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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211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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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화

잔뜩 화가 나 있던 유씨 노부인은 손을 휘저으며 차갑게 말했다."병이 나서 몸이 편치 않다고 전하거라."시녀는 쫓기듯 밖으로 나갔다.노부인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한 유정혁 일가는 이 일로 밤을 꼬박 새웠다. 그들은 배현준이 무과 장원에 올랐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유선주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송씨는 울고 있는 딸을 다독였다."국공부에서 곧 첨장연이 열릴 테니,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아가자꾸나. 우리는 이렇게 곤궁한데, 지영이네만 마음 편히 잘 먹고 잘살게 내버려 둘 순 없지!"말은 그리했지만, 당장 국공부 대문조차 들어갈 수 없고 유씨 노부인도 그들을 만나주지 않고 있었다."할머니께서 병석에 누우셨다면서요. 그럼 첨장연은 누가 나서서 주관하나요?"유선주가 물었다. 송씨 역시 그게 궁금해 몰래 정씨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봤지만 그쪽에서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송씨는 틀림없이 유씨 노부인이 연회를 주관할 거라 짐작했다.그때 노부인에게 매달려 사정하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길지도 몰랐다."부인, 소인이 듣자 하니 이번 첨장연은 조령 장공주께서 어명을 받아 주관하신다고 합니다. 이미 초대장까지 다 돌렸는데, 노부인께서는 여전히 병을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계십니다."소식을 알아보고 온 시녀가 고했다.철석같이 믿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송씨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큰아버지도 참 너무하십니다. 시간이 이리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일로 꼬투리를 잡고 저희와 남남처럼 지내고 계시다니요."유선주도 짜증을 냈다. 그저 손 한 번 내밀어 주면 될 것을, 굳이 그 좋은 기회를 생판 남에게 준 것이 야속했다.송씨는 급히 딸을 달랬다."조급해할 것 없다. 언젠가 이 어미가 반드시 네 복덩이 칭호를 되찾아 줄 터이니."송씨가 확신에 차서 말하자 유선주도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나 송씨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천기를 누설하면 안 되는 법이다. 이번엔 절대 널 실망시키지 않으마."유지영네를 주시하는 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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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정씨는 멍하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자... 장공주께서 첨장연을 주관하신다고?"태연한 유지영의 표정을 보니 도저히 거짓말 같지 않았다. 정씨는 뻘쭘해하며 한 발짝 다가섰다."지영아, 그럼 숙모가 옆에서 잔심부름이라도 거들어주마. 아무래도 남보다는 집안 사정을 잘 아는 내가 낫지 않겠니."정씨의 뻔뻔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유지영은 그녀가 온갖 악랄한 수단으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비웃음만 나왔다."손님 배웅해 드리거라!"일말의 여지도 없는 축객령이었다.정씨는 체면을 구겼다는 생각에 발끈했다."지영아, 사람이 어찌 이리도 정이 없어. 내 명색이 네 숙모거늘,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하는데 가족끼리 어찌 이리 매정하게 구느냐!""셋째 부인, 이쪽으로 가시지요. 호위들에게 끌려서 나가면 체면이 깎이는 건 결국 부인 아닙니까."홍주가 바깥을 가리키며 재촉했다.그 말에 정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애먼 홍주에게 화풀이를 했다."이런 미천한 것! 어디 상전이 얘기 중인데 시녀 따위가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느냐! 필히 네년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한 게로구나...."정씨는 당장 홍주의 뺨을 후려칠 기세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탁!유지영은 가볍게 손을 뻗어 정씨의 손목을 낚아챘다."끌어내거라!"건장한 시녀 두 명이 달려들어 정씨의 양팔을 붙잡고는 질질 끌고 나가 대문 밖으로 내팽개쳤다.지나가던 백성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자, 정씨는 바닥에서 허둥지둥 기어 일어나며 얼굴을 붉혔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부인, 군주께서는 이제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만 돌아가시지요."시녀가 다급히 만류했다.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들이 무슨 수로 유지영과 맞서 싸운단 말인가? 정씨는 억울해도 속으로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진상 짓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둘째네에서도 사람을 보냈으나, 이번엔 아예 부관이 대문 앞에서 심부름꾼을 쫓아버렸다."