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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1화

날씨가 서늘해지더니, 하룻밤 사이에 완연한 늦가을이 되었다.장공주는 화려한 마차에 올라 길을 떠났다.무리 지어 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향해 안타까운 탄식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마치 그녀의 결말이 이미 정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그 무리 속에는 유소영도 있었다.점점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그저 담담한 기색만이 어려 있었다.“아씨, 장공주 전하께서 이리 떠나시면 다시 돌아오실 수 있을까요?”아민이 안쓰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유소영은 고개를 저었다.이런 일은 그녀로서도 장담할 수 없었다.아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선나라 사람들도 참 이상해요. 왜 하필 장공주 전하를 콕 집어 부른 걸까요?”황실을 욕보이고 싶은 것이라면 젊은 공주를 골라도 되었을 텐데……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아민은 이내 부끄러워졌다.장공주든 젊은 공주든, 애초에 그 누구도 적군 진영에 보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이 지긋지긋한 전쟁 같으니!사내들이 벌인 일인데, 어째서 애먼 여인들이 그 화를 뒤집어써야 한단 말인가!어째서 하필 장공주를 부른 것인지, 유소영도 그 속내까지는 헤아릴 수 없었다.다만 한 가지, 고준형이 지금 적군 진영 안에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그라면 분명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장 장군 저택.황제는 지원군을 계속 보내면서도, 남방군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유호진은 이제 송씨 가문의 병권을 손에 쥐었으니, 그 안에는 남방군을 움직일 권한도 포함되어 있었다.날이 갈수록 기다림이 길어지자, 그도 조바심을 감추기 어려웠다.그러나 유소영은 오히려 태연했다.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던 탓이다.전쟁 통이라 그런지 하루하루가 유독 빠르게 흘러갔다.어느새 십일월이 되었다.유소영의 배는 나날이 불러 왔다.조금만 걸어도 금세 지쳐 숨을 몰아쉬었다.장사에 관한 일은 모두 유 대감이 맡아 처리했다.유소영은 그저 조운 쪽 일에만 신경을 쓰고,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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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2화

장공주가 평생 가장 사랑했던 사내, 유일하게 마음에 품었던 이는 다름 아닌 그녀의 부마였다.그녀는 부마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고, 그와 혼인하고 싶은 마음에 밥맛조차 잃을 지경이었다.부황은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여겨 그 혼인을 성사시켜 주었다.하지만 혼인한 지 일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부마가 자신과 혼인하도록 만들기 위해, 부황이 부마의 본처와 자식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이다.그토록 잔인한 일은 그녀와 부황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하지만 따지고 보면 부황도 결국 그녀를 위해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었으니, 그녀로서는 부황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부황이 베푼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다행히 부마는 줄곧 그녀에게 다정했고, 그 일로 그녀를 탓하거나 멀리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부부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화목하게 지냈다.자식이 없다는 것 외에는 그녀에게 아무런 아쉬움도 없었다.부마가 막북 전쟁에서 목숨을 잃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의 모든 행복이 그 순간 뚝 끊겨 버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런데 부마의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줄이야……게다가 그 아이가 지금 이렇게 제 눈앞에 서 있었다.장공주의 마음속에는 갖가지 감정이 뒤엉켰다.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해의 그 일은 분명 부황이 잘못한 것이었다.그리고 그 일의 근원에는 그녀 자신이 있었으니, 그녀 역시 결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원한으로 가득 찬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며, 장공주는 힘겹게 입을 뗐다.“얘야, 모두 내 잘못이다……”엽금서가 원한 어린 웃음을 지었다.“당연히 당신 잘못이지요! 그러니 이렇게 속죄하러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고준형이 밖에서 들어서자, 호위가 그에게 아뢰었다.“장공주 전하께서 진영에 도착하셨습니다.”고준형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물었다.“누가 맞이하고 있느냐.”호위의 표정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그게……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다름 아닌 엽 대인이라 합니다.”