으로 궁정여관(宮廷女官: 황궁에서 직책을 맡고 궁무를 수행하는 여성 관원)에 봉해졌다.비록 측비 자리는 잃었지만, 이름뿐인 측비보다 궁정여관이라는 신분이 훨씬 실속 있었다.신수빈은 전해지는 소식들을 들으며 그저 옅게 웃었을 뿐이었다.역병 사태가 지나간 뒤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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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4월의 장안은 아직 역병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백성들의 얼굴에 근심이 남아 있었다.하지만 여러 반가운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조금씩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결국 나라가 안정되어야 백성들의 삶도 편안해지는 법이었다.운사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강회 지역의 제방 공사가 예정보다 일찍 완공되었으며, 과거시험 발표일까지 겹쳐지니 장안성은 비로소 봄날 특유의 활기와 번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전시가 끝난 뒤, 이도현은 어린 황제를 대동하여 과거 급제자들 가운데 장원(狀元: 과거시험 일등), 방안(榜眼: 과거시험 이등)과 탐화(探花: 과거시험 삼등)를 직접 낙점했다.이어 급제자들에게 꽃을 꽂고 말을 타게 한 뒤, 장안 어가를 따라 시가행진을 하도록 하사했다.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번 삼갑(三甲: 장원, 방안, 탐화를 통칭해서 이르는 말) 가운데 두 명은 청운서원 출신이었다.나머지 한 명인 방안만이 교동의 서향세가 출신이었다.교동의 사족은 중원의 다른 세가들과는 달랐다. 그 문하에는 명사와 대유들이 많았지만, 조정에서 실권을 잡은 인물은 드물었다.심지어 이갑에 이름을 올린 다른 급제자들 가운데도 명문세가의 문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눈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조정이 이제 한미한 집안 출신의 인재들을 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아니. 정확히는 섭정왕이 한미한 집안의 인재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신수빈은 창가에 기대어 아래 거리의 떠들썩한 풍경을 내려다보았다.장원과 방안은 모두 제법 나이가 있는 편이었다.반면, 탐화랑만은 유독 눈에 띄었다.참으로 준수한 젊은 선비였다.말 위에 꼿꼿하게 앉은 모습은 마치 푸른 대나무 한 그루 같았고, 단정한 눈썹과 맑은 눈매에는 온화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몸가짐 또한 침착하고 여유로웠으며, 온몸에서 짙은 서생의 기품이 풍겨 나왔다.거리의 처녀들과 젊은 부인들 역시 탐화랑의 뛰어난 용모에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었다.손수건이며 비단꽃이며 그를 향해 끊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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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그가 이제 사족들이 쥐고 있는 밥그릇에 손을 대려는 것이오. 거관제를 폐지한 데다 사유지를 모두 조정 소유로 돌린 뒤 다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려 하고 있지 않소. 전에는 밀어붙이기 어려웠지만, 이번에 새로 올라온 진사들은 아마 그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오.”지금 사족들은 속으로 이도현을 이를 갈며 미워하고 있었다.예전 각 명문세가가 그의 부친에게 의탁했을 때는 후작에 봉해지고 작위를 받았다. 천하를 다투던 시절에도 그는 안으로는 사족들을 끌어안으며 조정을 안정시켰다.그런데 남북이 통일되자마자 저자는 이용할 만큼 이용한 뒤 등을 돌려 버렸다.부귀영화는 누리게 해 주면서도 조정을 좌우할 힘은 주지 않았고, 그들이 쥔 실권을 조금씩 깎아내리고 있었다.게다가 그는 다른 제왕들처럼 군신들에게 의존하지도 않았다.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났고, 인재를 쓰는 데도 능했으며, 그가 발탁한 인물들 또한 하나같이 기대 이상으로 제 몫을 해냈다.지금 세가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어린 황제가 친정을 시작해 섭정왕이 집권하던 시절의 정책들을 모조리 뒤집어 버리는 것.물론 백성들과 한미한 집안 출신의 선비들은 그런 권력자를 반겼다. 하지만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이번 과거에서 사족들이 참패한 것이 그의 첫 번째 칼날이었소. 우리가 손 놓고 당하고만 있다가는 곧 두 번째 칼이 떨어질 것이오.”“그렇다고 누가 그를 어찌하겠소? 아버지도 요즘 밖에 나가면 괜히 일 만들지 말고 그의 예봉을 피하라고 하셨소. 나는 그를 건드릴 수 없지만, 신 가의 청운서원만큼은 편히 두고 볼 생각이 없소.”“지금 신 가는 온 집안이 영화를 누리고 있지 않소. 뒤에서 밀어 주는 사람도 있는데 누가 감히 신 가를 건드리겠소?”“신도연은 남쪽에서 치수 사업으로 공을 세웠고, 신태안은 운사에서 대승을 거뒀소. 신병문은 청운서원을 크게 일으켜 세웠고, 시집간 딸마저 호국부인에 봉해지지 않았소? 윤 가가 멸문을 당했는데도 그녀는 아무런 화를 입지 않았으니, 지금 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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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그 무렵, 저들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다.