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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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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서태후를 찾아가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는 사실에 숙태비는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하지만 정왕부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궁으로 가자!”두 사람이 산을 내려가기 무섭게, 누군가가 이 소식을 유국공부로 전했다.유지영은 마침 장부를 살피는 중이었다.이제 두 삼촌네가 분가해 나갔으니, 유정남은 국공부 안살림을 유지영에게 맡겨 미리 배우게 했다.동금이 들어와 소식을 전하자, 유지영은 고개를 들며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회귀한 후로 유지영은 줄곧 두 삼촌네를 경계해 왔고, 송씨와 정씨의 심복 시녀들에게도 적잖이 공을 들였다.사람은 결국 이익을 쫓는 법이었다.은자를 아끼지 않고 충분한 미끼를 던져주니 단주가 미끼를 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비단 은자 때문만은 아니었다.단주는 송씨를 팔 년이나 모셨으나 혼기가 다 차도록 송씨는 단주의 미래를 조금도 염려해 주지 않았다.유지영이 지참금이라는 명목으로 단주에게 두둑한 은자를 건네자, 단주는 금세 마음을 돌려 그녀를 위해 움직여 주었다.유선주의 사주단자를 바꿔치기한 사람도 바로 단주였다.그리고 금운대 사찰의 일은 배현준이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다.“군주님, 둘째 나으리가 혹 저희 국공 나으리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지는 않을까요?”홍주가 걱정스레 물었다.유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버지는 도와주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결코 아버지를 비정한 냉혈한이라 욕하지 못해.”유정혁과 그의 식솔들이 몇 번이나 큰댁을 해하려고 수작을 부렸는지 온 경성이 다 알고 있었다.분가하던 날도 소란이 있었지만, 큰댁은 그들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너그러운 대인배라는 명성을 얻었다.그랬던 큰댁이 오죽했으면 분가를 택했겠냐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겉보기에는 둘째네와 셋째네가 이득을 본 것 같지만, 사실 유정남은 장부를 확인한 뒤 재산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들과 깔끔하게 관계를 끊어버린 것이었다.청산은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어차피 다 같은 경성에 있으니, 차후에 천천히 돌려받으면 그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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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유지영은 노부인이 쓰러졌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즉시 몸을 일으켜 송죽당으로 향했다.가는 도중에 사람을 시켜 의원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할머니, 진정하셔요.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송죽당에 들어선 유지영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연월이 초조한 얼굴로 고했다.“노부인께서는 선주 아가씨가 가까운 이들을 해하는 사주라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충격에 쓰러지셨습니다.”얼마 후 의원이 당도해 침을 놓고서야 노부인은 겨우 신음과 함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할머니.”유지영은 침상 곁으로 다가앉았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유지영의 얼굴을 마주한 노부인은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왜 하필 선주일까. 어차피 피하지 못할 명이라면 지영이 저것이었어야지.’뒤틀린 원망이 잠깐 노부인의 얼굴을 스쳤다.그 찰나의 독기를 유지영은 놓치지 않았다.역시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는 아무리 잘해줘도 소용없는 법이었다.유지영은 속으로 비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그러고는 태연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할머니, 너무 심려치 마셔요. 정세자는 선주를 무척 아끼시니, 분명 이런 뜬소문쯤은 개의치 않으실 겁니다.”위로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노부인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말투 또한 싸늘해졌다.“정세자는 장차 황실을 짊어질 큰 재목이고, 우리 선주 역시 그 곁에서 귀한 자리에 오를 몸이다! 그런데 이런 해괴한 악명을 뒤집어썼으니 앞으로 어찌 귀인이 되겠느냐? 피를 나눈 자매로서 영욕을 함께해야 하거늘, 너는 어찌 그리 태연한 게야!”두 손주사위 중에 유씨 노부인은 처음부터 배준형을 편애하고 배현준은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비록 지금은 눈 있는 자라면 누구나 배현준이 황제의 두터운 총애를 받고 있음을 알았지만, 노부인은 그저 일시적인 운일 뿐 머지않아 버림받을 처지라 치부했다.