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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apítulo 571 - Capítulo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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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화

그 말을 듣자 여의사가 흠칫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김 대표님이 병을 앓고 계셔. 분비성 위 종양이야.”주임 의사가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출발이 워낙 급하게 정해진 탓에, 그는 이제야 여의사에게 김태하의 상태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다.여의사는 이번 일정에서 김태하의 간호와 응급 처치를 맡을 뿐이었다. 실제 주치의는 어디까지나 주임 의사였다. 다만 주임 의사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생길 경우 대신 움직여야 했기에, 김태하의 몸 상태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보고서를 확인한 여의사는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에 주임 의사는 헛기침을 했다.“환자가 안타까운 건 알겠는데, 국내에선 그런 식으로까지 감정이입하진 않아.”외국 병원에서는 진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심각한 병을 발견하면 가끔은 의료진이 환자보다 더 서럽게 우는 일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여의사는 보여 주기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김태하처럼 좋은 남자가, 아직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병을 앓게 되었을까.“이제 어떡하죠... 아직 신혼이시라면서요. 부인께서는 알고 계세요?”여의사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임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몰라. 숨기고 계셔. 말했잖아. 부부 사이가 워낙 좋다고. 부인이 힘들어할까 봐 차마 말 못 하는 거지.”거기까지 말한 주임 의사도 한숨을 내쉬었다.하늘은 늘 사랑하는 사람들을 시험하길 좋아했다. 세상일이 너무 완벽하다 싶으면 꼭 어딘가에는 흠이 생기기 마련이었다.“평생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김태하를 딱 한 번 봤을 뿐이고, 제대로 말을 나눈 적도 없지만 벌써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일단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시는 거겠지. 이런 일은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야.”여의사가 끝없이 물고 늘어질까 봐, 주임 의사는 서둘러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이 일을 절대 밖에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했다.여의사는 이번 일정에 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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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강지현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비서진과 합류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배아름이 앞을 막아섰다.“지현 씨, 옷부터 갈아입으시죠. 곧 블루 호텔 컨벤션센터로 출발해야 합니다. 블루 호텔은 저희 계열의 국제 고급 호텔 브랜드이고, 오늘 전시는 주얼리 아트 쪽 행사입니다.”배아름은 곧 있을 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강지현도 어젯밤 주호석에게서 오전 전시 이야기를 듣긴 했다.이번 전시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예술가들과 재계 인사들이 대거 초청되었다. 단순한 사교 행사가 아니라, 새로 문을 연 호텔에 힘을 실어 주는 자리이기도 했다.강지현은 주씨 가문의 딸이자 주상 그룹의 후계자였다. 게다가 이제 국내에서도 몸값이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강지현이 참석한다면 행사 분위기는 자연히 더 화려해질 수밖에 없었다.더구나 주호석이 마련한 자리였으니 강지현도 얼굴 정도는 비춰야 했다.강지현은 배아름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돌아가 드레스를 고르고 메이크업과 헤어까지 마쳤다.주호석은 아침에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나간 뒤였다.차에 오른 뒤에야 강지현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자신을 따라다니던 비서와 수행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강지현은 배아름을 돌아보았다.“내 비서들은 어디 있죠?”강지현의 사람들은 본관 옆 건물에 머물고 있었는데 거리가 꽤 있었다.그것도 주호석이 정한 규칙이었다. 주씨 가문 사람과 아랫사람은 같은 건물에 묵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배아름도 평소에는 본관에 머물지 않았다. 강지현은 불편함을 느꼈지만 남의 집에 온 이상 대놓고 문제 삼기는 어려웠다.어젯밤 강지현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귀국 일정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비서는 별다른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그래도 강지현은 만일을 대비했다. 