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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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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늘 (3)

발이 빠르기는 하나,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걸을 수 있을 때부터 여럿 사람 놀라게 할 정도로 몸놀림이 기민한 천우였다.저런 소매치기 한놈 잡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이제는 물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니, 땅 속 물을 불러내 발이라도 걸어버리면 그만이었다.‘하지만 불을 지르지 않으면 이포교가 나타나질 않겠지.’우선은 지난번과 동일하게 행동해보기로 했다.천우는 살짝 미소를 띈 채로 발에 힘을 주었다.사람들 틈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비렁뱅이가 대로를 벗어나더니 후미진 뒷골목으로 숨어드는 것이 보였다.천우 또한 놈이 들어간 쪽으로 모퉁이를 돌아갔다. 문 닫은 가게며 인적 드문 창고 따위가 성곽처럼 늘어서 있어 대낮에도 그림자가 지는 으스스한 곳이었다.비렁뱅이의 그림자가 저쪽 폐쇄된 참점(站店)쪽으로 사라졌다.이를 발견한 천우가 얼른 그 뒤를 쫓았다. 막다른 곳처럼 보이는데, 굳이 저 길로 도망치는 것이 수상했다.이곳 지리를 잘 모르는 풋내기이거나, 아니면…….‘함정이지.’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담벼락 이곳저곳에 숨어있던 패거리가 튀어나왔다.모두 여섯 명이었고, 손에 조악한 칼이며 녹슨 낫 따위를 거머쥔 채였다.패거리가 앞뒤로 천우를 포위했다.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이보슈, 나그네 양반.”패거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천우를 불렀다. 얼굴 반쪽이 곰보로 뒤덮여 남 보기에 흉측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거 보아하니, 과거 치르기 전에 미리 올라와 숙식하려는 서생이신거 같은데 여기서 붓 한번 못 잡아보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소?”천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다만 눈을 굴리며 패거리의 위치, 무기, 그리고 퇴로를 확인할 뿐이었다.어느 놈부터 그때 칼을 쑤셔 넣었더라? 조금 머리가 탁했다.“골방에 박혀 책만 뒤적이던 분이라 너무 순진하셨소.”곰보가 이어 말했다.“계집년들 분냄새에 아랫도리가 뜨끈뜨끈하시던가? 겁도 없이 들치기 하는 놈을 쫓아오다니 말이오.”그러면서 자기 옆을 기웃거리는데, 아까 복주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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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늘 (5)

“천루(天淚)를 대여(貸與)하니, 하늘의 눈물 부디 여기 두소서.” 천우의 주문에, 어김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오직 기름 가게를 중심으로.마치 불길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듯했다.빗물에 둘러싸인 불은 더 이상 타오르지 못하고 애먼 연기만 피워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에서 소낙비가 우수수 쏟아지니 제 아무리 기름 먹은 불이라고 해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 “비다!”“비가 온다!”“이제 살았어!” 군중이 환호를 질렀다. 빗물이 방패삼고, 흙을 끼얹어 숨구멍을 막아버리면 저 불길은 사그라질 것이다. 이제는 살았다. 모두 끝났다. 삐익-! 삐익-! 어디서 호각 부는 소리가 났다. 저쪽에서 한 무리의 군관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는 기다란 갈퀴를, 누구는 묵직한 망치를, 그리고 누구는 어깨 위에 물 담은 양동이를 짊어진 채였다. 가장 앞선 이는 포교(捕校)의 복장을, 나머지는 군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물러나시오! 길을 트시오!” 포교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목청이 어찌나 큰지, 시장 바닥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포교.’ 천우는 이쪽으로 뛰쳐오는 이포교의 모습을 보고 슬쩍 옆으로 물러났다. 군중이 양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주었다. 포교를 앞세운 군관 무리가 우르르 유전 앞쪽으로 몰려갔다.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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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늘 (6)

