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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1화

장영 군주는 억지로 초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녀가 유소영에게 되물었다.“저더러 장 장군에게 거짓말을 하라는 거예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가 송청명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장 장군이 어찌 그런 말을 믿겠어요.”유소영은 지극히 냉정했다.“어찌하실지는 군주의 자유입니다. 저는 그저 제 의견을 드렸을 뿐이니까요. 게다가 이것이 지금으로서는 군주께서 이 혼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입니다.”말을 마치며 유소영은 한가롭고 태연하게 다과 한 조각을 집어 입가로 가져가 가볍게 한 입 베어 물었다.장영 군주는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양 태연한 유소영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갈수록 초조해졌다.“저는 먼저 돌아갈게요.”장영 군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 한 순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유소영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람을 시켜 배를 준비해 군주를 뭍으로 모시겠습니다.”화방은 물 위에 떠 있었기에, 뭍으로 나가려면 다른 작은 배를 타야 했다.하지만 장영 군주는 정말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선실 안에 머무는 것 자체가 숨이 막히도록 답답했다. 특히 유소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더더욱 그랬다.유소영이라는 여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겉으로 뱉는 말들 이면에는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속뜻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마치…… 유소영이 이미 자신이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그렇다.그녀는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장영 군주는 줄곧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고작 일곱 살이 되던 해 신왕부로 끌려왔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양부는 신왕이며, 친부는 송청명이라고 말해왔다. 특히 신왕은 그녀에게 본래의 부모를 잊으라며 몰아붙였다.그런 그녀에게 신왕부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신왕은 겉으로는 그녀를 아끼고 보호하는 듯했으나, 뒤에서는 단 한 번도 아버지다운 따뜻함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그의 얼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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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2화

유소영은 아민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지금 벌어진 일은 그녀의 예상 안에 있었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일이었다.그녀는 아이를 가진 것이다……고준형의 아이였다.그동안 온갖 일을 다 겪어본 아민이었지만, 방금은 너무 놀라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아씨의 반응을 보고서야 문득 짚이는 게 있었다.“아씨, 혹시…… 회임하신 건가요?!”유소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 “소문 내지는 마.”아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아씨를 꼭 붙들고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이 아이는 정말 때를 잘못 골라 찾아왔다.어쩌자고 이렇게 어수선한 때에 생긴단 말인가!이러면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이 더 꼬이는 것 아닌가!아이는 분명 고 공자님의 자식일 텐데, 그는 지금 선나라에 있고 양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설마 아씨가 혼인도 하기 전에 아이를 낳으시려는 건가?그랬다간 사람들 입방아에 죽어나갈 게 뻔했다!아민은 마음이 어지러워 손끝까지 가늘게 떨렸다.보다 못한 유소영이 도리어 그녀를 다독였다.“괜찮아.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아민은 울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아씨는 공자님과 점점 똑같아지시네요. 늘 생각이 있다고만 하시고…… 저는 아씨가 너무 걱정스러워요!”이 아이가 태어난다면, 앞으로 닥쳐올 것은 온통 문제뿐이었다.더구나 선나라 사씨 가문 잔당의 피를 이은 아이다. 아씨는 앞으로 대체 어찌 감당하시려는 걸까!결국 다 공자님 탓이었다! 정말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아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아씨,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이 아이를 낳아야 한단 말인가, 지워야 한단 말인가?유소영은 그저 차분히 농어 요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이 요리는 치워줘.”지금은 그 냄새조차 견디기 힘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선실 문이 열렸다.방 안의 두 사람이 동시에 그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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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3화

