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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191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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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화

문밖에는 송 부인이 건장한 하인 몇 명을 데리고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 그 고함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부관이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맞아들이자, 송 부인은 턱을 치켜들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송문영은 어디 있느냐? 당장 나오라 일러라!"그 고함에 온 마당이 쩌렁쩌렁 울렸다.송씨는 어릴 때부터 적모인 송 부인을 어려워했던 터라,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결국 그녀는 힘겹게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전했다."어머니,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송 부인은 차용증을 탁자 위에 탁 내리치며 말했다."은자를 받으러 왔다.""어머니...""쓸데없는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다. 송씨 가문이 너를 도우려다 이리 가세가 기울지 않았느냐. 유선주가 좋은 혼처를 만나 장차 송씨 가문을 이끌어줄까 바라며 내 그동안 참아왔다만!"송 부인이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자 탁자 위의 찻잔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이제 경성의 모두가 그 계집의 사주가 가까운 이들을 해친다는 걸 알고, 정왕부에서도 이를 꺼려 파혼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네 부군은 작위도 없는 데다 혼사마저 지키지 못하니, 참으로 무능의 극치로구나!"송 부인은 이제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송씨를 쏘아보았다."며칠 전에 빌려 간 은자 삼만 냥을 오늘 당장 갚아라."송씨는 조급한 마음에 덜컥 말을 내뱉었다."어머니, 그 많은 은자를 제가 어디서 구한답니까. 그동안 저도 송씨 가문에 적잖이 성의를 보였거늘, 어찌 이리 찾아와 빚 독촉을 하십니까?"불쌍한 척 하소연하는 송씨의 모습에 송 부인은 냉소를 지었다."내가 오늘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찾아온 것만으로도 체면을 살려준 게다. 당초 부광 비단 일을 뒤집어쓴 것은 송씨 가문이었다. 일이 정말 커진다면, 네 자식들의 체면이 어찌 되겠느냐?"부광 비단 얘기가 나오자 송씨의 안색이 급변했다.송 부인이 말을 이었다."오늘 삼만 냥을 돌려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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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이른 아침, 유지영이 아침 식사를 마치자 동금은 곧바로 어젯밤 둘째네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노부인께서 어젯밤 돌아오실 때 얼굴이 잔뜩 굳으셔서는 밤새도록 한숨을 내쉬셨답니다."동금이 입을 가리며 나직이 웃었다.유지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어제 송 부인이 삼만 냥을 뜯어갔으니 송씨에게는 이제 은자가 거의 남지 않았을 것이다.그동안 유정혁은 인맥을 쌓는다는 핑계로 집안의 재산을 수없이 가로챘다.특히 송씨가 온갖 고생을 하며 빼돌린 재물 중 일부는 송씨 가문에 상납되었고, 대부분은 유정혁이 구실을 만들어 가져가 외실에게 탕진했다.이 사실을 송씨가 알게 된다면, 진짜 재미난 구경거리가 시작될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유선주의 혼례가 임박했을 때, 더 큰 선물을 안겨줄 생각이었다.다음 날, 황궁에서 유리연이 열려 각 세가의 귀부인들과 자제들이 대거 초대되었다.유씨 노부인은 전날 단단히 화가 난 탓에 오늘은 아프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으나, 초대장을 정씨에게 건네며 유지란을 데리고 가라 일렀다.그리하여 정씨는 일찌감치 유지란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정씨는 유지영이 나오는 것을 보자 얼른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지영이가 왔구나."유지란 역시 생글생글 웃으며 살갑게 인사했다."큰언니."두 사람의 극진한 태도만 보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이들의 우애가 무척 깊은 줄 알 것이다.유지영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에 오르려 다가갔다.그러자 정씨가 말을 건넸다."지영아, 번거롭게 따로 갈 것 없이 우리 마차 한 대에 같이 타고 가자꾸나. 가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말이다."하지만 유지영은 단칼에 거절했다."셋째 숙모, 제 마차가 얼마 전에 사고가 난 적이 있어서요. 괜히 숙모와 지란이까지 놀라게 하면 안 되니, 따로 가는 편이 낫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마차에 올랐다.뒤에 남겨진 정씨와 유지란은 제자리에서 속만 끓일 뿐이었다."