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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도수정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20 19:21:45

그것마저 귀여워 디디가 푸흐흐 웃자 루시도 같이 웃었다. 셀레나는 곁에서 미소지으며 둘을 지켜봤다. 루시가 저렇게 마음 편하게 웃는 걸 언제 보았나. 친구로서 디디라는 소년이 너무 고마웠다.

그는, 점점 돌아가지 않을 생각도 했다. 제국으로의 망명을 생각했다. 루시의 곁에 남아 그녀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를 따르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두고온 이들은 살아있을까? 고작 열 살짜리 소년을 믿고 목숨을, 충성을 바치던 어리석은 그의 사람들은.

루시는 종종 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걸 알았다. 배우지 않아도 보았다. 원체 영특한 아이였다. 디디는 루시를 오래 속일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꼭 오늘같은 가을이었다.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여름날 소년이 흘린 구슬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던 루시가 이제는 그의 곁에서 숄을 걸치고 앉아있었다.

"디디, 가야 해?"

망설이다가 물은 물음이었다. 반년 가량 숨어지냈다. 그를 찾는 이들도 그의 생사를 더이상 확신하지 못할 시간. 추적자들이 방심한 시간. 이때에 돌아가야 했다.

"......"

하지만, 루시가 남아달라고만 한다면. 그는 남을 작정이었다. 그의 의미는 모두 그녀의 옆에서 생겨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얻은 두번째 생은 모조리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루시가 쓸쓸하게 웃었고, 마침내 그에게 이별을 고했을 때 디디는, 아니 에이든은 둘 사이의 추억을 가슴속에 품고 조국으로 떠났다.

그 뒤로는 모두가 살아돌아온 소년이 어딘가 미쳤다고 부르는 나날이었다. 혁명군을 지원하고, 반란을 도모했다. 그러나 그는 황좌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공화정이었다. 그의 사람들조차 반대했던 것. 이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는 것. 하지만 루시가 그랬다.

"옛날 고대사회에는 공화정이라는 게 있어서 광장에서 사람들이 토론하면서 나라의 문제를 결정했대."

"그렇구나."

아고라의 이야기구나. 황제학 수업 때 지겹게 들었던 디디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는데 어쩐지 시무룩한 루시가 덧붙였다.

"근데 외국인이나 노예나 여자는 시민이 될 수 없었대."

디디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 오래된 시절에조차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던 루시의 성별은, 지금도 그녀를 새장에 가둬두었다.

"디디, 세상에 여자가 사람인 나라도 있을까?"

루시가 물었다. 디디는 그의 편견이 깨지는 걸 느꼈다.

"왜, 그런 나라면 루시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디디가 선뜻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어 물었다. 설마 그럴리가 없겠지.

"그런 나라라면, 살고 싶지 않을까?"

"어?"

"코르셋도 안입어도 되고, 밥도 많이 먹어도 되고, 구두도 안신고 드레스도 안신어도 되면, 시민이 될 수 있으면, 그거 다 안해도 된다며."

디디는 루시에게 그렇게 말했다. 인간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아직 작고 어린 루시가 이해하기 어려울 그것들을 그녀의 세상과 생활에 빗대어 알기 쉽게 말해주었다. 그저 어린 아이의 변덕일 수 있으나 루시가 남긴 바람같은 이야기는 에이든에게 목표를 주었다. 루시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루시가 살고 싶은 나라. 여성도 시민인 아고라를 재현하자. 그러려면 가장 먼저 없애야 할 것은 왕정이었다. 타락한 부황과 친동생의 목숨도 노리는 황태자. 그가 만들어갈 세계에는 필요 없는 이들이었다. 애초에 황실이 필요없었으므로.

나스에 돌아갔다. 내쫓기듯 북부로 갔지만 그곳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부와 명예와 권력을 쌓아, 겨울의 왕이 되었다. 혁명을 일으켰고 성공했다. 이제 그에게는 국민들에게 구왕정시대의 '대공'이라는 애칭만이 남았다. 모든 게 끝나면 루시를 데리러 가려 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벨루아와 아르테미스의 결합에 대한 소식은 나스에도 전해졌고, 에이든이 급하게 제국으로 향했지만 결혼을 막을 순 없었다. 백작부인인 레이루나의 방해가 있었다. 이미 디디와 루시의 만남을 알고도 방관했던 그녀였다.

결국 그는 새하얀 드레스 차림의 그녀가, 그가 너무도 보고싶었던 성인이 된 루시가 다른 남자의 손을 잡는 걸 목도하고야 말았다. 그가 스물, 루시아가 열 일곱이던 해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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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사흗날 아침이 밝았다. 브리짓은 지난 이틀 내내 그랬던 것처럼 아주 편안하고 말간 낯으로 루시아의 앞에 섰다.“루시.”그 사이 두 사람은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응, 언니.”“잘 지내.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카의 출생 과정을 볼 수는 없을 것을 알았기에 브리짓은 다만 그저 건강하라고 했다.루시도 그걸 알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슬퍼서 눈물이 쏟아질 것같았지만 티내지 않기로 했다. 아주 편안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헤어지고, 언젠가 된다면 그녀의 장례식에 참여해 그렇게 그녀를 보내줘야지.루시는 문득 생각난 것을 말하듯 브리짓에게 덧붙였다.“언니, 그때 나더러 왜 아버지 앞을 막아섰냐고 했잖아.”브리짓이 첫날의 기억이 생각이 난 듯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우울한 기억이었다. 그녀가 저를 동정했다고 하는 것은. 그런데 루시아가 덧붙인 말은 놀라웠다.“나같아서 그랬어. 고작 이 좁은 새장에 갇혀 내내 남자들 때문에 삶이 휘둘리는 게 나 같아서. 그렇게 예쁘고 똑똑한 사람인데, 브리짓 언니는. ”브리짓이 또 울기 시작했다. 또르륵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루시아는 당황하여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정작 건넨 것이 아이를 위해 만들어둔 가제 수건이라 그녀가 수를 놓은 것이었다. 실력은 형편없었지만.“아, 그건 아이 때문에 만든 건데.”루시아가 부연설명을 하려고 하자 브리짓이 아주 환하게 웃으며 루시아에게 말했다.“내가 가져도 되겠니, 이것?”수많은 구혼자에게 어떤 금은 보화를 받았을 때에도 저런 표정은 아니었다. 루시아는 문득 브리짓의 저런 환한 미소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고작 그걸로 되겠어?”못생긴 꽃 한 송이를 수놓은 손수건이었다. 그런데도 브리짓이 그걸 양손으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꼭 껴안고 있어서 루시아는 어쩐지 부끄러웠다.“그렇게 대단한 물건도 아니고.”브리짓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너무 기뻐.”순수하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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