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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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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열 (6)

백사성이 어리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언제 스러질지 모르는 목숨이기에 더더욱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누구도 앞날은 예측할 수 없기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요.”“그래서 물빛미르를 선택한 것이더냐? 원할 때 비 내리고, 곡식 더 거두어 안전하게 살기 위하여?”“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붉빛미르시여?”“말해보아라.”“호랑이가 사슴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불가하다.”“왜 불가능하다 단언하십니까?”“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생리를 가진 존재들이니까. 무엇보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니.”“그렇지만 미르들은 저희와 말이 통하시지요.”“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냐?”“말과 진심이 통하기에.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불확실한 동물은, 미르를 스승으로 삼아 더 배우고 정진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백사성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앞날을 볼 수 없기에, 그리고 사람이라는 종족으로서 스승으로, 이정표로 삼을 존재가 없었기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미르께서 나타나시어 우리를 보듬어 주셨습니다. 우러러볼 수 있는 권능을 보이시며 말입니다. 스승으로 모시기에 전혀 부족함 없는, 아니 너무나 성스러워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그런 분들이셨지요. 나 주제에 말을 섞어도 되는 것인지 겁이 날 정도로요.”“그러했더냐?”“네. 진심입니다. 너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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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미르 (2)

“아까와는 좀 다르오. 위력도, 속도도 모두 덜해진 기분이오.”“후후. 그래요?”“아니, 그게 아니라면 원래 붉빛미르 당신의 권능이 여기까지였던 것인가?”“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죠.” 어리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 모양새였다.오히려 완연한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천우의 말이 재미있다는 듯. “물빛 당신은 지금까지 자기 권능을 억제하고 살았을 테니까. 미르 그대로의 냉혹한, 미르 그대로의 본성을 억누른 채로 있었을 테니까요. 이제야 본모습으로 돌아온 거죠. 그러니 몸도 마음도 가벼울 수밖에.”“그래서 붉빛 당신조차 작게 보이는 것이군.”“아무리 절 끌어내려 해도 소용없어요. 저도 어차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쯤 다 알고 있었으니까.” 척- 어리가 담백하게 말하면서도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 한 가지 더 알려드리려고 해요. 몸으로 말이죠.” 치마폭 속으로 달려들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부디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요.” 눈 한번 깜빡였을 때였다. 슥- 어리가 순식간에 숨결이 닿을 정도까지 접근해왔다.분냄새와 불냄새가 한꺼번에 코끝을 스쳤다. “윽!”“나는 원래 물빛 당신보다…….” 어리의 불 머금은 손아귀가 단전을 향해 일 장(掌)을 쳤다. “강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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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미르 (4)

나를 멸하겠다.그런 말을 듣는데 심정이 곱게 들 리 없었다. 어리의 붉은 기운에 맞서, 천우 또한 허장성세로 보일 만큼의 푸른 기운을 쏟아내어 주위에 둘렀다. 여차하면 내가 그대를 멸할 것이다……. 라는 무언의 위협이었다.불끈거리는 속에 반응한 것인지, 푸른 기운이 어리의 것 못지않게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무시무시하네요.” 그 꼴을 보고 있던 어리가 문득 중얼거렸다.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네요. 내가 아무리 붉빛미르라고 해도.”“나 또한 마찬가지요.” 천우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나를 죽이겠다는 상대 앞에서 굳이 약한 모습 보일 필요 없지 않겠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 나는 고슴도치처럼 내가 가진 가시를 모두 들이밀어 당신을 겁주려는 거요. 해볼 테면 해 봐라. 너 또한 무사하지 않을 테니. 그런 것이지.”“그 말 대로네요. 물의 기운이 뾰족하고 날카로워졌어요. 자칫하면 제 목이 먼저 떨어지겠는데요. 물빛미르의 이빨에 갈려서.”“잔말 말고. 덤비려면 얼른 덤비시오.” 천우가 더욱 으르렁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먼저 칠 것이니.”“안정과 돌봄의 상징이신 물빛미르께서 먼저 손을 쓰시겠다니. 정말로, 정말로 화가 많이 나셨네요.”“누구든지 그럴 거요. 그리고 충고하는데, 이런 말싸움이 길어지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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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미르 (5)

“이곳은 내가 물빛미르와 겨루고 세상 밖으로 튕겨난 후로 처음으로 다시 조선 땅을 찾아왔을 때의 그 시점. 순수하게 당신만을 증오하고, 진심으로 당신을 해하고 싶었을 때의 현실. 그리고 두 미르가 다시 한 번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맞붙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고, 또 절대로 물러날 수 없는 전장(戰場). 우리 둘은 이곳에서 다시 싸우고 있는 것이에요. 원래의 역사라면 존재할 수 없는 곳에서.”“원래의 역사?”“그리고 또 하나. 제가 궁금하다고 하였지요. 제가 정말 2년 전 이때의 심정으로 물빛과 마주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억하시나요?”“그렇소. 붉빛미르는 물빛미르를 해할 것이라고 선언했지.”“그래서 안심했었어요. 정말로 이때, 2년 전의 나라면 물빛미르에게 거리낌없이 덤벼들 수 있음을 확인했으니. 그렇지만…….” 어리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그리고 하늘 위를 가리켰다. “하늘이 응답하시네요. 제가 틀렸다고. 그리고 제가 저지른 모든 일이 무위(無爲)로 돌아갈 것이라고. 물빛미르의 말에 대답하시네요. 차가운 비를 내려주시면서.”“…….”“시간을 돌려 그 자리, 그 때로 돌아와 당신과 마주하였어요. 그리고 각성한 물빛미르와 싸웠지요. 오로지 물과 불의 힘으로. 그리고 천지신명은 비를 내려주셨어요. 내가 진거예요.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에요.”“시간을 돌려서 2년 전으로 돌아왔고, 서로 미르의 힘을 만전(萬全)으로 기하여 싸웠고, 그 승패를 하늘에서 정하였다는 말이오?”“네. 물빛미르가 이긴 거예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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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늘 (1)

세종 10년 7월, 여름.유난히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아이구구…….” 사람 죽는 소리가 들렸다. 흙더미가 봉분(封墳)처럼 볼록 솟아 오른 주변은 일꾼들이 내뿜는 숨소리와 열기로 가득했다. 삽날이 땅바닥을 찍어 나르는 소음이 공허하게 울렸다. 3시진이 넘는 시각 동안, 이들은 구덩이를 파고 또 팠다. 못해도 여덟 자는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안 돼, 안 돼, 이거…….”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던 일꾼이 삽을 내던지며 내뱉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구덩이 주위에 모여 있던 일꾼들이 모두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삽을 내던진 일꾼이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 흙먼지를 탁탁 두들겨 터는 그의 손은 고된 작업에 이미 부르터있었다. “망할…….” 일꾼이 구덩이 속에 침을 탁- 내뱉으며 욕지거리를 했다. “습기 하나 없는 땅에 대고 2길은 되는 깊이의 우물을 파라니……. 일단 물이 있을 법 직한 땅을 골라야 뭐라도 할 것 아닌가.” 그가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한다는 듯 끙- 옅은 신음을 흘렸다. 달궈진 지면 사이에서 새어나온 아지랑이가 옷가지 속 땀방울로 번져들어 몸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얼마나 더 파야겠나?” 한 공노가 한숨을 쉬며 모두를 보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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