예전 같지 않으니 절대 저 아이의 눈 밖에 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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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유지영에게 거절당하자 민경주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그러자 곁에 있던 경왕비가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장녕군주, 얼마 전에 너와 경주 사이에 오해가 좀 있었던 것은 안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고, 경주도 너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청한 것인데, 장차 한 지붕 아래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할 처지에 굳이 이렇게..."경왕비는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쉬었다.민경주는 눈을 내리깔며 일부러 서운한 기색을 지어 보였다."군주님께서 아직 화가 풀리지 않으셨다면, 제가 무릎을 꿇고 사죄라도 올릴까요?"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궁문 앞에 서서 불쌍한 척하니, 이미 적잖은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만약 경왕비가 배현준의 친모였다면 유지영도 한 번쯤 참아주었을지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받아쳤다."나 역시 궁 안이 낯설어 민 소저를 챙겨줄 처지가 못 된다고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어찌 이리 눈물까지 보이는가?"목소리가 작지 않았던 탓에 귀부인 몇 명이 다시 이쪽을 돌아보았다."경왕비 마마, 안 그래도 간만의 입궁이라 저도 잔뜩 긴장하고 있고 민 소저를 원망하는 말은 꺼낸 적도 없사온데, 마마께서는 어찌 제 뜻을 왜곡하십니까?"유지영은 눈썹을 치켜세운 채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말을 이었다."저와 민 소저는 아무런 원한도 없거늘 사죄는 무엇이며,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연이은 추궁에 경왕비는 멍하니 굳어버렸고, 민경주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군주님...”"민 소저, 나는 참으로 그대를 상대하기가 겁이 나네."유지영은 그녀가 다가오려 하자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못을 박았다."장차 혼인한 뒤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민 소저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이 없으니 부디 나쁜 생각은 하지 말게."'나쁜 생각'이라는 말은 예전에 민경주가 목을 매 자결하려 했던 일을 주변에 다시금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오늘 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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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유지영은 의미심장하게 모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오늘 무슨 일이 있든 셋째 숙모께서는 지란이를 잘 단속하십시오. 괜히 어리석게 나서서 선주네와 같은 말로를 맞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정씨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서렸다.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유지란이 쏘아붙였다."지금 우릴 협박할 셈인가요?""셋째 숙모, 그 부광 비단을 제게 특별히 챙겨주신 분이 셋째 숙모라는 사실은 아직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유지영은 나지막이 경고했다.기회만 생기면 남을 물어뜯으려 드는 어리석은 모녀였기에, 누군가의 사주에 놀아나 칼잡이가 되는 꼴을 막으려면 미리 쐐기를 박아두어야 했다."그게 무슨!"정씨는 얼른 유지란을 말리며, 당혹스러운 얼굴로 유지영에게 답했다."걱정 말거라. 우리도 무모하게 굴 생각은 없으니."유지영은 시선을 돌려 유지란을 바라보았다."난 혼약이 있는 몸이지만, 너는 아직 아니지 않느냐."그 한마디에 유지란은 기가 죽어 즉시 입을 다물었다.모녀는 그제야 한결 얌전해졌다.잠시 후, 유지영의 시야에 배현준의 모습이 보였다.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명문가 자제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로 보아 평소 그가 넓은 인맥을 쌓아둔 듯했다.시선을 조금 더 돌리자 정왕부 사람들도 모습을 드러냈다.정왕과 정왕비, 그리고 배준형까지 세 사람이 마침 대각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배준형은 맞은편을 살피다 배현준을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뒤틀며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유지영은 그 알량한 도발을 아예 못 본 척 넘겨버렸다.이윽고 낯익은 귀부인들과 규수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유지영 역시 미소로 화답하며 대화를 나누었다."지영아, 연회가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나랑 같이 나가서 바람 좀 쐬자."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담시령이 다정하게 그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유지영은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으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언니."