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321 - Chapter 330

331 Chapters

제321화

주현우는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전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에, 그러니까 만에 하나 아연이가 완전히 회복이 안 돼서 후유증이 남는다면 어쩔 거야?"전서진의 말에 주현우는 손에 든 담배를 비벼 껐다."후유증이 생기면 당연히 이혼 안 하지. 내가 평생 먹여 살리고 평생 돌봐줄 거야."전서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 말 녹음해 뒀다가 아연이한테 들려줘야겠다."주현우가 못마땅한 눈으로 쏘아봤다."비꼬는 거야?""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뭘 비꼰다고 그래."주현우가 낮게 웃으며 멀리 바깥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복도에서 정아 이모가 허아연을 부축하고 있었다. 허아연은 테라스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두 손으로 난간을 짚으며 조심조심 몸을 돌려 복도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이틀 내내 이렇게 훈련을 해왔다.옆에서 부축하던 정아 이모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방금 주현우가 한 말은 그래도 인간미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병실로 돌아왔고 허아연이 침대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자 정아 이모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정아 이모는 침대 옆 탁자에 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아까 도련님이 한 말이 기분이 좋더라고요, 감동스럽기도 하고."허아연은 정아 이모를 힐끗 올려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아 이모가 이어서 말했다."아가씨, 저는 원래 두 분이 이혼하는 거 두 손 두 발 다 들고 찬성하는 사람이었어요. 아가씨가 빨리 이혼해서 홀가분해지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요즘 너무 많은 일이 생겼잖아요. 어르신도 돌아가시고 아가씨도 병이 나니까 그래도 곁에 돌봐줄 사람이나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현우 도련님 편 드는 게 아니라 이번에 보니까 정말 책임감 있게 다 처리하시더라고요. 밖에서 큰일이든 아가씨를 꼼꼼하게 돌보는 일이든 다 완벽하잖아요.""아픈 아내를 이렇게까지 챙기는 남자는 사실 흔하지 않아요.""제 생각엔 기사처럼 부르면 뭐든 척척 해주고 아가씨를 귀찮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는 게 나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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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전서진이 하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허아연은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는데 열 살 무렵 유서희가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체험을 갔을 때였다. 주현우와 전서진이 허아연과 주민경을 데리고 수박을 따러 가서 이미 돈을 냈으면서 안 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두 사람을 끌고 냅다 도망친 적 있었다. 허아연과 주민경은 수박을 하나씩 끌어안고 울면서 달렸다. 나중에 허아연은 넘어지면서도 수박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끝내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했었다. 그 뒤에는 주현우가 허아연을 업고 돌아왔고 허아연은 등에 업힌 채로 잠이 들었다.그날 주현우는 꽤 많이 매를 맞았었다. 주민경이 뱀에게 물려서였다. 천만다행으로 독사는 아니었다. 주민경이 주현우에게 못됐다고 욕을 해대는 게 다 어릴 때 너무 많이 골탕먹은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 기억을 떠올린 허아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어린 시절은 언제나 가장 힐링되는 것이었다.그때 자신을 업어준 사람이 주현우였다는 걸 떠올린 허아연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어느새 다들 이렇게 어른이 되어 있었다. 주진우는 군 생활을 한 지 10년 넘었고 주현우는 경주 그룹을 이끄는 리더가 됐으며 전서진과 심유환도 각자 집안의 한 기둥이 되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데 허아연만…… 병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몇 년씩이나……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울증을 앓은 지는 벌써 3년째였다. 지금 담당의는 예전에 진료받던 의사도 아니고 병원도 다른 곳이라 과거 병력을 조회하지 않고 현재 상태만 치료하고 있었다.여전히 다리를 주물러주는 주현우를 바라보던 허아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신나게 이야기 중인 전서진을 바라봤다.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서 어린 시절에 좀 더 머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때는 주민경과 유서희가 밥을 가져왔다.유서희는 오후 세 시까지 있다가 저녁 준비를 하러 돌아갔다.주민경은 계속 허아연 병실에 머물렀다. 