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1871 - Chapter 1880

1903 Chapters

제1871화

연정미는 침대 머리맡 서랍을 열어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저도 이 일은 꽤 오래전부터 따로 파고 있었어요. 주용화 쪽 눈과 귀를 피해야 해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건질 만한 건 제법 있었거든요. 지금 제 처지가 어떤지는 보현 오빠도 잘 아시잖아요. 지분을 빼앗겨서 상진 오빠처럼 이제는 실권을 잃었어요. 앞으로는 하지율과 맞설 기회조차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니까 이건... 그래도 저를 보러 와 준 보현 오빠한테 드리는 마지막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연정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단보현의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연정미가 건넨 자료는 예상보다 훨씬 가치가 있었다.인정하기 싫어도, 연정미는 단보현이 지금까지 봐 온 여자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머리가 좋은 축에 속했다.‘하지율과 주용화만 없었더라면 연정미가 연씨 가문 가주 자리를 손에 넣는 것도 결국 시간문제였을지 몰라.’집에 도착한 단보현은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단보현은 연정미가 정리해 둔 자료를 하나씩 넘겨 보며 내용을 찬찬히 살폈다.그 자료에 따르면 주용화는 실종됐다가 돌아온 뒤 무려 석 달이나 몸을 추슬러야 했다고 했다.그 정도면 당시 입은 상처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그리고 연정미는 그 시점에서 석 달쯤 지난 뒤의 일도 함께 조사해 두었다.늘 내전과 분쟁이 끊이지 않던 어느 작은 나라에서, 현지 군벌 가문 몇 곳이 거의 동시에 몰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은 사건이었다.죽은 방식도 지나치게 참혹했다. 누가 봐도 보복성 살해로 보일 만큼 흔적이 노골적이었다.연정미는 그 사건이 주용화와 관련됐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물론 어디까지나 정황에 근거한 추측일 뿐이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지금 와서 확실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다만 연정미가 따로 조사한 행적을 보면 그 세력이 얼마나 악질적인 인간들이었는지는 분명했다.삼각지대에서 이름을 날린 소씨 가문 형제와 비교해도 될만한 부류였다.연정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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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2화

단보현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몸을 굳혔다.“주... 주용화 씨, 당신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죠?”주용화는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 느긋하게 웃었다.쉰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깔린 서늘한 기운은 조금도 감춰지지 않았다.“당연히 두 발로 걸어서 들어왔죠. 다만 단씨 가문 경비가 생각보다 촘촘하더라고요. 보현 씨 한 번 보러 오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단보현은 주용화가 보통 상대가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손형원이 그렇게까지 무너진 것만 봐도 충분했다.손형원 역시 밑바닥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겪으며 올라온 사람이었지만, 주용화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하지만 그 사실을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피부로 체감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단씨 가문 대저택은 경비가 허술한 곳이 아니었다.감시 카메라가 사방에 깔려있어서 외부인이 드나들 틈이라곤 거의 없었다.그런데 그런 대저택에, 그것도 서재 한가운데 주용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났다는 사실에 단보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단보현은 주용화를 노려보며 물었다.“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보현의 한 손은 이미 책상 아래 숨겨 둔 권총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주용화는 그 움직임까지 전부 보고 있다는 듯 단보현을 보며 옅게 웃었다.“저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직접 물어보셨어야죠. 왜 굳이 남 손을 빌려 뒤를 캐세요? 남에게서 쉽게 얻은 자료는 진실과 어긋나기 마련일 텐데...”단보현의 얼굴이 무겁게 굳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불길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기어올랐다.단보현은 애써 표정을 다잡고 다시 물었다.“용화 씨, 굳이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이유가 뭐예요?”주용화의 미소가 점점 옅어졌다.“조용히 좀 살면 안 되나요? 왜 굳이 죽을 길을 고르세요. 단종건 어르신 체면을 봐서 지금까지 참아 드린 건데, 설마 제가 계속 참기만 할 거로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단보현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제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당신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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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3화