고준형의 눈빛이 잠시 굳었다.엽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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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엽금서는 질문을 던져 놓고는, 고준형이 미처 짐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답을 밝혔다.“이 사람이라면 대인께서도 아주 잘 아실 텐데요.”“바로 대인의 예전 부인이었던 유. 소. 영.입니다.”고준형의 눈빛에 순식간에 미묘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찰나에 불과한 미세한 변화였지만, 엽금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엽금서는 마치 그의 약점을 움켜쥔 듯, 반쯤 장난 섞인 어조로 말했다.“고 대인, 두 분은 부부였던 사이치고 참 흥미롭습니다.”“실은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선나라 쪽에서는 유씨 가문을 아예 멸문시킬 생각이었습니다.”“제가 여러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소영만은 살려 두게 한 것이지요.”“혹시 압니까. 그녀가 대인의 체면을 봐서 저희 대군이 연강을 건널 수 있게 해 줄지도요. 고 대인, 그렇지 않습니까?”고준형은 그 말에 담긴 뜻을 놓치지 않았다.그는 에두르지 않고 엽금서에게 곧바로 물었다.“내가 유소영을 설득해 선나라에 연강 조운을 열어 주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엽금서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 똑똑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이토록 편하다니까요.”“고 대인, 지금이야말로 대인께서 선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실 때입니다.”말하는 사이, 그는 비수 한 자루를 내밀었다.“위에서 말씀하시길, 대인더러 유소영을 설득해 조운을 열게 하되, 만약 그 여인이 응하지 않는다면 대인께서 직접 처리하라 하셨습니다.”고준형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하룻밤 부부의 정도 백 날의 은혜와 같다 했소. 그녀에게만은 손을 쓸 수 없소.”엽금서는 그 말이 진심임을 믿었다.“하지만 그리하셔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양나라를 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먼저 연강 조운을 손에 넣는 것이라는 걸요.”말을 마친 뒤, 엽금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말씀은 전해 드렸습니다. 고 대인, 몸조심하십시오. 저는 장공주 쪽 구경거리도 좀 보러 가야겠습니다!”엽금서가 떠난 뒤, 고준형은 탁자 위에 놓인 비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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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화

원나라가 좀처럼 출병하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원나라 조정 내부에서 좀처럼 의견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선나라가 그들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운을 끊어 군량 보급로를 막아 버렸으니, 원나라로서는 곳곳에서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이는 모두 고준형의 계책이었다.이제 원나라는 지원군을 보내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었다.선나라의 여러 장군들은 고준형의 계책에 크게 감탄하며, 그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판을 짰다고 여겼다.“일찌감치 원나라의 퇴로를 끊어 놓기를 잘했지!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쯤 원나라까지 상대하느라 병력을 나눠야 했을 것 아닌가!”“참모님,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고준형은 술 한 잔을 들이켰다. 그의 눈빛은 유독 잔잔했다.십일월.선나라 대군이 연승을 거듭했다.이토록 판세가 유리하니, 굳이 연강 조운을 몰래 이용하지 않아도 순조롭게 밀고 내려갈 수 있었다.그 때문에 애초에 고준형더러 유소영을 설득하게 하려던 계획은 잠시 뒤로 미뤄졌다.이날 밤, 엽금서가 고준형의 천막을 찾아와 그 일을 꺼냈다.“참모님, 이번 걸음은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게다가 선나라 사람들의 신임까지 얻으셨으니, 축하드려야겠군요.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필시 대인께서 으뜸가는 공을 세우게 되실 겁니다.”고준형의 태도는 여전히 차분하고 태연했다.그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딘가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듯했다.“으뜸가는 공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싸운 저 장병들에게 있는 것이오.”엽금서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그럼 고 대인이 바라는 건 무엇입니까?”고준형이 웃으며 답했다.“나는 그저 사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싶을 뿐이오.”엽금서는 반신반의했다.“양나라의 모든 것을 그리 쉽게 버리시겠다는 겁니까?”고준형이 우습다는 듯 되물었다.“양나라라니. 앞으로도 그런 나라가 남아 있겠소?”엽금서는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술잔을 들었다.“그렇지요!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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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5화

