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네.”
긴장한 은성이 무슨 일이냐는 듯 선우를 봤다. 선우는 빙그레 웃을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선희도 찻잔을 향해 손을 뻗었고 아주 잠시 손이 닿았다.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것처럼 손을 황급하게 거둬드린 그가 구토를 했다.
“우욱…!”
스치는 접촉에도 그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선우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은성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선희의 눈치가 보여서 가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이 세상에 불편한 모자 사이는 많았지만 잠깐 손이 닿는 접촉만으로도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한성그룹의 회장 답게 그녀는 표정을 빠르게 갈무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학교에서는 괜찮니?”
“가끔 일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괜찮아요.”
선희의 접촉에만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자과의 접촉에 그랬다. 은성만이 예외였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선희는 스스로를 안정시키려는 듯 차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은성아. 선우랑 같이 유학 가는 거 어떠니?”
은성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희는 고용인들에게 인색하지 않았고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유학을 갈 정도로 경자가 돈을 많이 모은 것은 아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유학 갈 형편은 아니어서요.”
“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선우랑 같이 가는 건데 당연히 내가 지원해야지. 돈 생각하지 말고 유학 갈 생각 없어?”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서 경자를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유학은 그녀에게 다른 나라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를 선희가 지그시 응시했다.
“은성이 너는 참 신기해.”
“제가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서 그런가, 자기 생각을 바로 이야기하잖아. 별로 어려워하지도 않고.”
“그런가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희가 말을 이었다.
“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말이야. 친한 친구가 부자인 경우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은성이 너는 그게 네 신분이라고 착각하지 않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지.”
예리한 시선이 은성에게 꽂혔다. 이럴 때면 선희가 그저 어머니의 고용주가 아니라 거대 기업의 회장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얼굴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속속들이 간파해내는 것은 꽤나 불쾌한 경험이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유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
“네,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만 선우한테 가봐.”
“네.”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서재를 나섰다.
*
서재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때 선우가 비틀거리면서 나오는 게 보였다.
“선우야. 괜찮아?”
“왜 이제 왔어.”
그가 기대다시피 은성을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꼭 투정부리는 아이같았다.
“미안. 회장님 눈치 보여서 그랬어.”
“치이. 나보다 회장님이 더 중요한가 봐.”
“그럴리가 없잖아. 방으로 올라가자.”
“응.”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선우의 방이 있었다. 그러나 방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공간이 넓었다. 별채에 있는 은성의 방에 5배가 넘는 크기였다. 선우를 부축해 소파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았다. 은성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이마로 향했다.
“열은 안 나?”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거부 반응이 심하게 나타날 때면 열이 나거나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다. 체온은 조금도 뜨겁지 않았으나 선우는 은성의 손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두려는 듯 이마를 비볐다.
“열 안 나는데?”
“몸이 좀 간지러운 거 같아.”
은성이 거짓말을 잡아내는 수사관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닌데? 자꾸 거짓말 할래?”
“거짓말 아닌데. 몸이 힘들어서 그렇게 느껴지나 봐.”
넓디 넓은 어깨가 축 늘어졌다. 선우가 일부러 더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은성은 그 모습 마저도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 선우는 아예 은성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이런 모습을 볼때는 선우가 꼭 동생 같았다. 목이 꺾이게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큰 키를 가졌는데도 말이다.
선우는 눈을 감고 따스한 손길을 말없이 느꼈다. 은성이 함께 있으면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 할머니, 삼촌이 다 살아있던 그때는 무엇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좋은 집에 살지도 좋은 옷을 입지도 못했지만 마음만은 풍족한 시절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집에서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학 갈거야?”
“사람들은 자주 착각해. 잘해주면 사랑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맞아. 상대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일 수도 있어.”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친구와 단순한 대화였다. 하지만 유라의 곧게 꽂힌 시선이 그 말이 은성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직접적으로 은성에게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선우가 나중에라도 유라를 찾아가서 한마디를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저린 짓을 한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유라의 친구는 보란듯이 맞장구를 쳤다.“내 친구도 남자친구가 엄청 잘해줘서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그냥 스킨십을 원한거였더라고.”“그래. 그렇다니까. 멍청한 애들이나 그게 뭐 대단한건줄 알고 좌지우지되지.”그때 멀리서 선우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달려오자 이를 발견한 유라가 친구하고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은성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은성아. 무슨 일이야?”“으응? 왔구나.”아무렇지 않은 척 은성이 싱긋 웃었다. 선우가 리치콘의 포장을 벗겨 먹기 좋게 만들어 내밀었다.“녹기 전에 먹어.”“응. 고마워.”그녀는 화답하듯 미소를 짓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학교가 끝나고 은성은 선우와 함께 학원으로 향했다.“내일 모레