신수빈은 그들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눈앞의 사내에게서 풍겨 나오는 냉기가 점점 더 서늘해지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얼마 뒤, 저쪽에서 이야기가 끝난 듯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누군가 감탄하듯 말했다.“묘하군, 실로 묘해! 경림연에는 이번 과거에 급제한 진사들이 대거 참석할 것이오. 올해 청운서원이 온갖 영광을 다 차지했으니, 그들에게 신 가와 그 상인의 딸이 얼마나 방탕한 여인인지 똑똑히 보여 주자고.”그 뒤로 그들의 화제는 서서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갔고, 더 이상 이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신수빈은 여전히 이도현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를 놓아주지도 않았다.신수빈은 불안한 듯 몸을 살짝 움직이며 일어나려 했지만, 이도현은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다시 품 안에 가두었다.이도현은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지만, 그의 눈빛만은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짙고 깊은 눈동자. 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운 그 시선은 이유 없이 사람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다만 그는 원래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그 스쳐 지나간 감정도 금세 자취를 감췄고, 다시 평소와 같은 얼굴로 돌아왔다.이도현은 그녀를 놓아준 뒤 팔꿈치를 받쳐 일으켜 세우며 낮게 말했다.“가자.”신수빈은 이곳이 이야기를 나눌 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면사를 쓰고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마차에 오른 뒤에도 신수빈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사람들이 떠들어 댄 말들과 이도현의 표정이 맴돌고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 위에 놓인 손등을 덮었다.“그 사람들 말은 믿지 마세요.”이도현은 자신의 손등 위에 포개진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뭘 믿지 말라는 것이냐? 추석 밤에 네가 윤수혁과 함께 영복가에 있었다는 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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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가야지. 왜 안 가겠다는 것이냐?”이도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 눈빛에는 서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가지 않으면 저 요괴 같은 것들이 어떻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겠느냐?”신수빈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만류하려 했다.“왕야, 그냥 그만두시는 게 좋겠어요.”하지만 이도현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부인은 가야 한다. 그것도 누구보다 눈부시게 차려입고 가야지. 지금 부인은 혼인을 앞둔 몸인데, 본왕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경성에 아직도 부인을 넘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래야 누가 내 정적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신수빈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런 사람이 몇 명이든 무슨 상관이에요? 지금 제가 시집가고 싶은 사람은 왕야 한 분뿐인걸요.”이도현은 그저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마차는 그렇게 신 가를 향해 달렸다.저택 앞에 도착하자 신수빈은 몸을 돌려 막 일어나려는 이도현을 바라보았다.“왕야도 함께 들어가실 건가요?”“물론이지. 네 넷째 오라버니가 개선한 뒤로 과거시험 발표 때문에 바빠서 조정에서 상을 내린 것 외에는 아직 만나 보질 못했다. 마침 왔으니 들어가 얼굴이나 보려고.”*한편 신 가에서는 섭정왕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집안사람들이 거의 모두 나와 있었다.신씨 부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다만 섭정왕부에 더 이상 다른 여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나마 마음이 조금 풀린 상태였다.귀한 딸이 그 천한 계집의 딸과 한 부군을 나누어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으니까.신태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도현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모두가 지나치게 긴장해 있는 것을 본 신수빈은 결국 형수님과 어머니를 데리고 안채로 들어갔다.밖에는 아버지와 큰오라버니만 남겨 두고 이도현을 접대하게 했다.안으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또다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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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신수빈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신씨 부인의 호된 꾸중이 먼저 터져 나왔다.