전각을 빠져나온 담시령은 그녀의 손을 이끌고 긴 회랑 아래에 멈춰 섰다."경왕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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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한바탕 겁을 준 유지영은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서 다시 담시령을 바라보았다.그 서슬 퍼런 기세에 담시령은 크게 겁을 집어먹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유지영이 말했다."정왕부에서도 경왕부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을 테니,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언니에게 성대하게 예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저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은 알아서 찾아올 테죠."만약 어리석게 굴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벌인다면, 그 뒷감당은 온전히 담시령의 몫이었다.속내를 완전히 들켜 버린 담시령은 한풀 기가 꺾여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네가 그걸 어찌 알아?"오늘 배준형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담시령은 그야말로 과분한 총애에 몸 둘 바를 몰랐다.배준형은 그럴듯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현재 배현준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순전히 유지영의 덕이라 했다.또한 정왕부가 조정에서 냉대를 받고 있음을 넌지시 말하며, 담시령으로 하여금 유리연에서 유지영이 소란을 피우도록 유도하라고 했다.그리하여 문무백관들의 비웃음을 유발해 배현준의 기세를 꺾어놓으려는 심산이었다.그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지만 지금은 그저 등골이 오싹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말로 소란이 일어난다면 그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유지영은 담시령을 쏘아보며 물었다."언니는 세자비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싶지 않습니까? 설령 장차 언니에게 허물이 생기더라도, 정왕부에서 감히 언니를 냉대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담시령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유지영은 다가가 담시령의 귓가에 몇 마디를 속삭였다.그 말을 들은 담시령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유지영의 집요한 설득에 내심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이 일이 만약 실패한다면 결코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걱정 마세요."유지영은 담시령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다시 영보궁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배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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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서태후 역시 그 꼴을 보고 기가 막혀, 바닥에 엎드린 어린 내관을 매섭게 쏘아보았다."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태, 태후 마마, 경세자께서 연화못으로 가시어 민 소저와 다투시다가, 민 소저를 연화못에 밀쳐 넣으시는 바람에 민 소저가 익사하고 말았사옵니다."내관이 벌벌 떨며 고했다.그 말을 들은 경왕비는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울긴 왜 울어! 이리 경사스러운 날에 초상이라도 난 것처럼 곡을 하다니!"서태후는 극도로 불쾌해하며 경왕비를 향해 서슬 퍼렇게 호통을 쳤다.그 기세에 눌린 경왕비는 섣불리 울지도 못하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서태후는 사람을 시켜 민경주를 데려오게 했다.막상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좌중은 물론이고 방금 전 배현준의 살인을 고해바친 내관마저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이 아이가 온몸에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니는데, 곁에 시녀 한 명 보이지 않더구나. 만약 이 늙은이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계단에서 구를 뻔했어!"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나 민경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상태였다.서태후는 실망감이 역력한 눈빛으로 경왕을 바라보았다."경왕, 자네가 적장자를 탐탁지 않아 하는 줄은 내 익히 알고 있네만, 범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다 하였네. 사달이 났으면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하거늘, 대뜸 친자식에게 죄부터 뒤집어씌우려 들다니. 경왕, 자네는 참으로 이 늙은이를 실망하게 만드는군!"서태후의 불호령에 경왕은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 뒤에 선 경왕비 역시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몸을 떨었다. 