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애첩이 내 장례식을 샀다: Chapter 21 - Chapter 30

79 Chapters

제21화. 동생이 사라진 밤

등불이 바닥으로 내려왔다.빛이 선반 아래를 훑으며 손끝 가까이 번졌다.하인이 조금만 더 숙이면 얼굴까지 드러날 거리였다.나는 옆 상자 뚜껑을 손끝으로 밀었다.끼익.낡은 경첩이 사람의 신음처럼 울렸다.하인이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공작님, 상자가 저절로…….”“무서우면 나가.”에드릭의 구두가 내 앞에 멈췄다.“죽은 여자들의 물건 앞에서 겁먹을 거면 이 집에서는 일할 수 없어.”그가 직접 무릎을 굽혔다.등불이 다시 낮아졌다. 품 안의 편지가 심장 박동에 맞춰 바스락거렸다.이번에는 피할 곳이 없었다.그때 보관실 입구에서 마고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공작님. 공작부인 방에서 나온 물건 중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에드릭의 움직임이 멎었다.마고가 봉투를 내밀었다. 검은 밀랍에는 에드릭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화장대 밑판 안쪽에서 발견했습니다.”내 화장대에는 숨은 칸도, 저 봉투도 없었다.에드릭이 봉인을 뜯으려는 순간 마고가 덧붙였다.“그리고 모렌 양이 빈 관 이야기를 하인들 앞에서 꺼냈습니다.”그의 손이 멈췄다.“누구에게 들었지?”“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지금 막지 않으면 장례청 사람들 귀에도 들어갈 겁니다.”오델이 세실리아의 상자를 가리켰다.“열린 항목은 집무실로 옮길까요?”리비아가 숨은 곳이었다.마고가 고개를 숙였다.“지금 움직이면 모렌 양이 더 의심할 겁니다. 제가 확인하고 잠그겠습니다.”에드릭의 표정이 뒤틀렸다.“아무것도 옮기지 마. 이 방은 네가 잠가.”그는 봉투를 쥔 채 오델과 하인들을 데리고 나갔다.마고가 문을 잠갔다. 발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등불을 켰다.“나오십시오.”나는 선반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리비아는 세실리아의 상자를 짚고 일어섰고,카엘은 초상화 뒤에서 나왔다.“별관에서 소동을 부리는 저는 누구죠?”“베티에게 모렌 양이 빈 관 이야기를 했다고 소리치게 했습니다.향수병은 사람을 모으려고 그 아이가 깨뜨렸고요.”“아까 그 봉투는요?”“폐기 목록에 있던 공작님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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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셋 셀 동안 말해

장작 창고 안의 공기가 굳었다.베티는 내 옷깃 사이로 드러난 청색 병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어디서 났어?”“식당 뒤 준비실에서 발견됐어요.”“누가 가지고 있었는데?”“마고 부인이 보관했어요. 공작의 시종이 버리라고 했던 병이래요.”베티가 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병마개는 열면 안 돼요. 안에 남은 걸 조사해야 해요.”“조사?”그녀의 시선이 카엘에게 옮겨갔다.“감찰관님까지 데리고 지하에서 그 병을 꺼내 왔으면서,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진 않겠죠?”“독이라고 확인된 건 아닙니다.”카엘이 말했다.“하지만 공작부인의 마지막 식사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니나는 그날 준비실 당번이었어요.”그녀는 장작 하나를 발끝으로 밀었다.“저녁에 잠깐 들렀을 때 수프에서 이상한 단내가 난다고 했어요.향신료 냄새도 아닌데 계속 코에 붙는다고.”혀끝에 퍼졌던 낯선 단맛이 되살아났다.식지 않게 먹으라며 나를 지켜보던 에드릭의 눈.삼킨 뒤에도 목구멍에 남아 있던 끈적한 향.나는 손톱을 손바닥에 박았다.그날에는 정체도 모른 채 삼킨 단맛이었다.이제는 에드릭에게 돌려줄 증거였다.“주방장에게 말하지 않았나요?”“말했대요. 귀족 음식은 원래 그런 거니까 입 다물라고 했고요.”“니나도 병을 봤습니까?”“봤어요. 내가 선반 뒤에서 꺼내다 떨어뜨렸고,니나가 주워서 다시 숨겼으니까.”베티가 반달 모양으로 깨진 병목을 가리켰다.“그때는 진정제인 줄 알았어요.”“그 뒤에는요?”“다음 날 새벽, 공작부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났어요.”“그리고 니나는 없어졌고.”신발도, 갈아입을 옷도, 모아둔 품삯도 그대로였다.외출할 때마다 두르던 낡은 목도리마저 침대 기둥에 걸려 있었다.집사는 계약이 끝나 친척 집으로 갔다고 했다.하녀장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했다.한 아이의 행방에 서로 다른 설명이 두 개나 붙었다.적어도 하나는 거짓이었다.아마 둘 다.“그래서 통로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어?”리비아가 물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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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귀걸이 담보

