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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161 - Chapter 170

196 Chapters

선택과 집중 (6)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붉빛미르라면 지금쯤 이미 한양 곳곳을 돌아다니며 별좌 어르신을 찾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한 불을 먹인 자기 수하들을 동원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지운 영감이 와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천우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영실 또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방심할 수 없습니다.” 천우가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어르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상대가 붉빛미르든 뭐든 힘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물과 불이 뒤섞이는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주변이 불에 탈 것이며, 홍수에 잠겨버릴 수도 있습니다.”“물빛미르의 힘의 편린을 보았던 바,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그러니 별좌 어르신께서도 만약에, 만약에 전투가 벌어지거든 즉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어르신의 천문 관측이 끝날 때까지 제가 보호할 것이지만, 붉빛미르는 틀림없이 저보다 훨씬 강하고 민첩합니다. 그리고 거느리는 수하도 많습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질 작정으로 그 붉은 용을 막을 것이나, 별좌께서는 즉시 몸을 빼시어 대궐로 피하셔야합니다. 이것만큼은 고집을 부리셔서는 아니 됩니다.” 천우는 동의를 구하는 듯 장영실을 향해 진중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리하겠습니다.” 장영실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시(申時)가 넘은 시각이었다.궁궐 밖은 이제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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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살피기 (1)

서촌까지 다다르는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질 않았다. 저자를 통과하는 사이에 혹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지 않나, 뒤를 밟는 발걸음이 있지 않나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렸지만 딱히 수상한 움직임은 포착되질 않았다. 한시름 놓였지만, 반대로 그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차라리 일이 터질 것이면 가급적이면 빨리 터졌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천우는 그런 감상에 잠긴 자신을 질책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피로와 불안으로 머리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괜히 별자리 봐야 한다며 시간 가는 것을 의식한 탓일까.어느새 저녁께의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저는 바로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영실이 마루바닥으로 올라서며 말했다. “생각보다 날이 빨리 집니다, 오늘. 별을 보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 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따로 별좌 어르신을 도와드릴 것은 없겠습니까?” 장영실이 피식 웃으며 편히 있어도 된다 대답했다.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한동안 주섬주섬 뭔가를 챙기며 부산을 떨었다. 뭘 하나 싶어 고개를 빼고 보니, 다락방에 넣어둔 기구며 자료 따위를 꺼내드는 중이었다.이윽고 두 팔 가득 그것들을 안고 나오는데, 다리가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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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살피기 (2)

“별좌께서는 이 일이 정말로 적성에 맞으신 듯 합니다.”“그런 듯 합니다.” 장영실이 하하- 웃어보였다. 이제 한동안 입 다물고 밤하늘을 관측할 차례니,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잠시만 이해하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천우는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을 하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장영실이 작업에 열중하는 동안, 천우는 서촌으로 접근하는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며 경계를 설 작정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할 일에만 몰입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슥슥- 장영실은 기구를 통해 올려다본 천체의 움직임을 종이 가득 적어 넣었다.새로 적어 넣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하늘 올려다보고 앞서 적었던 자료를 수정하고 옮겨 적는 경우도 있었다. 사각사각- 부드럽게 먹을 갈고, 붓끝을 차분하게 적셔 종이를 가득 채웠다.알 수 없는 의미의 문자와 숫자들. 천하에 오직 혼자만 알아볼 수 있는 암어(暗語)로 켜켜이 잠긴 하늘 위 비밀을 젖혀 열어가는 손길이 아름답게 보였다. 어떠한 위압감이 풍겼다. 무기를 든 무사, 권위를 가진 벼슬아치, 발톱을 앞세운 성난 범과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위엄이었다.온전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맑고 청량하여 함부로 손을 대기도 말을 걸기도 힘든 그런 공기가 사방을 점거하고 있었다. 너무나 잘 만들어진 예술품을 깎는 장인 앞에 선 기분이랄까. 방해하고 싶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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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살피기 (3)

