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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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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배현준은 보수가 진행 중인 화려한 정원을 힐끗 보았다.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가자."곧이어 그는 걸음을 돌렸다.성산이 조용히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두 사람은 곧장 서재로 향했다.배현준은 책상 위에 채 치우지 않은 보양탕을 보고 조소를 머금었다. "경왕 전하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경왕은 본래 배현준을 좋게 타이르려 했으나,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자 바로 부아가 치밀었다. "내일 무과 장원 선발전에는 자신 있느냐?"배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 몇 년간 기루를 들락거리며 먹고 마시고 노름이나 하던 놈이 무예를 익힐 틈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제가 장원을 따올 거란 기대는 애초에 접으시지요."말문이 막힌 경왕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럼 왜 굳이 무대에 올라 망신을 당하려는 게냐?""명을 받들었을 뿐입니다."경왕은 그의 태도에 미간을 좁혔다. "주시험관이 유국공인데....""유국공께서 심사를 맡는다 한들, 보는 눈이 그리 많은데 다른 사람들이 다 눈먼 장님인 줄 아십니까? 대체 경왕께선 제가 장원이 되길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면 되지 않길 바라시는 겁니까!"뼈 있는 물음에 경왕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당연히 바라는 바다. 허나 네 스스로 분수를 아는 듯하니 굳이 강요하진 않겠다. 내 이따가 입궁하여 널 빼달라 청할 터이니, 앞으로는 마음을 다잡고 무예에 정진하거라. 혹시 아느냐, 다음 대회에는 기회가 있을지."배현준은 단박에 경왕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으나 굳이 들추지 않고 그를 빤히 응시했다."무대에 올라 망신을 당해도 제가 당합니다. 지레 겁먹고 무대에 오를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꼴이야말로, 경왕부의 체면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짓이지요!""그게 무슨 소리냐! 난 다 널 위해서....""장원은 단 한 명뿐이고, 무대에 오르는 십수 명은 패배할 텐데 어찌 저만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겁니까?""네 이놈!" 경왕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말재주로는 배현준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배현준은 다시 자리에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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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배현준은 발을 거두었으나, 그의 눈빛에는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내 앞에서 그 가증스러운 어미 행세는 걷어치우십시오. 또다시 날 도발한다면,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저놈의 두 팔을 꺾어버릴 테니!""현준아!"경왕비의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그녀는 아들의 무릎 아래로 번진 핏자국을 보자 평소의 온화한 가면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었다."네가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인데...."배현준은 뒷짐을 진 채로 창밖으로 노기등등하게 걸어오는 경왕을 주시했다.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내 어머니께서 병석에 누워계실 때 수치심도 모르고 경왕의 침상에 기어올라 낳은 저 핏덩이가 감히 나와 경쟁을 하려 들다니!"어릴 적에는 돌봐주는 이도, 편들어주는 이도 없어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허나 지금은 달랐다. 더는 참지 않을 것이다."감히 내 어머니를 모욕해!"배영준이 다급히 소리쳤다.옆에 선 경왕비 역시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방에 들어서는 경왕을 보면서도, 배현준은 조금도 기세를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손을 치켜들어 배영준의 뺨을 후려갈겼다."나는 경왕부의 적장자다. 어디 근본도 없는 놈이 감히 내 앞에서 훈계를 하려 들어!""이런 후레자식을 보았나!"경왕이 분노하며 소리쳤다.그러나 배현준은 두려워하기는커녕 더욱 날을 세우고 도발했다."경왕께서 첩을 총애하여 조강지처를 내친 것이 하루 이틀 일입니까! 조강지처가 낳은 적장자를 홀대하고, 후처의 이간질에 넘어가 제가 장원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막으려 들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저 제 살길을 도모했을 뿐인데, 대체 무엇이 잘못이란 말입니까?"그는 흙빛이 된 경왕의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배영준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내 것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헛된 꿈은 당장 접는 게 좋을 거야. 