군주님, 화 푸세요. 저런 사람들 때문에 감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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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털썩!비명과 함께 송씨가 바닥으로 쓰러졌다.순식간에 사방이 정적에 휩싸였다."부, 부인!"시녀들이 혼비백산하여 소리쳤다.송씨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끔찍한 고통에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유정혁 역시 넋이 나간 듯 서 있다가, 송씨의 몸 아래로 붉은 피가 웅덩이처럼 고이는 것을 보고 다급히 외쳤다."당장 의원을 불러오거라!"그러나 의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송씨는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다."나, 나으리.... 부인께서 숨을 쉬지 않으십니다."주향 역시 사색이 되어 덜덜 떨었다.급소를 정확히 찔린 즉사였다.마당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유정혁은 즉각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는 서슬 퍼런 낯빛으로 시종들을 쏘아보았다."누가 찌른 것이냐!"시종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나으리, 저희가 어찌 감히 부인께 해를 가하겠습니까!"모두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결백을 호소했다.유정혁의 매서운 시선이 뒤에 서 있던 주향에게 꽂혔다. 기겁한 주향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아,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사방이 혼란스러워 누가 찔렀는지 보지도 못했습니다."거짓말이 아니었다. 주향은 그저 아들을 보호하느라 구석에 숨어 있었을 뿐, 송씨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주향의 모습을 보자 유정혁은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다시 바닥에 쓰러진 송씨의 시신을 보며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혹여.... 부인께서 나으리를 해하려다 실수로 비수 위로 넘어지신 것은 아닐까요?"주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팽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대문 밖으로 유선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선주 아가씨인 듯합니다." 주향이 말했다.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데다 유선주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유정혁은 마지못해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대문을 열고 들어선 유선주는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진 송씨를 보고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달려갔다."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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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마당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데다 정세자까지 그 꼴을 목격했으니 덮을래야 덮을 수가 없게 되었다.유정혁은 외실 추문을 가리기 위해 시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가족을 들먹이며 협박하자, 시녀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뜻밖에도 하룻밤 사이에 이 일이 경성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다.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유국공부 차남이 외실을 숨겨뒀다가 부인한테 들켰지 뭡니까. 그러다 홧김에 부인을 찔렀답니다!""어젯밤에 숨을 거두었다지요.""딸은 당장 혼례가 코앞인데....""어미가 죽어 3년 상을 치러야 할 판인데 혼례는 무슨."경성 곳곳에서 유정혁이 박정하고 잔인하다며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예전에 큰댁 재산 털어먹으려다 부인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국공부에서 쫓겨나더니, 이젠 아예 부인을 죽여? 쯧쯧, 천벌 받을 인간 같으니!"욕설이 끊이지 않았다.하지만 이런 끔찍한 소문도 국공부의 첨장연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군주님, 이런 시국에 첨장연을 예정대로 여실 겁니까?"홍주가 조심스레 물었다.유지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미 초대장을 다 돌렸는데 당연히 열어야지."국공부 큰댁과 둘째네가 연을 끊고 갈라선 것은 경성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송씨는 직계 어른도 아닌 데다 죽어 마땅한 자였다."할머니 처소 쪽을 단단히 지켜라."유지영이 명했다.홍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염려 마십시오. 