“선주가 그런 악명을 얻은 건 타고난 팔자이니, 다른 사람을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그때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유정남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어머니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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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그 말은 숙태비를 다시 한번 자극했다.“사흘 뒤 궁에서 유리연이 있을 예정이고 많은 이들이 초대받았사옵니다. 태후께서도 틀림없이 참석하실 테니, 그때 준형이가 태후께 청원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로부터 태후께서 가장 예뻐한 아이가 바로 우리 준형이 아닙니까.”정왕비가 조심스레 고하자, 숙태비도 그 방법밖에는 없겠다고 판단했다.어찌 됐든 유선주 같은 처자를 가문으로 들일 수는 없었다.숙태비는 정왕비를 매섭게 바라보며 말했다.“아쉬운 쪽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이니, 일단은 참아내야 한다. 내일 너는 세자를 데리고 담씨 가문에 가서 그댁 노부인을 문안하거라. 상서 부인 한씨를 만나거든 넌지시 일러두는 것도 잊지 말고. 유국공이 지금 무과 장원의 주시험관을 맡고 있으니, 양가의 해묵은 앙금 때문에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정왕비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어머님.”“혼약이 파기되기 전까지는 사석에서 절대 유선주 그 계집을 만나지 말거라.”숙태비는 배준형에게 신신당부했고, 배준형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오늘은 북명대사가 담씨 노부인의 다리를 진료하는 날이었다.유지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치장을 마친 뒤, 마차를 준비시켰다.가는 길, 미풍에 휘장이 흩날리며 창밖으로 점술 가판대 하나가 유지영의 시야에 들어왔다.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현재 유정혁은 관직을 잃은 처지였고, 유정남은 동료들에게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그러니 그들의 가장 큰 희망은 오직 유선주를 배준형에게 시집보내 전세를 뒤집는 것뿐이었다.그러나 지금 정왕부마저 파혼을 결심했으니, 송씨와 유정혁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이제 마지막 일격만 남았다.유지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동금을 바라보았다.“너는 오늘 나와 담씨 가문에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 따로 맡길 일이 있어.”몇 가지 당부를 전하자 동금이 고개를 끄덕였다.마차가 잠시 정차한 사이, 동금은 마차에서 내려 신속하게 자취를 감추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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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정왕비뿐만 아니라, 한씨 역시 담씨 노부인이 이토록 대놓고 거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유지영이 와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 정왕비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군주는 참으로 성미가 고집스럽군. 지난번 오해로 앙심을 품고 노부인을 부추겨 우릴 만나지 못하게 하다니.”한씨는 서둘러 분위기를 수습하려 나섰다.“북명대사께서 오실 때마다 지영이가 와서 곁을 지키곤 합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요 며칠 정말로 몸이 안 좋으시어 손님을 맞이할 형편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늘 일은 그저 우연일 것입니다.”예전 같았으면 정왕비는 기어코 유지영에게 시비를 걸고 호되게 가르쳤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무과 시험이 코앞이라, 분노를 억누른 채 애써 미소를 지었다.담씨 노부인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정왕비는 애초에 찾아온 목적을 잊지 않았다.그녀는 한씨에게 넌지시 주의를 주었다.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밖에서 징을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전해졌다.“이게 무슨 소리야?”한씨가 다그쳐 물었다.시녀가 급히 밖으로 나가 상황을 알아보고는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고했다.“부인, 황궁에서 장녕군주께 예물을 보냈답니다.”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굳어 버렸다.특히 배준형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사주단자를 교환한 뒤에 다시 의논한다 하지 않았느냐?”“세자, 소인이 듣기로는 한 시진 전 태후 마마께서 남희대사를 황궁으로 청하셨다 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장녕군주와 경세자의 사주를 보셨는데, 남희대사께서 천생연분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에 태후 마마께서 즉시 오늘 예물을 들여보내라 명하셨다네요. 행렬을 구경 나온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한씨는 시녀를 매섭게 쏘아붙였다.“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그 얘기를 들은 정왕비와 배준형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기에, 대충 구실을 대고 서둘러 작별을 고했다.