다음번엔 마차에서 구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뒤돌아섰다.경왕이 팔을 뻗어 그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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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그 모습을 본 건양제가 말했다."오늘은 궁에 머물러라. 내일 대회가 끝난 후 다시 이야기하자꾸나.""만약 아버지께서 입궁하여 폐하께 고자질을 하면 어찌합니까?"배현준은 경왕이 이 수모를 절대 얌전히 넘기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건양제는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우선 물러가 있거라."아니나 다를까, 배현준이 자리를 뜨기가 무섭게 경왕이 들이닥쳤다.그러나 건양제는 그를 즉각 들라 하지 않고, 전각 밖에 세워둔 채 머리를 식히게 했다.그사이 어린 내관이 슬쩍 귀띔했다."세자께서 이미 다녀가셨습니다."경왕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그놈이 감히 여길 왔었단 말이냐!""전하, 폐하께서 지금 몹시 노하셨습니다. 허나 그 분노는 세자가 아니라 전하를 향해 있습니다. 전하께서 먼저 세자를 자극하지 않으셨다면, 세자께서도 둘째 공자께 손찌검을 하진 않으셨을 겁니다."그 말을 들은 경왕은 찬물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반 시진 후, 마침내 경왕이 어전으로 불려 들어갔다.굳게 닫힌 문은 한참 동안 열리지 않았다.한 시진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온 경왕의 낯빛은 들어갈 때보다 훨씬 더 참담했다.이와 동시에 건양제는 내일 장원 선발전에 친히 참관하여 심사를 보겠노라 어명을 내렸다.그 누구도 결과에 대해 함부로 입방아를 찧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교지가 내려지자, 주시험관이었던 유정남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한편, 경왕부.배영준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데다, 배현준에게 거칠게 내동댕이쳐진 탓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의원이 붕대를 풀어내자 환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뭉개겨져 있었다.살이 찢기는 고통에 배영준은 몇 번이나 혼절했다."뼈가 다시 어긋났습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상처가 덧나면 평생 불구가 될 것입니다."의원은 진땀을 빼며 조심스레 상처를 처치했다.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배영준은 그 자리에서 새파랗게 질렸다."안 되네! 의원, 내 다리는 무조건 살려야 하네!"의원은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조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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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경왕의 말에 경왕비는 멍하니 굳어버렸다.그녀는 제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저, 전하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분명 입궁하셨는데, 어, 어찌...."황제가 왜 배현준을 질책하지 않았는지, 왜 세자의 자리를 박탈하지 않았는지 당장 따져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끓어오르는 충동을 억지로 억눌렀다.배영준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아버지! 형님은 절 낙마시켰다고 제 입으로 똑똑히 시인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절 구타하여 무과 선발전에도 못 나가게 만들었는데, 저는 이 억울함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한단 말입니까!""영준아,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부모 눈에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거늘, 네 아버지께도 무슨 사정이 있으실 게다."경왕비는 배영준에게 눈치를 주었다.하지만 잔뜩 화가 난 배영준에게는 그 권고가 들리지 않았다.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어머니마저 형님 편을 드시는 겁니까? 의원 말로는 자칫 잘못하면 평생 불구가 될 뻔했다고 합니다!""영준아...."경왕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경왕이 손을 내저어 주변의 시종들을 모두 물렸다.그는 배영준을 보며 말했다."영준아, 아비가 널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앞으로는 현준이 일에 절대 관여하지 마라. 머지않아 경왕부 세자 자리는 네 차지가 될 것이다."잔뜩 화가 치밀었던 배영준은, 그 말을 듣고 찬물을 뒤집어쓴 듯, 분노가 사그라들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경왕비 역시 뛸 듯이 기뻐하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폐하께서 현준이를 세자의 자리에서 폐한다 하신 겁니까?"경왕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경왕비의 눈에는 그것이 암묵적인 긍정으로 보였으나, 경왕의 얼굴에 스친 복잡한 감정은 읽어내지 못했다.