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Kapitel 301 – Kapitel 310

340 Kapitel

제301화

민씨의 확답을 들은 소명지는 마치 안정제라도 먹은 듯 마음이 한결 놓였다.“어머니, 설아 언니의 돈은 물론이고, 향로 가게까지 전부 제가 가질 거예요!”민씨는 나지막이 '아미타불'을 외우며 소명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물론이지, 명지야.”소명지의 두 눈이 반짝였다.“어머니, 설아 언니는 원씨 가문에서 파혼까지 당했으니 이제 혼인하려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할머니께서 언니에게 남겨 주신 혼수도 제게 조금 나눠 주시면 안 될까요?”할머니도 참 너무하셨다.돌아가시기 전, 사유 재산 대부분을 소설아의 혼수로 남겨 두셨다. 그것도 소설아에게 준 것이니 누구도 탐내지 말라고까지 당부하셨다.정작 자신들 같은 친손자, 친손녀들은 오히려 더 적게 받았다.하지만 할머니의 재산은 본래 후작부의 것이었다. 후작부의 재산을 조금 가져오는 것뿐인데, 전부 빼앗지 않는 것만 해도 자비를 베푸는 셈이었다.민씨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손에 쥔 염주를 천천히 굴렸다.“이번에는 반드시 만전의 계책을 세워 그 애의 은자를 모조리 털어내고도, 억울하단 말조차 못 하게 만들 것이다.”소명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어머니, 무슨 묘책이라도 있으세요?”민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혹시 선인조라는 말을 들어봤느냐?”소명지는 고개를 저었다.선인조는 강남 지방에서 성행하는 사기 수법이었다. 사기꾼이 명문가 도련님으로 위장해 세상물정 모르는 규중 아가씨들을 꾀어내는 방식이었다.수많은 첩들이 이 수법에 넘어갔다.여인들은 사기꾼에게 정조를 잃고 나면 소문이 퍼질 것이 두려워 순순히 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어떤 여인들은 재산을 모조리 빼앗긴 것도 모자라 강제로 능욕을 당하고도 감히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대하에서는 여인의 정절과 명예가 목숨보다 중히 여겨졌다. 속아 넘어간 여인들 역시 관아에 고발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은 억울함을 삼킨 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소설아만 이 함정에 빠진다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돈을 버는 족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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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채여진은 그 장신구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곧바로 머리에 꽂았다. 거기에 복사꽃처럼 화사한 화장을 하고, 복숭아빛 치마까지 차려입었다.하지만 뜻밖에도 황제는 그 홍보석 장신구를 보자마자 용안을 붉히며 크게 노했다. 이내 매몰차게 소매를 떨치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 버렸다.그 후 채 귀인은 영문도 모른 채 배탈에 시달렸고, 온몸에는 두드러기가 돋았으며 얼굴에는 붉은 발진까지 올라 꽤 오랫동안 시침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임금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은혜든 냉대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총애를 얻기는 어려워도, 잃는 것은 한순간이었다.제 코가 석 자였던 채여진은 자연히 소명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소명주는 이틀을 기다렸지만 끝내 채 귀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다행히 민씨가 사당으로 노파 두 명을 보내 준 덕분에, 왕 관사가 소명주를 괴롭히는 일은 제때 막을 수 있었다.그래도 소명주는 반나절 동안 왕 관사에게 시달려야 했다.비록 반나절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은 소명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민씨가 후작부로 돌아온 뒤, 소설아는 한 차례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민씨는 병상에 누운 채 기운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초췌해진 얼굴이었다.짙은 녹색 이마띠가 날카로운 인상을 한결 누그러뜨려 제법 자애로운 분위기마저 풍겼다.“설아야, 내가 예전에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네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이제야 네게 사과하마. 사당에 있는 동안 단 한순간도 참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단다. 네 가게는 노부인께서 네게 남겨주신 혼수이니 우리가 탐내서도, 빼앗아서도 안 되는 것이었어. 네가 향로 장사를 하든 다른 장사를 하든, 앞으로는 이 어미가 절대 간섭하지 않으마. 설아야, 내가 정말 잘못했다. 이 어미를 용서해 주겠느냐…”민씨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가렸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소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민씨가 정말 후회하고 있다고?이제야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일까?