비서에게 조용히 일정을 준비해 두라고 했고, 오늘 늦게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장원을 빠져나가 곧장 공항으로 갈 생각이었다.하지만 계획은 벌써 틀어지고 있었다.“아직 쉬고 있는 게 아닐까요?”배아름은 태연하게 대답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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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주호석도 체면이 섰다. 그는 세계 각국의 언론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직접 강지현을 소개했다.주호석은 강지현을 단순한 주씨 가문의 딸이나 후계자로 소개하지 않았다. 지금은 주상 제약의 대표이자, 앞으로 주씨 가문 사업을 이끌 사람이라고 못박았다.아직 젊은 만큼 의심의 목소리도 적지 않겠지만 자신은 끝까지 강지현을 지지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니 모두가 강지현을 많이 도와주고 지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할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강지현은 그 자리에서 울컥했다. 곧 주호석과 포옹했고 현장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예전 주호석이 주씨 가문을 주승호에게 넘겼을 때조차 이런 대대적인 연출은 없었다. 아마 곧 강지현을 띄워 주는 기사가 온 인터넷을 뒤덮을 것이다.주호석과 강지현의 각별한 조손 관계, 주호석이 손녀를 얼마나 아끼는지도 순식간에 화제가 될 터였다.하지만 그 모든 연출 뒤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보는 쪽은 따로 있었다. 바로 주호석 산하에서 새로 문을 연 고급 호텔 브랜드였다.강지현도 그 정도는 모르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이 쇼에 맞춰 주러 온 셈이었다.주호석도 만족한 기색이었다. 그는 고가의 주얼리 몇 세트를 골라 강지현에게 선물하고, 아끼는 손녀를 자랑하듯 굵직한 인사들에게 소개했다.오늘 사교 자리는 어제 가족 만찬보다 훨씬 실속 있었다. 주호석은 강지현을 본격적으로 핵심 인맥에 들이려는 게 분명했다.오찬이 끝난 뒤에야 강지현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그녀는 그제야 비서진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배아름에게 상황을 물으려던 찰나, 주호석이 지현우와 지씨 가문의 두 어른을 데리고 그녀를 막아섰다.지현우는 어젯밤 강지현에게 메시지로 거절당한 뒤부터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다. 오전 행사에도 내내 참석해 있었지만 강지현을 보고도 먼저 다가와 인사하지 못했다.“지현아, 오늘 오전 내내 바빴지. 피곤하지는 않니?”주호석은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고는 두 오랜 친구를 강지현에게 소개했다. 지현우의 아버지와 셋째 숙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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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강지현의 질문이 연달아 쏟아지자 배아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곧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괜히 예민하게 생각하신 겁니다. 정말 제가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곧 돌아올 테니, 그때 직접 확인하시면 됩니다.”강지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별장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옆 건물로 향했다. 그러자 배아름이 다시 그녀를 막아섰다.“지현 씨, 방향을 잘못 잡으셨습니다.”“내 사람들을 돌려보내든지, 아니면 내가 직접 찾으러 가겠어요. 비켜요.”이번에는 강지현도 물러서지 않았다. 배아름도 더는 막지 못하고 뒤따라올 수밖에 없었다.방문 앞에 도착하자, 이미 몇몇 경호원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배아름이 눈짓하자 그들이 곧장 다가왔다.“지현 씨, 여기서 멈춰 주십시오.”“지금 뭐 하자는 거죠?”강지현은 배아름을 돌아보았다.경호원이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실은 함께 오신 분 중 한 분이 몸이 좋지 않아 방금 근처 병원으로 모셨습니다.”억지로 짜 맞춘 변명이라는 게 너무 뻔해서, 강지현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녀는 배아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배아름 씨. 내가 할아버지께 직접 물을까요, 아니면 지금 여기서 솔직히 말할래요?”배아름은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변명하지 않았다.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현 씨는 당분간 이곳을 떠나실 수 없습니다. 회장님의 지시가 맞습니다. 지현 씨가 모른 척 넘어가 주셨다면, 회장님께서도 굳이 심리적으로 부담을 드리고 싶어 하진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안심하십시오. 함께 오신 분들은 당분간 지현 씨를 뵙지 못할 뿐, 모두 안전합니다.”“떠날 수 없다고요? 지금 내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뜻이에요?”강지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속으로는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주호석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는 건 이미 눈치챘다. 하지만 자신이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을까.