노부인 곁의 시종들은 다 입막음을 해두었으니, 밖의 소식이 새어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마침 밖에서 조령 장공주가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유지영이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장공주는 들어서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송씨 일은 들었다. 참으로 재수가 없구나. 네 아버지가 진작 그들과 연을 끊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너에게까지 불똥이 튈 뻔했다.""둘째 삼촌께서 그런 분이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유지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장공주는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그 집 식구들이 널 어떻게 모함하고 함정에 빠뜨리려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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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이제 와서 개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할머니께서 물어보시거든 대답을 미뤄라. 아비가 알아서 처리하마."유정남은 하늘이 무너져도 딸의 혼사를 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유지영은 단호한 아버지의 모습에 속으로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께 다녀오겠습니다.""그래."유지영이 동금을 눈치를 주자, 동금 역시 끄덕였다.툭!유씨 노부인의 손에서 염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노부인은 멍하니 중얼거렸다."송씨가 죽어?"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송씨의 죽음에 둘째가 얽혀 있어 지금 관아에서 조사 중입니다."유정남이 담담하게 고했다.유씨 노부인은 대뜸 화를 냈다."송씨가 죽은 게 어찌 둘째 탓이란 말이냐! 사내가 외실을 둘 수도 있는 법이거늘, 송씨 그것은 대체 왜 그리 유난을 떨었단 말이냐!"노부인의 원망은 오롯이 죽은 송씨를 향했다.유정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명백히 유정혁의 잘못임에도, 목숨 잃은 송씨를 비난하는 노부인을 보며 유정남은 순간 세상을 떠난 부인이 떠올랐다.그녀 역시 생전에 저런 구박과 괴롭힘을 당했던 것일까."가만히 서서 뭐 하는 게냐! 당장 달려가 둘째를 데려와야지! 한 식구끼리 분가한다고 난리더니 결국 이 사달을 내는구나."노부인은 이번에 화살을 유정남에게 돌렸다.하지만 고개를 들어 유정남을 본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그 시선에 노부인은 정신이 번쩍 들어, 자신이 방금 홧김에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만약 둘째가 조강지처를 제 손으로 죽인 거라면 전 감싸지 않을 것입니다!"유정남은 꼿꼿하게 서서 싸늘하게 말했다."송씨에게 허물이 있다 한들, 십수 년을 어머니 밑에서 수발든 며느리입니다. 어머니께서 앞뒤 가리지 않고 감싸시니 대참사가 벌어진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서도 반성하셔야 합니다!"유정남은 과거 노부인이 송씨를 효부라 칭찬하던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그런데 사람이 죽자마자 이렇게 원망만 잔뜩 퍼붓다니.그는 눈앞의 어머니가 새삼 너무도 낯설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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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송씨의 초상이 치러졌으나 문상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유정혁은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국공부를 찾았으나 쫓겨났고, 정왕부로도 소식을 전하러 갔으나 역시 문전박대당했다."저리 가시오! 우린 그런 사람 모른다니까!"정왕부 시종들은 그를 매몰차게 쫓아냈다.유정혁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대문 앞에 서서, 굳게 닫힌 정왕부의 현판을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저 자, 유 상서 아니오?""상서는 무슨. 그저 상갓집 개나 다름없지. 저 살자고 조강지처까지 찔러 죽인 놈 아니오."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유정혁을 알아보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유정혁은 치욕에 얼굴을 구기며 반박하려 했지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자리를 뜨려던 순간, 고개를 든 그의 시야에 묘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들어왔다.마차에 탄 유지영이 그를 향해 고소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유정혁은 제 눈을 의심하며 눈을 비볐다.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유지영은 그곳에 있었다. 게다가 입 모양으로 꼴 좋다고 뇌까리고 있었다.쿵!유정혁은 그 순간 송씨의 가슴에 어떻게 비수가 꽂혔는지 깨달아 버렸다.그는 곧장 마차를 향해 돌진했다."유지영, 네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거였구나!"그러나 그가 다다르기도 전에 마차는 이미 멀어진 후였다.유지영은 유정혁이 마차 뒤를 쫓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를 끝까지 자극하여 아버지 앞까지 끌고 갈 생각이었다.아버지에게 남은 마지막 형제의 정마저 철저히 끊어내기 위함이었다!