곧이어 바깥에서 다른 궁인이 급히 들어와 고했다."실상 물에 빠진 이가 있기는 하오나, 그분은 민 소저가 아니라 정왕비 마마이옵니다! 다행히 담씨 가문의 시령 아가씨께서 몸을 던져 마마를 구하셨사옵니다. 시령 아가씨는 물을 많이 들이켜 뭍으로 올라오자마자 혼절하셨기에, 두 분 모두 편전으로 모셨사옵니다. 어의가 살펴본바 다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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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배준형은 정왕비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옆방으로 가 담시령을 찾아갔다.그녀가 어찌하여 연화못에 갔으며, 어떻게 이리도 우연히 어머니를 구했는지 무척이나 의아했다.오늘 개망신을 당했어야 할 자는 본래 배현준이어야 했다!그러나 배준형이 도착했을 때, 시녀는 문 앞을 가로막으며 담시령이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고 고했다."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고?"배준형은 미간을 찌푸렸다.시녀가 답했다."세자, 어의께서는 아가씨가 물을 많이 들이켜서 안정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주변에 오가는 눈들이 많았기에 배준형도 무작정 안으로 들이닥칠 수는 없었다.그렇게 그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방 안에 있던 담시령은 배준형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녀가 말했다."아가씨, 오늘 태후 마마께서 친히 아가씨를 치하하시며 정왕부에 복이 넘친다 하셨사옵니다."담시령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오늘 목숨을 걸고 정왕비를 구했으니, 장차 지위가 흔들릴까 염려할 이유는 없었다. 한편, 영보궁의 유리연은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오직 경왕비만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조소와 경멸 어린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못했다.사람들은 금방이라도 그녀의 코앞에 삿대질을 하며 전처의 아이를 학대했다고 손가락질할 기세였다.그녀는 몇 번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으나, 서태후의 매서운 시선이 두려워 억지로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연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서태후는 건양제를 바라보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황상, 지영이와 현준이 모두 어린 나이에 생모를 잃은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두 아이가 혼약을 맺은 후 현준이가 한결 의젓해졌습니다. 그러니 지난날의 철없던 행동만 붙들고 나무라지 마시고 황상께서 너그러이 보살펴 주세요."목소리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건양제는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어마마마, 너무 염려치 마세요."이어 건양제는 경왕만 남겨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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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송씨가 독하게 마음먹고 유선주의 팔자를 고쳐주지 않는다면, 배준형의 마음은 담시령에게 온전히 홀려 넘어갈 판이었다.송씨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분부하신 대로 둘째 부인께 점괘를 일러 드렸사오나, 부인께서는 반신반의하시는 눈치였습니다."유지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믿지 않는 게 아니라, 눈앞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거겠지."지금 둘째 삼촌네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흉사만 겹치고 있었다.궁지에 몰릴수록 어떻게든 판을 뒤집으려 발버둥 치는 법이다.저들은 승리가 코앞에 있다고 착각한 채, 사활을 걸고 판돈을 긁어모아 재기를 노릴 것이다.허나 그 끝은 결국 벼랑 끝에서 추락해 영원히 파멸하는 길뿐이었다!"아직 둘째 숙모의 수중에는 제법 돈줄이 되는 상가와 텃밭이 남아 있어. 완전히 막다른 길에 몰린 건 아니니, 장작을 좀 더 지펴야겠구나."유지영은 동금에게 몇 가지를 은밀히 지시했다.동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후 며칠 동안 유국공부는 물론이고 저잣거리조차 평소보다 한산해졌다.무과 시험 본선에 오른 자제들은 장원을 차지하기 위해 막바지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주시험관을 맡은 유정남 역시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유지영도 아버지를 며칠째 뵙지 못했다.그사이 둘째네에서 유씨 노부인을 찾아오긴 했으나, 노부인은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번번이 물렸다.덕분에 너른 정원에는 적막이 감돌았고, 유지영 역시 평온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어느덧 보름이 훌쩍 지났다.무과 장원 선발전을 사흘 앞둔 날, 동금이 급히 소식을 전해왔다."경왕부의 둘째 공자께서 마차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배 공자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고, 경왕비께서는 소식을 듣고 오열하다 혼절하셨답니다."