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는데,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말하고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조명 아래서 쓸쓸하게 보였다.
나는 민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민지는 문을 꼭 닫더니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맞아! 왕예은 죽었어! 이제 믿을 만한 신장 이식자가 없다고!”
다들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며 아양을 떨었고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분은 누구시죠?”
그녀가 물었다.
이에 다른 동료들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박지유예요.”
김서준 신변의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너무 잘 안다.
이때 허다은이 떠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쭉 훑어보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먼저 말을 건넸다.
“괜히 돈 낭비하지 마. 본인이 참지 못하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돈은 주지 마. 난 그저 이 몇 년 동안 누구 덕에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려는 거야. 밖에 나가면 연희는 시각장애인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야.”
마치 차가운 물 한 통을 머리 위에 쏟아 부은 듯 나는 절망에 휩싸였다.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다니의 새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진 서우는 특유의 서글서글하고 나른한 미소를 장착하며 명희를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어쩐지. 눈매가 너무 고우셔서 제가 아는 분이랑 헷갈렸나 했는데, 해인 누나 어머님이셨구나.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 이그니스 전속 모델 강서우라고 합니다.”
“모, 모델?”
그러나 온이샘이 말을 먼저 할 것이다.
눈앞의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그 아이가 네가 약속한 아이야?”
온이샘은 전혀 어색함 없이 질문을 던졌다.
차우미는 온이샘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예은이라고 나상준 조카야. 귀엽고 활발하고 똑똑해서 내가 많이 이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