허아연이 씻는 것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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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조심스러운 제안에 허아연은 주현우가 오전에 전서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허아연이 깨어나지 않는 꿈을 꾼 그날 밤 내내 잠도 못 자고 떨었다고 했다.잠시 주현우를 내려다보던 허아연이 조용히 말했다."아직 며칠 남았잖아요? 며칠 지나서 그때 결정해요. 지금 급하게 결정할 필요 없어요."사실 주현우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허아연은 알고 있었다.오랜 정 때문인지, 동정심 때문인지, 아니면 주건영과 박민정이 준 압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지난 3년이 다시 반복되는 건 싫었다.그리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주현우 자신조차 마음을 다잡고 오지은과 깨끗하게 끝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며칠 동안 주현우가 전화를 몇 번이나 받지 않은 것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지금은 병원이라는 비상 상황이라 가능할지 몰라도 퇴원하고 나서도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을까? 오지은은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 두 사람의 진흙탕에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눈이 마주치고 주현우가 뭔가 더 얘기하려는 눈치를 보내자 허아연이 먼저 말했다."때가 되면 그때 얘기해요."그러고 덧붙였다."며칠 동안 돌봐줘서 고마웠어요."허아연의 감사 인사 한마디에 다시 거리감이 생겼다.주현우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오른손을 들어 허아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그래,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그 뒤로 이틀 동안 허아연은 눈에 띄게 회복해서 뭔가 잡지 않아도 혼자 걸을 수 있었다. 그날 오전, 밖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허아연이 정아 이모에게 말했다."이모, 오늘은 밑에 내려가서 좀 걸어볼게요. 오랫동안 못 내려간 것 같아서 바람 좀 쐬고 싶어요."이불을 정리하던 정아 이모가 말했다."내려가도 되는데 해가 좀 따가워요. 양산이라도 쓸래요?"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칼슘 보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정아 이모는 침대 정리를 마치고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현우는 오늘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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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허민수 장례식 때 오씨 가문도 조문을 왔었다.허아연이 오지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많이 좋아졌어요."그때, 오지은이 손으로 허아연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살이 다 빠졌네.""계속 보러 오고 싶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더라고."허아연이 입원한 뒤, 오지은이 몇 번 다녀갔지만 주현우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오지은의 살가운 말에도 허아연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오지은은 병원에 사람을 붙여놨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래층에 내려오자마자 이렇게 타이밍이 맞춰 나타날 리 없었다.다만 오지은이 정이 깊고 의리 있는 척을 좋아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허아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오지은이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아연아, 올해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많은 일들이 생기고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시다니." 허아연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생로병사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아연아, 너는 감정을 너무 억눌러서 이렇게 병이 난 거야. 앞으로는 속상한 게 있으면 꼭 풀어."그 말에 허아연이 오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지금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꼼짝 않고 허아연을 바라보는 오지은의 얼굴에 서운함이 어렸다.그렇게 한참을 서운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아연아, 아직도 나한테 불만이 많아?" "불만은 없어요. 다만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아서요.""정은 쌓으면 되는 거잖아."허아연은 오지은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오지은이 참 관종 같으면서도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지은은 주현우만 잘 달래면 될 뿐, 허아연과 관계를 다질 필요가 없었다.