배영준은 배현준의 이복동생이었다.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두 살도 채 나지 않았지만, 배영준은 경왕이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었다.전생에 배영준은 고관대작의 귀한 여식과 혼인하여 탄탄대로를 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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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말을 마친 경왕이 뒤돌아서 방을 나가려던 찰나, 멀리서 민 부장이 다급히 달려왔다."전하, 큰일 났습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경왕은 불길한 예감에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경주가 오늘 낙마 사고를 당했습니다. 현재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의원 말로는 서너 달은 꼼짝도 할 수 없다고 하니 혼사를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방 안에 있던 경왕비가 그 소리를 듣고 경악한 얼굴로 되물었다."경주는 기마술이 웬만한 처자들보다 빼어난 아이인데 어찌 낙마를 했단 말인가?"민 부장이 답했다."오늘 벗들과 함께 교외로 나갔다가 누군가의 흉계에 당한 모양입니다. 온몸에 힘이 빠져 말에서 떨어졌는데, 그만 뒷발에 채이고 말았습니다. 들려왔을 땐 이미 혼수상태였습니다."경왕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분명히 그 몹쓸 놈의 소행일 것이야!"처음에 민 부장은 영문을 몰랐으나, 배영준 역시 낙마 사고로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전하, 꼭 현준이의 짓이라 단정할 순 없습니다..."경왕비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겉으로는 온화한 척 만류했다."차라리 현준이를 불러들여 진상을 묻는 편이 낫겠습니다."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현준이 맞은편에서 걸어왔다.입가에 웃음을 띤 채 나른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왼손에 말채찍을 쥐고 있었다.그는 긴 눈매를 곱게 접으며 능청스레 말했다."이런, 어찌 이리 소란스럽습니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습니까?"경왕은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이런 몹쓸 놈, 어디서 뻔뻔하게 그런 걸 물어! 어른들의 원한을 어찌 다음 대에까지 미치게 한단 말이냐. 영준이는 피를 나눈 네 동생이거늘, 형으로서 어찌 동생을 해칠 수 있단 말이냐!"이때 민 부장도 거들고 나섰다."이 일이 정녕 세자의 소행이라면 너무하신 처사입니다. 둘째 공자께서는 곧 무과 장원을 차지하실 재목이었는데... 윽!"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현준의 채찍이 민 부장을 향해 날라왔다.무방비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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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배영준은 민경주가 회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다급하게 경왕비의 소매를 붙잡았다."어머니, 소자에게 후사가 없어서는 아니 됩니다."경왕비는 얼른 그의 손을 다독이며 위로했다."조급해하지 말거라. 그저 혼약이 오갔을 뿐 아니냐. 이 일은 어미가 반드시 방법을 찾아 해결할 것이다. 어미가 어찌 네 대가 끊기는 것을 보고만 있겠느냐?"경왕비의 말에 배영준은 그제야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그는 탕약을 마신 뒤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 모습을 본 경왕비는 얼굴 가득 안타까움을 내비치면서도 억지로 분노를 억눌러야 했다.그녀는 배영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밖으로 나와, 뒤따르던 시녀에게 물었다."배현준은 어디 있느냐?""마마, 세자께서는 방비각에 계십니다."방비각은 훗날 신혼집으로 쓰일 곳이었다.벌써 한 달 넘게 보수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녀는 여태 단 한 번도 그곳에 걸음한 적이 없었다.경왕비는 미간을 찌푸렸다."그 녀석이 혼사에는 꽤나 정성을 들이는구나.""세자께 시집오겠다는 세가의 여식이 드물었으니, 세자께서도 하루빨리 맞아들이고 싶어 안달이 나신 게지요. 내일이 당장 무과 장원 선발전인데, 만에 하나 세자께서..."시녀는 황급히 입을 다물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경왕비의 눈치를 살폈다.경왕비의 입꼬리가 비웃음으로 비틀렸다."그놈 주제에?"입으로는 그리 무시하면서도 경왕비는 내심 불안감이 일었다.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만약 배현준이 정말 무과 장원이 되어 이만 병권을 손에 쥐기라도 한다면, 배영준이 세자 자리를 물려받을 희망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서재에 계시옵니다."경왕비는 미간을 꾹 눌렀다."보신탕을 끓이고, 전하께서 즐기시는 다과를 좀 준비하거라. 내 서재로 가야겠다.""예, 마마."반 시진 후, 경왕비가 서재에 들어섰을 때 경왕은 몇몇 대신들과 일을 논의하는 중이었다.그녀가 온 것을 본 이들이 하던 말을 멈췄다.경왕이 손을 내젓자 그들은 조용히 물러갔다.곧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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