배아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곁에 있던 경호원들이 강지현을 에워쌌다.“지현 씨, 일단 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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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사모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전화가 연결되자 차 안의 남자는 창밖으로 내놓았던 팔을 거두고 창문을 올렸다. 그러고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엄경미는 전화를 끊고 방금 휴대폰으로 받은 사진 몇 장을 내려다보았다.김태하가 벌써 M국에 올 줄이야.최근 임지태의 사람들이 계속 김태하를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원시에서는 감시와 경계가 워낙 삼엄해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 결국 김태하가 해원시를 벗어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강지현이 오랫동안 귀국하지 않으면 김태하는 결국 가만있지 못할 것이다.기회는 시간문제였다. 모든 일이 엄경미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엄경미는 와인장에서 드라이 레드 와인 한 병을 꺼내 반 잔 정도 따랐다. 하지만 맛을 보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찾아온 사람은 주호석 쪽 사람인 배아름이었다.“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사모님, 회장님께서 상의드릴 일이 있으시답니다. 잠시 와 주셨으면 합니다.”배아름이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말했다. 엄경미는 대충 짐작이 간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옷만 갈아입고 가지.”...“할아버지를 뵙게 해 줘요!”강지현은 바깥에서 잠긴 방문을 두드리며 차갑게 말했다.문밖에는 경호원 네 명이 지키고 있었다. 강지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요청은 이미 전달드렸습니다. 회장님께서 만나겠다고 하시면 저희가 모시겠습니다.”“시간이 늦었으니 우선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몇 시간 동안 강지현은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똑같았다.배아름은 사람들을 시켜 강지현을 강제로 방 안으로 들여보냈고, 그 뒤로 강지현의 휴대폰은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설령 신호가 잡힌다 해도, 지금 그녀의 휴대폰은 이미 감청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상대는 처음부터 그녀를 붙잡아 둘 생각이었던 것이다.강지현이 눈치채지 못했다면 주호석은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었을 것이다. 들킨 이상, 이렇게 강제로라도 막아 세울 생각이었고.강지현이 귀국하려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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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방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경호원들이 문밖에서 계속 달래는 말만 늘어놓자, 강지현은 오히려 더 기세를 올렸다. 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이러다 정말 일이 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경호원 하나가 급히 주호석 쪽에 전화를 걸었다.슬슬 힘이 빠지려던 순간, 문이 밖에서 벌컥 열렸다. 미처 멈추지 못했던 강지현은 이불을 둘둘 감은 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문밖의 경호원이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완전히 붙잡지는 못했다.다행히 이불이 쿠션 역할을 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까지 온몸으로 문을 들이받을 때가 더 아팠다.하지만 강지현은 아픈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호원을 밀쳐 내고 밖으로 몇 걸음 나갔다.“회장님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라고 시킨 건가요? 내가 방금 문을 몇 번이나 들이받았는지 알아요? 온몸이 다 부서지는 줄 알았다고요!”강지현은 일부러 얼굴까지 붉히며 크게 몰아붙였다. 경호원들이 다시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경호원들은 당황한 기색으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는 절대 그런 지시를 하신 적 없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오해인지 아닌지는 내가 회장님을 만나 봐야 알겠죠. 당장 할아버지께 데려가요. 안 그러면 오늘 여기서 머리가 깨질 때까지 문에 들이받을 겁니다.”강지현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끝까지 해 보겠다는 태도로 버텼다.다행히 경호원들은 더 이상 그녀를 막지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을 뿐이었다.우두머리로 보이는 경호원이 급히 말했다.“알겠습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모시겠습니다.”경호원들은 그제야 강지현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동하는 내내 긴장을 풀지 못했다.강지현은 맨 앞에서 걸었다. 슬리퍼를 끌고도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거의 달려가는 수준이었다.