엽금서는 줄곧 고준형을 믿지 못했다.같은 처지, 곧 가문이 멸문당하고 원한을 품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그는 고준형의 마음속 원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양나라 황실을 원망하듯, 고준형 역시 사씨 가문을 멸문시킨 선나라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그런 사연을 지닌 고준형이 어찌 진심으로 선나라를 위해 움직이겠는가?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아도, 엽금서 자신이라면 절대 그리하지 않을 터였다.그래서 지금 선나라가 전세에서 밀리자, 엽금서는 곧바로 고준형의 짓이 아닐까 의심했다.증거는 없었지만……엽금서는 고준형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그가 해명해 주기를 바랐다.고준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그를 마주 볼 뿐이었다.“엽 대인이 나를 지나치게 높이 사는군. 선나라 국경의 수비는 본래 기밀이거늘, 내가 어찌 엿볼 수 있었겠소?”엽금서 역시 그 이치를 모르지 않았다.선나라의 수비는 시시각각 바뀌니, 고준형이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리 없었다.하지만 그렇다면 양나라 군대가 어찌 이토록 손쉽게 방어선을 몇 겹이나 무너뜨렸는지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만약 남쪽 변경 하나만 뚫린 것이라면 우연이라 할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 양나라군은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마치 성마다 약점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정확히 그곳만을 노려 공격하니, 칠 때마다 들어맞았다.이는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답은 하나뿐이었다.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엽금서는 여전히 고준형을 믿지 못했다.“선나라를 위해서니, 우선 참모님께서 다소 억울한 일을 겪으셔야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엽금서가 명을 내렸다. 병사 몇이 들어와 고준형을 감시하기 시작했다.“내 지시가 없으면 참모는 드나들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예!”고준형은 담담한 얼굴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은 더더욱 없었다.……양나라.황성.어느덧 연말이 가까워졌으나, 바깥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거리에는 평소의 떠들썩한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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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6화

유소영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아니야. 남방군은 남쪽 성에 있으니, 그들을 북쪽까지 보내려면 시간도 힘도 너무 많이 들어. 게다가 그들은 본래 남쪽 국경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으니, 만약 남쪽이 뚫리기라도 하면 이웃 나라가 그 틈을 노려 쳐들어올 수도 있어.”아민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 “그럼 저희가 쓸 수 있는 사람이 또 있나요?”얼마 지나지 않아 유호진이 들어왔다.유소영은 담담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지금 우리 군이 송엽성에 갇혀 있어. 지도를 살펴보니 적군이 양쪽에서 협공하고 있고, 우리 군은 군량 보급이 끊긴 상태라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지쳐 무너지고 말 거야. 네가 사람을 이끌고 가서 그들을 구해 줘야겠다.”유호진의 눈빛은 굳고 곧았다.“알겠습니다. 다만 사안이 급하니, 제가 곧바로 입궁해 아뢰고 남방군을 움직일 수 있도록 폐하의 윤허를 받아 오겠습니다.”유소영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남쪽에도 지킬 사람이 필요해. 그러니 폐하께서 윤허하지 않으실 거다.”유호진이 미간을 좁혔다. “그럼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유소영은 통행 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그저 군량을 호송하는 정도면 돼.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아. 오히려 사람이 많으면 행적이 드러날 위험이 있으니까. 내 수하에 육백여 명이 있어. 그중 오백 명은 염씨 가문이 남기고 간 정예병이고, 나머지 백여 명은 고준형이 내게 남겨 준 호위들이야. 다들 싸움에 능한 이들이지……”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호진은 이미 그 뜻을 알아차렸다.“육백여 명이면 충분합니다. 다만 누님 곁에는 사람을 남겨 두지 않으실 생각입니까?”유소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장 장군 저택의 호위들만으로도 내 안위를 지키기엔 충분해.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다녀오너라.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아.”유호진은 유소영에게서 영패를 건네받고 입궁해 황제에게 윤허를 청했다.