“둘.”베티의 손이 문고리를 더 눌렀다.바깥의 발소리가 장작 창고 앞에서 갈라졌다.회색 제복을 입은 하녀를 찾는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문틈 아래로 등불이 한 번 지나갔다.누군가 바로 앞에서 멈춰 장작 창고의 문패를 확인하는 기척도 들렸다.“니나를 찾겠어요.”베티의 손이 멈췄다.“찾겠다는 말로는 부족해.”“살아 있다면 데리고 나오고, 죽었다면 누가 죽였는지 밝힐게요.”“찾았다가 다시 빼앗기면?”“이번에는 안전한 곳까지 직접 데려가겠습니다.”리비아가 내 팔을 붙잡았다.“엘린.”더 약속하지 말라는 뜻이었다.하지만 니나는 그날 수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몰랐다.그 아이를 찾는 일은 베티만의 복수가 아니었다.“내 정체는 지금 말할 수 없어요.니나를 구하면 더는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대답할 수 없는 건 숨기지 않고 그렇게 말할게요.”“전부 대답하겠다는 건 아니네.”“살아남은 뒤에 물을 수 있는 만큼은요.”내 이름이 드러나는 순간 에드릭은 나를 찾기 전에,나를 본 사람부터 없앨 것이다.카엘이 말했다.“서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배신하지 않을 담보만 있으면 됩니다.”베티가 곧장 손을 내밀었다.“그럼 담보.”“뭘 원하죠?”“돈.”“지금은 없어요.”“그럼 모렌 양 귀걸이.”리비아가 헛웃음을 흘렸다.“왜 내 귀걸이야?”“여기서 제일 비싸 보이니까요.”“내가 왜 네 입막음값을 내?”“언니 찾겠다고 남의 저택 지하까지 내려간 분이,동생 찾는 값은 아까워요?”리비아의 표정이 굳었다.잠시 뒤 그녀가 귀걸이 한쪽을 빼 던졌다.베티는 허공에서 받아 금속 부분을 이로 깨물었다.“보석은 가짜야.”“금은 진짜네요. 오늘 밤 값으로는 충분해요.”베티는 귀걸이를 앞치마 안쪽에 숨기는 동시에 장작 묶음을 풀었다. 나와 리비아의 손에 하나씩 쥐여주고,카엘에게는 낡은 작업 망토를 던졌다.말하는 동안에도 손은 쉬지 않았다.장작가루를 내 앞치마에 문지르고,리비아의 붉은 치맛자락은 바구니 뒤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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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숨겨진 아이