주호석의 침실 앞에 도착했을 때도 그녀는 누가 안에 보고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문을 밀고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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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뒤따라온 경호원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주호석의 성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모를 수가 없었다.주호석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집안에서 가장 예쁨을 받는 손자 주시언도 주호석의 심기를 거스르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대놓고 벌을 내리지는 않아도, 어떻게든 뼈아프게 값을 치르게 만들었다.하물며 그들 같은 아랫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칫하면 목숨이 반쯤 날아갈 일이었다.그런데도 주호석은 오늘 손짓 한 번으로 그들을 물러가게 했다. 강지현이 허락도 없이 들이닥친 일도 문제 삼지 않았다.아무래도 강지현을 꽤 아끼는 모양이었다.주호석은 가만히 선 강지현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제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앉아라.”부드러운 말투였지만 한마디만으로도 사람을 짓누르는 힘이 있었다.강지현은 바로 앉지 않았다. 잠시 주호석을 바라보다가, 옆에 앉아 있는 엄경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아주머니는 안 나가세요?”주호석은 방금 모두를 내보냈다. 하지만 엄경미만은 그대로 두었다.엄경미는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듯 태연하게 차만 마시고 있었다. 평소라면 가장 먼저 강지현을 물어뜯고도 남을 사람이 이렇게 조용한 것도 이상했다.“지현아, 경미도 네 어머니 아니냐. 그렇게 남처럼 부를 필요 없다. 일단 앉아라.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하면 된다.”엄경미가 아무 말 없자, 주호석이 대신 대답했다.그는 강지현의 찻잔에도 차를 따랐다. 찻잔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그래도 강지현은 앉지 않았다.“할아버지, 저 싫어하세요?”주호석이 웃었다.“그럴 리가 있겠느냐. 너는 내 손녀다. 게다가 이렇게 똑똑하고 능력까지 있으니, 나는 그저 대견할 뿐이다.”“그럼 제가 할아버지 마음에 안 드는 일을 했나요?”“아니다.”주호석은 이번에도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엄경미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역시 주호석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지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뻔히 알면서도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그럼 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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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역시 겁 없는 건 젊음의 특권이라더니. 엄경미는 강지현이 조금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주호석도 뜻밖이라는 듯 강지현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순하고 얌전해 보이던 손녀가, 속은 제 아비를 그대로 닮았다.예전 주승호도 그랬다. 주호석과 뜻이 갈리자 곧바로 등을 돌렸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때의 주호석도 젊었다. 평생 누구에게도 고개 숙여 본 적 없는 사람이었으니, 자식에게라고 먼저 손을 내밀 리 없었다. 그렇게 벌어진 사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주승호는 주호석이 가장 아끼던 아들이었다. 가장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자식이기도 했다. 그만큼 돌아설 때도 매정했다.지금 와 생각해 보면 주승호는 애초부터 누구 밑에 얌전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주승호는 주호석을 닮았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성정까지 닮았다.순해 보였던 모습도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이다. 오래 눌려 있을수록, 반발할 때는 더 거침없어지는 법이니까.주호석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예전의 그는 손에 쥔 권력으로 곁의 모든 것을 제 뜻대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끝까지 통제하려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도 있었다.통제는 결국 상대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나 정 같은 건 억지로 붙잡는다고 붙잡히는 것이 아니었다.그래서 이번만큼은 강지현을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널 속이려던 건 아니다. 다만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우리 주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당분간 네가 이곳에 남아 주길 바랐다. 그렇게 말하면 이해해 줄 수 있겠느냐?”주호석이 강지현에게 이렇게까지 낮춰 말하자, 엄경미는 표정을 굳혔다. 속이 답답하게 들끓었다.강지현은 옅게 웃었다.“저를 지키기 위해서요? 거짓말로 저를 속이고 자유까지 빼앗는 걸, 저는 보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할아버지에게도 사정이 있다. 