“안 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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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소설아 역시 마침 향로를 강남까지 들여놓을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강남의 문인들은 북방 사람들보다 풍류와 격조를 더욱 중시했고, 명문 세가도 즐비했다. 일단 시장만 열리면 은자가 끊임없이 굴러들어 올 것이 분명했다.“강남 어느 가문의 도련님이시느냐?”소설아가 묻자, 동 점주가 앞장서며 대답했다.“성은 왕씨라고만 밝히셨고,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워낙 귀한 집 자제처럼 보이셨고 향로도 많이 사 가셔서, 심기를 거스를까 감히 더 여쭙지 못했습니다.”방 안에는 한 사내가 꼿꼿이 서 있었다.짙은 남색 비단 도포는 최상급 항주 비단으로 지은 것이었고, 소맷자락에는 은은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허리에 찬 푸른빛 옥패는 영롱한 빛을 머금어 금세라도 푸른 물방울이 맺힐 것만 같았다.열여덟, 열아홉쯤 되어 보이는 사내는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렸고, 옥관 아래로는 수려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맑은 눈동자에는 옅은 수심이 어려 있었고, 몸짓 하나하나에는 절로 품격이 배어났다.마치 책 속에서나 보던 강남 명문 세가의 도령 그대로였다. 한 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호감이 생기는 인상이었다.“큰 아가씨, 이분이 왕 도련님이십니다.”동 점주는 소개를 마친 뒤 점원에게 차를 내오라고 일렀다.“처음 뵙겠습니다, 소 아가씨.”왕 도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예를 갖췄다.“처음 뵙겠습니다, 왕 도련님.”소설아도 미소를 지으며 답례했다.“소 아가씨의 향로는 조형이 정교하고 향기는 사람을 취하게 할 만큼 깊더군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왕 도령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마치 온천물에 담근 옥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말투는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과연 동 점주의 말대로 귀티가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사람이었다.소설아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도련님께서 과찬하셨습니다.”그녀는 점원을 불러 따뜻한 차를 다시 내오게 했다.“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왕 도령은 예법에 밝았고, 행동 하나하나에서 몸에 밴 교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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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일을 마치고 후작부로 돌아온 소설아는 경대 위에 놓인 백옥 귀걸이 한 쌍을 발견했다.귀걸이는 최상급 백옥을 자그마한 난초 모양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것이었다. 햇살을 머금은 옥은 맑은 달빛을 한 줌 떠다 놓은 듯 은은하고 영롱한 빛을 띠었다.귀걸이 옆면에는 작게 ‘아'자가 새겨져 있었다.지난번에 받았던 옥비녀와 꼭 한 쌍을 이루는 장신구였다.구황자 전하께서 다녀가신 것이다.소설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하지만 어둠 속 어디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구황자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참으로 수줍음이 많으신 분이었다.귀걸이만 살며시 두고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가시다니.구황자 전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실까.요즘은 무슨 일로 그토록 바쁘신 걸까.최근에는 어느 관리가 가산을 적몰당했다거나 옥에 갇혔다는 소문도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몹시도 전하가 보고 싶었다.소설아는 정성껏 단장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백옥 귀걸이와 옥비녀를 착용하고 팔찌까지 찬 그녀는 곧장 망춘원의 축국장으로 향했다.지난번처럼 쓰개치마를 눌러쓴 소설아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경기장을 누비는 사내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오늘도 원태준은 경기에 나와 있었다.막 한 경기를 마친 그는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고, 곁에서는 하녀 연서가 찻사발을 들고 시중을 들고 있었다.“계승 형님, 한 판 더 뛰실 겁니까?”푸른 옷을 입은 도련님이 다가와 원태준의 어깨를 툭 쳤다.원태준의 자는 계승이었다.“형님은 오늘은 무리겠는데? 정혼자가 와 있잖아.”회색 옷을 입은 도련님이 짓궂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원태준은 흠칫 놀랐다.“정혼자라니? 무슨 소리냐. 명심이는 내 정혼자가 아니다.”오늘은 명씨 성을 가진 사촌 누이도 이곳에 와 있었다.푸른 옷의 도련님이 능청스럽게 웃었다.“계승 형님, 모르는 척하지 마십시오. 전에 자주 오던 그 아가씨 말입니다. 연록색 치마를 즐겨 입던 분이요. 그 여인은 형님의 사촌동생이 아니잖습니까. 제가 오는 길에 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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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전하, 밖으로 나오실 수 있습니까?”