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31 - Chapitre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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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1화

지난번 민씨가 하녀들을 팔아치우려 했을 때를 틈타, 소설아는 제 곁을 지키는 하녀들의 노비 계약서를 모두 손에 넣어 두었다.덕분에 그녀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전생에서도 이 아이들은 끝까지 변함없는 충심을 보여 주었다. 소설아는 이번 생에서도 그들이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처소를 나온 수희가 엽이의 소맷자락을 살며시 붙잡고 속삭였다.“나 당분간은 무서워서 처소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갈 것 같아.”엽이는 웃으며 그녀를 다독였다.“걱정 마. 내가 같이 다녀 줄게.”수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있잖아, 세자 저하랑 둘째 도련님이 찾아와 우리를 내놓으라고 하면… 큰 아가씨께서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서 우리를 그냥 넘겨주시는 건 아닐까?”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예전에 민씨는 총애하던 오 어멈이 죽자, 오랜 정은 안중에도 없이 곧바로 그녀의 재산을 몰수하고 딸까지 가차 없이 내쫓은 적이 있었다.후부의 노비란 결국 주인의 뜻 하나에 목숨이 오가는 신세나 다름없었다.엽이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수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설마… 큰 아가씨께서도 그러실까?”그때 뒤에서 다가온 유 어멈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이 망할 것들아,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우리 큰 아가씨가 그런 매정한 분으로 보이더냐?”수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부인은 부인이고 큰 아가씨는 큰 아가씨지요. 큰 아가씨는 절대 부인과 같지 않으세요. 분명 저희를 지켜 주실 거예요.”엽이도 힘주어 맞장구쳤다.“나도 그렇게 믿어. 우리가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한, 큰 아가씨께서도 절대 우리를 쉽게 버리시지 않을 거야.”예상대로 오후가 되자 소명준을 비롯한 네 남매가 의란거를 찾아왔다.마당 어귀에 선 소명준은 목청껏 고함부터 질렀다.“소설아! 당장 네 방자한 하녀들을 내놓아라! 대체 아랫것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감히 위아래도 모르고 이토록 제멋대로 구느냐! 저런 것들은 당장 때려죽여 내다 버려도 시원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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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소설아의 말에 소명천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하지만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몸이라 침상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너, 너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소명천은 스스로 앞날이 창창하다고 믿었고, 훗날 권세 있는 처가를 얻겠다는 야심도 품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 일로 명성에 흠집이 나는 것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그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소명준을 노려보았다.‘다 큰 형님 때문이다. 대체 무슨 쉰내 나는 얄팍한 계책을 들고나온 거야. 적에게 타격을 주기는 커녕 우리만 죽게 생겼잖아!’만약 소설아가 그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단호히 정정했을 것이다.“적에게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제 발등만 찍은 격이라고 말이다.”소설아는 들것을 붙든 하인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둘째 도련님께서는 다리가 부러지셨으면 얌전히 요양이나 하실 것이지, 매일같이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니 언제쯤 완쾌되실지 모르겠군요. 어서 둘째 도련님을 무사히 모셔다드리거라.”소명천을 날마다 들것에 태워 이곳저곳 옮기느라 두 하인의 팔뚝은 전보다 눈에 띄게 굵어져 있었다.“소설아! 어디 두고 보자!”소명준은 더 입씨름을 해 봐야 체면만 깎일 뿐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으름장만 남긴 채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섰다.도망치듯 꽁무니를 빼는 네 남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설아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전생의 소명준은 곁에서 늘 직언을 아끼지 않던 당유화와 계책을 내어주던 당씨 가문의 책사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당씨 가문의 권세, 그리고 소설아의 막대한 자금 지원에 힘입어 마침내 종이품 상서의 자리까지 올랐다.하지만 이번 생에서 그의 곁에 남은 것은 소명주뿐이었다.사람은 함께하는 이에 따라 물든다고 했던가. 소명주와 어울리다 보니 그 역시 점점 그녀를 닮아, 저토록 어리석은 꼴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소명준은 후사를 이을 능력을 잃었고, 소명천은 두 다리를 저는 몸이 되었다. 