허아연의 눈빛에 오지은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아연아, 사실 네가 모르는 진실이 있어. 나는 현우 마음속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야."잠깐 멈칫하던 오지은이 쓸쓸하게 말했다."나는 그냥 대역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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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오지은의 말을 듣고서야 허아연은 문득 주현우가 그날 이야기할 때 감정이 왜 이상하다고 느껴졌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예은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연애사를 언급한 오지은이 오른손을 들어 반지를 빙빙 돌리며 억지로 웃었다. "이 반지, 현우 손에 있는 반지랑 커플링이야. 너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오지은이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며 이어 말했다."이거 예은이 반지야. 안에 예은이 이름 이니셜도 새겨져 있어."오지은이 만지작거리는 반지에 새겨진 이니셜 "Y"는 마모된 흔적 하나 없이 여전히 선명했다.허아연을 돌아보던 오지은이 말했다."예은이가 나한테 남겨준 반지야. 떠나면서 나를 현우한테 부탁하기도 했거든. 나를 잘 돌봐주고 오씨 가문을 챙겨달라고."오예은과 주현우의 이야기를 마친 오지은은 다시 허아연을 돌아보며 말했다."그러니까 아연아 대역일 뿐인 나한테 불만 갖고 나를 미워해 봤자 아무 의미 없어."오지은의 말에 허아연은 빤히 쳐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오지은 씨, 나는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 없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망한다고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다만 난 오지은 씨와 친구도 아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당신 욕구에 맞춰줄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그동안 나름 예의 차렸다고 생각해요." 허아연이 예의 차렸다는 말에 오지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하긴, 사람을 바로 병원 끌고 가서 낙태 수술받게 한 거 꽤 충격이었는데 그래도 나를 봐줬다고 고마워해야 하는 거네."오지은의 친한 척하는 태도에 허아연이 차분하게 말했다."오지은 씨, 나한테 친한 척 안 해도 돼요. 당신이 나를 진짜 친구로 생각한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죠. 적어도 지금 이 타이밍에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담담하게 오지은을 바라보던 허아연이 이어 말했다."오늘 오지은 씨가 이러는 거, 내가 이 정도 아픈 걸로는 부족하다는 뜻으로밖에 안 들려요."오지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허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짐작이 맞는다면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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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오지은은 진실을 얘기하면 허아연이 무너지거나 적어도 눈물범벅이 되어 병이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허아연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고 오히려 오지은이 찾아온 진짜 속내를 그대로 꼬집었다.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걸어가는 오지은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허아연을 가스라이팅하는 데 실패했으니까. 오지은이 멀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정아 이모가 물컵을 들고 허둥지둥 다가왔다."방금 옆 병실 사모님을 만났는데 붙잡고 얘기를 나눠서요."허아연이 가볍게 웃었다."괜찮아요."허아연은 무심한 눈빛으로 먼 곳을 슬쩍 바라봤다.진실은 이러했다. 주현우와 오예은은 과거에 사귀었고 그게 오씨 가문을 돌봐주고 오지은과 가깝게 지냈던 이유였다.그렇지 않고서야 주현우의 성격으로 아무리 은혜를 갚는다 해도 이런 식으로 갚지는 않을 것이다. 주현우도 일부러 오지은을 오예은의 대역으로 생각했겠지. 어차피 쌍둥이 자매인 데다 얼굴도 똑같았으니까.방금 오지은이 한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허아연을 일부러 자극하려고 한 말이 분명했다. 그 뒤로 허아연은 밑에서 다시 걷기 연습을 좀 더 하고 정아 이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위층으로 올라가 쉬었다.오후에 주현우가 돌아왔을 땐, 오원빈도 함께 찾아와 업무를 보고하고 이야기를 나눴다.허아연은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주현우와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오전에 오지은이 다녀간 일도 꺼내지 않았다.저녁에는 주민경과 전서진이 찾아왔다.두 사람이 장난치며 떠드는 모습에 허아연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두 사람만큼은 자신과 주현우처럼 되지 말고 좋은 엔딩을 맞이했으면 싶었다.아홉 시가 넘어 주민경과 전서진이 돌아가려 하자 허아연이 문 앞까지 배웅하며 말했다."민경아, 나 이제 혼자 씻을 수 있어. 매일 와서 씻는 거 안 도와줘도 돼." 주민경이 눈썹을 추켜올렸다."그건 안 돼. 우리 오빠한테 틈을 줄 수는 없지."