“내가 며칠째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이냐! 젊은 나이에 뜻을 이루었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우쭐대는 것이다. 어찌하여 사람만 만나면 꼬리가 하늘 끝까지 치솟은 듯 구는 것이냐? 군에서 너보다 경력이 많은 사람들, 혹은 조정에서 너보다 오래 몸담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본다면 좋아하겠느냐?”신태안은 목을 움츠렸다.군에서는 아무리 위풍당당한 장수라 해도, 어머니 앞에서는 결국 메추리처럼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한번 말문이 열린 신씨 부인은 그대로 훈계를 이어 갔다.“겉으로야 아무 말도 하지 않겠지. 헌데 속으로는 진작부터 아니꼽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네가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만약 네 상관이 그런 사람이라면 뒤에서 너를 눌러 버리면 어쩔 셈이냐? 또 너보다 못한 사람이 너를 시기해 뒤에서 모함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어머니, 다 알고 있습니다.”“네가 뭘 안다는 게냐! 사람 속은 들여다볼 수 없는 법이다. 부처 같은 얼굴을 하고도 뱀 같은 속내를 품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아직 어려 세상 물정을 다 겪어 보지도 못했다. 다만 시국이 변하는 흐름을 잘 탔기에 이런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앞으로도 조심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며 묵묵히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화는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다!”신태안은 며칠 동안 온갖 영광을 한몸에 받으며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기분이 되었다.원래는 여동생 앞에서 한껏 자랑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그 마음도 싹 사라졌다.“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다 알아요. 앞으로는 반드시 공손하고 겸손하게 굴겠습니다. 조정에 나가면 반드시! 아주 정성스럽게 모든 분을 어르신처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씨 부인은 곁에 있던 녹두과자를 집어 던졌다.신태안은 재빨리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 들고는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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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신태안이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리자 신씨 부인이 곧바로 호통을 쳤다.“뭐라고 중얼거리는 게냐!”신수빈은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다. 넷째 오라버니만 나타나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집안에서 가장 커진다는 사실을.그래서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넷째 오라버니, 앞채에서 왕야는 만나 보셨어요? 오늘 오라버니를 찾으러 집에 오셨는데, 안 계셔서 한동안 앞청에 머무르셨어요. 아직 가셨는지는 모르겠네요.”신태안은 섭정왕이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신씨 부인을 향해 대충 예를 올리며 말했다.“저는 먼저 왕야를 뵙고 오겠습니다. 어머니 말씀은 다음에 또 듣지요.”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연기처럼 사라졌다.금자는 뜰 한편에 있어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귀가 밝은 탓에 방 안에서 오가는 말소리를 죄다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기운 넘치는 신씨 부인의 목소리는 더더욱 또렷하게 들렸다.신태안이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자 금자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어라? 무원장군께서는 벌써 가시는 건가요?”뜰에 있던 다른 시녀들도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신태안은 코를 흥흥거리더니 금자를 힐끗 바라보았다.“수빈이 곁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못된 것만 배우는구나.”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뜰을 벗어나 바깥채로 향하고 있었다.신병문은 이도현이 아직 돌아가지 않은 것을 보고, 신수빈과 함께 돌아갈 생각인 듯하다고 짐작했다.그가 하인들에게 저녁상을 준비하라고 이르자, 주방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이도현은 황족 특유의 위엄과 기세를 지닌 사람이었다.신병호는 그와 한 상에서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불편했다.몇 술 뜨고 나서는 핑계를 대고 먼저 자리를 떴다.결국 상에는 신병문과 신태안만 남아 이도현을 모시게 되었다.신태형은 며칠째 집을 비운 상태였다.