위원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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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왕 부지휘사와 이 부지휘사가 인적 드문 교외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오작(仵作: 시신을 검안하는 사람)의 검안 결과, 두 사람은 서로 칼을 휘두르다 함께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이 부지휘사는 사실상 집안의 외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에, 그의 죽음은 이씨 가문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였다. 이씨 집안사람들은 연일 형부로 몰려가 진상을 밝혀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게다가 이 부지휘사의 누이는 삼황자의 측비인 이비였다. 비록 출신 가문은 미천했지만 빼어난 미모 덕에 삼황자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그녀는 눈물로 호소하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 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삼황자는 형부에 철저한 수사를 명하며 강하게 압박했다.형부는 곧장 향료 가게로 사람을 보내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가게의 실제 주인인 윤녕은 평범한 과부에 불과했고, 동 점주 역시 얻어맞고도 제대로 항변 한마디 못 하는 나약한 사내였다. 결국 두 사람의 혐의는 말끔히 벗겨졌다.죽은 두 부지휘사는 평소 원만한 성품으로 동료들과 원한을 산 적도 없고, 뚜렷한 원수도 없었다. 형부는 사건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채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그러던 중, 두 사람이 생전 마지막으로 공왕부 세자의 영비를 위해 뒤처리를 맡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영비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이다.이에 형부는 즉시 공왕부로 관원을 파견했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잃고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이씨 가문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은 다짜고짜 공왕부로 몰려가 영비에게 당장 해명을 내놓으라며 소란을 피웠다. 부지휘사 아들을 잃고 분통을 터뜨리던 왕씨 가문 역시 이씨 가문과 함께 공왕부를 찾아왔다.공왕과 세자는 직접 나서 형부 관원들을 맞이했다. 관원들은 공왕의 위세를 의식해 감히 선을 넘지 못했고, 의례적인 질문만 몇 마디 던진 뒤 서둘러 물러났다.한편 공왕비와 세자빈은 이씨와 왕씨 가문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뒤에 삼황자가 버티고 있는 만큼 공왕비도 함부로 그들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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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소명주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영비 마마, 저는 오직 마마를 향한 공경과 충심만 품고 있을 뿐입니다. 어찌 감히 마마께 해를 끼치려 하겠습니까. 정말 억울합니다!”영비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닥치거라! 네년이 그토록 대단하다던 언니가 대체 무슨 수를 써 조정의 관리를 죽인 것인지 어서 사실대로 고하지 못하겠느냐! 내 사촌 오라버니가 오성병마사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장래를 기대하던 참이었거늘, 이리 허망하게 목숨을 잃다니! 모두 네년이 화를 불러들인 탓이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찻잔 하나가 소명주를 향해 날아왔다.펄펄 끓는 찻물이 찻잎과 함께 머리와 얼굴 위로 그대로 쏟아졌다. 살이 데일 듯한 통증에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그녀는 감히 피하지도 못한 채 몸을 떨 뿐이었다.“영비 마마, 조정의 관리를 죽이다니요? 대체 누가 목숨을 잃었단 말씀이십니까?”곁에 서 있던 하녀 순이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신 답했다.“영비 마마의 사촌 오라버니께서 향료 가게를 처리하러 가셨을 때 부지휘사 두 분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압류한 직후, 두 분 모두 의문의 죽음을 맞으셨습니다.”소명주는 충격에 휩싸인 듯 눈을 크게 떴다.“뭐, 뭐라고요?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단 말씀이십니까? 어찌 그런 일이…! 영비 마마,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물론 그녀의 놀라움은 철저한 연기였다. 줄곧 향료 가게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태연한 기색을 보였다가는 영비의 노여움만 더욱 살 것이 뻔했기에 일부러 놀란 척한 것이었다.영비는 소명주 앞으로 성큼 다가와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정녕 몰랐단 말이더냐?”소명주는 이마를 바닥에 조아렸다.“영비 마마,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하건대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영비가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이 사달이 네 언니와 정녕 관련이 있단 말이냐?”