장 장군은 유소영의 말을 부인하지 못한 채,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송씨 가문에 이제 뭐가 남았다는 거냐? 송씨 가문 군사들은 모두 죽었다.”유소영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말을 이었다.“송씨 가문 휘하에는 겉으로 드러난 송씨 가문 군사들뿐만 아니라, 남방 일대의 심복들도 있습니다.”“송씨 가문 선조와 그 부하들이 대대로 남방을 지키며 살아왔기에, 그곳 사람들은 모두 송씨 가문만을 따랐습니다.”“그래서 신왕께서도 지금껏 병권을 대신 맡으셨을 뿐, 완전히 손에 넣지는 못하신 겁니다.”“남방 여러 성의 장군들이 신왕께 복종하지 않고 오직 송씨 가문만을 인정하기 때문이지요.”“이제 신왕께서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장영 군주를 시집보내 그 병권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그러려면 말을 잘 듣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위가 필요하지요.”“장 장군께서 이 혼사를 받아들이신 것도 결국 더 많은 병권을 손에 넣으려는 같은 속셈이 아니십니까?”“신왕께서 장군께 뭐라고 약속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반씩 나누기로 하셨습니까, 아니면 신왕이 더 많이 가져가기로 하셨습니까?”장 장군의 안색이 굳었다.“네깟 것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유소영은 태연히 말했다.“호랑이에게 가죽을 내놓으라는 격입니다.”“신왕은 처음부터 장군과 병권을 나눠 가질 생각이 없었습니다.”문가까지 걸어가던 장 장군이 그 말에 우뚝 멈춰 섰다.유소영은 그의 등을 보며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신왕은 장군을 속였습니다.”“장영 군주를 장군께 보내려는 건 그저 송씨 가문의 병권을 빨리 가져오기 위함입니다.”“목적을 이루고 나면, 장군은 곧바로 버려지실 겁니다.”장 장군이 코웃음을 쳤다.“나와 전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수작이로구나.”그가 송씨 가문 딸과 혼인만 하면 자연스레 병권은 그의 것이 된다. 신왕이 빼앗으려 해도 빼앗을 수 없는 일이었다.유소영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잔잔했다.“장 장군, 저는 그저 장군께서 속는 게 안타까워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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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뭐, 뭐라고? 방금...... 네가 누구라 했느냐?”장 장군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유소영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이 군주가 송청명의 딸이라니!아니, 그녀는 분명 유씨 성을 가졌고, 상인 가문 출신이 아니던가……유소영은 장 장군의 의구심을 알아채고 먼저 설명에 나섰다.“제 아버지께서 살해당하신 후, 저와 어머니는 신왕부에 감금되었습니다.”“신왕은 송씨 가문의 병권을 손에 넣으려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니께서 목숨을 걸고 저를 신왕부에서 빼내 주셨고, 그 후 저는 외숙께 입양되었습니다.”“당시 제가 탈출하자, 신왕은 어쩔 수 없이 저를 대신할 사람을 세워 남방의 장군들을 안심시켰던 것입니다.”장 장군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그는 유소영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신왕이 너를 수양딸로 거둔 것은, 네 신분을 알아챘기 때문이냐?”유소영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렇습니다. 다만 그는 제가 이미 기억을 잃어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장 장군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머리가 복잡해져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장영 군주가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고, 이 능양 군주가 진짜 송씨 가문의 딸이라니…… 신왕은 대체 무슨 속셈이란 말인가!게다가 눈앞의 이 여인이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한단 말인가?이 또한 신왕이 파놓은 함정일지도 몰랐다.장 장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네가 송청명의 딸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신왕이 느닷없이 저를 수양딸로 거둔 것 자체가 가장 큰 증거입니다. 그래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 신분을 증명해 줄 사람도 있습니다.”유소영이 명을 내리자 한 사내가 밖에서 들어왔다.검은 옷차림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단단한 인상이었다. 그의 나이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아 보였다.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묵직하고 어두운 기색이 감돌았다.그가 장 장군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유소영이 소개했다.“이 아이는 제 아버지 휘하의 영호 장군 아들입니다. 송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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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5화

