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가장 잔인한 축복 / Chapter 121 - Chapter 130

All Chapters of 가장 잔인한 축복: Chapter 121 - Chapter 130

146 Chapters

121화 예고된 파멸

직선으로 꽂혀오는 진우의 시선에 지수의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지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전…… 진우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그리고 저 역시 진우 씨에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상황이……."지수의 말 뒤로 이어질 거절 혹은 유예의 말을 진우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수의 말을 부드럽게 가로채며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지금은 그거면 충분합니다. 나중에 우리가 서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을 생각하죠. 서두르지 않을 테니까."지수는 자신을 옥죄지 않는 진우의 깊은 배려가 고마웠고, 또 좋았다. 진우는 신뢰가 듬뿍 담긴 지수의 눈을 바라보며 품에서 묵직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이건 현수와 현지 것 준비하면서, 예인이 것도 함께 준비한 겁니다."지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 내용물을 확인했다. 서류를 훑어내려 가던 지수의 눈빛이 커다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지수가 예전 도진의 회사, 즉 RV에 남겨두었던 300억 자산을 오롯이 예인이의 미래를 위해 신탁해 두었다는 법적 서류였다.진우는 그런 지수의 요동치는 마음을 전부 다 안다는 듯, 테이블 위로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내 것이 아닙니다. 원래 지수 씨 것이었던 것을, 예인이에게 정당하게 돌려준 것뿐이에요."손끝에서부터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다. 지수는 전남편인 도진에게선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미래의 안정과 보호를, 지금 눈앞의 진우에게서 받고 있었다. 지수가 감동을 억누며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그럼 제 자금이 모두 빠졌으니…… 이제 RV는 온전히 진우 씨에게 드려야겠네요.""하하, 그런 귀한 선물이라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진우 또한 유쾌하게
Read more

122화 비상을 위한 날갯짓

지수는 드디어 '제이아우라'를 세상에 알릴 시기가 도래했다고 직감했다. 브랜드의 사활이 걸린 첫 전면전을 앞두고, 그녀는 김민철 실장을 비롯한 홍보실 직원들과 긴장감 넘치는 회의를 이어가는 중이었다.잠시 주어진 쉬는 시간. 회의실 구석에서 다급히 태블릿을 확인하던 김민철의 얼굴에 묘한 표정 변화가 생겼다."대표님, 이거 지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민철의 진중한 목소리에 피로 가득한 눈을 잠시 감고 있던 지수가 눈을 떴다. 민철이 내민 태블릿 화면에는 큼지막한 헤드라인이 장식되어 있었다.[탑모델 이혜진·이진경, 패션위크 참석을 위해 동반 출국! 공항을 뒤흔든 아우라]화면 속에는 지수가 친동생처럼 아끼는 두 사람의 눈부신 공항패션 사진이 떠 있었다. 늘 보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기에 지수는 별다를 것 없다는 눈빛으로 민철을 바라봤다. 그러자 민철이 빙그레 웃으며 실시간으로 폭발하고 있는 댓글창을 지수에게 보여주었다.와, 혜진 언니 머리에 꽂은 비녀 뭐야? 미쳤다, 너무 힙해!비녀를 저런 모던한 착장에 코디한다고? 진짜 천재다.난 진경이가 한 귀걸이…… 완전 내 취향 저격이야. 영롱함이 미쳤음.근데 저거 브랜드 어디임? 아무리 구글링해도 안 나오는데? 정보 좀요!!그제야 지수의 머릿속에 아차 하는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불과 며칠 전, 패션위크에 가기 싫다며 제 사무실에서 징징거리던 철부지 동생들이 떠올랐다. 지수는 그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완벽한 후처리 공정을 거쳐 크랙 위험을 없앤 특제 안젤라이트 비녀와 귀걸이를 선물했었다.이 깜찍한 동생들이 공항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게릴라 홍보 작전을 펼친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제 언니를 도와주고 싶어 머리를 맞댔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웠다.지수는 시선을 돌려 책상 한 편에 소
Read more