“그러하옵니다.”이포교가 상전 대하는 자세로 지운의 말을 받았다.“수고하셨소.”지운이 천우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천우는 그저 여차하면 물의 힘으로 쳐버릴 작정으로 당당히 서 있기만 했다.“둘만 있게 해주시겠소?”지운은 그런 천우의 모습은 상관도 않고 가만히 이포교를 물리쳤다.탁-이포교가 문을 닫고 나갔다.둘만 남게 되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앉으시게.”지운이 천우에게 자리를 권했다.“아니요.”천우가 뻗댔다.“서 있겠습니다.”“그럴 텐가?”지운이 조금 놀란 투로 되물었다.두 사람의 눈싸움이 불이 붙을 듯 이어졌다.“일단 내 소개부터 하겠네.”지운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나는…….”“지운. 기우사이시고, 붉빛미르와 물빛미르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시죠.”천우가 선수를 쳤다.지운이 크게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뭐, 뭐라?”“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감께서 찾아오신 이유도요. 오늘 저자에서 있었던 화재사건 때문에 오셨겠지요. 그리고 거기에서 내린 비 때문에.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비가 내렸다. 사람이 아닌 것이 개입했다. 그걸 확인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천우가 거기까지 말하곤 흘끗 옆을 바라보았다.탁자 위에 놓여있는 술병이 눈에 띄었다.“그리고 원래는.”천우가 술병으로 손을 뻗으며 이어 말했다.“이걸 내게 흩뿌려 조수(操水)할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려 하셨겠지요.”술병에 들어있던 물의 감각이 가감 없이 전해져왔다.슥-천우가 손을 놀려 물을 끄집어냈다.술병에서 솟구쳐 오른 물이 그대로 날아들어 주위를 감쌌다.조금이라도 허튼 생각을 했다간 그 즉시 꿰뚫어버리겠다는 기세로, 천우는 물을 몸 주위로 둘렀다.뱀, 혹은 용의 형상을 띈 물의 잔상 앞에서, 지운은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얼굴이 되어 입을 떡 벌렸다.“이, 이건…….”“난 영감께서 찾던 사람이 맞습니다.”“그렇다면…….”“내가 바로 물빛미르입니다.”보이지 않는 화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지운의 움직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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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면 다시 만나니 (1)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포교는 불안한 기색으로 정원 앞을 왔다 갔다 거닐던 참이었다.금화도감의 병력이 불씨 순찰을 위해 허가를 맡으러 왔을 때도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영 집중을 하지 못했다.초조했다. 꼭두새벽부터 포청을 찾아온 그 노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게다가 노인은 다른 사람도 아닌, 조선 땅을 다스리는 국왕의 징표를 가지고 있었다.포청이야 워낙 다양한 사건사고를 접하다 보니 종사관은 물론, 형조판서, 심지어 의금부 소속의 사람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으나, 왕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없었다.‘무슨 일이지, 대체?’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도성 내의 화재를 담당하는 금화도감의 일원으로서, 이포교는 그저 큰불이 날 뻔했던 사건을 마무리 짓고 그 배후로 의심되는 누군가를 잡아 문초한 것밖에 없었다.당최 무엇 때문에, 왕명을 가진 이가 여기를 찾아온단 말인가?덜컹-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찾아왔던 손님들이 나타났다.어쩐 일인지 두 사람 모두 상기된 듯한 얼굴이었다.“얘기는 잘 끝마치셨습니까?”이포교가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들 쪽으로 다가갔다.지운이 이포교를 발견하고 활짝 웃어보였다.“오, 노고 많았네.”지운이 이포교의 어깨를 두드렸다. 제법 기분이 좋아보였다.흥분감으로 손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이포교라고 했던가?”“그렇습니다.”“금화도감 소속이고?”“네.”“젊은 나이에 고생길이 훤하군. 몸이라도 제대로 추스를 수 있을지 모르겠어.”지운은 진심으로 이포교가 안쓰럽다는 투였다.이포교가 담담히 받았다.“금화도감으로서 저는 할 일을 할 뿐입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종묘사직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기에…….”“옳은 말일세. 전하께서도 참으로 기뻐하실 거야.”“과찬이십니다.”“내 전하를 뵙고 자네에 대해 알려드리겠네. 일개 포교로 썩기에는 아까운 인재가 여기 있다고.”“네?”이포교가 목소리로 되물었다.“주상전하께 아뢴다고 하셨습니까?”“그래. 마침 입궐하러 가는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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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면 다시 만나니 (3)

향기로운 화차(花茶)한잔과 함께, 천우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백사성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왔고, 곰보에게 목걸이를 빼앗겼고, 불이 났고, 비를 불렀다가 의심받았고, 이포교를 만났고 궁궐로 불려왔으며 주상전하를 뵈었고, 이포교와 함께 양녕대군의 식객으로 갔다가 어리라는 여인을 만났고, 어리가 붉빛미르임이 드러났으며, 여러 사건사고를 거쳐 어리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였고……. “그렇게 마지막 전투에서 붉빛미르를 칼로 베어낸 끝에 다시 처음 이때로 돌아왔다는 말이냐? 천우 네 말에 따르면?” 백사성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물었다. “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제가 기억하는 것과 동일하게 흘러갔습니다. 만나는 사람, 마주치는 상황, 함께 나누는 대화까지 모든 것이 말입니다.”“믿기가 힘들군…….”“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찌 붉빛미르며, 대군마마 이야기에, 천문연구에 대한 사실까지 다 알고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이고, 바로 직전에 겪은 것처럼 생생합니다.” 천우는 거기까지 말하고선 모두의 얼굴을 살폈다. 사당에 모여 있던 모두 크게 놀란 기색으로 입을 벌리고 있거나 이쪽 얘기를 경청 중에 있었다. “천문 연구는…….” 이도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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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면 다시 만나니 (4)

“시간을 바꾸다니요?” 지운이 아연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따지고 보면 미르가 존재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얘기 아니오? 필요할 때 비를 주시고, 필요할 때 불과 무력을 주시는 것도 사람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지. 그러니 시간을 바꾸는 것도 일어날 수 없지만 또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일겁니다.”“그렇다면…….”“아마 물빛미르께서 붉빛미르를 베어내시면서, 우리가 있는 시간대가 바뀌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게 추측되오.” 이도가 조곤조곤 읊조렸다.맑은 두 눈에 지성(至聖)의 빛이 반짝 빛났다. “나 또한 천문 연구에 돌입하면서 조금이나마 깨달은 이치가 있소.” 이도의 말이 이어졌다. “시간은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고, 점과 점이 이어져 길게 이어지는 형태로 흘러가는 것이오. 다만 그것이, 점점이 이어져 끊어지지 않은 선으로 보이는 것이지.”“그 점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하?”“우리의 선택으로 빚어진 시간이오. 모든 선택이 한데 모여 길고 긴 세계를 이루는 것이지. 물빛미르께서 한양으로 올라오기로 결심하신 선택, 저자의 사람들을 돕기로 하신 선택, 붉빛미르를 무찌르신 선택 등이 말이오.” 이도가 거기까지 말하곤 천우를 흘깃거렸다. “그리고 물빛미르께서 붉빛미르를 벤 그 선택으로 시간이 뒤바뀐거요. 이미 그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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