궁문에서부터 유국공부를 향해 예물을 나르는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상자를 멘 호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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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전하.”경왕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일이 너무 갑작스러워, 정리하려 해도 시일이 제법 걸릴 것입니다.”“우선 명세부터 찾아 그에게 넘기시오.”당장 내놓으라는 서슬 퍼런 기세였다.경왕비는 입술을 짓씹었다.속이 쓰렸지만, 경왕의 완고한 얼굴을 보니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람을 시켜 명세를 가져오게 했다.잠시 후, 그녀는 가져온 명세를 경왕에게 건네며 은근히 말을 꺼냈다.“오늘 황실 내무부에서 백예순 상자를 유국공부에 보냈다 합니다. 거기에 선왕비의 혼수까지 얹어주면, 그 규모가 황후의 격식마저 뛰어넘을 판입니다. 자칫 조정 대신들의 비난을 살까 염려됩니다.”여기에 아직 경왕부 명의로 보낼 예물은 포함되지도 않은 상태였다.경왕이 경왕비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우선 명세부터 넘겨주고, 선왕비의 혼수는 굳이 왕부의 명의로 국공부에 보낼 필요 없이 현준이 녀석이 알아서 처리하게 하시오.”그것은 배현준의 생모가 남긴 유품이었기에, 경왕 역시 단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었다.“현준이 녀석이 아무리 미워도 엄연한 적장자이니, 그 아이의 몫을 빼앗을 수는 없소. 경왕부의 명의로 스무 상자를 준비하여 한 시진 뒤에 유국공부로 들여보내시오.”경왕비는 더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예물과 혼수가 이리 과하면, 장차 경성의 다른 공자들이 혼인할 때 머리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장녕군주의 성격이 어떤지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너무 치켜세워 주었다가, 훗날 왕부의 법도를 가르치기 어려워질까 염려됩니다.”전부 합치면 삼백 상자에 육박하는 규모였으니, 경왕비로서는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역시나 경왕의 얼굴에도 망설임이 스쳤다.“내무부에서 보냈든 왕부에서 보냈든, 남들 눈에는 모두 경왕부의 예물로 보일 것입니다. 오늘 이리 과하게 이목을 끄는 것은 결코 왕부에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제가 아까워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소문이 그만큼 무섭다는 말씀입니다.”경왕비는 깊이 우려하는 척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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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위풍당당하게 떠나는 배현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왕비는 눈앞이 깜깜해졌다.입안이 쓰고 쇠 맛이 돌았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버텼다.“전하, 현준이가 전에는 철없이 굴어도 최소한의 사리분별은 하더니, 근래 들어 전하께 사사건건 맞서는 것이 아무래도 누군가의 부추김을 받은 듯합니다.”생각 없고 무모하던 놈이 대체 어떻게 황제와 태후의 눈에 들었는지, 경왕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경성 예법을 모른다는 구실을 대어 혼사를 미루고 유지영의 기를 꺾어놓을 생각이었는데,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황실에서 내무부에 혼사를 전담해 버렸다.실로 허를 찔린 격이었다.“흥! 어리석은 놈, 내 어디까지 기고만장할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경왕 역시 분노에 차서 씩씩댔다.한편, 유지영은 담씨 노부인의 곁을 지키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황궁에서 사주를 맞추고 오늘 예물을 들여보냈으며 바깥이 온통 축제 분위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군주님, 국공 나으리께서 저택으로 속히 돌아오라 하십니다!”시녀가 들어와 다급히 전했다.담씨 노부인은 유지영의 손을 다독였다.“내 다리야 하루아침에 나을 것이 아니니 어서 중요한 일부터 보러 가거라.”담씨 노부인의 안색이 그녀가 경성에 막 당도했을 때보다 훨씬 혈색이 돌고 부드러워진 것을 확인한 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틀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담씨 저택을 나설 때, 정왕비와 배준형이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는 유지영도 예상했던 일이었다.배준형은 마차 휘장을 걷어 올리며 유지영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전생에 수년간 부부로 지냈던 세월이 무색하게도, 지금의 배준형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과거에는 그를 세상의 전부로 생각하며 언제나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던 그녀였다.그가 한마디만 하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곤 했었다.그러나 지금 유지영의 얼굴에는 오직 서늘한 냉소만이 맴돌 뿐이었다.배준형은 스쳐 지나가려는 유지영을 급히 소리쳐 붙잡았다.“지영아!”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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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유지영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눈앞의 이 사람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킬 사람이었다.