유소영은 신왕부로 돌아가기 전, 고준형과 함께 살았던 옛 재상부를 먼저 찾았다.유소영이 사들인 그 저택에는 노부인이 머물고 있었다.노부인은 몸이 약해 유소영이 여러 명의 몸종을 들여 곁에서 시중을 들게 했다.하지만 때가 된 목숨을 사람의 힘으로 붙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정성껏 돌보았음에도 노부인의 몸은 날이 갈수록 쇠해만 갔다.사실 후작부에 있을 때부터 노부인은 이미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유소영이 뛰어난 의술로 몇 번이나 겨우겨우 목숨을 붙들어온 것이었다.이제 이 숨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노부인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다가 유소영이 오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소영아, 오늘 어찌 이리 틈을 냈느냐?”몸종이 의자를 가져다주자, 유소영은 노부인 곁에 나란히 앉았다.두 사람은 친조모와 친손녀보다 더 다정해 보였다.노부인은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다정히 말을 건넸다.“준형이는 어찌 지내는지 모르겠구나.”“선나라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를 보았느냐?”유소영은 눈가에 미소를 띤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분히 말했다.“보았습니다. 잘 지내고 있더군요.”“사씨 가문이 강왕의 즉위를 도왔으니, 그 공이 작지 않습니다.”“이제 그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노부인은 그녀의 손등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못내 미안해했다.“아가, 네가 고생이 참 많았다. 내 두 손주 녀석이 모두 너를 고생시켰어.”고준형이 사씨 가문의 혈통일지라도, 노부인은 여전히 그를 손자로 여겼다.이 나이가 되도록 숱한 생이별과 사별을 겪어온 그녀였다. 이제는 너무도 잘 알았다. 때로는 친아들조차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말이다.이제 후작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차라리 이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다.유소영은 자연스레 고준형을 떠올렸다.서신 한 장만 남겨두고 서둘러 선나라를 떠나왔으니, 고준형은 분명 의문이 가득할 터였다.하지만 지난 일 년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낱낱이 설명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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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6화

황궁.황제가 연신 기침을 해 대자, 곁에 있던 상덕 태감이 시중을 들며 옥잔을 바쳤다.“폐하, 나랏일도 중요하지만 옥체가 더욱 중요합니다! 부디 옥체를 돌보십시오. 그것이 곧 나라의 복입니다!”황제는 목을 축이려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 그 안에 피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가만히 그 피 섞인 물을 내려다보다 곧 안색이 굳었다.상덕 태감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폐하……”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차갑고 위엄 어린 시선이 그를 향했다.“호들갑은.”상덕 태감은 속이 탔다. 옥체가 통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도 나랏일로 밤낮 심려를 더하고 계시니,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황제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단약을 가져오너라.”“폐하, 단약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설 신의를 들라 하여……”“가져오너라!”황제의 목소리에 짜증이 역력했다.설림을 불러온다 해도, 그의 몸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벌써 이 년 전부터 자신의 병세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과로가 쌓여 병이 되었고, 심장과 폐가 모두 상했다.남은 날이 얼마 없음을 알았기에 그토록 서둘러 태자를 책봉하려 했던 것이었다.그 결과 하마터면 조원욱이라는 그 망나니를 태자로 책봉하는 큰 과오를 범할 뻔했다.이황자가 태자가 된 지금, 아직 이렇다 할 공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큰 과실도 없었다.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은 고준형 쪽의 일이었다.눈을 감기 전에 이 일만큼은 온전히 매듭지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황제는 단약 한 알을 삼키고 나서야 숨이 조금 가라앉았다.하지만 가슴속에 맺힌 그 답답한 기운만큼은 좀처럼 흩어지지 않았다.……유월 초, 태후의 탄신일.궁중에 연회가 펼쳐지고 백관들이 축하를 건넸다.유소영은 신왕의 수양딸 신분으로 황실 종친과 귀족들 사이에 자리했다.그녀와 장영 군주는 신왕비를 따라 나란히 앉아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갖추었다.신왕은 조정에서 가히 안하무인으로 권세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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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7화