123화 시끄러운 일상

도진은 목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에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CS팀에 즉시 지시해. 안젤라이트 원석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일부 고객의 보관 및 관리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공식 입장 내."태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간했다."대표님. 그래도 일단은 디자인팀이랑 제조사인 루체른 측에 확인을 먼저 해보시는 게…….""이미 디자인 초반부터 후처리 공정에 대해선 신경을 썼어!"도진이 예민하게 말을 자르며 태준을 쏘아보았다. 다시 숨이 막혀왔다."시험 가공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도 디자인팀과 루체른이 조치를 취했다고 보고받았어. 그러니까 더 이상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단 말이야."하지만 도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새로운 태양' 출시 이후 제품 생산 속도를 까다로운 후처리 공정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자, 루체른 측이 도진 몰래 후처리 간소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을.그 단순화 과정 탓에 가공 초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고객이 제품을 착용하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안젤라이트가 열에 민감하게 반응해 스스로 균열을 일으키는 시한폭탄 같은 보석으로 변해버린 것이다.태준은 힘없이 책상을 짚고 있는 도진을 바라보았다.한수진과 깊게 얽힐수록, 과거 그 누구보다 영민하고 냉철했던 대표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제 실책을 가리기 위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아주 작은 지적에도 발끈하며 예민하게 구는 도진의 모습에 태준의 마음속에서 깊은 회의감이 밀려들었다.'내가 평생을 바쳐 보좌하고 싶었던…… 그 반짝거리던 강도진 대표님은 어디로 간 걸까.'태준은 밀려드는 실망감을 차마 들키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CB 그룹의 거대한 성벽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한
Read more

124화 희망을 각인하다 (Hope)

지수의 팝업스토어 준비 과정은 그동안 그녀가 흘린 땀방울을 증명하듯 눈부시게 빛났다. 계약한 세공사들의 장인 정신은 말할 것도 없었고, 대표인 지수가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을 지휘하자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치열한 회의가 이어지던 어느 날, 지수는 끝없는 마라톤 회의 중간중간 노트에 여러 모양의 날개 형상들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 그 그림을 유심히 보던 디자인실의 한 직원이 지나가듯 감탄을 뱉었다."대표님, 이 날개 도안 저 주시면 안 돼요? 안 그래도 발목에 타투하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 도안으로 하면 딱 제 취향 저격일 것 같아서요."지수가 가만히 그 직원을 바라보았다."요즘 2030 세대들은 타투를 많이 하나요?""음, 대중적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가치관이나 개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가장 힙한 수단으로 이용되긴 하죠."순간 지수의 머릿속에 번쩍하는 번개가 내리쳤다. 지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민철 실장을 돌아봤다."김 실장님, 이 분에게 즉시 특별 상여금 지급해 주세요.""네? 저, 저요?"직원과 민철이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지수는 이어진 회의에서 상여금의 명확한 원인을 밝히며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지금 우리의 팝업스토어는 자유와 비상(Fly)을 표방하고 있지만, 우리만의 핵심적인 개성이 부족했어요. 그리고 방금, 이 분이 그 개성을 찾아주었습니다."지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회의실에 풀어놓았다.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마지막 난제가 가로막았다. 바로 가장 중요한 강남 팝업스토어의 '장소'였다. 이미 황금 부지들은 몇 달 전부터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그 장소 문제는…… 제가 직접 해결하겠습니다."지수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회의를 끝맺었다.사무실로 돌아온
Read more

125화 불륜 커플에게는 팔지 않습니다

다음날, 지수의 팝업스토어 건너편 도로에 은색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강도진과 한수진이었다."……저게 다 뭐야? 보석 가게에 타투라니, 격 떨어지게."수진의 목소리에는 질투와 비난이 섞여 있었다. 최근 '새로운 태양'의 품질 논란으로 잔뜩 예민해진 상태였다. 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우리 '새로운 태양'의 고급스러움을 저런 서민들이 어떻게 알겠어."수진의 자신감 서린 말에도 도진은 핸들을 꽉 쥐었다. 그가 버린 아내, 자신의 그림자라 생각했던 이지수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고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감성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도진 씨, 우리 그냥 보고만 있을 거예요? 저 천박한 꼴을 강남 한복판에서 계속 보라고요?"수진이 옆에서 날카롭게 긁어대자 도진의 이성도 툭 끊어졌다. 지수가 대체 무얼 믿고 이렇게 설쳐대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내려."도진이 차갑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수진은 쾌재를 부르며 도진의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팝업스토어 입구로 걸어갔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칼같이 정장을 차려입은 진행요원들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죄송합니다, 고객님. 현재 매장 내부 인원 초과로 인해 사전 예약자분들 먼저 입장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예약이요? 우리가 누군지 알고……."수진이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자, 진행요원은 정중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안내를 이어갔다."현장 대기 등록을 하실 경우, 현재 대기 팀이 많아 최소 2시간 이상 소요되십니다. 그나마도 빨라야 2시간입니다.""2시간?! 지금 장난해? 이봐요, 여기 CB 그룹 강도진 대표님이에요! 우리가 여길 들어가는 데 대기를 해야 해?"수진이 도진의 지위를 아득바
Read more