세자 자리가 비게 되는 건 맞지만, 결코 폐위 때문이 아니었다.경왕은 건양제가 배현준을 눈여겨보고 그를 태자로 세우려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만약 배현준이 태자가 된다면, 경왕부 세자의 자리는 자연히 배영준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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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단상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왕은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지난 수 년간 어딜 가나 아들 하나 기가 막히게 잘 키웠다는 칭찬을 들어온 터라, 이런 찬사는 이미 익숙했다.첫 주자부터 십발십중을 기록하니, 뒤에 남은 참가자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몇몇은 연달아 실패하여 과녁을 벗어나거나 엉뚱한 곳으로 쏴버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쉭!긴 화살 하나가 허공을 꿰뚫고 날아가더니, 또 한 번 과녁 한가운데에 꽂혔다.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뒤따라 날아온 화살들이 빗방울처럼 쏟아지며 모조리 과녁 중앙을 꿰뚫었다.화살들이 정중앙에 빽빽하게 꽂혔다.고시관들은 일제히 화살이 날아온 곳을 돌아보았다.놀랍게도 그곳에는 배현준이 여유롭게 활을 닦고 있었다."저 사람은 경세자 아니오?"배현준이 눈썹을 까딱였다.누군가 작게 투덜거렸다."기루에 가면 투호놀이(投壺: 술자리나 잔치에서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지 않소. 저런 것쯤이야 별거 아니지."그 말을 들은 배현준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빤히 노려보았다.그와 시선이 마주친 그 대신은 찔리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첫 번째 관문은 배현준과 배준형의 무승부였다.과녁을 응시하던 배준형은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보아하니 한 달이 넘도록 꽤나 공을 들인 모양이구나."배현준이 맞받아쳤다."쯧쯧, 고작 한 달 공들인 게 형님이 수년간 노력한 것과 맞먹다니, 형님도 별수 없군요."그 말에 배준형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었다.곧이어 두 번째 관문은 마장에서 시작되었다.말을 타고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경기로, 첫 번째 관문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았다.두 번째 관문은 참가자 전원이 동시에 마장에 진입하며, 서로 간의 무력 충돌도 허용되었다.징소리와 함께 출발 명령이 떨어졌다.참가자들은 일제히 마장 안으로 입장하여 각자 말을 골랐다.이 말들은 고삐도 얹지 않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들이었다. 즉, 그 자리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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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아들이 발길질에 채여 굴러떨어지는 것을 본 정왕은 평정심을 잃고 벌떡 일어났다."폐하,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정왕 전하, 규칙상 무력 충돌이 허용되어 있습니다. 경세자는 반칙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무장에서는 이길 수만 있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법이지요."옆에 있던 유정남이 입을 열었다.건양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역대 무과 선발전이 모두 그러하지 않았는가."정왕은 순간 말문이 막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그사이 배준형을 걷어차 버린 배현준은 여유롭게 말 등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저 다투기 귀찮았을 뿐이다. 배준형, 네놈이 나보다 나은 게 무엇이지?""이놈이!"배준형은 가슴을 부여잡고 이를 갈며 다시 말에 오르려 했다.그러나 배현준이 그에게 기회를 줄 리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얽혀서 싸웠다.누군가 다가와 배준형을 도우려 하면, 배현준은 거침없이 발을 뻗어 그들을 말에서 차버렸다.유정남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이 경기 하나만 보아도 배현준의 무공 실력이 결코 범상치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방탕한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슬쩍 시선을 올려 건양제를 훔쳐보니, 황제의 얼굴에도 희색이 만면했다.마장 경기 한 번으로 배현준은 자신의 실력을 만천하에 증명했다.홀로 십여 명을 상대하고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경성 승마 경기에서도 정세자가 앞서지 않았소. 정세자께서 며칠 전 부상을 입으신 탓에 오늘 살짝 밀리신 것뿐이오."누군가 재빨리 배준형을 감싸고돌았다."맞소. 장원이 허우대만 멀쩡한 빈껍데기여서야 쓰나.""그렇고말고."문무백관들의 마음속에는 배현준보다 배준형의 입지가 훨씬 컸다. 평소 배현준의 행실과 평판이 너무 개차반이었던 탓이었다.두 번째 관문이 끝나자 배현준은 아득히 앞서 나갔다.눈부신 햇살 아래 서 있는 의기양양한 소년의 자태는 사람들의 시선을 절로 끌어당겼다."어제 경세자께서 경왕부에서...."