문이 안쪽으로 밀려왔다.나는 상대가 들이닥치기 전에 문고리를 잡아당겼다.장작 묶음을 가슴에 안고 복도로 나섰다.“모렌 양 방으로 가져가는 장작입니다.”회색 제복 하녀를 찾던 남자 하인 둘이 문 앞에 서 있었다.앞사람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찢어진 치맛단으로 떨어졌다.“소집 명령을 못 들었나?”“들었습니다. 이것만 두고 바로 가겠습니다.”“누가 먼저 가도 된다고 했지?”목 안이 말랐다.장작더미 뒤에는 리비아와 카엘이 숨어 있었다.남자가 한 발만 들어오면 모두 들킨다.“제가요.”베티가 내 옆으로 비집고 나왔다.“세탁실에서 막 끌어온 애예요.얼굴 확인하실 거면 장작부터 대신 들어주시든가요.모렌 양 난로가 꺼지면 제가 두 분 성함부터 말씀드릴 테니까.”“그 치마는 왜 찢어졌지?”베티는 내 팔에서 장작 하나를 빼 바닥에 떨어뜨렸다.“이것들이 무너져서요. 다시 묶느라 대답도 늦었고요.”남자의 눈이 열린 문 안쪽으로 향했다.나는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일이 밀린 하녀가 귀찮다는 듯 장작의 무게를 한쪽 팔로 옮겼다.“얼굴 들어.”심장이 세게 뛰었다.나는 턱만 조금 들었다.시선은 그의 어깨 아래에 두고, 숨을 짧게 몰아쉬었다.“늦으면 모렌 양께 두 분이 붙잡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남자들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가. 장작 두고 바로 하인 홀로 와.”그들이 멀어지자 손바닥의 땀이 장작 껍질에 번졌다.리비아가 더미 뒤에서 나왔다.“내 이름을 제법 잘 파는군.”“효과가 좋았습니다.”“칭찬한 거 아니야.”카엘도 작업 망토의 먼지를 털며 모습을 드러냈다.베티는 내 장작 묶음을 다시 고쳐 쥐게 했다.“말투가 너무 또렷해요.다음부터는 변명부터 하지 말고 바쁜 척 지나가요.”“방금은 통했잖아요.”“모렌 양 이름이 통했죠. 당신 연기가 아니라.”리비아는 낡은 숄로 붉은 드레스를 가렸다.우리는 창고 뒤편의 좁은 계단으로 이동했다.그녀는 장작을 재촉하는 주인처럼 앞장섰고,나는 바구니를 든 베티와 그 뒤를 따랐다.카엘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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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그날 준비실에 온 사람

“누가 문을 열었지?”오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니나의 시선이 병풍 쪽으로 스쳤다.베티의 숨이 흔들렸다. 나는 그녀의 손등을 눌렀다.“저녁에 문 닫히는 소리가 안 났어요. 무서워서 밀어보니 열렸어요.”아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끊기지 않았다.오델은 문고리 아래 홈을 확인한 뒤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거짓말을 믿은 얼굴은 아니었다.등불이 병풍 쪽으로 향했다.“집사님.”복도에서 경비가 다급히 불렀다.“공작님께서 당장 오시랍니다. 지하 보관실의 봉인이 훼손됐습니다.”오델의 표정이 굳었다.빛이 내 발끝 바로 앞에서 멈췄다.그는 방 안을 한 번 더 살핀 뒤 니나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나와.”“저는 정말 아무것도 못 봤어요.”“그 말은 나중에 다시 듣지.”베티가 튀어나가려 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아 붙잡았다.지금 모습을 드러내면 니나를 구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갇히는 꼴이었다.니나는 맨발로 비틀거리면서도 병풍을 다시 보지 않았다.우리를 숨기려고 끝까지 시선을 참았다.문이 닫히고 열쇠가 돌아갔다.잠시 뒤 인기척이 멀어졌다.베티가 내 손을 뿌리쳤다.“따라가야 해요.”“어디로 데려가는지 확인한 뒤 빼내요.”“공작한테 데려간댔잖아.”카엘이 장롱과 벽 사이에서 나왔다.“곧장 데려가지는 않을 겁니다.목격자를 숨겨온 사실부터 오델에게 불리하니까요.먼저 입을 맞출 장소가 필요할 겁니다.”리비아도 장롱에서 빠져나왔다.“그 장소를 찾으면 되겠군.”우리는 복도로 나갔다.젖은 바닥에는 작은 맨발 자국이 이어져 있었다.오른발이 닿은 자리마다 희미한 피가 번졌다.베티의 입술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러나 울거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동생을 찾은 순간에도 하녀처럼 조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베티가 앞장섰다.“동쪽 문서실 옆방이에요. 하인들을 가둘 때 쓰는 곳이죠.”그녀는 너무 담담하게 말했다.어느 방에서 맞고, 어디에 갇히는지 아는 건이 저택에서 계단 위치를 외우는 일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복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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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눈이 틀렸어

