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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241 - Chapter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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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화

"너!"경왕비는 기가 차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말을 마친 배현준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경왕은 달려가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이 몹쓸 놈, 네가 정녕 미친 게로구나! 저 사람은 네 계모이자 집안 어른이거늘, 어찌 그리 무례하게 구느냐!""못 할것도 없지요."배현준은 코웃음을 쳤다."제게 자중하라 타이르기 전에, 경왕비에게 그 더러운 수작질 좀 그만 부리라 경고나 하시지요.""현준아, 난 참으로 억울하구나. 내가 경성으로 돌아온 후 네게 해를 끼친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경왕비는 억울하다는 듯 호소했다.배현준은 냉소를 터뜨렸다."내가 없는 틈을 타 이간질을 해대며 지영이에게 차를 올리라 핍박한 게 당신 짓이 아니라고?""이 몹쓸 놈! 며느리가 차를 올리는 건 당연한 예법이다. 게다가 이미 입궁해 고자질까지 했으면서, 뭘 더 어쩌자는 게야?"경왕은 골치가 아팠다. 어쩌다 이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걸까.배현준은 쯧쯧 혀를 찼다."미천한 신분에 지영이의 차를 받을 자격이나 됩니까?"경왕비의 안색이 시뻘겋게 변하며 배현준을 노려보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아야 했다."현준이 너 오늘 참으로 지나치구나."그때 방현숙이 불쑥 입을 열었다."새신부가 네게 고자질이라도 한 모양인데, 현준아, 어리석게 굴지 말거라...."퍽!배현준이 탁자 위의 찻잔을 집어 들고 방현숙의 얼굴을 향해 정통으로 집어 던졌다.찻잔은 묵직하게 그녀의 얼굴을 타격했다."악!"방현숙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정통으로 맞은 충격에 눈앞이 핑 돌았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니 끈적이는 피가 묻어 나왔다."네깟 게 뭐라고 감히 내게 훈계를 한단 말이냐?"배현준의 무자비한 행동에, 뒤에 있던 친척들은 모두 얼어붙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배현준은 다시 경왕을 보며 경고했다."지영이는 방비원에 머물며 동쪽 별채 사람들과는 얽힐 일 없이 지낼 겁니다. 만약 또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걸 내 귀로 듣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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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경왕 역시 한성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며칠 뒤 폐하께 넌지시 운을 띄워 보리다."경성에 있는 것 자체가 숨이 막혔다.곧 태의가 도착했다.배영준을 살핀 태의는 연신 한숨을 쉬었다."다리뼈를 겨우 맞춰 놓았거늘, 또다시 부러뜨리다니요. 아마 절름발이가 될 듯싶습니다."절름발이가 된다는 말에 경왕비는 눈앞이 캄캄해졌다."태의, 안 됩니다! 아직 혼인도 못한 아이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태의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 모습을 본 경왕비는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더니 이내 두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버렸다.한편, 방현숙을 비롯한 친척들은 거처로 돌아온 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숨죽여 욕설을 퍼부었다.방현숙을 살펴본 의원은 상처가 깊으니 연고를 잘 발라야 흉이 남지 않을 것이라 일렀다."의원, 내 얼굴에 흉터가 남아선 안 되네."방현숙은 다급히 약을 처방해 달라 재촉했다.치료를 마치고 붕대를 칭칭 감은 얼굴이 거울 속에 비치자, 돼지머리처럼 변한 꼴에 방현숙은 분통이 터졌다.곁에 있던 두 동서 역시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떨떠름한 표정만 지었다.그중 한 명이 속삭였다."영준이 다리가 또 부러졌다더군요. 태의가 절름발이가 될 거라 했답니다.""무법천지가 따로 없군요! 아무도 저놈을 말릴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어찌 말립니까? 태후께서 든든하게 뒤를 봐주시니, 현준이가 경왕 전하조차 안중에 없는 걸 못 보셨습니까.""양씨는 쫓겨난 것도 모자라 곤장 스무 대를 맞았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지요."다들 화가 나서 이가 갈렸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사람이 언제까지 기고만장할 순 없는 법입니다. 언젠간 반드시 고꾸라질 날이 오겠지요!"방현숙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한편 방비원.전용 부엌에서 십여 가지 요리를 만들어 한상 가득 차렸다.유지영이 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다볼 즈음, 홍주가 곁으로 다가와 앞뜰에서 일어난 일을 소곤소곤 전해주었다."세상에!"유지영마저 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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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그래, 경왕과 경왕비가 어떻게 날 몰아갈지도 궁금했거든.”