신왕은 분노를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폐하, 이는 신의 집안일이오니 신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황제는 신왕을 한 번 힐끗 바라본 뒤, 다시 유소영에게 시선을 돌렸다.유소영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상석에 앉아 있던 태후가 매섭게 입을 열었다.“이런 추잡한 짓을 저지른 계집을 어찌 황실에 둘 수 있단 말이오!”“신왕, 그대가 저 아이를 수양딸로 거둘 때부터 나는 영 못마땅했소.”“그런데 이제 혼인도 하기 전에 아이까지 가졌다니, 이는 우리 황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 아니오! 나는 결코 용납할 수 없소!”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 저 아이의 봉호를 거두고 평민으로 강등시켜 당장 궁 밖으로 내쫓으십시오!”신왕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태후 마마……”태후는 신왕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폐하, 오늘은 제 탄신일입니다. 이토록 불길하고 재수 없는 일을 두고도 제가 처분 하나 내리지 못한단 말입니까?”태후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지저분하고 추잡한 일이었다. 하필 자신의 탄신 연회 자리에서 유소영이 혼인도 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난 터라, 태후의 불쾌감은 극에 달했다.신왕은 유소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아무리 막강한 권세를 쥐고 있는 신왕이라 해도, 태후와 공공연히 맞설 수는 없었다.그때 신왕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태후와 황제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태후 마마, 폐하. 신첩은 오래전부터 저 아이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몰래 여러 번 타일렀으나, 저 아이는 번번이 듣지 않고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런 추잡한 일이 벌어진 것도 신첩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신왕비의 증언까지 더해지자, 태후의 얼굴에는 한층 더 못마땅한 기색이 떠올랐다.“폐하, 대체 무엇을 망설이시는 겁니까!”황제의 안색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오늘부로 능양 군주의 봉호를 거두고 평민으로 강등하겠다!”유소영은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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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8화

신왕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채, 눈빛에서 매서운 한기를 뿜어냈다.신왕부와 관계를 끊자마자 곧장 장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다니, 대체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 것인가!또 그 장씨 놈은 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신왕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하지만 이런 작은 변고 따위가 그를 겁줄 수는 없었다.신왕은 장씨 가문의 하인을 거칠게 뿌리치고 기세등등하게 신왕부를 나서서 장씨 가문으로 향했다.장 장군의 저택.문밖의 호위들은 감히 신왕을 가로막지 못하고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알리려 했다.그러나 신왕은 내원으로 거침없이 들이닥쳤다. 그 발걸음이 전갈을 전하려던 하인보다도 빨랐다.앞채.장씨 가문 사람들이 이곳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유소영과 유호진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신왕이 갑작스레 나타나자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일제히 굳어버렸다.하지만 장 장군은 개의치 않고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하관이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께서 오신 줄도 모르고 미처 마중 나가지 못했습니다.”신왕의 날카로운 시선이 유소영에게 내리꽂혔다.유소영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장씨 가문 식구들과 함께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그녀의 안색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양심의 가책도 찾아볼 수 없었다.신왕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너희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장 장군은 고개를 돌려 유소영과 유호진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해명했다.“말씀드리자면 참으로 공교로운 일입니다. 어젯밤 우연히 서로 마음을 나눈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정을 물어보니 갈 곳이 없어 황성을 떠나려 하더군요. 하관이 차마 그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거두어 주었습니다.”“이들이 무사히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관이 이 젊은이를 양자로 들였습니다. 이제 이 아이는 하관의 양자입니다.”그는 말을 이어가며 유호진을 앞으로 밀어 신왕에게 소개했다.유호진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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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9화