잠시 말문이 막혔던 전서진이 다시 주민경을 보며 말했다."너는 진짜 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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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허아연의 질문에 얼굴을 만지던 주현우의 손길이 멈췄다.갑자기 왜 이런 걸 묻는 걸까?눈이 마주치고 아직 병원에 있다는 걸 떠올리며 한참을 생각하던 주현우가 웃으며 말했다."숨길 게 뭐가 있겠어. 아니면 뭐 들은 거 있어?"주현우가 되묻자 허아연은 손목을 잡은 채 한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니에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주현우는 끝까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주현우는 허아연의 차분한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빨리 나아서 전서진이랑 애들 다 같이 시골에 놀러 가자."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허아연이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주현우가 허락하지 않았다.그리고 몸을 기울여 허아연의 볼에 입을 맞췄다.더 많은 걸 바라는 모습에 허아연이 두 손으로 주현우의 가슴을 막으며 거절했다.주현우가 솔직하지 않은 게 신경 쓰였다.그리고 께름칙했다.허아연의 거절에 주현우가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더니 다시 물었다."정말 끝까지 이혼할 거야?"주현우의 물음에 허아연은 눈을 마주쳤다. 잠시 생각하던 허아연이 물었다."주현우 씨, 그래도 이혼하기 싫어요?"허아연의 물음에 주현우가 웃으며 오른손으로 허아연의 목덜미를 살며시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다정하게 말했다."이혼할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사실 난 우리 결혼 생활 되돌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 아직 완전히 끝장난 것도 아닌데 전혀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으면 너무 아쉽잖아."아쉽다는 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주현우 씨. 한 번 더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내 몸도, 마음도 더는 버틸 수가 없으니까요." 아쉽다고 했으니 앞으로 남은 절차도 분명 핑계를 대며 또 미룰 게 뻔했고 생각처럼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유서희와 주건영, 박민정까지 나서서 설득하려 하겠지. 허민수도 떠난 데다 허아연이 이번에 또 병까지 났으니까.다들 찾아와서 설득하려 하기 전에 허아연이 먼저 복잡한 상황을 차단해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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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허아연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도 몰랐다.게다가 방금 숨긴 게 있냐고 물었을 때도 주현우는 끝까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동시에 조금 전 주현우의 짧은 침묵과 되물은 것 자체가 오지은이 오늘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주현우가 오예은과 사귀었던 건 사실이었고 지금까지도 오예은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끊임없이 대체품을 찾고 있었다.창밖을 한참 바라보던 허아연이 다시 주현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 일기장은 언제 몰래 본 거예요?""혼인신고 하기 일주일 전에."그리고 나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꽁꽁 잘도 숨겼더라. 민경이도 네가 짝사랑하는 거 몰랐대."결혼하기 전 두 사람은 사이가 아주 좋았지만 주현우는 허아연이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주현우의 농담에 허아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릴 때 좋아했던 거죠, 다 지난 일이에요. 이젠 좋아하지도 않고요."허아연은 지금 이 순간에야 주현우가 3년 동안 사람 취급하지 않으며 들들 볶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허아연의 일기장 때문이었다.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주현우와 스캔들이 났던 여자들이 다 오지은을 닮았으니까.아니, 오예은을 닮았으니까.주현우도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위로받을 곳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에 결혼을 동의한 것도 오예은이 떠났으니 누구든 다 똑같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인 걸지도 몰랐다.분명 주현우 본인이 다른 사람을 품고 있으면서 괜한 트집을 잡아 3년 동안 허아연을 괴롭혔던 것이다.돌이켜보니 허아연은 자신의 짝사랑도, 일기장 속 속심말도 너무 부질없게 느껴졌다.허아연의 답에 주현우가 어깨를 끌어안으며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그래, 다 지난 일이야."다 지나간 일이었다. 그리고 주현우도 이제는 오예은을 떠나보내야 했다.……병원에 며칠 더 입원해 있던 허아연은 퇴원해서 천천히 몸을 추스르면 된다는 의사의 말에 퇴원 절차를 밟았다.주현우는 허아연을 아레아 베이로 데려갔다.