결과는 배현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그 부분은 어떻게든 그를 범인으로 몰아세우고 싶어 안달이었다.“그런데 왜 경왕에게 누명을 씌운 건가요?”유지영은 현장에 경왕의 영패를 흘려둔 까닭이 궁금했다.배현준이 답했다."네가 시집온 첫날부터 감히 널 구박하고 차를 올리는 일로 행패를 부렸으니, 당연히 따끔하게 교훈을 주어야지!"고작 그런 이유였다니!유지영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다."게다가 그자는 지금 자기 누명 벗기도 바쁜 데다 정왕부 쪽에서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테니, 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경왕이 사리 분별 못 하는 위인임을 아는 배현준은, 그가 허튼짓을 할 틈도 없이 바쁘게 만들어주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여겼다.밤바람이 불어오자 그는 그녀의 손을 이끌고 돌아섰다.어젯밤 밤을 새운 데다 오늘 하루 종일 시끄러웠던 탓에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재빨리 목욕을 마치고 당장 그녀를 품에 안고 쉬고 싶을 뿐이었다.다음 날.유지영은 세 대의 커다란 마차에 가득 실린 답례품을 보고는 적잖이 놀랐다."세자께서 직접 고르신 물건들입니다."시종의 말에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으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그녀는 조회를 나간 배현준을 기다리며 앞뜰 정원에 앉아 있기로 했다.이따금 지나가는 시녀나 시종들이 그녀를 보고는 잔뜩 겁먹은 얼굴을 했다.고개를 들다 친척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자는 유지영과 시선이 마주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유지영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보아하니 어제 기강을 단단히 잡은 효과가 제법 쏠쏠했다."지영아."뒤에서 경왕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상대는 시종의 손에 들린 비단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친정에 간다 들었다. 사돈어른과 노부인께 드릴 선물을 좀 준비했는데, 많진 않지만 내 정성이니 함께 가져가렴."경왕비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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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유씨 노부인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지영아, 너는 온 경성에서 유일하게 태후 마마의 환송을 받으며 시집간 귀한 아이다. 혼수도 어마어마했고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지. 허나 예전에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한들, 언제까지고 과거에 얽매여 가족간에 꼬투리를 잡아서야 되겠느냐. 네 둘째 숙모는 비참하게 죽었고, 둘째 삼촌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으냐."유씨 노부인은 국공부에서 혼례를 치른 날부터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쳤다.분통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유정남의 불같은 성정을 떠올리며 꾹 삼켰다.결국 그녀는 유지영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이 할미가 나이가 들어 천륜의 즐거움 따윈 바라지도 않는다만, 그저 자식들이 무사 평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노부인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며 목메어 울었다.장장 반 시진 동안이나 끊임없이 앓는 소리를 하며 사정했지만, 유지영은 단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다.마침내 유씨 노부인이 단호한 어조로 본론을 꺼냈다."네가 아비를 좀 타일러 화를 풀고 네 둘째 삼촌을 구해내라고 청하거라."이번 생에서 유지영이 가장 혐오하는 자가 바로 유정혁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피맺힌 원한이 있거늘, 그에게 베풀 자비 따위는 없었다.유지영은 듣다 못해 짜증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히 쏘아붙였다."삼촌께서 숙모를 살해하였으니,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갚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제 삼촌이라는 이유만으로 편을 든다면, 억울하게 죽은 숙모에게 불공평한 일 아니겠습니까."목숨으로 갚으라는 말은 유씨 노부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았다. 노부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내가 이토록 사정을 했거늘, 정녕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단 말이냐?"유지영은 노부인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겉으로는 부처처럼 자비로운 척하면서 속으로는 늘 송씨와 결탁해 그녀와 큰댁 식구들을 함정에 빠뜨렸던 늙은이를 생각하면 구역질이 났다."할머니, 출가외인인 제가 친정 일에 관여할 수는 없으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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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요 며칠 그쪽은 어찌 지낸다더냐?"그녀가 물었다.동금이 다가와 답했다."