잠시만 이곳에서 내 곁에 있으면 안 되겠느냐?”주호석은 여전히 인내심을 잃지 않았다.“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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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강지현은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주호석을 바라보았다.주호석은 눈을 감은 채 엄경미에게 계속 말하라는 듯 가만히 있었다.엄경미는 애써 감정을 누르고 있는 강지현을 바라보다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네 아버지는 원래 건강한 사람이었어. 그렇게 젊은 나이에 갑자기 중병을 얻을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야. 병세도 너무 빨랐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쳤어. 그래서 네 아버지는 딸인 너를 찾고도 끝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거야.”거기까지 듣자 가슴이 서늘해졌다.당시 유산 상속 문제로 찾아왔던 변호사도 그렇게 말했었다. 유언장은 몹시 급하게 작성됐고, 주승호는 오래 고민한 끝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강지현을 찾아가라고 지시했다고 했다.변호사조차 그 유언장이 이렇게 빨리 효력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엄경미의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주승호의 병은 확실히 갑작스럽고 빠르게 진행됐다.강지현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꽉 맞잡았다.엄경미가 다시 말했다.“네가 아버지와 함께 지낸 시간은 없다 해도, 너는 그 사람의 딸이야. 게다가 그 사람이 남긴 모든 것을 물려받았지. 그런 네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겠니?”엄경미는 아직 제대로 된 핵심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먼저 강지현을 도덕적으로 몰아세웠다.하지만 강지현도 넘어가지 않고 곧장 물었다.“그러니까 아빠의 죽음이 김씨 가문과 관련 있다는 뜻이에요?”그 말을 꺼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엄경미는 처음부터 숨길 생각이 없었다. 첫날 밤 떠보듯 던진 말부터 이미 강지현에게 방향을 알려 주고 있었다.강지현이 당장 귀국하려 했던 것도 엄경미의 말에 흔들렸기 때문이었다.이제야 강지현은 엄경미가 원한 것도 바로 그 반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주호석은 아직 이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엄경미는 강지현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면 절대 가만히 끌려다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강지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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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엄경미는 나중에 그날 일을 따로 조사했다.당시 김무언이 직접 맞이한 손님들이 있었다. 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은 모두 열두 명.주승호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열두 명은 이후 모두 행방이 묘연해졌다.더구나 그해 김무언이 연루됐던 형사 사건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유독가스 유출 사고였다.엄경미는 주승호가 그날 무언가를 알아냈고, 김무언이 그런 은밀한 방식으로 그의 입을 막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아주머니, 저는 경찰 기록 같은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건 전부 아주머니의 추측이잖아요. 설마 이런 것만으로 아버님이 우리 아빠를 죽였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엄경미가 내민 자료가 가짜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지현은 자료를 다 보고 나서 오히려 조금 안도했다.김무언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었다. 김태하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반감이 있었다.그래도 김무언이 사람을 죽이고 불까지 지를 정도의 짓을 저질렀다고는 쉽게 믿기 어려웠다.“내가 언제 단정했니?”엄경미는 강지현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다만 내가 조사한 바로는, 김무언은 여러 동업자와 틀어져 등을 돌렸어. 지금 국제적으로는 그에게 현상 수배나 다름없는 추적령까지 걸려 있다는 말도 있고.”“그런 사람이 네 아버지의 죽음과 이렇게 절묘하게 얽혔는데, 의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니?”주호석의 얼굴도 굳어졌다.“지현아, 아직 모든 건 조사 중이다. 누구도 결론을 내린 건 아니야. 다만 네가 알아야 할 건 하나다.”“만약 김무언이 네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강지현도 주호석이 기분 상했다는 것을 눈치챘다.방금 보인 반응만으로도 속내가 들켰다. 강지현은 자신도 모르게 김씨 가문부터 감싸고 있었다.주씨 가문 사람들 눈에는 그 반응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주승호의 죽음이 김씨 가문과 관련됐다는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나와서는 안 됐다.강지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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