한 대신이 입을 떼기가 무섭게 건양제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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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배현준이 코웃음을 쳤다."정왕 숙부, 그건 아니지요. 전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숙부께선 또 어른이라는 핑계로 효도니 도덕이니 운운하며 저를 억누르려 하시는데, 결국 제가 배준형을 이길까 봐 두려우신 것 아닙니까."너무도 노골적인 돌직구에 정왕의 낯빛이 볼품없이 일그러졌다."그만들 하거라!"건양제는 배현준을 쏘아보고는, 정왕과 대신들을 향해 엄하게 말했다."공과 사는 명확히 구분해야지 않겠는가. 만약 현준이가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다면 증거를 가져오게. 짐이 절대 용서치 않을 터이니!"황제가 단단히 진노한 것을 본 무리는 더 이상 감히 입을 떼지 못했다.경기가 재개되었다.세 번째 관문은 무공 대련이었다.자유롭게 병기를 고른 뒤, 맞붙을 상대를 지목하여 대련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누적 다섯 번의 승리를 거두면 곧장 다음 관문으로 진출하는 방식이었다.이번에 배준형은 배현준을 고르지 않았다. 그는 다른 다섯 명에게 지목당해 단독 대련을 치렀고, 내리 다섯 번을 이겼다.무대에서 내려온 배준형은 정왕의 곁으로 다가갔다."아버지."정왕은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였다."저놈은 그저 무식한 야만인일 뿐이다. 요행으로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문장 한 구절 읊는 것도 버거운 무식한 놈이 어찌 널 이기겠느냐."배준형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방금 전 걷어차인 부위를 부여잡고 미간을 찌푸린 채, 배현준의 대련을 지켜보았다.배현준의 초식은 결코 근본 없는 잡기가 아니었다.배준형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배현준은 무공을 익혔으며, 결코 그보다 뒤처지지 않았다.이변 없이 배현준 역시 연속 다섯 승을 거두었다.최종 어전 시험에 진출한 자는 단 네 명뿐이었다.다섯 명의 고시관이 군중 앞에서 문제를 출제하고, 최종적으로 건양제가 문제를 골라 네 사람 중 장원을 선발하는 방식이었다.약 한 시진 후, 문제가 공개되었다.문제를 확인한 사람들은 일제히 미간을 좁혔다. 무과 시험치고는 문과 시험 못지않게 난해하고 까다로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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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정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양제가 배현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순간 정왕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아버지...." 배준형 역시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정왕은 애써 부정했다."아, 아닐 거다. 배현준 그놈은 그저 허송세월이나 보내던 밥벌레가 아니더냐!"비단 두 사람뿐 아니라 고시관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다.건양제는 친히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답안지의 가려진 이름을 확인하곤 호탕하게 손을 내저었다."자네들도 확인해 보게."대신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다.배준형은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 답안지를 빼앗아 들었다.눈에 들어온 것은 단정하고 힘 있는 필체였다. 문장은 물 흐르듯 유려했고, 막힘이 없었다.조금 더 찬찬히 읽어보니, 그 견해 또한 독창적이고 날카로워 절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순간 배준형마저도 이 문장이 자신의 것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이 문제는 그대들이 직접 고른 것이오. 답안 역시 보는 눈이 이리 많은 가운데 쓰였소. 그대들 중에 이의 있는 자가 있는가?" 건양제가 물었다.이 자리에 있는 어느 대신이 감히 편애 운운하며 입을 놀릴 수 있을까?십여 명의 학자들이 익명으로 뽑은 최고의 답안지였다. 게다가 대신들도 그 답안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중간에 바꿔치기했을 리도 만무했다.대신들은 일제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경왕의 아들 배현준!"건양제가 희색이 만면하여 어명을 내렸다.배현준이 앞으로 나아가 옷자락을 걷고 무릎을 꿇었다."오늘부로 네가 이번 무과 장원이다. 종이품 표기장군에 봉하고, 경교 병영의 통수권을 내리노라."건양제는 친히 병부를 배현준의 손에 쥐여주었다."신,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배현준이 두 손을 높이 들어 병부를 받들었다.그 광경을 지켜보는 배준형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개차반 같던 방탕아 자식이 어찌 하루아침에 출세한단 말인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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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경왕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났다.살다 보니 정왕을 깔아뭉갤 날이 올 줄이야. 