황제는 유호진이 자원해서 군량을 운송하겠다고 나서자 그제야 근심 어린 얼굴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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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설 이튿날.관원들 사이에 왕래가 잦은 때라, 장 장군 저택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유소영은 장씨 가문의 명목상 며느리였으므로, 시어머니를 도와 함께 손님을 맞아야 했다.그런데 고장훈이 뻔뻔스럽게도 찾아왔다.그는 두둑한 선물을 들고 와서는 음침한 눈길로 주위를 훑다가, 결국 유소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그런데 그대 부군은 안 보이는군?”유소영이 담담하게 대꾸했다.“제 부군은 남방성에 갔습니다.”곁에서 시중을 들던 아민은 고장훈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다.이 고장훈이라는 자는 예전부터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위인이었다.고장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도 여전히 유소영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그가 못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대 친부가 송청명 장군이었을 줄이야. 우리가 부부였을 때는 어찌 그런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소?”상석에 앉아 있던 장 장군이 나서서 말했다.“소영이도 얼마 전에야 기억을 되찾은 것이라네.”고장훈이 묘한 웃음을 흘리며 비꼬았다.“참 공교롭기도 하지요. 예전에는 기억이 돌아오지 않더니, 시집가고 나니 도리어 모든 게 떠오른 모양입니다.” 만약 유소영이 그런 출신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유소영과 화리하지 않았을 터였다.지금 병권을 둘러싼 다툼이 이토록 치열한데, 신왕을 제외하면 그 병권은 거의 대대로 이어져 온 몇몇 명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자신처럼 새로 벼슬길에 오른 자가 병권을 손에 넣으려면, 결국 남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리는 부스러기나 주워 담는 수밖에 없었다. 유소영의 그 부군은 참으로 운도 좋았다. 유소영과 혼인하자마자 남방군 전체를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이러니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아주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장훈은 장씨 저택을 나서기 전, 일부러 유소영에게 은밀히 말을 남겼다.“소영, 나는 지금껏 그대를 잊은 적이 없소. 만약 부군이 그대를 소홀히 대한다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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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8화

유호진은 그 육백여 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연강 조운을 따라 은밀히 오강으로 들어섰고, 무사히 군량을 전달하는 동시에 송엽성에 갇힌 양나라 장병들에게 활로를 열어 주었다.그 활로 덕분에 포위당했던 장병들은 살길을 찾았다.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뛰쳐나와 반격에 나섰다.고준형과 유호진이 안팎에서 손발을 맞춘 끝에, 양나라 장병들은 마침내 적군의 포위망을 뚫어냈다.이로써 선나라는 미처 손쓸 틈도 없이 허를 찔리고 말았다.전세가 다시 한번 뒤집혔다……일월 말.유소영은 이제 곧 해산할 때가 되었다.이날, 그녀는 마침 유호진에게서 온 서신을 받아 읽던 중이었다. 절반쯤 읽었을 때, 갑자기 배가 극심하게 아파 왔다.곧이어 양수가 터졌다.미리 대비해 두었음에도, 아민은 놀라 허둥지둥 산파를 불렀다.“아씨! 조금만 버티세요! 괜찮으실 거예요!” 아민은 유소영을 부축해 침상에 눕히며 끊임없이 다독였다. 사실상 스스로를 달래는 말에 가까웠다.유소영은 이날을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제 아이가 마침내 세상에 나오려 하고 있었다.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참 알 수 없는 법이었다.앞채.장 장군의 노쇠한 얼굴에는 음침한 기운이 짙게 어려 있었다.그는 몸종 하나를 불러 명을 내렸다.“유씨가 아이를 낳거든 곧바로 그녀를 죽여라.”그는 어미를 없애고 아이만 남길 생각이었다.신왕이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것을 지켜보노라니, 설령 네 가문이 힘을 합친다 해도 신왕의 병권을 빼앗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사실 그는 줄곧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병권을 탐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왕의 위세를 두려워했다.하지만 이제 완전히 빈손으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송씨 가문의 병권이야말로 그가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지금 송씨 가문의 병권은 유호진의 손에 있어 함부로 손댈 수 없었다.하지만 유소영의 아이, 곧 송청명의 외손자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그렇게 되면 그는 아이를 명분으로 내세워, 적당한 구실을 붙여 얼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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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9화