126화 베이비샤워 1

한동안 잊히는 듯했던 강도진과 한수진의 추악한 과거가 네티즌들에 의해 그야말로 파묘(破墓)되기 시작했다.라이브 방송 박제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수진의 최근 사진들을 분석해 배 모양으로 임신 주수를 추정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급기야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아이가 있으며 대략 6~7개월 차에 접어들었다는 구체적인 타임라인까지 유포되었다."대표님, 홍보팀뿐만 아니라 사외 이사들까지 나서서 빠른 리스크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시 진정세를 보이던 CB 그룹의 주가가 연일 하한가를 기록 중입니다."최태준 비서실장의 다급한 보고에도 도진은 마른세수를 할 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재미있는 것은, 일련의 사태 속에서 가장 거대하고 은밀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진우였다.지수의 목적이 도진에게 내주었던 제 몫을 온전히 회수하는 것에 있었다면, 진우의 목적은 한수진이 바라본 강도진이라는 헛된 꿈을 지독하게 허무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그 헛된 꿈의 뿌리는 결국 CB 그룹이었다.진우에게 있어 CB를 무너뜨리는 것은 최우선 과제였다. 게다가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수에게 완벽한 울타리를 선물하기 위해서라도, CB의 핵심 기반은 진우가 반드시 빼앗아 와야만 하는 전리품이었다.그러니 도진이 알아서 대형 사고를 치고 주가를 바닥으로 떨어뜨려 주니, 진우로서는 이보다 더한 호재가 없었다. 진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장내에 쏟아지는 CB의 매물을 무서운 속도로 장악해 나갔다.결국 사면초가에 몰린 도진은 홍보팀과의 마라톤 회의 끝에, 추락한 이미지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수진과의 관계를 정면파 돌파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불륜이라는 꼬리표를 '뒤늦게 찾은 진정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포장하려는 마지막 발악이었다.[CB 그룹 강도진 대표, 디자이너 한수진과 2주 뒤 약혼 겸 베이비샤워 개
Read more

127화 베이비샤워 2

파티 당일, 한수진은 자신의 배가 은근히 드러나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도진의 손을 잡은 채 손님들을 맞이했다. 목에 걸린 '새로운 태양'의 안젤라이트가 화려하게 빛났지만, 최근의 크랙 논란을 의식한 듯 수진의 미소는 어딘가 과장되어 있었다. 그 곁의 도진 역시 차분한 베이지색 정장 차림으로 A국의 최상급 인사들과 CB의 주요 거래처 가문들을 대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홀에 모인 손님들이 샴페인을 곁들이며 사교를 즐길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파티는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하지만 식사 시간이 되어 손님들이 각자의 명찰이 놓인 좌석으로 이동한 순간, 장내에 미묘하고 차가운 위화감이 감돌기 시작했다."A국 서열 1위인 김씨 가문 자리가 저기 구석이라고? 한씨 그룹은 왜 또 저 밑이야?""지난번 론칭쇼에서도 상류층 서열을 무시하고 순서 파기를 꿈꾸더니, 오늘도 이 모양이군.""CB에서 감히 재계 서열을 자신들 입맛대로 다시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만."근본 없는 자리 배치에 VIP들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사라는 기가 찬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사라는 조용히 파티장 내부의 엉망인 좌석 배치와 준비된 코스 요리들을 사진으로 찍어 지수에게 전송했다.[한수진이 또 밑천을 드러내며 실수를 하고 있네요. 오늘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같은 시각, 집에서 예인이와 평화롭게 놀아주던 지수는 사라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사진을 확대해 보던 지수의 눈동자가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사진 속 메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는 지수가 명확히 기억하는 유통 대기업의 서 대표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수진이 최고급 요리랍시고 주문한, 게 껍질을 통째로 갈아 만든 '비스크 소스를 곁들인 핑거푸드'가 놓여 있었다.서 대표는 심각한 갑각류 알레르기 환자였다.지수는 지체 없이 김민철 실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Read more

128화 내 아이가 맞을까?