소명주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틀림없이 연관이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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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장공주의 화연 당일, 소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몸단장을 시작했다.빗으로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검은 머릿결을 곱게 빗어 내린 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리자 희고 매끈한 목덜미가 드러났다. 아직 연지와 분도 바르지 않았건만, 옥처럼 맑고 윤기 나는 피부는 저절로 시선을 끌었다.오늘 열리는 화연은 서 군왕과 구황자의 배필을 물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때문에 경성의 혼기를 맞은 규수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초청장을 받았다.소설아가 새로 지은 치마로 갈아입고 있을 무렵, 위원후가 사람을 보내 그녀를 불렀다.“네가 맏언니이니 동생들을 각별히 잘 챙기거라. 장공주의 눈에 들면 더없이 좋겠지만, 설령 그러지 못하더라도 다른 명문가의 공자들을 잘 살펴보아라. 마음에 드는 이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하거라.”“예, 후작님.”“예, 아버지.”대청에는 이미 소명주와 소명지가 곱게 단장을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 곁에는 처음 보는 두 여인이 함께 서 있었다.위원후가 소설아를 향해 말했다.“이 아이들은 네 외가 쪽 사촌들인 민영서와 민영하다. 오늘 함께 데리고 다니거라.”두 사람은 예를 갖춰 소설아에게 인사했다.“설아 언니, 안녕하십니까.”소설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후작님, 이번 초청장에는 제 이름만 적혀 있었습니다.”위원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지난번 화연 때도 네 앞으로 초청장이 왔지만, 온 집안 식구를 데려가지 않았느냐.”소설아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후작님, 이번만큼은 사정이 다릅니다.”원래 그녀는 이연주와 함께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연주는 끝내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이번 화연은 참석 인원이 워낙 많았던 데다, 장공주가 각 가문의 부인들까지 초청하면 혹 소홀함이 생길까 우려해 기혼 여성은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청 대상은 모두 혼인을 앞둔 규수들이었고, 장공주는 품행까지 세심하게 살핀 뒤 직접 명단을 추렸다고 했다.그때 소명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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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소명지는 어안이 벙벙했다. 소설아가 붙잡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채 정말 이대로 냉정하게 떠나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예전에는 자신이 조금만 심술을 부려도 소설아는 늘 인내심 있게 달래주곤 했다. 지난해 등불 축제 때도 새로 지은 옷이 살이 쪄 맞지 않는다며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그때 소설아는 반나절이 넘도록 그녀를 달래며 엿사탕을 사 주고, 경성에서 가장 호화로운 비단집까지 데려가 새 옷을 맞춰 주었다. 마침내 그녀가 축제에 가겠다고 입을 열었을 때, 소설아의 얼굴에 번지던 기쁨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그런데 지금은 어찌 이리 달라졌단 말인가. 가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런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떠나다니.소명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멍하니 서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소설아가 떠나자 소명주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줄이 끊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눈물이 쉼 없이 떨어졌다.“아버지, 부디 노여워하지 마세요. 언니가 자매의 정을 저버렸다 하여도 저는 언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언니가 양녀라 하여 저희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더라도, 한 식구인 이상 기쁠 때든 힘들 때든 함께해야 한다고요… 저에게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마땅히 언니도 함께 이끌어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요즘 들어 언니의 성정이 점점 냉정해지는 듯하여 걱정이 됩니다. 훗날 귀인의 눈에 들게 된다면, 도리어 후부를 짓밟으려 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감히!”위원후는 버럭 호통쳤지만, 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 최근 들어 이 양녀의 성정이 갈수록 종잡을 수 없이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내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만약 소설아가 후부를 해칠 생각을 품는다면, 귀인에게 아첨할 기회조차 얻기 전에 싹을 잘라버릴 작정이었다.그 반응을 본 소명주는 자신의 의도가 완전히 먹혀들었음을 직감했다.“여기서 멍하니 무엇 하느냐? 어서 네 처소로 물러가거라!”