셋째 부인께서 매파들을 불러 지란 아가씨의 혼처를 알아보고는 있으나, 지란 아가씨가 외간남자와 부둥켜안았던 일을 다들 알고 있어 몹시 꺼린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혼인하겠다는 자들도 있지만, 셋째 부인의 눈에 찰 리가 없지요."콧대 높은 정씨가 유지란을 변변찮은 가문에 대충 시집보낼 리가 없었다.셋째네의 반응은 과연 유지영의 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핑계를 대어 노부인의 심부름꾼을 돌려보내자, 노부인은 마당에서 펄펄 뛰며 욕설을 퍼붓다가 끝내 화병으로 기절하고 말았다."국공 나으리께서 이 소식을 듣고 대청으로 가셨다 합니다."어린 시녀가 와서 전했다.유지영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문득 얼굴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시선을 들어보니 수려한 얼굴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배현준은 어깨를 지그시 눌러 앉혔다.그는 허리를 굽혀 곁에 있는 작은 의자에 털썩 앉더니, 귤 하나를 집어 들고 껍질을 정성스레 벗겨냈다. 그러고는 귤 한 조각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왔다.유지영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제,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이게 뭐 대수라고. 아무도 감히 우리한테 뭐라 안 해."배현준이 당당하게 말했다.유지영은 입을 벌려 귤을 받아먹었다."장인어른께서 바쁫시니 같이 식사하긴 글렀구나. 아직 시간도 이른데 같이 천향루에 가보겠느냐?"그 억센 유씨 노부인이 이대로 물러설 리 만무했기에 유지영은 아버지가 걱정되었다."장인어른께서는 사리가 밝으시니 알아서 잘 처리하실 게다. 걱정하지 말거라."유씨 노부인 일에 유지영이 나선다 한들 도움 될 것은 없었다.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나섰다.마차가 천향루 앞에 멈추자, 점소이(店小二: 주루나 객잔의 심부름꾼)가 배현준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경왕 세자께서 납시셨군요! 평소 드시던 걸로 올리겠습니다. 위층으로 모시겠습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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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보는 눈이 많은 길거리에서 대놓고 무안을 주다니. 주변 백성들이 쑥덕거리며 쳐다보자, 유선주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유지영의 입을 찢어놓고 싶었다.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배준형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배준형의 시선이 유지영에게 닿았다.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화사한 차림새의 그녀는 그야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우아하고 고혹적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그는 불현듯 전생에 유지영이 자신에게 시집왔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유지영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배현준의 손을 보자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어찌 됐든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예법이든 도리든 찾아가 조문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하여 선주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게냐?"배준형은 한층 차가운 목소리로 배현준을 노려보며 덧붙였다."너희 부부가 너무 기고만장하게 굴며 사방에 적을 만들고 다니는데, 언젠가 그 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거라곤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지?"유지영은 입을 열려는 배현준의 소매를 잡아당겨 말리고는 턱을 치켜들며 쏘아붙였다."기고만장한 것으로 따지자면 일년 전의 정세자만 하겠습니까? 게다가 세자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제게 훈계를 하시는지요?""유지영,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구나!"배준형은 미간을 찌푸렸다. 타이르는 말을 이토록 무시하니, 분명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세자, 그만두세요. 언니는 이제 군주의 신분으로 태후 마마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저 때문에 굳이 태후 마마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습니다."유선주는 서러운 얼굴로 물러섰다.배준형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유선주를 다독이려 할 때였다."피식."어디선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들어보니 배현준이 조롱 가득한 얼굴로 서 있었다. 배준형은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배현준은 유지영과 혼약한 후로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황궁의 윗전들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데다 병권까지 손에 쥐었다. 요즘 경성에서 배현준을 떠받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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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유지영은 미간을 찌푸렸다."