예물을 들이는 절차가 끝나자, 이제 한 달 뒤에 치를 혼례만 남게 되었다.의식을 모두 마치고 나니 이미 오후가 되었다.앞뜰에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한 연회가 차려졌다.유씨 노부인은 시끌벅적한 광경을 보며 남몰래 씁쓸해하다가, 병풍 뒤에서 걸어 나오는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유씨 가문의 적장녀로서 네가 오늘 가문의 체면을 제대로 세워주었구나. 지난번 성년례 때도 그렇고, 예물을 들이는 일과 혼사를 치르는 일까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 다만... 선주는 제대로 된 성년례조차 치르지 못한 게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구나.”유지영의 좋았던 기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사라져 버렸다.“지영아, 너와 선주도 함께 자란 정이 있지 않느냐. 어릴 적 자매간의 다툼이야 지나간 일이니, 장녀인 네가 아래 동생들을 많이 보살피고 도와야 마땅하지.”노부인은 유선주가 시집을 갈 때 그럴싸한 혼수도 마련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게다가 둘째네는 분가할 때 가져간 재산도 얼마 되지 않으니, 어떻게 살림을 지탱하겠는가.전생에도 둘째네 식구들은 유지영의 혼수를 가로챘다.그때 노부인은 내막을 알고 그들의 계획에 동참하기까지 했다.황궁에 계신 태후께서 혼수를 보내주어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면, 전생에 그녀의 혼례는 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유지영은 평온한 얼굴로 노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할머니는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오늘 들어온 예물의 절반을 남겨서 선주에게 혼수로 주거라. 그래야 선주도 시집가서 체면이 서지.”노부인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그 말을 들은 유지영은 노부인의 머릿속에 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열어보고 싶었다.둘째네 식솔들이 몇 번이나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는데, 그런 그들을 위해 예물의 절반을 내놓으라니!“네 부모가 남겨준 것만으로도 넌 평생 걱정 없이 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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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짝!매서운 손찌검이 한 번 더 이어졌다.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연월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하얗던 뺨은 순식간에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유지영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연월의 가슴팍을 걷어찼다.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연월을 매섭게 몰아세우며 호통쳤다."어리석은 것이 어디서 감히 군주인 나를 가르치려 들어? 이 예물은 황궁에서 보내온 것인데, 누가 감히 황실의 물건을 탐낸단 말이냐! 명색이 국공부 출신이라는 것들이 그간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 입으로 일일이 읊어줄까?"발길질이 연거푸 이어졌다.미처 피할 새도 없이 고스란히 매를 맞은 연월은 뺨을 감싸 쥔 채 애원했다."군주님, 소인이... 소인이 잘못했습니다!"유지영은 숨이 가빠질 때가 돼서야 발길질을 멈추고, 고고하게 연월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읊조렸다."나는 세상 소문 따위 두렵지 않다.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 감히 내 물건을 탐해? 내 혼사가 순탄치 못하다면 삼촌이고 뭐고 발칵 뒤집어놓아 한시도 발 뻗고 자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겉으로는 연월을 꾸짖는 듯했으나,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유씨 노부인의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노부인의 주름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노인은 부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유지영을 가리켰다."네, 네가 감히..."유지영이 슬그머니 발을 거두고 자세를 바로잡자, 홍주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붉게 물든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그 기막힌 광경에 유씨 노부인은 뒷목을 잡을 지경이었다."가서 당장 국공을 모셔오너라! 자식을 대체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 모양인지 내 똑똑히 따져야겠다!"그러나 유지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오히려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며 홍주에게 일렀다."잘되었구나. 마침 바깥의 손님들이 떠나기 전이니, 하인들을 여럿 불러 문 앞에 둔 예물을 전부 도로 실어 돌려보내거라. 국공부의 노부인께서 이 귀한 것들을 기어이 차남의 적장녀에게 주라 하셨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거라!"