예상대로 유정혁은 또다시 국공부를 찾아와, 유지영이 제 가정을 파탄 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그는 유정남에게 해명을 요구하며 악을 썼다.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큰댁을 물고 늘어지려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소란이 커지자 부관이 유정남에게 보고했다."둘째 나으리께서 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차마 듣기 민망할 지경입니다. 모두 군주께서 벌인 짓이라며 우기고 계십니다."유정남이 탁자를 내리쳤다."망할 놈 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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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그 말에 유선주의 낯빛이 변했다. 시종은 유선주가 아비를 걱정할 줄 알았으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딴판이었다."거짓말 말거라! 정왕부에서 날 얼마나 각별히 여기는데 아버지를 쫓아내? 난 곧 세자비가 될 몸이다!"그 말에 시종은 말문이 막혔다.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옥에 갇혔는데 딸이라는 처자의 반응이 참으로 이상했다."선주 아가씨."그때 정왕부에서 사람이 왔다. 정왕비 곁을 모시는 장씨 어멈이었다. 어멈은 유선주를 내려다보며 건조한 어투로 말했다."아가씨께서 모친상을 당하셨으니 삼년 상을 치러야 할 터. 이 혼사는 당장 취소할 순 없으나 시일은 미뤄야 할 듯싶습니다."장씨 어멈의 얼굴에는 옅은 멸시가 배어 있었다.유선주가 미간을 찌푸렸다."태후 마마의 하사혼이거늘....""태후 마마의 명이라 한들 예법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게다가 효상을 치르는 중에 사방을 쏘다니는 건 몹시 불길한 일입니다. 행여 정왕부에 액운이라도 끼치면 아가씨께서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장씨 어멈은 싸늘한 얼굴로 뒤따르던 시녀에게 조의금을 내밀게 했다."부인의 장례에 보태시지요.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유선주는 주먹을 꽉 쥐고 시녀 미향에게 말했다."가서 세자 저하를 뵙고 내가 많이 보고싶어 한다 전해라."그때 장씨 어멈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휙 돌아보며 말했다."제가 깜빡하고 전하지 못한 말이 잊었군요. 세자께서는 지금 금족 중이니 괜히 헛수고하지 마세요."장씨 어멈은 쏘아보는 유선주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화가 치밀어 오른 유선주는 탁자 위의 찻잔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악을 썼다."이것들이 감히 날 무시하려 들어! 두고 보자!"명색이 같은 유씨 가문 규수이거늘, 유지영은 사랑을 독차지하며 국공부의 적장녀 대접을 받고 태후의 눈에 들어 군주의 칭호까지 얻었는데 자신만 비웃음거리가 된 것에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아, 아가씨." 어린 시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가왔다."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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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유정명인들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야심 차게 분가했지만 뼈저리게 후회 중이었다. 독립하면 대접받을 줄 알았더니, 밖에서는 국공부 셋째가 누군지도 몰랐다.유정남의 이름을 들먹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시녀가 다급히 뛰어왔다."크, 큰일 났습니다! 아가씨께서 사고를 당하셨습니다!"그 말에 정씨는 의자에서 튀어 오르며 시녀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무례한 것! 함부로 무슨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야! 우리 지란이가 사고를 당하다니!"시녀는 뺨을 부여잡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 보거라!" 유정명이 다그쳤다.시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아가씨께서 벗들과 교외 뒷산으로 단풍놀이를 가셨다가 그만 함정에 빠지셨습니다. 그런데 낯선 사내가 아가씨를 구해주겠다며 안아 들고 산을 내려오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정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일었다."지란이를 모시던 것들은 다 뭐 하고! 어쩌다 그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둔 게야!"그때 밖에서 유지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니! 이제 저는 어찌 합니까!"유지란은 안으로 뛰어 들어와 정씨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네 곁의 시녀들은 다 어쩌고!""한 명은 저랑 길이 엇갈렸고, 한 명은 사람을 부르러 갔었요."유지란은 함정에 빠져 이름 모를 사내에게 여기저기 닿고 안겨서 산을 내려왔던 걸 생각하면 수치심에 기절하고 싶었다.유정명 역시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딸을 좋은 집에 시집보내 덕을 좀 볼까 했더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그는 다급히 물었다."그걸 본 자들이 얼마나 되느냐? 그 사내놈 정체는 아느냐?"유지란은 고개를 저었다.