진행자가 매끄럽게 마이크를 이어받으며 장내의 분위기를 전환했다."두 사람과 새롭게 찾아온 고귀한 생명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강도진 대표님께서 예비 신부 한수진 디자이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합니다."도진이 가볍게 손짓하자, 최태준 비서실장이 고급스러운 자주색 벨벳 보석 상자를 들고 단상 위로 올라왔다. 상자가 열리자, 그 안에서 영롱한 광채를 뿜어내는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도진이 수진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우리 CB의 메인 라인인 '영원한 사랑' 시리즈 뒷면에는 고유의 시리얼 넘버가 각인된다는 거 알고 있지? 이건 그 어떤 VIP에게도 주지 않은 최초의 01번이야. 그리고 이제 내 삶의 1번도 바로 너야.""도진 씨……."도진의 감동적인 고백에 수진의 눈에 결국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도진의 고백에 담긴 진심의 무게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전처인 이지수조차 가지지 못했던 '영원한 사랑'의 01번 펜던트가 마침내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지수의 오닉스만큼은 아닐지라도, 수진은 제 인생 처음으로 '강도진'이라는 거대한 배경과 권력을 온전히 손에 넣었다는 확신이 들었다."나도 당신을 위해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요."수진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도진을 향해 화사하게 웃었다.이윽고 단상 뒤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두 사람의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모습부터 비밀리에 만남을 이어오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하지만 도진은 스크린을 바라보면서도 기묘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자신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한수진'이라는 인형이 마침내 곁에 섰건만, 과거에 느꼈던 짜릿한 소유욕도, 승리감도 없었다. 그저 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연극이 일분일초라도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Read more

129화 거품의 대가

약혼식 겸 베이비샤워가 열렸던 연회장은 그야말로 ‘초토화’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A국 유통 대기업의 서 대표가 구급차에 실려 나간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대형 스크린에 박제되었던 강도진의 무정자증 진단서는 그야말로 핵폭탄급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A국의 자극적인 타블로이드 찌라시는 물론이고, 상류층의 폐쇄적인 비밀 커뮤니티는 온통 CB 그룹의 해괴한 스캔들로 마비되었다.[CB 강도진 대표, 난임 진단 숨기고 불륜녀와 베이비샤워? 뱃속 아이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온 인터넷을 도배한 그 시각, 가장 먼저 뒤집어진 곳은 다름 아닌 도진의 본가였다."이게 무슨 소리냐! 이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야?!"도진의 어머니인 김미자 여사는 거실 소파에 주저앉아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과거 지수를 향해 '애도 못 낳는 씨 없는 박', '가문을 끊어먹을 불임녀'라며 온갖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천대를 퍼부었던 김미자였다. 그런데 정작 씨가 없는 쪽이 제 금쪽같은 아들이었다니.옆에 있던 부친 강수한 역시 굳은 얼굴로 연신 담배만 태우며 벼락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문의 명예를 목숨보다 아끼는 강수한에게 이번 A국 사교계의 스캔들은 평생 쌓아 올린 명성에 먹칠을 한 수준이었다."강도진이 무정자증에 준하는 상태인데…… 한수진 그 불륜녀 배 속에 든 게 우리 피붙이가 아니라고?! 내가, 내가 남의 집 자식새끼한테 가문의 돈을 쏟아부었단 말이냐!!"김미자는 핏대를 세우며 거품을 물고 쓰러질 듯 악을 썼다. 당장 한수진의 머리채를 뽑아버리겠다며 날뛰는 김미자를 비서들과 강수한이 차갑게 뜯어말렸다. 당장 배를 갈라서라도 친자 확인을 하라며 실성한 듯 부르짖는 어머니를 향해, 초췌해진 얼굴의 도진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어머니, 진정하세요. 아직
Read more

130화 내 아이들의 눈물

다음 날 저녁.A국 전역에 풀린 CB 그룹의 주가 동향을 날카롭게 살피던 박진우는 현수와 현지의 보모로부터 다급하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보모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대,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아이들이…… 현수와 현지가 사라졌습니다!""……뭐라고요?"순간 진우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져 내리는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아이들 엄마는요? 한수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사, 사모님께서는 현재 연락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전날 무슨 일인지 집안 물건을 집어던지며 크게 소리를 지르시고는 밤늦게 집을 나가셨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진우는 이가 갈렸다. 제 욕망에 눈이 멀어 아이들을 방치한 수진에 대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진우는 떨리는 손을 움켜잡으며 아이들이 다니는 로얄 유치원에 즉각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전날 약혼식장에서 터진 강도진의 무정자증 진단서와 수진의 불륜 스캔들이 이미 학부모 커뮤니티를 통해 아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상태였다. 현수와 현지는 유치원에서 '불륜녀의 자식', '엄마가 가짜 임신을 했다'라며 아이들에게 잔인한 놀림을 당했다. 게다가 콧대 높은 학부모들은 유치원 측에 '추악한 불륜녀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을 한 공간에 둘 수 없으니 당장 내보내라'며 입학 취소 민원을 폭주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그 어린것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잔인하고 무거운 폭력이었다.진우는 당장 RV의 보안 팀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지금 당장 로얄 유치원 주변 인근 CCTV와 포스트 빌리지 동선을 확인해. 수단 방법 가리지 말
Read more
PREV
1
...
101112131415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