홍주는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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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송씨도 가증스러웠지만, 유정혁이야말로 참으로 독한 인간이었다.매번 독한 계책을 꾸며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고 아버지를 모함하니,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자였다.이런 자야말로 능지처참을 당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했다.동금은 별말 없이 서신을 품에 챙겨 떠나려 했다."한 가지 더 있다."유지영이 동금을 불러 세웠다."소주의 송씨 가문 식솔들도 경성에 와 있는 것으로 안다. 유선주가 정왕부의 미움을 사고 가까운 이들을 해한다는 사주를 받았다는 걸 아직 모를 테니, 송씨 가문 사람들에게 둘째 삼촌네가 처한 상황을 넌지시 알려주거라."유지영이 말했다.그녀는 송씨가 예전에 사라진 그녀의 혼수를 돌려줄 때 밖에서 많은 은자를 빌린 것을 알고 있었다.그 대부분이 송씨 가문에서 빌린 은자일 것이다.동금이 공손히 대답했다."예, 지금 다녀오겠습니다."한편 유씨 노부인은 유정남 부녀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노부인은 돌아온 이씨 어멈을 보고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물건은 받더냐?"이씨 어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노부인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은혜도 모르는 것, 내 슬하에서 몇 년을 자랐으면서 경성에 돌아오자마자 사사건건 외가만 챙기더니.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길러봐야 소용이 없구나."오늘 유지영이 대놓고 자신의 뜻을 거역한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노부인은 궁시렁거리며 욕을 퍼부었다."그 많은 재산을 지영이 혼수로 경왕부에 싸 들려 보내다니, 출가외인에게 집안 재산을 바치는 꼴 아니냐. 큰애가 참으로 어리석구나. 딸자식 시집보내고 나면 나중엔 결국 조카들에게 의지해 살아야 할 텐데, 머지않아 후회할 날이 올 게다."마음에 들지 않지만 노부인으로서도 별수가 없었다.이씨 어멈이 곁에서 달랬다."국공 나으리께서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딸을 아끼실 때라 그렇습니다. 시간이 흘러 생각이 바뀌고 집안이 쓸쓸해지면, 둘째 나으리네를 불러들이실지도 모릅니다."그 말에 노부인의 안색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노부인은 걱정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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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송씨도 잇따라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이제 곧 혼례를 올릴 텐데, 집안에 안주인이 없어서야 어찌 일이 돌아가겠습니까. 만약 아주버님께서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도움을 청하신다면, 저 역시 너그럽게 지난 허물은 묻어두고 손님 접대를 도울 겁니다."세 사람은 간절한 눈빛으로 유씨 노부인을 바라보았다.진심으로 큰댁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자신들을 불러들이길 고대하는 기색이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유씨 노부인이 고개를 저었다."네 형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럼 조만간 본가에서 연회를 열어 손님들을 대접해야 할 텐데, 여자 귀빈들은 누가 맞이한답니까?"송씨가 다급히 캐물었다.사내인 유정남이 혼자서 여자 귀빈들을 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사실 이 일은 유씨 노부인이 오후에 유정남과 이미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었다.당시 유정남은 국공부에서 연회를 여는 날에는 궁에서 사람을 보내 여자 귀빈들을 접대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유씨 노부인은 송씨를 힐끗 바라보며 찬물을 끼얹었다."그 일은 네가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때가 되면 궁에서 알아서 사람을 보내 대접할 게다."궁에서 사람이 오지 않는다 한들, 유정남이 도둑 보듯이 송씨를 경계하는 마당에 어찌 그녀를 다시 불러들이겠는가.송씨의 얼굴이 단번에 흙빛으로 변했다.유정혁 역시 민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형님께서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니, 원망하진 않겠습니다."곁에 있던 이씨 어멈이 참다못해 한마디를 보탰다."국공 나으리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노부인께서 계속 둘째 나으리네를 싸고돌며 군주님을 난처하게 만드신다면 노부인을 둘째 나으리네 댁으로 모셔 가라 하셨습니다. 게다가 지난 일까지 전부 들추어내어, 그 누구든 군주님의 혼사에 재를 뿌리려 든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엄포를 놓으셨습니다."이씨 어멈은 아예 대담하게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까지 낱낱이 고해바쳤다."노부인께서는 군주님께서 선주 아가씨를 조금만 보살펴 주길 바라셨을 뿐인데, 군주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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