위원후는 쓸모없는 자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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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장공주부로 향하는 긴 거리 위, 마차들이 줄지어 느릿느릿 나아가고 있었다.채여진은 추영우가 말을 타고 긴 거리 끝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오늘은 정말 운이 좋구나. 구황자 전하를 뵙다니.”채여진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두 뺨에 수줍은 기색을 띠었다. 추영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대와 설렘이 어려 있었다.소명주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깐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전하께서는 참으로 용봉의 기품을 지니시고, 산처럼 의연하며 깊은 연못처럼 고요한 풍모를 갖추신 분이시지요. 성년이 된 황자들 가운데 아직 정비를 맞이하지 않으신 분은 구황자 전하뿐이라 들었습니다. 또한 전하께서는 스스로 몸가짐을 엄히 하여 통방이나 시첩 또한 곁에 두지 않으신다 하더군요. 전하와 혼인하게 될 이는 실로 큰 복을 타고난 사람일 것입니다.”채여진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잠시 굳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어머, 명주 너도 전하를 흠모하는 것이냐?”그 어조는 담담하고 몸가짐은 가냘파 보여 전혀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귀 기울여 들으면 부드러운 말투 속에 짙은 경멸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너 따위가 감히?' 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소명주와 채여진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말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당치도 않습니다. 제 이 변변찮은 신분과 용모로, 어찌 감히 밝은 달 같으신 구황자 전하를 넘보겠습니까?”소명주가 즉시 자세를 바로잡고 손을 연신 내저었다. “제가 전하 곁에 선다 한들 그저 차나 올리는 하녀에 불과할 뿐이지요. 여진 언니처럼 고결한 분이어야 전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만인의 찬사를 받는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상대가 스스로 분수를 아는 것을 확인하자, 채여진의 어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명주야, 그리 자신을 낮출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어쨌든 후부의 규수이니, 전하를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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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전생에 소명지는 윤청안에게 시집간 뒤 하루도 빠짐없이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국공부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의식주 하나하나 최고급으로 누렸지만, 행복하지 않은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이번 생에는 반드시 소명지가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었다.오늘 장공주가 연 화연에는 재능 있는 젊은 선비들도 여럿 초청되었다고 들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전생에 소명지와 연을 맺었던 사람도 있었다.혹 이번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이 더 일찍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채여진은 멍하니 있는 소명주를 보고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를 건드렸다.“아닙니다. 그저 윤 낭자의 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어느 규수가 혼사를 저토록 거리낌 없이 입에 올리겠습니까.”소명주는 채여진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여진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 뵈었을 뿐이지만, 윤 낭자는 어느 모로 보나 언니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구황자 전하께서도 분명 언니를 눈여겨보실 겁니다.”“어머,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너무 부끄럽구나. 더 말하면 정말 이야기 안 할 테다.”채여진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소명주 역시 따라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윤근영이 구황자를 흠모하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나.’수줍은 기색을 거두자 채여진은 다시 고개를 들어 보국공가의 마차를 노려보았다. 눈동자에는 감추기 어려울 만큼 선명한 질투가 서려 있었다.소명주는 속으로 혀를 찼다.‘구황자 전하는 음침하고 광기 어린 성정인데도 저렇게 많은 규수들이 흠모하다니.’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구황자는 풍채가 뛰어나고 기품이 남달랐으며, 옥처럼 빼어난 용모를 지녔다. 두 번의 삶을 산 소명주조차 그보다 더 수려한 사내를 본 적이 없었다.