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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어른의 정의

Penulis: 랑끗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7-23 00:16:04

주중 어느 평범한 날 낮.

“아니, 거기 김씨네 첫째 손주 만나봤나?”

“아휴, 말도 마. 성질이 어찌나 고약한지. 지난번에는 지나가다 나를 맞은편에서 이렇게 딱 맞닥뜨려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지나가더라니까-.”

“하여튼, 그 버르장머리 보면 김 씨 아주머니네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거야.”

고 이장의 부인 심 씨가 부쳐다 놓은 전 몇 장을 중간에 두고서 막걸리와 함께 어른 몇이 함께 밭일을 하던 차림으로 새참을 먹고 있었다. 

6월 중순으로 치닫는 시간 속 햇볕은 매우 뜨거웠다. 멋보다는 기능에 더 치중한 모자나 토시 같은 걸 잔뜩 걸친 모두는 고 이장의 넓은 밭 한 귀퉁이에 그늘진 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오늘의 멤버는 고 이장, 심 씨, 소원 초등학교 교장 구본용, 그의 부인 정 씨, 그리고 정렬의 아버지 원길이었다. 

여기다 종종 최 씨까지 함께 자리하고는 했는데, 최 씨의 밭은 동떨어져 있기도 했고, 그는 가게 핑계로 밭일 품앗이에서 종종 제외되고는 했다. 

오늘은 마을에서 가장 넓은 고 이장의 밭에 나 있는 물꼬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날이었다. 

보통은 6월 말에 찾아오는 끈질긴 장마 때문에 소원리는 6월을 기점으로 많이 바빠졌다. 

이전해 장마로 인해 모양을 잃은 물꼬를 보수하고, 그곳에 있는 이물질들을 잘 치워줘야 장마철에 밭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은 주전자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서로의 잔에 채워주며 그들은 아침 노동의 피로를 덜어내고 있었다. 

“아휴, 매년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이, 우리 형님들 일이면 나서서 도와야죠.”

심 씨는 원길의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며 감사 인사를 했고, 원길은 쑥스러워하며 대꾸했다. 

“크으-.”

원길이 시원하게 막걸리를 들이키자, 심 씨와 정 씨가 순간 걱정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원길이 거나하게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온 마을 사람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김 씨 아주머니네 첫째 손주가 어떤데 그래요? 어렸을 땐 그래도 고분고분하더니만.”

원길의 질문에 최근에 인협과 한 번씩은 마주쳐본 나머지 네 사람이 서로 말하고 싶은 바가 많은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여튼, 한번 만나봐. 기절초풍한다.”

고 이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마치고는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일단 멀리서 봐도 눈을 이렇게 뜨고 온다니까.”

심 씨는 손가락으로 제 눈꼬리를 위로 찢었다. 

“이런 씨,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은 나한테 한번 따악 제대로 걸려야 하는데.”

“…….”

“그런 놈들은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다니까.”

열성을 다해 토해내는 원길의 주장에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눈을 피하며 침묵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에 뒤지지 않는 저속한 말을 얹었을 위인들이 잠잠해지자, 원길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그제야 주변 눈치를 살폈다.

“어이구-.”

원길은 저승사자라도 본 양, 화들짝 놀랐다. 

그들이 앉아 있는 곳 근처 길에 인협이 서 있었다. 

조금 전 심 씨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인협의 눈이 위로 찢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의 눈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보고 있자니 원길은 조금 전 심 씨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들과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곳은 평소에는 벌레 소리 말고는 별다른 소음 하나 없는 소원리. 

그리고 그들 중 유독 목소리가 큰 편인 원길이었다. 게다가 술이 들어가고 흥분한 상태인 그는 더더욱. 

맴맴맴-. 찌르르르-. 

원길이 크게 떠들 땐 유독 조용해졌던 벌레들이 다시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딱 걸렸는데요.”

“뭐-?”

인협의 말의 의미를 모르는 원길은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저씨에게 한번 딱 제대로 걸려야 한다면서요. 그래서 딱 걸렸다고요.”

옛날 한때는 인협이 원길을 두려워하던 때도 있었다. 어른과 중학생의 차이란 그래도 컸으니까. 

술에 영혼이라도 빼앗겨버린 듯한 그의 두 눈은 어린 인협이 피해 갈 이유였다. 

그러나 원길보다 키가 더 큰 성인이 된 지금. 

그런 원길은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한심함과 연민이 뒤섞인 감정의 대상일 뿐이었다.

60이 다된 나이에, 아이가 다섯인 아비가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정렬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는 인협은 두 눈에 담긴 감정을 굳이 감추지 않고서 원길을 마주 보았다. 

“저, 저 되바라진 새X. 어른을 어디서 그딴 눈으로 봐!”

“어른…..”

어른 노릇 못하는 인간들이 꼭 어른이라고 대접받으려고 하더라. 

인협은 헛웃음을 흘리고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감독이라는 인간도, 케이비의 팀장이었던 기태도. 

“어른의 정의가 뭔지는 아세요?”

“뭐?”

이를 바득거리며 어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을 때, 케이비에서 따돌림당하고 감독에게 늘 혼이 나던 인협은 잠시나마 고통을 놓을 수 있었다. 