“다친 건?”내가 묻자 니나는 손을 등 뒤로 감췄다.“넘어졌어요.”거짓말이었다. 손목을 감싼 천 아래로 검붉은 자국이 비쳤다.넘어진 사람의 상처가 아니라,붙잡힌 사람이 빠져나오려다 생긴 상처였다.베티가 천을 풀려 하자 니나는 어깨를 움츠렸다.“괜찮아.”“뭐가 괜찮아.”화난 목소리와 달리 베티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문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카엘이 문틈으로 들어왔다.“경비가 방 안을 확인하려 합니다.”니나는 벽을 짚고 일어났지만 한 걸음도 떼기 전에 무릎이 꺾였다.“업어요.”베티가 카엘을 노려봤다.“증거가 걸어가다 쓰러지면 책임질 거예요?”카엘은 대꾸 없이 니나 앞에 등을 내렸다.문밖에서 경비가 물었다.“아직 멀었나?”베티가 문을 반쯤 열고 쏘아붙였다.“안에 토했어요. 물이라도 가져오든가요.”경비가 복도 끝으로 걸어가자 리비아가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나섰다.“내 시녀가 옷을 망쳤다는데, 구경이라도 할래?”돌아보던 경비가 시선을 피했다.우리는 문서실을 지나 동쪽 탑 계단으로 향했다.계단 앞에는 경비 둘이 더 서 있었다.그때 카엘의 등에 업힌 니나가 벽을 가리켰다.“오델 집사님이 절 데리고 올 때 쓴 길이 있어요.”사냥개 그림이었다.“개 눈을 누르면 돼요.”베티가 검은 눈동자를 눌렀다.벽 안에서 녹슨 철이 갈리는 소리가 나며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틈이 열렸다.문이 닫히자 빛이 사라지고 축축한 돌 냄새가 밀려왔다.“이 길 끝은 어디예요?”“탑 계단 중간이요. 그 위는 잠겨 있어서 못 가봤어요.”나는 주머니 속 열쇠를 만졌다.세실리아가 남긴 열쇠. 높은 방. 벽에 걸린 아내들. 독이 시작된 장소.통로 끝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왼쪽을 들어! 그림 상한다!”좁은 틈으로 보니 하인 넷이 검은 천으로 덮인 초상화를 옮기고 있었다.뒤에는 오델과 화공 조수들이 따랐다.내 초상화였다.“잠깐.”오델이 걸음을 멈췄다.“니나는?”베티의 숨이 걸렸다.“격리실을 다시 확인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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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기도실의 빈 자리