고준형이 돌아왔다.유소영이 아이를 낳은 뒤, 그는 약속대로 그녀와 딸 곁에 나타났다.이 순간,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아찔함과 재회의 기쁨이 뒤엉켜, 유소영의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으로 소용돌이쳤다.유소영은 눈시울이 촉촉해진 채 고준형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말 한마디 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고준형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가만히 손을 잡았다.그 온기가 닿고 나서야, 그녀는 이것이 꿈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그는 정말로 살아서 돌아온 것이었다.아민은 암살을 시도한 몸종을 제압한 채 다그쳤다.“누가 보냈느냐!”몸종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밖에서 들려온 소란이 그 답을 대신했다.“마당을 에워싸라!”마음이 놓이지 않은 장여훈이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들이닥친 것이었다.유 대감과 노부인은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놀라,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이 장여훈이라는 자가 결코 좋은 뜻으로 온 것이 아님은 분명히 느껴졌다.유 대감이 앞으로 나서서 문 앞을 막아섰다.“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장여훈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누군가 산실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느리가 걱정되어 직접 지키러 온 것뿐이오.”침입한 이는 다름 아닌 고준형이었다.유 대감과 노부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장여훈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짐짓 모르는 척했다.“여봐라, 저 도둑놈을 잡아라! 다만 명심해라. 절대로 며느리와 아이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그 말에는 다른 속뜻이 숨어 있었다.그가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유소영의 목숨이었다!하지만 그는 변수 하나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바로 고준형이었다.그는 고준형이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장여훈의 수하들이 산실에 들이닥치기도 전에, 고준형은 이미 여러 겹의 침구로 감싼 유소영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온 뒤였다.그의 뒤를 따르는 아민의 품에도, 마찬가지로 포대기에 곱게 싸인 아기가 안겨 있었다.고준형은 흰옷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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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0화

고장훈은 화가 치밀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연신 따져 물었다.“장씨 가문에는 하나같이 쓸모없는 자들뿐이란 말인가! 어찌 고준형이 사람을 그리 순순히 데려가게 놔둔단 말이냐! 고준형에게 대체 무슨 권리가 있다고!”그는 아직도 세상에 국법이 엄연히 살아 있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국법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장여훈 역시 그것이 궁금할 지경이었다.지금 장여훈은 서재에 틀어박힌 채, 초조한 마음에 머리만 쥐어뜯고 있었다.“유호진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이냐! 고준형이 이미 돌아왔는데, 유호진은 어찌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이냐! 제 처자식을 다 빼앗기고도!”정작 유호진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장여훈만 혼자 애가 타는 꼴이었다.장여훈은 송씨 가문의 병권을 손에 넣고 싶어 애초에 어미를 없애고 아이만 남길 셈이었건만, 결국 모녀가 함께 빠져나가고 말았다.이제 유호진이 돌아와야만 비로소 고준형과 맞서 그들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황궁.고장훈은 황제 앞에서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았다.“폐하! 유소영은 어쨌든 장씨 가문의 며느리이거늘, 이제 갓 해산한 몸으로 이리 석연치 않게 고준형에게 끌려갔으니, 그 명성에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게다가 고준형은 선나라 혈통에 사씨 가문의 사람이니, 이렇게 양나라로 돌아와 소란을 일으킨 이상 첩자라는 혐의도 피하기 어렵습니다……”황제는 나른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가늘게 떴다.“그 일이라면 짐도 이미 들었다.”“고준형이 돌아온 것도 짐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애초에 그를 앞당겨 돌아오게 한 것도 바로 짐이다.”고장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설마 그것이 폐하의 뜻이었단 말인가?“폐하! 신도 고준형이 양나라에 공을 세운 것은 알고 있사오나, 그자에게 딴마음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자는 이전에 선나라를 도와 우리를 공격한 적도 있었으니……”“그 일은 짐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유씨의 일은 정작 유씨 본인도 아무 말이 없거늘, 그대가 어찌 나서서 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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