신태안은 이도현을 보자마자 운사 전장의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어떻게 병력을 운용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습했는지, 또 금관성이 얼마나 수비하기 좋은 성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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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신병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만, 다섯째가 종종 강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강호의 기인들 가운데는 독문 암기를 지닌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왕야께서는 어째서 갑자기 그런 것을 물으시는 겁니까?”이도현은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미소를 띤 채 담담하게 답했다.“별일은 아니다. 다만 지난번 역병이 돌았을 때 구동에게서 기이한 독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비녀나 팔찌 같은 장신구 안에 독을 숨길 수도 있다고 하더군. 흥미로워서 한번 물어본 것뿐이다.”신병문은 구동 의원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강호 출신이라 강호 이야기를 즐겨 했다. 얼마 전까지는 경성에 머물 곳도 없었는데, 동생과 조카를 구해 준 은혜가 있었기에 신태형이 그를 신 가에 머물도록 권했었다.그런데 며칠 전부터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틀어진 듯했고, 구동 의원은 아무 말 없이 떠나 버렸으며 신태형 역시 집을 비운 상태였다.그래서 이도현이 구동에게 들었다고 말해도 신병문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왕야께서 필요하시다면 제가 수소문해 보겠습니다.”“그럴 것까지는 없다. 그저 호기심에 물어본 것뿐이니.”이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신병문 역시 그 말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한편 신수빈은 안채에서 막 저녁 식사를 마친 참이었다.그때 금자가 안으로 들어와 물었다.“부인, 왕야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언제 돌아가실 거냐고 여쭈시네요.”신씨 부인은 못마땅한 듯 눈을 흘겼다.딸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손만 휘휘 내저었다.결국 정 씨가 신수빈을 배웅해 밖으로 나왔다.어느새 거리에는 등불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었다.사람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이도현은 신 가에서 술을 마셨는지 몸에 옅은 술기운이 배어 있었다.그는 마차 안에서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살짝 찌푸린 미간과 짙은 눈썹 탓에 원래도 냉정한 인상이 한층 더 위압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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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이도현의 목욕 시중을 모두 마친 뒤, 신수빈은 그가 침의로 갈아입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제야 사람을 시켜 물을 새로 받게 한 뒤 자신도 목욕을 시작했다.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이도현은 이미 침상에 누워 있었다.탁자 위에 올려 둔 국수와 해장탕은 어느새 식어 가고 있었다.“장풍에게 들었어요. 왕야께서는 신 가에서 술만 드시고 식사는 하지 않으셨다면서요. 그런데 왜 국수도 안 드셨어요?”“배가 고프지 않다. 시녀들에게 치우라고 하거라.”신수빈은 어쩔 수 없이 시녀들에게 상을 물리게 했다.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준우는 원래 매일 밤 그녀와 함께 잤다.그때, 마침 유모가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이제 제법 자란 이준우는 갈수록 사랑스러워지고 있었다.신수빈은 아이를 안고 침상 곁에 앉았다.요즘 이도현이 바빠 호국부에 자주 오지 못했던 만큼, 부자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잠시 함께 있게 해 주고 싶었다.이준우는 침상에 누운 이도현을 보자마자 신이 나서 팔다리를 마구 흔들었다. 아이는 신수빈의 품 안에서 통통 튀듯 몸을 움직이며 이도현 쪽으로 가려 했다.신수빈이 아이를 안고 가까이 다가가자, 이준우는 이도현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의 팔 위에 엎드렸다.이도현은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통통하고 복스러운 얼굴이 보였다.천진난만하게 눈을 가늘게 휘며 웃고 있었고, 입을 벌린 채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늘어놓고 있었다.이도현은 이 꼬마가 왜 이렇게 자신을 따르는지 알 수 없었다.같이 잠을 잔 기간을 다 합쳐 봐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만날 때마다 웃으며 제 몸 위로 기어오르려 했다.이도현은 손을 뻗어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제야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조금 살이 붙은 것 같군.”“네. 병이 나은 뒤로 잘 먹고 잘 자서 많이 통통해졌어요.”이도현은 아이를 안아 올려 자신의 배 위에 앉혔다. 그리고 다리에 기대어 앉도록 받쳐 주었다.이준우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이도현의 손을 붙잡고 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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