기억이 닿는 순간부터 정왕은 매사에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승마며 활쏘기며 학문이며 못하는 게 없었다.심지어 자식 농사마저 그랬다. 배준형은 온 경성이 칭송하는 귀공자였고, 배현준은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탕아였다.사람들의 평가 역시 극과 극이라, 경왕은 정왕 앞에서 늘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다.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묵은 체증을 날려버린 셈이었다!경왕비는 얼굴에 웃음꽃이 핀 경왕을 보며 속에서 쓴물이 올라왔다. 그녀는 손수건을 꽉 쥔 채 애써 입을 열었다."현준이가 홀로 경성에서 이리 정진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저희가 그 아이에게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영준이도 형님이 장원이 된 걸 알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배영준의 이름이 나오자 경왕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조금 옅어졌다."영준이는 아직 앞날이 창창하니, 기회는 또 있을 거요."누군가는 낙담하고 누군가는 환호했다.가장 기뻐한 이는 단연 유정남이었다.저택으로 돌아온 뒤에도 벅찬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한 그는 유지영을 앞에 두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본래는 정세자가 꽤 괜찮은 녀석이라 여겨 애비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는데, 오늘 경세자가 그야말로 세상을 놀라게 했단다."문장력도, 무공도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완벽했다."대신들 얼굴이 하나같이 썩어 들어가더구나. 아마 경세자가 발톱을 숨기고 바보 행세를 하며 힘을 비축해 온 모양이다."아버지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을 들으며, 유지영은 찻잔을 채워 그에게 건넸다."경세자께서 오명을 쓰셨으나, 따지고 보면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적은 한 번도 없으시지요. 그 어린 나이에 적막한 왕부에서 홀로 살아남기까지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습니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은 풍파가 적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신 분입니다."그 말에 유정남의 웃음기가 살짝 가셨다."확실히 경왕부는 답이 없는 곳이지. 지영아,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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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하룻밤 사이에 경성의 이름난 탕아였던 경세자는 무과 장원에 장군이 되어 병권을 쥐고 조정에 서게 되었다. 단 한번의 승리로 건양제가 가장 총애하는 세자가 된 것이다.내무부 역시 경세자의 혼례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군주와 세자의 만남이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이었다!머지않아 유국공부에서도 유지영을 위한 첨장연(添妝宴: 혼례 전 신부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베푸는 잔치)이 열릴 예정이었다.유씨 노부인은 병을 핑계로 침상에 누워, 유지영이 제 발로 찾아와 연회를 주관해 달라고 청하기를 기다렸다.하지만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유지영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유씨 노부인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이제 다 컸다고 참으로 안하무인이로구나. 이 부 안에 나 말고 연회를 주관할 여성 어른이 없거늘, 언제까지 고집을 부리나 보자!"이씨 어멈이 거들었다."군주께서는 참으로 복이 터지셨습니다. 애초에 노부인께서 수구 행사를 지지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경세자 같은 분을 만나셨겠습니까. 군주께서 은혜를 아신다면 마땅히 노부인부터 찾아뵙고 감사를 올려야 할 테지요."유씨 노부인은 유지영이 경왕부 같은 높은 곳에 시집가게 되었으니, 혼례 준비를 하려면 결국 자신에게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다.오랫동안 억눌렸던 노부인의 화가 그 생각에 조금 누그러졌다.그때 밖에서 유정남이 찾아왔다는 전갈이 들려왔다.유씨 노부인의 주름진 얼굴에 마침내 화색이 돌았다. 노부인이 이씨 어멈에게 눈짓을 보내자, 이씨 어멈이 나가서 유정남을 안으로 모셨다.이씨 어멈이 걷는 내내 입을 열심히 놀렸다."국공 나으리, 노부인께서 며칠간 옥체가 몹시 미령하십니다. 허나 경세자께서 무과 장원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진심으로 군주를 위해 기뻐하셨습니다."유정남은 무덤덤하게 고개만 끄덕였다.방 안으로 들어서니 유씨 노부인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기력 없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어머니."유정남은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유씨 노부인을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인사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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