그늘막은 앞쪽에만 얇은 발이 드리워져 있을 뿐, 소설아의 분부 없이는 단이와 수희도 감히 안으로 들어오거나 고개를 돌려 안을 들여다보지 않을 터였다.소설아는 구석진 그늘막을 고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드물었다. 설령 누군가 가까이 오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전하의 무공이라면 사람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출 테니 말이다.어째서 이토록 모습을 숨기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은밀한 관계는 이상하리만치 사람을 설레게 했다.추영우의 서늘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안 된다.”“전하, 어찌하여 자꾸 몸을 숨기시는 겁니까?”소설아가 알기로 추영우에게는 곁을 내어준 여인도, 정혼자도, 사촌 누이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도 없었다.그에게는 가까이 두는 여인조차 없었고, 곁에서 시중드는 이들마저 모두 사내뿐이었다.그렇다고 남색을 즐기는 것도 아니었다. 예전 소설아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을 때, 그의 몸은 분명 사내다운 반응을 보였으니까.“전하, 제게 말씀해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대체 무슨 연유로 매번 모습을 감추시는 겁니까?”추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소설아는 아직 용비와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신분은 미천했고, 알량한 잔꾀만 믿고 덤볐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최근 추영우는 권력을 손에 쥐고 세력을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용비와 맞서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거머쥐어야 했다.용비는 무엇보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녀가 소설아의 존재를 알게 되면 괜한 골칫거리만 늘어날 뿐이었다.추영우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질문이 너무 많군.”소설아는 입술을 삐죽였다.'그래, 끝내 말씀하기 싫으시다면야.'그녀는 곧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전하, 저 오늘 전하께서 주신 옥비녀와 귀걸이, 팔찌를 하고 왔습니다.”“전하, 제게 잘 어울립니까?”긴 침묵 끝에 가림막 너머에서 아주 작은 “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너무도 작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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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명심은 손수건을 홱 털어 쥐며 노골적으로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언니, 제가 참견한다고 너무 고깝게만 듣지는 마세요.”수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매섭게 쏘아붙였다.“아가씨는 댁 사촌 오라버니 곁이나 지키실 것이지, 어째서 저희 아가씨 앞에 와서 개 짖는 소리만 늘어놓으시는 겁니까? 분수를 지키라고요? 아가씨께서 감히 저희 아가씨 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나 있습니까? 지난번에는 태준 도련님 품에 찰싹 달라붙어 계시던 분이 말입니다.”수희는 원래 입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사람 하나쯤 말로 무너뜨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저희 큰 아가씨는 수려하고 혜중하시니, 훌륭한 가문으로 시집가실 분입니다. 하지만 아가씨처럼 입만 살아 얄밉게 굴고, 꼬리 치는 여우 같은 상은 첩실 팔자가 훤히 보이는군요. 어서 가서 댁 사촌 오라버니나 단단히 붙잡으세요. 늦었다간 그 첩 자리마저 다른 계집에게 빼앗길지 누가 압니까?”명심은 금세 눈시울을 붉히더니 그늘막 기둥을 가녀린 손으로 붙잡았다.“설아 언니, 댁 하녀는 어쩜 이렇게 입이 험한가요. 언니는 하녀가 절 이토록 모욕하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계실 건가요?”수희는 두 손을 허리에 척 얹고 비웃듯 말했다.“또 여기서 울어 보이면서 아가씨의 그 똥개 같은 사촌 오라버니를 불러오실 셈입니까?”그건 명심이 늘 써먹던 수법이었다.먼저 시비를 걸어놓고는 금세 억울한 척 눈물을 글썽였고, 원태준은 그런 모습만 보면 사정도 묻지 않은 채 소설아를 나무라기 일쑤였다.수희는 독설만 퍼붓는 데 그치지 않고 성큼 다가가 명심을 끌어내려 했다.그때 소설아가 슬쩍 시선을 들어 수희를 바라보았다. 그만하라는 눈짓이었다.구황자 전하께서 지금 이 모든 대화를 듣고 계시지 않은가. 원래도 이 일을 전하께 일러 드릴 생각이었는데, 마침 명심이 제 발로 찾아와 주었으니 이보다 좋은 기회도 없었다.소설아는 입술을 꼭 깨물며 금세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명심아, 나를 괴롭힌 건 너와 태준 오라버니가 아니었느냐. 그날 원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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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명심은 콧방귀를 뀌었다.“오라버니께서 얼마나 대단하신데요. 방금도 연달아 두 골이나 넣으시는 걸 보시고도 그런 말이 나오세요? 설아 언니, 눈이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명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에 있던 원태준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땅에 코를 처박았다.