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물처럼,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서운조의 정성 어린 손길이 날마다 이어지자 강채안의 몸에 새겨졌던 크고 작은 상처들도 조금씩 빛을 잃어갔고, 안색에도 서서히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게다가 말수도 늘었다. 약재를 늘어놓은 선반 주변을 어지럽히는 참새들을 향해 소리를 치기도 했고, 서운조가 약을 달이다 실패하여 얼굴에 그을음을 잔뜩 묻힌 채 멋쩍게 서 있을 때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서운조 역시 약초를 구하러 산 아래로 내려갔다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작은 것들을 챙겨왔다. 어떤 날은 계피향이 은은한 계피사탕 한 봉지였고, 어떤 날은 저잣거리에서 갓 들여온 이야기책 몇 권이었으며, 또 어떤 날은 투박하지만 들꽃 같은 정취가 배어있는 나무 비녀이기도 했다. 나른한 오후면 강채안은 마당에 놓인 대나무 의자에 몸을 파묻고 책장을 넘겼다. 선비와 규수의 사랑 이야기, 협객들의 무용담. 따스한 햇살을 등에 받으며 그 안으로 깊이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만큼 해가 기울어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저녁, 서운조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탈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눈매가 영민해 보이는 백여우 탈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늘하면서도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청란(青鸞) 탈이었다.“오늘 밤 산 아래 마을에서 연등회가 열린다오.”서운조는 백여우 탈을 그녀의 눈앞에 내밀며 다정하게 웃었다.“강물 위로 등불이 흘러가 장관을 이룬다 하니, 제법 떠들썩할 것이오. 함께 가시겠소?”강채안은 순간 굳어버렸다.연등회. 그 단어가 귓속에서 잠깐 맴돌았다. 마치 오래전에 잊어버린 언어처럼,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피비린내 나는 어둠과 얼음처럼 차가운 명령들뿐이었다. 사람이 넘쳐흐르는 축제란 지난날의 그녀에게 언제나 위험의 다른 이름이었다. 방심하면 죽는 곳,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곳. 몸 안 깊숙이 새겨진 경계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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