세 번째 자물쇠 소리가 멎었다.카엘이 벽에 귀를 댔다."아래층 출입구가 전부 막혔습니다."베티가 니나를 끌어안았다."다른 길은?"니나는 고개를 저었다."제가 아는 건 여기뿐이에요."밖에서 오델의 명령이 들렸다."하녀 하나와 아이 하나다.아래층부터 확인해. 찾는 즉시 이쪽으로 데려와."발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통로에는 우리 숨소리만 남았다.니나가 카엘의 어깨 너머로 벽을 가리켰다."저기요. 오델 집사님이 방 안을 볼 때 썼어요."돌 사이에 작은 구멍이 있었다. 가까이 눈을 대자 기도실 안이 보였다.신상은 없었다.대신 벽마다 죽은 공작부인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엘레노라, 비비안, 마리안. 얼굴은 달랐지만 내려간 눈과 다문 입술은 닮아 있었다.방 가장 안쪽에는 내 초상화가 걸렸다.맞은편에는 팔걸이 없는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좌판은 닳았고, 다리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한 흠집이 남아 있었다.아내가 죽으면 그림을 걸고, 다음 여자를 그 앞에 앉히는 방."저쪽을 봐요."리비아가 찻상을 가리켰다.찻잔 네 개와 물병, 마른 약초가 든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다.주변에는 오래 밴 단내가 감돌았다.니나가 카엘의 등에서 몸을 굳혔다."저 냄새예요.""수프에서 난 냄새?"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식당에서 맡았던 독의 단서가 이 방에도 있었다.우연이라기엔 죽은 아내들이 너무 많았다.하인들과 화공 조수들이 나갔다. 문이 닫히자 에드릭과 오델만 남았다.에드릭은 기도대 오른쪽 서랍을 열었다. 얇은 장부 하나가 나왔다."아델라인 항목을 새로 만들어.""사망 항목 말씀이십니까?""아니. 회수 항목."죽은 아내가 아니라 빼앗긴 소유권을 되찾겠다는 말이었다."그 절차는 전대 공작 시절 이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황실 감찰이 들어온 지금은 위험합니다.""감찰관이 문제라면 처리하면 돼."에드릭이 빈 줄에 펜을 댔다."아버지는 했고, 나는 못 할 것 같나?""전대 공작님의 회수 절차는 실패했습니다."펜촉이 멈췄다. 리비아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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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회수 절차 장부

“왼손부터.”에드릭의 손가락이 탁자 위를 두 번 두드렸다.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못 들었나?”“들었습니다.”“그럼 올려.”붕대 아래에는 리비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장례식 소유자.죽은 공작부인의 몸에만 남는 낙인이 하녀 엘린의 손목에 있을 리 없었다.나는 오른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리비아가 닫아준 벽은 바로 등 뒤에 있었다.한 걸음만 물러나도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그 문은 바깥에서만 열 수 있었다.이제 이 방에서 시간을 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에드릭의 눈이 찢어졌다.“왼손이라고 했을 텐데.”“다쳤습니다.”“그래서 보려는 거야.”그가 손을 뻗자 나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나무 다리가 바닥을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오델이 정문 앞을 막았다.“공작님 앞에서 예의를 지켜라.”“다친 곳을 함부로 만지는 게 이 집의 예의입니까?”에드릭은 화내지 않았다. 대신 내 오른손을 내려다봤다.관을 긁다 갈라진 손톱.“바느질하다 다쳤다고 했지?”“손이 서툴러서요.”“바늘은 손톱 안쪽을 이렇게 찢지 않아.”나는 손을 오므렸다.그의 눈은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상처의 모양과 거짓말의 틈을 맞춰보는 감정 없는 검수자의 눈이었다.“왜 비밀문에서 나왔지?”“길을 잃었습니다.”“길을 잃은 하녀가 세실리아 모렌의 열쇠를 쓰나?”그는 열쇠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바닥에서 주웠습니다.”“열쇠 구멍도 우연히 찾았고?”“운이 좋았습니다.”“거짓말에는 운이 없군.”에드릭이 의자 등받이를 짚었다.다른 손은 탁자 위에 놓였다.빠져나갈 자리를 막는 자세였다.“리비아는 어디 있지?”“모릅니다.”“니나는?”“누구입니까?”그가 웃었다.“묻는 말에 답하는 대신 질문으로 빠져나가는군.”“아델라인도 그랬어.”“부인을 잘 아셨나 봅니다.”“내 아내였으니까.”“아내였다는 것과 잘 안다는 건 다르지 않습니까?”오델이 숨을 삼켰다.에드릭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의자 등받이를 누른 손가락 마디가 희게 질렸다.나는 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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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당신이 죽였잖아