“어른이란 신체적으로 다 자란 사람이자,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래요.”

“저, 저-.”

인협의 폭탄 발언에 원길을 말리던 본용과 고 이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자기 자식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해서 아들이 책임지고 있구먼. 

인협은 정렬을 떠올리며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들었다. 인협은 입꼬리만 올려서 싱긋 웃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에이씨!”

성질을 못 이긴 원길이 몸부림을 치자, 인협이 어느 정도 멀어진 걸 확인한 본용과 고 이장은 그의 양팔을 놓아주었다.

술 때문인지, 혈기 때문인지 얼굴이 붉어진 원길은 씩씩거리며 자리에 털썩 앉아, 막걸리로 가득 채운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머머, 박유진보다 더 한 게 소원리에 왔네.”

인협 앞에서는 숨죽여 있던 심 씨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웬일인지 그녀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

“오늘 사실 할 말이 있어서 피곤할 우리 선생님들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어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회의 책상에 둘러앉은 세 선생. 조 선생의 양해를 구하는 말에도 고 선생은 굳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원래대로면 4교시에는 퇴근했어야 하는 그였지만, 조 선생의 당부에 학교 끝난 후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후까지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안 좋은 소식은 아니죠?”

에스더의 질문에 조 선생은 평소처럼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묘하게 그늘져 있었다. 

“지난번에 양해를 구하고 하루 쉬었을 때, 검사를 받았었어요. 요즘 좀 안 좋은 증상이 있어서.”

“……..”

심상치 않은 말에 에스더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고 선생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리를 떨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고 선생을 힐끗 쳐다본 조 선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대장암이래요. 다행히 아직 2기라 그러네요.”

늘 그래왔듯이, 남 이야기를 하는 듯이 담담하고도 상냥한 조 선생의 음성에 에스더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고 선생의 다리 떨림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됐다. 

무늬만 교장인 본용 밑에서 온갖 실무와 잡무와 또한 선생의 의무를 넘어서 아이들을 넘치도록 사랑해 주었던 조 선생이었다. 

“2기면 그래도 최악은 아니네요. 천운이에요. 저기 옆 마을 권 씨 할아버지는-.”

그답게 이어진 고 선생의 말에 에스더는 처음으로 도끼눈을 뜨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매서운 시선에 눈치 없기로 유명한 고 선생조차도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그의 눈치 없음과 잘난 척을 적당한 사회적 미소로 무시하며 살아왔던 에스더였지만, 지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그의 말이 아픈 조 선생에게 어떠한 비수로 꽂힐 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선생님, 치료는요? 당장 시작하셔야죠.”

“그래도 후임자가 올 때까지는 어느 정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통원할까 해요. 아직 항암이 필요할지도 잘 몰라서요.”

조 선생의 대답에 에스더는 입을 헤벌렸다. 

조 선생을 끔찍이 아끼는 남편 철호의 반응이 굳이 보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졌다. 

그는 지금 당장 전국에서 최고라 하는 암센터를 찾아서 조 선생을 데려가 그 곁에서 간호할 거라고 길길이 날뛰고 있을 게 분명했다.

“후임자는요, 선생님. 당장 치료받으러 가셔야죠.”

“아니, 그럼-.”

이 세상 누구보다 게으르고, 제 몫을 남에게 떠넘기는 걸 즐기면 즐겼지, 결코 그 이상을 떠맡기를 싫어하는 고 선생이 입을 열자마자 에스더는 다시 한번 시선으로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보나 마나 그는 암 선고를 받은 조 선생 앞에서도 업무 분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위인이었다. 

그동안 조 선생이 도맡아 해온 수없는 희생은 차치하고서.

“황 선생님 말씀이라도 고마워요. 그래도 내가 이 학교 사정 뻔히 아는데-.”

“저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선생님. 선생님이 맡고 계셨던 업무들을 제가 임시로 맡아도 되고요.”

“수술만 하면 회복 기간이 한두 달은 걸릴 거고, 또 수술해 보고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6개월간 항암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조 선생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딸인 유진보다 어린 에스더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고 선생은 당연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그와 함께 일해왔던 조 선생이 그의 성향을 가장 잘 알았으니까.

“교장 선생님께 추가 수당만 말씀해 주세요. 당연히 저도 공짜로 하는 거 아니에요.”

조 선생을 안심시키려 일부러 덧붙인 에스더의 말에 조 선생은 미안함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구멍만 안 나면 다행인 분교 예산에 에스더에게 더 줄 수 있는 예산이라고는 없었다.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을 에스더는 조 선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해준 것이었다.

“일단 남편과 상의해 볼게요.”

“아뇨, 선생님. 철호 아저씨, 분명히 가만히 안 계실 거예요. 계속 조 선생님이 고집 피우시면 아마 밤중에 선생님을 보쌈해서 몰래 병원으로 가실 분이에요.”

“…….”

“한시라도 빨리 가셔서 치료를 받아야 아이들을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보시죠.”

평소에는 밝은 얼굴로 조 선생의 말이라면 순순히 굴던 에스더였으나, 이번만큼은 단호했다. 