소설아가 싱긋 웃었다.“명심아, 저기 좀 보거라. 네 사촌 오라버니께서 또 넘어지셨구나. 넘어지는 폼이 아주 예술이야. 다들 멀쩡히 서 있는데 네 오라버니만 저렇게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계시잖니.”명심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럴 리가요.”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원태준이 마침 바닥을 짚고 엉금엉금 일어나고 있었다.“경기가 워낙 치열하다 보니 넘어질 수도 있는 거죠.”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태준이 또다시 벌러덩 넘어졌다.그는 일어나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또 넘어졌다.원태준 본인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풀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가 하면, 어디선가 날아온 자잘한 돌멩이가 오금을 정확히 때려 다리가 풀리기도 했다. 그는 연달아 몇 번이나 바닥을 나뒹굴었다.소설아는 손가락을 꼽으며 세었다.“명심아, 네 오라버니는 벌써 일곱, 여덟 번은 넘어진 것 같구나? 머리에 어디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닐지 몹시 걱정이 되는구나.”마침내 참다못한 명심은 손가락질하며 악을 썼다.“언니, 당신 정말…!”그 순간,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 원태준이 공을 받으려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이 들어왔다.명심은 두 손을 마주치며 환호했다.“어머! 태준 오라버니께서 공을 받으셨어요! 역시 오라버니는 최고예요!”하지만 다음 순간, 방향을 튼 공이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원태준의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원태준은 공과 함께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소설아가 박수를 치며 환성을 질렀다.“어머, 정말 대단하시네. 얼굴로 공을 받아내시다니, 이런 기술은 난생처음 보았어. 명심아, 어서 가보거라. 네 사촌 오라버니 얼굴이 공에 맞아 납작해졌겠구나.”수희도 질세라 거들었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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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소설아는 조금도 수치스럽지 않았다. 구황자 앞에서는 진작부터 '수치를 모르는' 짓을 숱하게 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구황자가 부끄러워하다가 또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이처럼 민감한 화제는 미혼 남녀가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이야기였다. 하물며 그들처럼 남몰래 만나는 사이에선 더욱 꺼낼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아니나 다를까. 구황자는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소설아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처리하는 일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 고작 이런 이야기에는 어쩔 줄 몰라 하시다니.“전하, 제가 더럽다고 생각하십니까?”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다.하지만 소설아는 그가 아직 떠나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녀는 일부러 코를 훌쩍이며 입을 열었다.“전하, 저 너무 서운합니다.”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다.”그는 그녀를 더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 한마디에 소설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혹여 그녀가 또 무슨 당돌한 말을 꺼낼까 싶었는지, 이번에는 추영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나는 곧 외지로 떠날 것이다.”“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임무가 있다.”“언제 돌아오십니까?”“보름쯤 걸릴 것이다.”문답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꼭 먼 길을 떠나는 지아비가 지어미에게 일정을 일러 주는 것 같았다.다만 그 지아비가 지나치게 수줍음을 타는 탓에 꼭꼭 숨어 목소리만 들릴 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이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소설아가 귀신과 혼인한 줄 알지도 몰랐다.“누가 내리신 임무입니까? 어디로 가시는지 제게는 말씀해 주실 수 없으신가요?”이런 대화가 지나치게 미묘해서였을까, 아니면 임무 자체가 기밀이어서였을까.추영우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소설아 역시 더 캐묻지 않았다.그녀는 조용히 앉아 가끔 경기장만 바라보았다.이유도 없이 고꾸라지는 원태준, 상대 선수에게 팔꿈치를 얻어맞는 원태준, 같은 편의 공에 얻어맞고 나뒹구는 원태준… 그 모습만으로도 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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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원태준은 어지간히 심하게 넘어진 모양인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를 절뚝거렸다. 