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ойти보여 줄 것이 있다는 말에, 답한 것은 혈비였다."보여 줄 것은 이쪽에도 있다."언니가 앞으로 나서며 품에서 그것을 꺼내 들었다. 찬 달의 패. 우물 밑에서 열여덟 해를 기다린 왕의 패가, 얼음 둑 아래에서 형의 아우를 올려다보았다."형님의 유해는 대전에 모셨다. 등 뒤의 칼자국까지 — 다 보았다."둑 위의 노인은 오래 말이 없었다. 얼음이 낮게 우는 소리만 골짜기를 채웠다.일행은 둑 아래 백 걸음에 벌여 서 있었다. 사백의 활은 시위를 얹은 채 내려져 있었고, 선우현은 운설의 반 보 뒤에, 간수문과 운백천은 나란히 — 십팔 년 전 눈밭의 두 사람이 나란히 — 서 있었다. 화살이 닿을 거리였고, 화살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 거리였다. 저 노인이 무너지면 둑이 무너진다. 심법으로 세운 벽은 심법의 임자와 한 몸이었다."형님은," 이윽고 대월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까지 등을 안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등을 보인 것은 — 믿어서가 아니다. 돌아섰던 것이지. 아우의 청을 마지막까지 듣고, 안 된다 하고, 돌아선 것이다.""무슨 청.""심법을 돌려 달라 했다." 노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여덟 해를 얼음 속에서 벼렸다. 그릇이 이제 되었으니 —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으니 — 돌려 달라 했지. 형님은 안 된다 했다. 죽은 것은 못 살린다. 그 금이 너를 살렸고, 그 금이 삭월을 지킨다."죽은 것은 못 살린다. 그 금이 형의 마지막 말이 된 것이다."그래서 등에 칼을 꽂았나." 혈비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가 반, 다른 것이 반이었다. "그 말이 들려서 — 그 말이 맞아서?""맞는 말이 사람을 제일 깊이 벤다."노인은 답이 되지 않는 답을 놓고, 손을 들었다. 얼음 둑이 응답하듯 길게 울었다."자, 셈을 하자. 너희는 숨구멍을 뚫으러 왔겠지. 물을 나눠 흘려서 세상을 살리러. 좋은 수다. 한데 그 수에는 내가 서서 안 되지. 그러니 — 흥정이다."노인의 곁에서, 흰머리의 여인이 한 걸음 나섰다.어머니는 딸들을 내려다보았
새벽의 얼음 울음은 시위를 지나 예고가 되어 있었다.운설은 능선에서 상류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강의 감각이 전하는 그림은 하나였다. 둑의 얼음이 얇아지고 있었다. 대월이 제 손으로, 심법으로, 조금씩 녹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안이었다. 오늘 안에 저 골짜기의 며칠 치 봄물이 한 번에 세상으로 나온다.판이 마지막으로 모였다. 만군의 가주까지 낀 판이었다. 어제까지 서로를 태우고 베러 온 자들이 한 지도 앞에 머리를 모으는 그림을, 화톳불이 말없이 비췄다. 물이 만든 동맹이었다. 물 앞에서는 만 개의 창도 하나의 숨이었다."군은 물러 세웠소." 모용 가주가 말했다. "여울에서 십 리. 한데 그것으로 모자라다는 거요?""모자랍니다." 운설이 답했다. "저 물은 여울을 지우고 하류로 갑니다. 북관 안팎의 마을들, 유민의 골짜기 — 물이 닿는 데까지가 판입니다. 만군이 아니라 세상이 표적입니다.""그럼 수는.""둑으로 갑니다." 그녀는 지도의 골짜기를 짚었다. "물이 나오기 전에 — 나오는 문에서 세웁니다.""세운다니. 며칠 치 봄물을 무슨 수로.""세우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겁니다. 문이 한 번에 다 열리면 물마루가 서지만, 문이 천천히 여러 번 열리면 — 그냥 큰 물이 며칠 흐르는 것으로 끝납니다. 얼음 둑에 숨구멍을 내는 겁니다. 여럿, 조금씩, 미리.""그 둑 위에 명을 내린 자가 서 있다면서.""그래서 다 같이 갑니다." 혈비가 받았다. "물을 다루는 손과, 획을 아는 눈과, 법과, 활과 — 그리고 저자가 열여덟 해 진 빚의 임자들이."가주는 군에서 물에 밝은 자 이백을 추려 하류의 마을들로 먼저 내려보냈다. 물이 새는 판에 대비해 사람부터 물리는 손. 격문에 실려 온 만군이 하루 만에 물막이 부역꾼이 되는 것을 보며, 간수문이 마른 소리로 웃었다. "종이가 한 일 중에 제일 큰 일이군."출발 전의 반 시진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썼다.한겸은 관복을 벗어 개켰다. 접은 관복 위에 봉서를 얹고, 그 위에 제 관모를 얹었다. "법은