“그래도-.”

“저희가 어떻게든 이곳을 지키고 있을게요, 선생님. 그렇죠, 고 선생님?”

에스더의 부름에 화들짝 놀란 고 선생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지못한 끄덕거림의 의미를 잘 아는 조 선생은 다시 한번 걱정의 마음을 담은 시선을 에스더에게로 보냈다.

“어차피 초등학생 아이들 과정이잖아요. 제가 한국말이 좀 짧아도 초등학생 아이들은 가르칠 수 있을 거예요.”

“…….”

“마을 분들도 다 이해해 주실 거예요. 마을 분들 중 조 선생님을 위하지 않는 사람 없으니까요.”

에스더의 못마땅한 시선이 잠시 고 선생에게 머물렀으나, 이내 그녀는 안 좋은 마음을 빨리 지워내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상황은 달라질 게 없었다.

그리고 조 선생이 치료를 위해 잠시 휴가를 가고 나면, 좋든 싫든 에스더는 고 선생과 어떻게든 분담을 해야만 할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게으른 쇠똥처럼 에스더가 굴려주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는 몇 달 동안 할 수는 없을 터였다.

어떻게든 저 인간을 굴려야만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에스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일단 교장 선생님이랑 남편이랑 상의해 보고 알려줄게요-.”

걱정 가득한 조 선생의 음성을 끝으로 셋의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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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미치겠네.”거친 몸짓으로 이불 위에서 돌아누우며 인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미 물이 차오른 통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요 며칠 동안 인협의 불면의 이유였다. “아우씨-.”반복되는 소음에 인협은 거친 몸짓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어렴풋한 달빛을 의지해 그는 벽 한구석을 노려보았다.며칠 동안 이어진 불면에 화가 났으나, 애꿎은 집에다가 화풀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어두운 밤이면, 제 처지가 유독 깊게 느껴지고는 했다. 누가 더럽게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꼭 끼어버린 기분. 다시 오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딘가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X 같네.”이런 감정이 밀려올 때면 인협의 인생 전체가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기분이 들면서, 더 이상 살아도 이런 어두운 터널 속에만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때는 대한민국에 리그 오브 카오스의 2인자였으나, 그 옷을 빼앗겨버린 지금은 뭣도 아닌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늘 훈련에 참석하느라 바빠서 형편없는 성적으로 겨우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이 그의 마지막 방패였다. 세상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판단할 만큼 하찮고 보잘것없는 이름이었다.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날마다 밤낮없이 게임만 해댄 경험은 지금의 인협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다.그 시간 동안 차라리 대학이라도 갈 걸 그랬나. 인협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의 삶의 궤도가 늘 후회스러웠다. 바보같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외길만 파서는. 그렇게 성실하게 외길만 파면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고, 결과로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과거의 자신을 인협은 힘껏 비웃었다. 그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이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다. “미련한 새X.”세상이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을 가장 강하게 손가락질해야 일종의 면죄부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인협은 늘 자괴감이 들 때마다 나서서 자신을 비난했다. 나는 이미

  • 웰컴 투 소원리   17. 각자의 고민

    “끄으응-.”조 선생을 보낸 후, 관사로 돌아온 에스더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관사 부엌과 거실 공간을 서성거리고 있었다.아, 괜히 큰소리친 건가. 조 선생이 맡은 과목은 일단 고 선생이 맡은 수학, 과학, 그리고 에스더가 맡은 영어를 제외한 과목 모두였다. 국어, 사회, 도덕, 음악, 미술, 체육. 게다가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까지. 교장인 본용이 학교에 거의 나오지도 않는 걸 보면 사실상 학교의 모든 업무를 조 선생이 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 조 선생은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학교 관련 업무는 딸인 유진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일곱 과목…. 일곱 과목-.”에스더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을 떠난지라 한국 과정은 잘 기억도 나지 않았고, 애초에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교육 과정이 많이 바뀌었을 터였다. 게다가 소원리 초등학교 특성상, 아이들에 맞춰서 그녀가 준비해야 할 과정은 다양했다. 전교생은 열 명 남짓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골고루 있었다. “아으으-. 그래, 일단 과목 중 두 개 정도는 고 선생님이 맡아주겠지. 사람이라면 말이야.”정말? 힘없고 비열한 드라큘라 백작처럼 생긴 고 선생의 심드렁한 얼굴을 떠올린 에스더는 또 한 번 앓는 소리를 냈다. 안 한다고 해도 그 인간을 어떻게든 설득해 봐야지.그는 당장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걸 충분히 못 견뎌 할 위인이었다. “후우, 그럼 다섯 과목.”예체능만 누구한테 부탁할 수 없나? 에스더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음악과는 정말 연이 없다는 것. 심지어 노래도 못 부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즐기고 좋아하던 조 선생의 음악 교실에는 전자피아노와 노래가 필수였다. 때때로 그녀는 창고에서 사물놀이를 꺼내 와 아이들을 가르치고는 했다. “아-.”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다고 고 선생도 이렇다고 할 음악적인 재능도 없었다. 당장 며칠 동안은 어떻게든 버텨볼 만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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