똑같이 유가네 핏줄이건만 어찌 이리 하늘과 땅 차이일까? 세자비께서는 이리 단아하고 예의 바르시거늘, 저 아가씨는 길바닥에서 징징 짜는 꼴이 천한 화류계 여인 같군.""그러니 정세자를 홀려 가로채지 않았겠소?"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졌다.그 말에 겁에 질린 유선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배준형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배현준을 노려보았다.배현준이 헛기침을 하자, 곁에서 비웃던 무리들은 즉시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얼굴을 했다.배현준이 말했다."오늘 내가 기분이 아주 좋으니 자네들에게 한턱내지.""감사합니다, 세자."배현준은 유지영을 이끌고 이층으로 향했다.행인인 척 능청스레 말을 보태던 명문가 자제들도 그 뒤를 따랐다.입구에 우두커니 남겨진 두 사람, 특히 배준형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오가는 행인들이 그들을 보며 계속 손가락질을 해댔다.배준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돌아가자."두 사람은 마차에 올라타 쫓기듯 천향루 앞을 벗어났다.마차 안, 유선주는 배준형의 맞은편에 앉아 억울함을 토로했다."세자, 다 제 잘못입니다. 언니를 모른 척했어야 했는데, 저 때문에 세자까지 수모를 당하시고..."배준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머릿속에는 유지영의 허리를 감싸 안던 배현준의 손길이 아른거렸다.그는 짜증스레 내뱉었다."네 잘못이 아니다."마차가 송씨의 빈소 앞에 멈춰 섰다.마당은 여전히 썰렁했다. 유선주는 붉어진 눈으로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애처로운 자태를 보였다.평소 같았다면 배준형은 그 모습에 깊은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그러나 아까 화류계 여인 같다며 비웃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생각해 보니 명문가 규수답지 않게 경박하게 구는 것이 영락없는 서녀의 행태였다.그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사내에게 기대기만 할 뿐, 정작 그에게 도움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는 문득 유지영이 떠올랐다.살림도 잘하고 신분도 고귀한 데다 엄청난 혼수까지 가져왔던 그녀였다.전생에 그녀와 혼인했던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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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한편 천향루.배현준이 한턱낸다며 부른 네 명의 벗들은 아까의 거만한 기색을 싹 거두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감히 유지영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이쪽은 당씨 가문 차남, 당윤.""기씨 집안 삼남, 기장훈.""류씨 집안 차남, 류운.""온 가문의 여섯째, 온자인."배현준은 한 명씩 소개했다.네 사람은 일제히 일어나 유지영에게 정중히 인사했다."형수님을 뵙습니다."갑작스런 형수님 소리에 당황한 유지영이 일어서려 하자, 배현준은 그녀를 말리며 그들에게 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네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유지영도 이들의 악명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경성에서 제일가는 탕아들로 주색에 빠져 허송세월한다고 소문난 자들이었다.특히 당윤은 배현준 못지않은 악명을 가진 당씨 가문의 적자였다. 당 대인이 서장자를 편애했는데, 그 서장자가 바로 배준형의 수하였다.전생에 유지영도 그 서장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음습한 눈빛으로 자신을 훑어보던 모습에 몹시 불쾌했던 기억이 났다.나머지 세 명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깊이 알지는 못했다."이 녀석들은 내 둘도 없는 지기들이다. 바깥의 소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니,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주마."배현준이 덧붙였다.그 말에 네 사람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자신들의 속사정까지 부인에게 다 밝히겠다는 건, 배현준이 유지영을 철저히 제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뜻이었다."이쪽은 내가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부인, 유지영이오. 친정에선 돌봐줄 어머니도 안 계셨고 장인어른은 늘 변방에 나가 계셨지. 그러니 그동안 지영이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있었다면 다 헛소리니 그리 알게나."그 한마디에 네 사람은 상황을 완벽히 파악했다.술자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네 사람이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자, 유지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파했다.바깥은 어느새 어둑해져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왕부로 향했다.돌아오는 길에 배현준은 네 사람의 사연을 들려주었다.다들 하나같이 발톱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었다.