혼례를 치르기 전, 유소영은 예전에 머물던 재상부로 거처를 옮겼다.노부인은 그녀가 아이를 가졌으며, 장 장군의 양자에게 시집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못내 그녀를 걱정했다.“소영아, 어찌 그 젊은이에 대해 내게 한마디도 일러주지 않았더냐. 평생을 맡겨도 좋을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더냐?”노부인은 이번 혼사가 결코 단순하지도, 떳떳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걸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유소영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마땅히 저를 위해 기뻐해 주셔야지요. 저도 드디어 제 아이를 갖게 되었으니까요.”노부인은 자애로운 얼굴로 그녀의 손을 끌어다 쥐었다.“네가 영민한 아이라는 건 내 잘 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되든, 그저 네가 분명히 헤아리고 내린 결정이기를 바랄 뿐이다.”유소영이 고준형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어른 된 입장에서야 물론 기쁜 일이었다.다만,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서로 마음을 둔 그녀와 고준형이 끝내 갈라서야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마당 어귀에서 아민이 종종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다.“아씨! 고장훈이 기어코 아씨를 뵙겠다고 우기고 있어요!”노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놈이 대체 무엇 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친손자인 그에게 노부인은 이미 완전히 정이 떨어진 터였다.특히 고준형에게 변고가 생긴 뒤로도, 고장훈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유소영에게 끈덕지게 들러붙어 왔다.유소영은 처음부터 고장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다만 예전에는 그녀가 신왕부의 군주였던 만큼, 고장훈도 꺼리는 바가 있어 감히 함부로 굴지 못했었다.한데 이제 그녀가 평민의 신분으로 강등되었으니, 고장훈은 이때다 싶어 다시 큰소리칠 기회로 여기는 모양이었다.유소영은 담담한 어조로 아민에게 일렀다.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라. 밖에서 그가 무얼 하든 내버려두면 그만이야.”아민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러나 그자가 어찌나 낯이 두꺼운지, 아씨 배 속의 아이가 제 핏줄이라며 떠들어 대고, 혼수까지 한가득 싣고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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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노부인은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어 고장훈을 매섭게 가리켰다.“그때 준형이가 오진으로 죽었다고 여겨졌을 적에, 너는 그 아이의 몸이 채 식기도 전에 형수와 놀아났다!”“게다가 소영이, 저 아이는 그때 네 부인으로서 너에게 할 도리를 다했거늘, 너는 도리어 임유정을 위해 저 아이를 욕보이고, 끝내는 내치려고까지 하지 않았더냐!”주위의 백성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황성 안에 묵은 일이란 없는 법이었다.오늘 이 집에서 추문이 터지면, 내일은 또 저 집에서 한바탕 소동이 인다.그해 충용 후작부의 추문을 기억하는 이가 이제 몇이나 남아 있겠는가?그러니 권세를 쥔 지금의 고장훈을 다들 떠받들 뿐, 그가 과거에 저지른 더러운 짓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게다가 속사정의 태반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특히 고장훈과 형수 사이의 일은 더더욱 그러했다.삽시간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고장훈에게 밀려들었다.고장훈의 안색이 더없이 험악해졌다.그는 원망 어린 눈으로 노부인을 노려보았다.“그만하십시오! 그만하시란 말입니다! 할머님의 친손자는 저이거늘, 어찌 이토록 저를 해하려 하십니까!”할머님은 정녕 제 체면도, 충용 후작부의 명예도 안중에 없으시단 말인가!그러나 노부인은 이미 얼굴을 붉히며 모든 것을 까발린 뒤였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이미 반쯤 땅에 묻힌 늙은 몸인데, 이제 와 망신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하물며 망신당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저 못난 손자였다!“네가 내 친손자인 건 맞다만, 이 할미를 대하는 꼴을 보면 남만도 못하구나!”“내가 여러 해 동안 중병을 앓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거라. 네가 나를 단 한 번이라도 살뜰히 보살핀 적이 있더냐?”“보살피기는커녕 네가 저지른 추한 짓을 덮어 달라며, 죽은 숙부의 전공을 앞세워 너와 임유정의 혼인을 허락하는 성지를 받아내라고 이 할미를 몰아붙이지 않았더냐!”구경하던 사람들은 조모와 손자가 얼굴을 붉히며 맞서는 이 소동을 입을 떡 벌린 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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