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당신이었군.” 천우가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붉빛미르 쪽에서 어둠 속에서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언젠간 찾아올 것이라고 짐작했소.” 천우의 칼 쥔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 “당신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생각했지.”“똑똑하시네요.”“이렇게 나타나주어 고맙소. 마음 졸이며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끝을 내는 것이 나을 것이오. 나한테든, 당신에게든.” 천우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산속에 잠든 물 전체가 우르릉- 대는 소리와 함께 진동했다.천우의 명에 맞추어 움직이겠다며 한껏 예기(銳氣)를 다듬는 듯했다. 붉빛미르는 가만히 이쪽을 살피기만 할뿐, 손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불길이라도 내밀 줄 알았는데, 별일이었다. “어떠셨습니까?” 불쑥, 붉빛미르가 그리 물었다. “뭐를 말이오?” 천우가 되물었다. “붉빛미르가 나타나지 않은 지금의 조선 땅 말입니다. 물빛께서 보시기에는 이쪽의 삶이 만족스러우십니까?”“갑자기 무슨…….”“이쪽의 삶은, 시간은, 붉빛미르가 나타나지 않은 세계. 천지신명의 뜻을 받든 붉빛미르가 세상을 침범하지 않고, 천문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놔두기로 결심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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