증거를 태우러 오는 손을, 사백은 자정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담판이 문을 연 밤이었다. 종이가 만군을 세웠으니, 판을 되잡으려면 종이부터 지워야 했다. 사냥꾼은 저들의 셈으로 저들을 기다렸다. 종이의 상은 언덕 위에 그대로 두고 — 속은 빈 함으로 바꾼 채 — 저는 상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무더기의 어둠에 스몄다.새벽으로 넘어가는 어름, 바람이 한 번 죽었다.그 죽은 바람 속에서 시위 소리가 났다. 여덟. 서로 다른 자리에서, 그러나 한 호흡으로.사백은 소리보다 먼저 굴렀다. 방금까지 어깨가 있던 바위에 불화살 세 대가 박히며 어둠이 붉게 찢어졌다. 나머지 다섯 대는 언덕 위 — 종이의 상으로 날았다. 빈 함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보며, 사냥꾼은 제 첫 살을 얹었다.불빛은 양날이었다. 상을 태운 불이 태운 자들의 자리를 비췄다.사백의 살이 불빛의 가장자리를 갈랐다. 짧은 비명 하나. 여덟이 일곱이 되었다. 답살 네 대가 어둠 속의 사백을 더듬었으나, 사냥꾼은 이미 세 걸음을 옮긴 뒤였다. 활잡이의 싸움은 자리 싸움이고, 자리는 소리가 판다. 쏘면 옮긴다. 옮기고 듣는다.일곱은 흩어지며 되쐈다. 훈련된 손들이었다. 한데 사냥꾼의 밤은 손이 아니라 귀의 밤이었다. 사백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소리 없이 흘러 다니며 하나씩 지웠다. 살로 둘. 돌팔매로 하나. 여섯이 넷이 되고, 넷이 남긴 답살이 전부 빈 어둠을 때렸다.한데 넷 가운데 하나가 — 사백의 법으로 사백을 듣고 있었다.세 번째로 자리를 옮기는 순간, 발밑의 마른 가지가 울기도 전에 화살이 왔다. 사백은 몸을 접었다. 살깃이 어깨의 옷깃을 찢고 지나갔다. 반 치.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났다."언니 걸음은 스물에서 안 늘었네."사수였다."쏘고 셋 걷고, 듣고 둘 걷고. 아버지 — " 웃음이 한 박자 멎었다 이어졌다. "그 어른이 언니 걸음을 내게 외우게 했지. 십 년을.""네 어른이 내 걸음을 어찌 아느냐.""모르는 게 없는 분이니까."탐이 끝나고 변이 왔다.사수가 불붙은 함 쪽으
물러나라는 외침을, 만군은 웃었다."수가 뻔하구나!" 모용 가주가 대부를 뽑아 들었다. "겁을 줘서 군을 물리자는 수작—"말은 끝나지 못했다.상류 쪽 골짜기에서 흰 것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안개 같았다. 다음에는 눈사태 같았다. 물마루가 골짜기의 굽이를 돌아 나오며 양쪽 벼랑을 때렸고, 부서진 물보라가 해를 가렸다. 며칠 치 봄물의 첫 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 첫 숨일 뿐이었다."물이다!"누가 먼저 소리쳤는지 몰랐다. 만군의 앞줄이 뒤로 밀리며 대열이 접혔다. 여울 바닥을 정찰하던 척후 기병 서른이 물마루와 저들 사이의 거리를 쟀고, 재는 사이에 거리가 반으로 줄었다.운설은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물을 쓰지 마라. 보여 주지 마라. 그 모든 셈이 물마루 앞에서 종이처럼 젖었다. 서른의 숨이 물의 아가리 안에 있었다. 숨은 편을 안 가린다 — 제 입으로 한 말이었다.여울가의 바위에 손을 짚고, 그녀는 강에 부탁했다.세우지 않는다. 겨루지 않는다. 다만 — 비켜 다오. 서른 걸음만.물마루가 여울에 들이닥치는 순간, 물이 갈라졌다.가른 것이 아니었다. 물 스스로 두 갈래로 몸을 틀어, 척후들이 밟고 선 얕은 목을 — 딱 그 목만 — 비켜서 지나갔다. 갈라진 물이 다시 합쳐지며 하류로 우레처럼 내려갔고, 젖은 말 위의 척후 서른은 제가 산 것을 한 호흡 늦게 알았다.만군이 그것을 보았다.만 개의 눈이, 물을 비켜 세운 여자를 보았다. 재앙의 씨가 물을 부린다던 격문의 문장이 눈앞에서 뒤집히는 것을. 물을 부려 서른을 — 저들의 서른을 — 건지는 것을.첫 물은 그것으로 지나갔다. 시위였다. 둑의 문을 한 뼘만 열었다 닫은 것. 진짜 물은 아직 골짜기 안에 갇힌 채,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여울가에 정적이 앉았다. 운설은 바위를 짚은 채 코에서 흐르는 것을 소매로 눌렀다. 시야가 반 바퀴 돌다 멎었다. 등 뒤에 어느새 그가 와 서 있었다. 부축하지 않고, 다만 넘어지면 받을 자리에.모용 가주가 말에서 내렸다.거한은 대부를 땅에 꽂고,