얼굴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은 공 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그 모습을 본 소설아는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터뜨렸다.그녀가 웃자 멍하니 서 있던 원태준은 또 무슨 착각을 한 것인지, 오히려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알고 보니 소설아가 명심이를 저토록 괴롭힌 것도, 결국 내가 먼저 다가오게 하려는 얄팍한 속셈이었군.'소설아의 속셈을 꿰뚫어 봤다고 확신한 원태준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명심은 손수건을 꼭 움켜쥔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태준 오라버니, 설아 언니한테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마세요. 언니가 일부러 오라버니를 보러 온 걸 보면, 틀림없이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원태준의 입꼬리가 더욱 비뚤게 치켜올라갔다.“파혼하고 싶으면 파혼하고, 화해하고 싶으면 화해하는 건가? 자기가 대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명심은 그의 소맷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겼다.“오라버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설아 언니도 여기까지 찾아오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겠어요. 괜히 겁줘서 도망가게 하시면 안 되잖아요.”원태준은 혀끝으로 입술을 훑더니 오만한 미소를 한층 짙게 지었다.“좋아, 소설아. 오늘은 명심이의 체면을 봐서 특별히 네게 기회를 한 번 주마.”소설아는 두 사람을 무심히 훑어본 뒤 담담하게 말했다.“개 짖는 소리를 할 거면 제 앞을 막지 말고 저쪽에 가서 짖으십시오.”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원태준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버럭 소리쳤다.“소설아! 넌… 넌 정말 교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계집이구나!”“왜? 또 가르치려 드십니까?”소설아가 희미하게 웃었다.“똑똑히 알아두십시오. 여긴 원씨 가문이 아니라 망춘원입니다. 오라버니이 제멋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지요.”원태준은 분을 이기지 못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너, 너! 아직도 나한테 미련이 남은 게 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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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설아야, 나 진짜 오랜만에 외출했어!”별실에 들어서자 당유화가 의자에 풀썩 몸을 던지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어머니께서 날마다 집에 붙잡아 두고 혼수 준비니 예법 공부니 시키시는 바람에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소설아가 웃으며 물었다.“정혼한 집안이 어디라고 했지?”당유화는 손을 입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전에 말했잖아. 태자 전하의 측비로 들어간다고. 예부에서 이미 결정이 내려왔어.”소설아는 잠시 멍해졌다.축하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지난 생에서 태자는 구황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태자가 죽은 뒤 그의 첩들은 순장을 당하거나 황실 사찰로 보내졌다. 황실 사찰이라 해도 일반 종친의 사당보다는 나을 뿐, 결코 사람 살 곳은 아니었다. 유화가 그곳에서 어떤 고생을 겪게 될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이번 생에는 어떻게든 구황자 전하를 막아서 결말을 바꿔야 해.'어쩌면 지난 생에 구황자가 형을 죽이고 아버지를 시해했다는 것 역시, 권력을 잡은 자들이 뒤집어씌운 누명이었는지도 몰랐다.당유화가 팔꿈치로 소설아를 툭 쳤다.“너 표정이 왜 그래? 너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거지?”“아니야.”소설아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처음엔 원치 않았잖아. 그런데 왜 허락한 거야?”당유화가 어깨를 으쓱했다.“태자 전하께서 장자를 얻으신 뒤로 폐하께서 무척 기뻐하셨대. 예부에서는 벌써 황태손 책봉 교지를 준비하고 있다더라.”황태손은 태자와 마찬가지로 황위를 계승할 자격을 가진 존재였다. 황제가 태자를 아끼는 모습을 보면, 태자가 큰 실수만 저지르지 않는 이상 차기 군주는 그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당유화가 측비가 되면 일반 첩과는 달리 황실 족보인 옥첩(玉牒: 황실의 족보)에 이름이 오른다. 훗날 태자가 즉위하면 그녀는 사비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이고, 아들이나 딸을 낳기라도 하면 황후 자리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 막 태어난 황태손도 있으니, 앞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었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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