그러나 의지와 다르게 그의 눈꺼풀은 조금씩 내려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선우 말대로 유학 가면 매일 이 모습을 볼 수 있을까.“그러면 유학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모든 비용을 선희가 부담하는 것도, 그 이후 한성그룹에서 일할 거라는 경자의 기대도 여전히 부담스러웠다.하지만 선우와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에 대한 기대가 조금 더 커졌다. 항상 붙어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함께 둘이서만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꼭 유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이제 몸을 일으켜야 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더 곁에 있고 싶었다.“5분만 있다 나가자.”그대로 잠들어 버렸다.“일찍 일어나서 다행이다.”5시 30분이면 고용인들이 출근할 시간이다. 이제 10분 남짓 남았으니 빨리 움직여야 했다. 혹여 선우가 깰까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무심코 고개를 돌리는데 책장에 꽂혀있는 검은색 스프링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그 노트가 굉장히 거슬렸다. 꼭 봐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노트로 손이 가려다가 멈췄다.“한은성, 너 뭐하는 거야.”아무리 선우가 남자친구라지만 그의 물건을 마음대로 확인할 자격은 없었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2분이 더 지나가 있었다.“빨리 나가자.”그렇게 방에서
“흐윽…”은성이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조금 정신이 들었다. 티슈를 가져와 눈물을 닦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제야 그녀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예상했지만 너무 슬프다.”“예상… 했어?”“응. 도희가 이 영화 봤는데 둘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거든.”은성이 고개를 들어 선우를 봤고, 그제야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충격 받았어?”“조금…”사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충격적이었다. 은성을 안고 싶은 생각을 잊을 만큼 강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뭐가 충격이었는데?”“당연히 남녀주인공이 잘 사는 해피엔딩인줄 알았어.”불퉁하게 입이 나온 것을 보고 은성이 피식 웃었다.“네가 영화가 이렇게 감정이입하는 거 보니까 신기하다.”은성은 감정이입을 곧 잘해서 주인공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그러나 선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은성하고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됐다. 은성의 감정에는 반응하는 반면 타인의 감정에는 무감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감정의 동요가 있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 그가 드물게도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은성이 양손으로 선우의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살짝 볼에 입맞췄다. 그제야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
그가 죽고 장례식장에서 선우와 대면했다. 영정사진 앞에서 적의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아들을 말이다.삶에서 그렇게 두려웠던 순간이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조차 없어서 못 박힌듯이 서있었다.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온몸이 굳어지면서 사방이 검은 방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그때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치원이 손을 잡고 있었다. 딸이 자책하는 것이 가슴아프다는 듯 늙은 아비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자책하지 말거라. 네 탓이 아니야. 그저 사고였어.”“그저 사고라기엔… 세사람이 죽었어요.”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맺혔다.*지이잉 지이잉연속해서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혹시 경자가 들을까 재빠르게 무음으로 해놓고 문자를 확인했다.[집에 도착했어.][보고 싶어.][언제 와?]“지금 가.”나지막히 말하고 창문을 열었다. 창틀에 걸터앉아서 신발을 신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안전하게 착지했다. 그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고용인들이 들어가는 뒷문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본채로 들어섰다.“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떨리네.”어렸을 때는 이러고 많이 놀았다. 그냥 어른들 모르게 선우와 둘이서 노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안 하게 되었다. 사귄 이후에는 혹여 선을 넘게 될까 더 조심했던 것도 있었다.‘오늘 선우가 못 참으면 어떻게 해?
“아,아니…”종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아버지는 선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앞에서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뒤에서는 그래봤자 여자이고, 실패한 결혼을 한 이혼녀일뿐이라고 별별 욕을 했지만 앞에서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조아렸다.선우는 웃고 있었으나 그의 말은 명확한 경고였다. 감히 은성에 대해서 입에 올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 뜻을 잘 알아들은 종석은 꼬리를 말고 자리를 떠났다. 그때 선희가 다가왔다.“어머니란 말 오랜만에 듣는구나.”“…”선우는 어머니란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대체로 선희를 부르지 않았으며 꼭 불러야하는 일이 있으면 회장님이라고 했다. 그녀가 자신을 낳았고 6살 때부터 키웠으나 어머니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는 거 자체가 아버지, 삼촌, 할머니를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날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회복되지 못했다. 이를 선희도 잘 알았다. 그래서 답이 없는 아들을 보면서도 핀잔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좋아할만한 화제를 꺼내기로 했다.“유학 갈거니?”“은성이가 간다고 하면 가야죠.”피식 웃음이 났다. 하나뿐인 자식이고 한성그룹의 유일한 후계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한심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웃음이 났다. 젊었을 적 동식을 쫓아다녔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래서 은성이는 간대?”“…고민중이예요.&rdq
“삼촌, 이거 삼촌이 좋아하시는 정명진 작가 그림이예요.”“고맙구나.”김치원 명예회장의 산수연은 친척들과 교분이 있는 사람들로 붐볐다. 치원의 곂에서 선희는 그림자처럼 손발 역할을 했다. 반면 선우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었다. 중간중간 치원의 시선이 불퉁하게 선우를 응시했다. 유일한 손자가 곁을 지키지 않는 것이 불만스러운 것이다.“흠흠!”헛기침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였으나 선우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선희가 그만하라는 듯 치원에게 눈치를 주고나서야 헛기침이 멈췄다. 선우의 입이 나왔다.‘지금 불만을 느낄 사람이 누군데. 은성이랑 보낼 시간을 침해받은 건 나야.’몹시도 불만스러웠다. 이곳에 오기전 은성과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 불만은 더 높아졌으리라. 그래도 그녀가 한 약속 덕분이 이 지루한 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다.“이따 밤에 오면 우리 같이 있자. 내가 방으로 갈게.”은성하고 단둘이 있는 시간 자체가 선우에게는 너무 귀했다.학교에서는 애들이 있고, 집에서는 고용인들이 있다. 단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등하교 길에는 둘만 있을 수 있었지만 그건 너무 짧았다.‘늦게까지 붙잡고 있어야지.’사실 마음 같아서는 아침까지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은성이 곤란해질 것이다.‘12시쯤에는 보낼거야.’함께 있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들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유독 짧았다. 10시간을 붙어있어도 1시간처럼 느껴졌다. 반대로 1시간을 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