만군은 이튿날 오후에 왔다. 척후장의 씨앗이 어디까지 자랐는지, 물길잡이의 실종이 어느 귀까지 닿았는지 — 답은 대장기와 함께 오고 있었다.먼지가 먼저 왔다. 만 사람과 만 마리 말이 미는 흙먼지가. 능선 너머 남쪽 하늘이 누렇게 흐려지더니, 땅이 낮게 울기 시작했다. 운설은 그 울림을 발바닥으로 들으며, 십팔 년 전의 삭월이 들었을 소리를 생각했다. 봉화가 오르고, 땅이 울고, 그리고 —이번에는 그 소리를 마중 나가는 자들이 있었다.전날 밤의 마지막 회의에서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첫 마디는 간수문 — 실각했어도 만군이 낯을 아는 유일한 법. 증거는 남궁완 — 세가의 말은 세가가 알아듣는다. 획의 증언은 선우현. 그리고 운설은 — 맨 뒤였다. "그대는 말이 아니라 일이 증거요." 그가 그렇게 정리했고, 그 정리가 무슨 뜻인지는 물이 오면 알게 될 것이었다.무대는 여울 초입의 언덕이었다. 만군의 행군로가 여울로 꺾이는 목. 대장기에서 화살 두어 마장 거리. 언덕 위에 탁자 하나를 놓고, 그 위에 증거들을 차례로 얹었다. 공훈록. 갈대 종이 초고. 긁힌 명부. 열두 수결의 원부. 종이의 상이 차려지고, 그 뒤에 사람들이 섰다.실각한 당주. 실성한 검신. 수배 중인 의녀. 붉은 달의 주인. 남궁가의 영애. 그리고 흰 관복의 젊은 감찰."격은 다 갖췄군." 간수문이 마른 웃음을 흘렸다. "강호가 버린 것들만 모아서."선봉이 언덕을 보고 멎었다. 창칼이 숲을 이루고, 숲이 갈라지며 대장기가 앞으로 나왔다. 검은 바탕에 은도끼 — 모용가의 기였다.말 위의 가주는 마흔 줄의 거한이었다. 아비의 도끼를 물려받았다는 등 뒤의 대부(大斧)가 사람 하나 무게로 보였다. 가주의 눈이 언덕 위를 훑었다. 종이의 상을, 그 뒤의 낯들을."재앙의 씨와 그 무리가 — 제 발로 나와 섰군."목소리가 우레 같았다. 만군의 창끝이 일제히 언덕을 향해 낮아졌다."베기 전에 유언은 들어 주마. 짧게 해라."창의 숲 사이사이에 운설은 다른 것들도 보았다. 젊은 병졸들의 낯.
얼음여울이 하루 거리로 다가올수록, 강이 이상해졌다.물이 줄고 있었다.봄물이 한창 불어야 할 계절에, 여울로 이어지는 본류의 물가에는 젖은 돌들이 뼈처럼 드러나 있었다. 물이 마르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상류를 막았군."간수문이 말 위에서 마른 물가를 내려다보았다."눈 녹은 물을 어딘가에 모으고 있다. 며칠 치를. 만군이 여울 한가운데 들어서는 시각에 — 한꺼번에."운설은 눈을 감고 강의 감각을 상류로 흘려보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 물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갇힌 물. 눌린 물. 며칠 치의 봄물이 좁은 어딘가에 갇혀 몸부림치는 소리. 물마당의 소용돌이도, 불은 물목의 급류도 이것에 대면 실개천이었다."골짜기 하나를 통째로 막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낮아졌다. "물의 양이 — 셀 수가 없습니다. 저 물이 풀리면 여울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류의 벌판까지 한 번에 씻깁니다.""막은 것은 무엇이냐. 둑이냐.""둑이면 차라리 낫습니다." 운설은 감각의 끝에 닿는 그것의 결을 짚었다. 물이 아닌 것. 물을 막고 선 거대하고 차가운 것. "얼음입니다. 골짜기 어귀를 — 얼음으로 막았습니다. 이 계절에, 저 두께로. 사람의 손으로."얼음 궁려에서 여덟 해를 산 사람. 얼음이 어는 차례를 아는 사람. 지키던 자들이 다 죽었다는 그 풍문의 임자.얼음으로 물을 가두고, 때가 오면 제 손으로 얼음을 깨는 것이다. 심법으로 세운 둑은 심법으로만 무너지고 — 그 시각은 오직 한 사람의 손안에 있었다.해 질 녘 행렬은 여울이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능선 아래 진을 쳤다. 운설은 능선에 올라 그 여울을 처음으로 눈에 담았다.넓었다. 강이 산 사이에서 풀려나며 몸을 펴는 자리. 물 빠진 여울 바닥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섬처럼 드러나 있었다. 십팔 년 전 얼음이 얼었을 때 만군이 건넌 자리. 아버지가 물길을 연 자리. 이제 물이 빠진 채 — 다음 만군을 기다리는 자리.곁에 선 선우현이 오래 말이 없다가 물었다."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