겉보기엔 방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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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그는 유지영이 그 소문들을 곧이곧대로 믿을까 봐 초조했다.유지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염려 마세요. 저는 그런 헛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오늘 배현준이 자신의 사람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은 그녀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했다.그 믿음에 그녀는 몹시 감동했다.부부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불현듯 궁에서 배현준을 호출하는 전갈이 왔다.어둑해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배현준의 미간이 좁혀졌다."어서 다녀오십시오. 전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재촉에 못 이겨 배현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날 하루는 유지영에게 무척이나 충만한 하루였다.배현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니, 그와 혼인한 것이 천만다행이라 여겨졌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목욕까지 끝낸 뒤, 그녀는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홍주가 방으로 들어와 소곤거렸다."세자비 마마, 경왕께서도 궁으로 불려 가셨다 합니다."유지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이 깊은 밤에 대체 무슨 변고가 생긴 걸까?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전생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이 시기에 터졌던 큰 사건은 떠오르지 않았다."혹시 송 부인 빈소에서 벌어진 자객 소동 때문 아닐까요? 그 일에 경왕이 얽혀 있기도 하고, 듣자 하니 숙태비 마마께서도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다 합니다."동금이 추측했다.유지영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가서 정왕도 입궁했는지 알아보거라."반 시진 뒤, 정왕이 가장 먼저 입궁하여 지금도 궁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정왕이 숙태비 일로 경왕을 헐뜯으려다 세자까지 끌어들인 모양입니다."그러나 유지영의 생각은 달랐다.단순히 헐뜯는 일이라면 배현준까지 불려 갈 이유가 없었다.그날 밤 그녀는 엎치락뒤치락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난 그녀는 밖을 내다보며 초조하게 물었다."아직도 소식이 없느냐?"홍주는 고개를 저었다.아침 식사 중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기어이 큰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뜰을 걷다 우연히 경왕비를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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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태후의 미움을 사 쫓겨난 단진이 지금 폐하의 유일한 핏줄을 낳아 돌아온 것이다.배후의 의미를 생각하니 유지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폐하와 태후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였다."지영아, 이건 우리 양나라에 드디어 후사가 생긴 셈이니 만인이 기뻐할 경사가 아니냐."경왕비는 유지영의 굳은 안색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모르는 이가 보면 경왕비에게 큰 경사라도 난 줄 알 것이다.유지영은 애써 옅은 미소를 지었다."참으로 잘된 일이군요."그녀는 호위를 보며 물었다."세자께서는 언제쯤 돌아오신다 하더냐?""아직 듣지 못했습니다."당분간은 돌아오지 못할 듯싶었다.유지영은 더 이상 대청에 머물며 경왕비의 호들갑을 들어줄 기분이 아니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유지영이 사라지자 경왕비는 만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곁에 있던 소월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마마, 만약 세자께서 태자가 되지 못하시면 경왕부의 세자 자리도 비지 않을 터인데, 어찌하여 이리 기뻐하십니까?"경왕비는 고개를 저었다."열세 살이나 먹은 유일한 황자야. 그 황자가 태자가 된다면 현준이 놈을 가만 두겠느냐. 현준이 놈이 태자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재앙이지."차라리 배영준이 세자가 되지 못하는 편이 나았다.경왕에게 황제가 배현준을 양자로 입적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경왕비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그런데 이리 절묘하게 황자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그 배후의 인물이 얼마나 독하게 숨죽이며 때를 기다렸을지 짐작이 갔다.대황자가 배현준을 짓밟고 나면, 세자 자리는 자연스레 배영준의 몫이 될 것이다.무엇보다 배현준 그 오만한 녀석이 황자 앞에서 어떻게 꼬리를 말고 설설 기어다닐지 구경할 생각에 벌써부터 통쾌했다.그날 오전 내내, 대황자가 돌아왔다는 소문은 경성 바닥에 쫙 깔렸다.태의가 직접 혈통을 확인했으니 뭇사람의 보는 앞에서 거짓을 고할 리가 없었다.건양제는 대황자에게 배이수라는 이름을 내렸다.단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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