허아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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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그 모습들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한편, 아레아 베이.낮잠에서 깬 허아연이 마당에서 걷기 연습을 하는 동안 정아 이모가 곁에 함께했다.허아연이 괴롭힘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된 정아 이모는 아레아 베이에서 함께 지내며 하루 걸러 허씨 본가로 돌아가 청소를 하고 마당의 화초들을 돌봤다.허아연이 한결 안정적으로 걷고 손발에 점점 힘이 돌아오는 걸 본 정아 이모도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저 허아연이 회복하지 못할까 봐, 하늘이 허씨 집안에 너무 가혹하게 굴까 봐 두려웠다.걷기 연습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후 네 시였다.허아연은 과일을 좀 먹고 주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주현우 씨, 오늘 저녁 집에 와서 먹어요?"전화기 너머의 주현우가 스케줄표를 확인하고 답했다."저녁에 모임이 있어서 얼굴만 비추고 금방 돌아갈게."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이 답했다."알겠어요, 그럼 우리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먹을게요."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저녁 모임에서 주현우는 정말 얼굴만 비추고 금방 자리를 떴다.다만 식당을 나선 뒤, 바로 아레아 베이로 돌아가지 않고 오지은을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내내 고민하다가 오예은과 똑같은 그 얼굴을 떠올리고는 결국 발걸음한 것이다. 병상 앞에 있는 이은빈은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병실에는 오지은 모녀 둘만 있었고 오중근은 없었다.주현우가 결국 온 걸 본 이은빈은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하며 쉴 새 없이 사정을 늘어놓았다."그땐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임신했을 때 지은이랑 예은이를 제대로 못 챙겼어. 그래서 둘 다 몸이 약했던 거야. 지은이는 심장 이식 수술까지 받았잖니.""의사 말로는 요즘 심장박동이 좀 불안정한 데다 좀 심한 우울증 상태라고 해서 병원에 온 거야."우울증이라는 말에 주현우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허아연이 떠오른 것이다. 주현우가 오지은을 한참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은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지은이가 평소에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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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말을 마친 주현우는 바로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이은빈이 황급히 뒤를 따라가며 배웅했다."현우야, 그럼 조심히 가. 운전도 천천히 하고."주현우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이은빈은 그제야 병실로 돌아와 문을 꼭 닫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오지은을 보며 미간을 찡그린 채 물었다."지은아, 이래도 되는 거니? 멀쩡한 사람이 왜 자꾸 없는 병을 지어내, 이러다 진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오지은이 싸늘하게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현우가 지금 갑자기 이혼을 안 하겠다는 건 허아연이 나보다 한 수 위여서 그래요. 정신 상태가 안 좋다고 입원까지 하면서 수작 부린 거잖아요." 사실 허아연은 누구한테도 우울증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주민경한테도 마찬가지였다.몸이 먼저 반응한 탓에 들켜버린 것뿐이었다.오지은의 말에 이은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넌 현우의 동정심과 마음을 얻고 싶은 거잖아. 그런데 허아연 그 계집애 속셈이 보통이 아니야. 부모도 없는 고아 주제에 어떻게 주씨 집안 사람들이 홀딱 빠지게 만든 거야.""허아연은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 대체 무슨 약을 먹였는지 현우가 여전히 손을 못 놓고 있잖아. 정말 너무 못됐어."이은빈이 끊임없이 투덜대는 동안 오지은은 침대에 기대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 주현우는 창문을 열어둔 채 한 손에는 핸들을 잡고 담배를 든 다른 손은 차창에 걸치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자 주현우는 손에 든 담배꽁초를 튕겨버리고 창문을 닫았다.잠시 뒤, 아레아 베이에 도착한 주현우는 주차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다.허아연이 집에 있다는 생각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고 마침내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았다."도련님, 오셨어요.""도련님, 오셨네요.""아연이는요? 저녁은 잘 먹었어요? 벌써 잠들었어요?" 정아 이모가 답했다."아가씨 식사 잘했어요. 지금은 아마 책 보고 있을 거예요. 아직 잠들지는 않았어요."정아 이모의 말에 주현우는 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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