포청 앞에 다다른 순간, 가장 먼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열기였다.포청 담장 안쪽으로 검은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어찌나 불이 크게 났는지, 후끈한 열기가 얼굴로 확 와 닿을 정도였다.“불이야!”“불이 났다!”포청 관계자는 물론, 지나가던 행인들까지 모두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물바가지를 든채 뿌리는 사람, 서까래를 부수려는 사람,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고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 등등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혼돈에 빠져 있었다.포청 안쪽으로 무언가 불이 옮겨 붙은 듯했다.다행히 아직까지 바깥쪽까지 번져들지는 않은 듯 했으나, 이 정도 기세의 화력이라면 주위를 불태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아직 안에 사람들이 있어!”포졸 하나가 주저앉은 채로 소리치고 있었다.온몸에 그을음과 검댕이 묻어난 것으로 보아 화재를 진압하려다 밀려난 사람 같았다.“금화도감……. 금화도감 쪽이었어!”포졸이 외치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듯했다.천우가 얼른 그 포졸을 향해 달려갔다.“금화도감?!”천우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방금 금화도감이라 했소?”“그렇소! 금화도감 쪽에서 갑자기 폭발이 났소!”포졸이 헐떡이며 대답했다.그을린 입가에서 흰 거품 머금은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화아아악-!!!불길이 점점 거세졌다.바람도 그리 크게 불지 않는데 별일이었다.“무기고로 옮겨 붙으면 큰일이오! 화약이 있어 불이 붙는다면…….”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지금 불타오르고 있는 화재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난리가 날 것이다.“안에 몇 명이나 더 있소?”천우가 다급히 물었다.그러나 포졸은 더 이상 대답할 힘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망할…….’천우는 포졸을 내버려둔 채 포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불이야 원래부터 조금도 무섭지도 않았지만, 저 안에서 마주할 일을 떠올리니 다시금 가슴 속이 섬뜩해졌다.탁-천우가 거침없이 계단을 올라갔다.뒤쪽에서 사람들이 놀라 붙잡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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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열 (2)

천우가 조금 부드럽게 가라앉은 투로, 그리고 조금은 지친 듯한 투로 말했다.“당신이 이포교를 이용해 어떤 일을 저지르려 했는지는 짐작이 가오. 나를 협박하거나, 이포교의 정신을 뒤흔들어 천문 연구자들을 모두 찾아낼 작정이었을 거요. 내 말이 틀리오? 대답해보오.”“…….”“이영기 포교는 정당하게 시험을 치르고, 조선의 녹봉을 받으며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관리요. 우리 같은 미르가 지켜내고 아껴야할 사람의 표본 같은 사람이오. 그런 포교를 자신의 사심(私心)에 동원하여 강제로 자기 의지를 빼앗고 부리는 것은 미르로서 할 일이 아니오. 미르는 사람의 동반자이자 세상의 길을 가리켜주는 이정표. 결코 그들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고 해쳐서는 안 되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오.”천우는 손을 들어 자기 가슴에 올려놓았다.조금씩 떨리는 듯했다.가슴 속으로부터 피어난 확신이, 적을 향한 두려움과 증오가, 동료를 구해야한다는 절박함이 뒤섞여 손끝의 진동으로 표출된 것 같았다.“내가 비록 당신을 알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우리가 몇 대를 거쳐 싸워온 인연이라고 해도,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지금 어리 당신의 모습이오. 사람의 모습을 한 채로, 사람의 법도를 따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당신의 형상이오. 그동안 많이도 싸우고 또 대립했건만, 한편으로는 붉빛미르 당신의 마음 한편에는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여전히 깃들어있다고 보오.”“내가 사람을 아낀다고?”이포교가 이번에는 완연한 어리의 목소리로 되물었다.미세하게 안절부절 못하는 듯한 기색이, 영락없이 속을 들킨 사람의 모습이었다.“이상한 소리를 하시네요.”어리가 투덜거렸다.“제가 사람을 아낀다면 왜 전부 불에 태우고 조선 땅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으려 들겠어요? 안 그런가요?”“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지. 그렇지 않소?”“네. 분명히 그렇지요.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그렇게까지 악을 써가며 지상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이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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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열 (5)

“실망을 안겨드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죽이겠다며 으르렁대는 붉빛미르 앞에서도, 백사성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한낱 사람으로서 미르에 대항하는 것은, 목숨을 내다버리는 어리석은 짓거리일 뿐. 이미 그 정도는 각오하고 한양으로 온 것이나이다. 그러니 부디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마시옵소서.”“얌전히 내 손에 죽어주시겠다? 이 말이냐?”“붉빛미르와 대적할 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습니다. 이 몸이 죽게 된다는 것은.” 백사성은 초연한 듯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비록 술법 몇 개를 깨달아 비와 바람을 부를 수 있다한들, 어찌 미르의 권위에 비하리까? 그러니 다른 기우사들을 사냥했던 것처럼 저 또한 사냥하여 취하시지요. 마땅히 붉빛께서 뿜으시는 불길의 장작이 되오리다.”“기우사 놈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나갔다. 모두가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내 이빨에 맞서 칼을 뽑더군.” 어리가 혀를 쯧- 차며 중얼거렸다. “백사성 네놈 또한 다르지 않아. 미치광이를 보는 것 같다. 너희 사람이란 족속들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이냐? 어째서 이기지 못하는 싸움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지?” 짜증이 솟은 것인지 한손에 머금은 붉은 기운이 더욱 위협적으로 일렁였다.독니를 물기 위해 조준 중인 뱀 머리통을 보는 듯했다.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진심으로.”“다른 기우사들도 그렇게 붉빛미르에게 대적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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