어려서부터 온순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도록 교육받은 귀족 규수들에게, 세속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구황자 같은 인물은 오히려 강한 매력으로 다가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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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한편 소설아는 민씨 가문의 두 사촌 여동생, 민영서와 민영하를 데리고 같은 마차에 올랐다.두 사람은 감히 먼저 입을 떼지 못했다. 소설아는 성품이 온화하고 후작부에서도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고, 실제로도 겉보기에는 부드럽고 유순한 규수였다. 하지만 그 온화한 미소 뒤에 이토록 단호한 면모가 숨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어린 두 자매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마차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소설아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둘 다 그리 긴장할 것 없다. 내가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아느냐.”언니인 민영하가 민영서보다 조금 더 대담하게 입을 열었다.“설아 언니,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전혀 귀찮지 않다.”소설아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두 자매는 민씨의 큰 오라버니 댁 딸들이었다. 민씨의 큰 오라버니는 병부에서 종오품 벼슬을 맡고 있었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리였다. 집안 형편이 비슷한 가문과 혼사를 맺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민씨 가문은 늘 딸들을 더 높은 명문가에 시집보내고 싶어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설아가 장공주부 초대장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서둘러 두 자매를 보냈을 리 없었다.비록 명문가에 시집가고 싶은 욕심은 있어도 남을 해칠 마음까지 품은 아이들은 아니었다. 먼저 시비를 걸지만 않는다면 소설아 역시 괜한 박대를 할 생각은 없었다.잠시 망설이던 민영하가 조심스레 물었다.“설아 언니, 저는 명문가에 시집가고 싶지만 남의 첩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같은 처지로도 그런 혼사가 가능할까요?”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얼굴에는 앳된 귀여움이 남아 있었다.민씨의 둘째 오라버니 댁 큰딸은 혼례를 마친 뒤 삼황자부로 들어가 지금은 그의 첩으로 지내고 있었다. 친정에 올 때마다 온몸을 금은보화로 치장하고 있었지만, 민씨 가문이 삼황자의 외척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황자부에서도 고된 처지였고, 측비 곁에서 총애받는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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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소명주는 생긋 웃으며 두 사람을 소개했다.“여진 언니, 이분이 제 큰 언니 소설아예요. 언니, 이쪽은 호부시랑 댁 규수이신 채여진 언니랍니다. 설아 언니는 비록 후작부의 양녀이지만, 생전 노부인께서 무척 아끼셨습니다. 게다가 장사 수완도 제법 뛰어나답니다.”짧은 소개였지만, 소설아의 처지를 낱낱이 드러내기에 충분했다.후작부에 몸을 의탁한 양녀인 데다, 자신을 아껴 주던 노부인마저 세상을 떠난 처지였다. 더욱이 사농공상의 질서가 엄격한 세상에서 장사는 천시받는 생업으로 여겨졌으니, 명문가 규수라면 장사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리 없었다.소명주의 말 몇 마디만으로도 사람들은 노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소설아가 후작부에서 얼마나 박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을지 제멋대로 짐작하기 시작했다.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모여 있던 규수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입이 가벼운 하녀 몇은 대놓고 수군거리기까지 했다.“저런 사람이 어떻게 장공주부에 들어온 거지? 설마 초대장을 훔쳐 온 건 아니겠지?”“돈은 좀 있는 모양이네. 분명 무슨 수를 써서 들어온 게 분명해. 오늘은 서 군왕 전하와 구황자 전하의 배필을 고르는 자리인데, 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얼굴 좀 반반하다고 명문가에 시집갈 꿈을 꾸는 건가? 공주 마마께서 가문을 따지지 않겠다고 하셨다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뽑으실 리는 없지.”그때였다. 채여진이 불쑥 앞으로 나서더니 소설아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다들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설아가 어찌 그런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지난번 화연에도 공주 마마께서 친히 초대장을 보내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곁에 있던 한 규수가 조심스레 만류했다.“여진 언니, 언니처럼 귀하신 분께서 어찌 저런 사람과 엮여 괜한 구설에 오르시려 하십니까.”그러나 채여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운 채 단호하게 말했다.“설아를 함부로 헐뜯는 일은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근거 없는 말을 퍼뜨린다면 지금이라도 장공주부의 관리 어멈을 불러 시시비비를 가리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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