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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191 - Chapter 196

196 Chapters

바라면 다시 만나니 (6)

지운이 물었다. “서촌 말씀이십니까?”“이왕 여기까지 나온 김에 그동안 하늘 보는 거 어디까지 되었나 살펴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학사들 은자(銀子)라도 좀 챙겨줘야 닭백숙이라도 고아 먹으면서 일하지 않겠습니까?”“전하의 은덕이 하해와 같으십니다.” 그렇게 4명의 사내는 순식간에 다음 행보를 정하고는 곧바로 서촌으로 옮겨갔다. “저, 전하!” 어김없이 장영실이 나와 맞이했다.지난 기억보다 조금 더 피곤하지만, 눈의 생기만큼은 곱절은 더한 장영실이었다. 장영실뿐 아니라, 다른 학사들도 여럿이 한자리에 있었다.밤중에 오직 장영실 혼자만 일하던 기억 때문일까. 학사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이 오히려 낯설게 보였다. “어, 어인 일로 옥체를 직접 행차하셨습니까?”“잠깐 볼일이 있어 암행을 나왔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번 와 보았다. 자, 일단 이것들 좀 받고.” 이도가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 옆에 있던 학사에게로 건넸다.천문 연구에 지친 사기(士氣)를 채워줄 묵직한 은자 덩어리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은자를 받아든 학사가 전원이 허리를 굽히며 감사했다. 장영실이 그 학사를 가만히 불렀다. “이여립. 자네는 얼른 그것을 가지고 장터에 나가 좋은 술과 포(脯)를 사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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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2)

붉빛미르가 이어 말했다. “우리 두 미르는 사람들의 지혜가 늘어나 천문을 읽게 되는 순간, 더 이상의 쓸모가 없어 하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알고 있소.”“저는 그것이 싫어 불로 저항했던 것입니다. 왜 사람의 행보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요. 하지만 물빛미르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만을 바라보셨지요. 사람과 섞여 사셨고요.” 머리칼을 가만히 넘기는 기척이었다. “저 또한 그것이 어떤 삶일지 궁금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여인의 모습으로 지내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여전히 저는 사람보다는 미르에 가까운 넋이었습니다. 더욱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사람은 여전히 어리석고 폭력적인 생물이지요. 그렇지만 미르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생명이기도 하고요.”“…….”“물빛미르와 여러 번 싸우면서 겨우 깨달았습니다. 나와 같은 미르가, 이토록 사력을 다해 사람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미르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 붉빛미르가 일으킨 사단은 항상 울음소리와 피만을 불러왔지요.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언제부턴가 의심이 들더군요. 그래도 인정 못하고 마지막 발악으로 내가 당신을 가장 미워하던 때로 시간을 돌려 싸워보기도 하였고요.”“이포교를 숙주로 삼았을 때의 말이로군.”“네. 그리고 결국 물빛께서 저와 대등하게 맞서셨지요. 그리고 천지신명께서도 직접 답을 주셨고요.” 붉빛미르의 고개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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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4)

“갑자기 세상에 나와 너만 남겨두고 숨을 거두었을 때, 그냥 아무런 생각도 안 나더구나. 몸은 여기 있는데 영혼은 어딘가로 떠나버린 기분. 그래. 그랬었다.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지.”“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조금도 나질 않습니다.”“그럴 수밖에. 네가 젖을 떼자마자 가버렸으니.”“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습니까?”“아름다웠다.” 백사성이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현명하고 헌신적이며, 또 누구라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예뻤지. 사람이 아닌 미르조차 그 미색(美色)에 반해버렸으니 말이다.”“아버님께서도……. 혹시 사모하셨습니까?”“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왜 기우사를 떠나 용의 알을 밴 사람을 따라갔겠느냐?” 백사성의 얼굴에 시원섭섭한 빛이 어렸다. “그래도 좋았다.” 백사성이 말을 이었다. “내 몸 하나 바쳐 사모하는 여인을, 그리고 조선의 하늘을 수호할 물빛미르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그것이 사람이다. 어리석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기 뜻하는 대로 살아가는 생물이지. 어찌 보면 붉빛미르는 사람을 증오하면서도 더욱 사람과 가까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백사성이 거기까지 말하곤 술 한 잔을 홀짝 비웠다.천우가 얼른 부친의 빈 잔을 채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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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막

이도가 즉위한지 26년째 되던 해였다.추수가 끝나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높게 떠 있는 어느 낮이었다.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구름 한 점 없는데 햇살마저 포근한 그런 날이었다.늦은 사냥에 나선 잠자리 몇 마리가 부산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떨어진 낱알 주워 먹으러 산속에서 내려온 사슴 가족도 귀를 팔랑대며 가을날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팍-인기척을 느낀 사슴들이 줄행랑을 쳤다.두 사람이 텅 빈 전답(田畓)의 고랑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였다.서로 거리를 조금 둔 채로 걷는 것이, 연인이거나 부부 사이는 아닌 듯했다.척-남자 쪽이 먼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한마디 말없이 한적한 들판을 쭉- 눈으로 훑는데, 그 얼굴에 옅은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잠시 후, 여자 쪽도 남자가 서 있던 곳으로 다가왔다.여자 또한 남자가 보는 곳을 따라 눈을 돌렸다.두 사람은 아무런 소리도 내질 않고 한동안 그렇게 고요히 있었다.“편안하십니까?”여자가 물었다.“네.”남자 쪽이 대답했다.“어떠십니까?”이번에는 남자 쪽이 되물었다.“이리 바뀐 세상을 보니 말입니다.”“사람은 늘 방법을 찾아내는 종족이지요.”여자 쪽이 대답했다.건조한 목소리였으나 딱히 악의는 들어있지 않았다.“그렇지요.”남자 쪽이 맞장구를 쳤다.“결국에는 이 땅에 맞는 역법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배포하였지요. 그래서 쌀과 보리도 이렇게 풍성하게 난 것이 아니겠습니까.”“밥맛도 더 좋아졌다 하더군요.”“한 끼 먹어보고 갈 수 있겠습니까?”“돌아갈 시각이 지척입니다. 참으시지요.”“그건 아쉽군.”남자가 혀를 쯧- 찼다.“나들이 할 수 있는 때는 또 올 겁니다.”여자가 달래듯이 중얼거렸다.“그러니 미련을 버리고 조용히 돌아가시지요.”“그럴 참입니다.”남자가 하늘을 흘끗 올려다보며 대답했다.“다만.”“네?”“여기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 역법서. 아마 칠정산(七政算)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오. 한번은 보고 갈 수 있었으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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