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마차 안이었고, 시녀의 말을 듣고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멍청한 것!"유정명은 짜증을 내며 서둘러 사람을 풀어 진상을 파악하고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 했다.호통을 들은 유지란은 더 울지도 못하고 벌벌 떨며 정씨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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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영문은 모르지만 동금은 유지영의 뜻에 따르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알았다.그렇게 이틀이 조용히 흘렀다.혼례가 다가오자 배현준은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다과를 선물하며,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안부를 전해왔다.그는 혼례 날 변수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궁에서 나와 경왕부로 거처를 옮겼다. 곁에는 검을 찬 호위들이 늘 함께했다.날카로운 인상의 무사들이 곁을 지키고 있으니, 그냥 보아도 간담이 서늘해졌다.혼례 이틀 전, 배현준은 경왕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배영준을 강제로 끌어내 후원에 가두고 사람을 배치해 감시를 서게 했다.소식을 들은 경왕이 화가 나서 달려왔다."다리도 성치 않은 아이를 어쩌자고 이러는 게야?"배현준은 무심하게 답했다."제 혼례가 무사히 치러진다면, 배영준은 털끝 하나 안 상하고 돌려보내 드리지요.""그게 무슨 소리냐?""만약 혼사에 문제가 생긴다면!"배현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늘한 눈빛을 번뜩였다."경왕부에서 아주 시끌벅적한 초상을 치르게 해줄 겁니다!""너!"경왕은 화가 나 당장이라도 손을 올릴 기세였으나, 배현준의 뒤에 버티고 선 호위들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혼례가 끝난 뒤 영준이가 조금이라도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 널 가만두지 않겠다!"경왕은 소매를 뿌리치고 돌아갔다.경왕비는 한참을 기다려도 경왕이 배영준을 데려오지 않자 속이 탔다."뼈가 막 붙는 시기입니다. 조금만 잘못돼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 이건 대놓고 절 짓밟으려는 수작 아닙니까?"경왕은 어쩔 수 없이 배현준의 뜻을 전했다."혼사만 끝나면 영준이는 돌아올 거요."그 말에 경왕비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제가 혼사에 훼방이라도 놓을까 봐 영준이를 볼모로 데려갔다는 겁니까?""너무 꼬아서 생각하지 마오. 그 녀석의 속내를 누가 알겠소."경왕이 달랬지만 그 역시 배현준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건양제에게 고해봐야 들을 말은 뻔했다.'부자지간에 좀 화목하게 지낼 순 없느냐?'지난번에 건양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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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경왕부의 혼례는 아주 성대하게 치러졌다.문 앞에는 축하하러 온 빈객들의 마차가 줄을 이었고, 저마다 값비싼 선물을 들고 와 인사를 건넸다. 경왕은 밖에서 손님을 맞으며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었다."전하께서 자식을 이리 훌륭하게 키우셨을 줄 몰랐습니다. 경세자께서 이리 눈부시게 빛을 발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그러게 말입니다. 앞으로 전하께 신세를 질 일이 많겠습니다."생전 처음 들어보는 찬사에 경왕은 내심 어색해하면서도 겉으로는 기꺼이 응대했다.후원.배현준은 붉은 혼례복을 입고 가슴에 커다란 붉은 꽃을 매단 채 서 있었다. 준수하고 패기가 넘치는 얼굴은 어디에 서든 단연 시선을 압도했다.그가 나타나자 수많은 이들이 다가와 축하를 건넸다."세자, 혼례를 축하드립니다.""경하드립니다."배현준은 오늘 기분이 몹시 좋아 입가에 저절로 환한 웃음이 번졌다."모두 고맙소."곁에 선 경왕은 자신보다 머리 반 개는 더 큰 배현준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무수한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도 그는 교만하지 않고 당당했다.과거 경성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던 방탕한 아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경왕은 왠지 모를 침묵에 잠겼다."세자, 이제 신부를 맞으러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매파(媒婆: 양가의 혼인을 중매하고 혼례의 절차를 주관하는 나이든 여성) 외쳤다.사람들의 환호 속에 배현준은 대오를 이끌고 왕부를 나섰다. 시종이 말을 끌고 오자 그는 한 손으로 고삐를 쥐고 날렵하게 말 등에 올랐다.그렇게 그는 풍악을 울리는 행렬을 이끌고 늠름하게 국공부로 향했다.국공부.유지영은 일찌감치 일어나 단장에 들어갔다. 첨장연 때 왔던 부인과 규수들이 모여들어 시중을 들었다. 그들은 둘째네 일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잠시 후 절을 올릴 때, 노부인께서 또 소란을 피우시면 어쩌지?""쉿, 노부인께선 아직 바깥일을 모르신다니까!"홍주와 동금이 작게 소근거렸다. 오늘같이 사람 많은 날 누가 입을 잘못 놀려 분위기를 망칠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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