“전부 풀어.”에드릭이 붕대 끝을 당겼다.나는 손목을 비틀었지만 그의 엄지가 뼈를 짓눌렀다.한 겹이 풀렸다.검은 글자가 완전히 드러났다.리비아 모렌.오델의 얼굴이 굳었다.“공작님, 그건…….”“입 다물어.”에드릭은 내 손목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믿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믿지 않으려는 얼굴이었다.“위조군.”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낙인을 누른 손가락은 떨어지지 않았다.“장례식 소유 낙인은 위조할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리비아라면 방법을 찾아냈겠지.”“그럼 저는 누굽니까?”“엘린.”“북부에서 데려온 하녀?”“그래.”“그런 하녀의 손톱을 왜 확인하셨죠?세실리아의 열쇠를 어디서 얻었는지,비밀문을 어떻게 열었는지까지.”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목, 손가락, 손목으로 옮겨갔다.죽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눈이었다.“낙인 하나로 네가 아델라인이 되는 건 아니야.”“저는 제가 그분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그럼 왜 그 여자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봤지?”나는 그의 뒤를 바라봤다.기도대 서랍은 여전히 반쯤 열려 있었다.잉크에 젖은 장부 가장자리에 내 이름이 보였다.아델라인 로엔베르크 벨리어드.회수 대상.그 아래에 문구가 이어져있었다.생존 반응 확인.관련 증언 정리.장례 소유권 원상 복귀.살인과 입막음,시신의 소유권을 되찾는 일이 모두 행정 절차로 정리되어 있었다.마지막 줄 옆에는 오델의 서명란과 에드릭의 인장이 찍힐 빈칸이 남아 있었다.아직 끝나지 않은 계획이었다.내가 오늘 이 방에서 사라지면 ‘관련 증언 정리’ 옆에 날짜 하나가 더 적힐 것이다.“저 장부도 위조입니까?”오델이 급히 서랍을 닫으려 했다.“손대지 마.”에드릭의 명령에 그의 손이 멈췄다.장부는 펼쳐진 채였다.그는 증거를 숨기기보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엘레노라, 비비안, 마리안.”나는 이름을 하나씩 읽었다.“세실리아 모렌.”벽 너머에서 아주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리비아였다.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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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살아 돌아온 아내

“당신이 죽였잖아.”에드릭의 손이 내 손목 위에서 굳었다.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내 손목을 붙잡은 힘만 더 세졌다.부정하려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되찾았다고 믿는 사람의 손이었다.그러다 그가 웃었다.“죽은 사람이 이렇게 서 있나?”나는 손목을 빼내며 그를 똑바로 봤다.“제가 돌아왔으니, 죽였던 일도 없던 일이 됩니까?”“죽인 적 없어.”“그럼 수프에는 왜 약을 넣었죠?”“진정제였다.”“니나가 본 병도요?”“아이가 잘못 본 거야.”그의 시선이 정문과 비밀문 사이를 훑었다.니나가 어디 있는지 찾는 눈이었다.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그 시선을 막았다.“니나는 당신이 다섯 방울을 넣었다고 했어요.”“세 방울이었다.”대답이 떨어진 뒤, 에드릭의 눈빛이 멈췄다.기도실이 조용해졌다.나는 천천히 물었다.“직접 넣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아시죠?”오델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그의 시선이 에드릭에게 향했다.말리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이미 같은 답을 알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었다.에드릭은 그를 보지 않았다.“세 방울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그럼 직접 투여했고, 효능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군요.”“네가 이 집을 나가겠다고 했으니까.”“아내가 떠나려 하면 약을 먹이는 게 이 집의 방식입니까?”“진정하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어.”“아내의 자리는 독이 든 식탁이었나요?”“독이 아니야.”처음으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정해진 양이면 죽지 않았어.”돌벽이 천천히 열렸다.카엘이 가장 먼저 걸어 나왔다.그 뒤로 리비아와 베티, 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니나는 베티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었지만 숨지 않았다.카엘이 황실 문장을 꺼냈다.“방금 공작께서는 약물 투여와 투여량을 알고 있었다고 직접 인정하셨습니다.”“살인을 인정한 적은 없어.”“판단은 황실이 합니다.”카엘이 기도대 서랍의 장부를 집어 들었다.“기도실을 봉인하고 회수 절차 장부를 압수합니다.에드릭 벨리어드 공작과 오델 집사는추가 명령이 있을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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