단보현도 기본적인 격투와 호신술 정도는 익혀 둔 사람이었다.하지만 주용화나 손형원처럼 피를 밟고 올라와 가주 자리에 오른 부류와는 애초에 결이 달랐다. 실전에서 사람을 짓밟고 버텨 온 자들과 단보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무엇보다 주용화가 이렇게 단씨 가문 대저택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 단보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단보현은 상황을 인지한 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 방법이 필요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주용화가 품 안에서 권총 하나를 꺼냈다.단보현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주용화, 당신...”단보현이 겨우 두 글자쯤 뱉었을 때였다.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총알 하나가 단보현의 몸에 박혔다.하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살을 찢는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단보현은 순간 굳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맞은 것이 실탄이 아니라 마취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약물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고, 몸에 힘이 빠지면서 무릎이 휘청였다.단보현은 테이블을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끝내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다음 순간, 단보현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정신을 잃고 있던 단보현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몇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철창이었다.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단보현은 자신이 철창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단보현이 주변을 살피려던 순간이었다. 문득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짐승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단보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그제야 단보현은 바로 옆 철창에 사자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단씨 가문의 가주로서 웬만한 일에는 쉽게 동요하지 않던 단보현이었지만, 바로 옆에 사자와 함께 갇혀 있는 상황에서까지 태연함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그때 지하실 문이 열렸다.익숙한 실루엣이 천천히 모습을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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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4화

어둑한 빛 아래서 주용화의 수려하고 섬세한 이목구비는 한없이 무해하고도 순진해 보였다.“더 참으라고 하면 저도 정말 미쳐 버릴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보현 씨가 제 심리 치료를 좀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보현 씨도 함우민 손에 한 달 넘게 붙들려 있었으니, 이런 쪽으로는 나름대로 경험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여기 머무시는 동안 필요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씀하세요.”단보현은 이를 악물었다.“언제까지 저를 여기 가둬 둘 생각입니까?”주용화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하는 척하더니, 이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 마음의 병이 다 나을 때까지요. 다만 저는 공평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보현 씨가 정말 능력이 있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실 수만 있다면, 그때는 저도 미련 없이 한 번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그 말을 듣는 순간 단보현은 심장이 저릿했다.함우민에게 납치당했을 때는 잠깐 방심한 틈을 타 빠져나갈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주용화는 그런 허술한 실수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주용화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조차,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주용화가 의도적으로 풀어 준 결과였을 가능성이 컸다.단보현의 시선이 천천히 옆 철창 안으로 향했다.그 안에는 아까부터 자신을 노려보던 사자가 웅크리고 있었다.주용화가 굳이 이곳에 사자까지 들여다 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단보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설마 정말 저 짐승의 입에 나를 먹이로 던져 넣을 생각인 걸까?’그때 단보현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주용화가 다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보현 씨가 제 과거를 알고 싶어 하셨으니, 이번에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남이 알아 온 이야기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는 법이니까요. 차라리 직접 겪어 보시는 편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겁니다.”주용화는 가볍게 손뼉을 두 번 쳤다.그러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가 곧장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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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5화

단보현이 손에 쥔 장도는 저 거대한 맹수 앞에서 너무도 무력했다.사자가 앞발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단보현의 칼을 멀찍이 날려 버렸다.단보현은 바닥을 구르며 가까스로 몸을 피한 뒤, 곧바로 긴 봉 하나를 집어 들고 다시 맞섰다.하지만 사자의 발톱은 상상 이상으로 날카롭고 강했다.사자가 앞발을 한 번 휘두른 순간, 단보현의 얼굴에서 살점이 크게 뜯겨 나갔다.순식간에 피가 얼굴을 뒤덮었고 상처가 난 반쪽 얼굴에서는 피가 쏟아지듯 흘러내렸다.그러나 짙은 피 냄새는 오히려 사자를 더 흥분시켰다.사자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더니, 그대로 단보현의 목을 물어뜯으려 몸을 낮췄다.그 순간 철창 밖에서 주용화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무 약하네요. 정말 형편없을 정도로 약합니다. 저렇게 손에 익힐 만한 무기가 널려있는데도 겨우 잠깐밖에 못 버티다니.”그 뒤에 서 있던 유민재는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등줄기는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주용화 곁에서 수년을 지내 온 유민재였지만, 주용화가 N국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들은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아마 그 일들은 진소현이나 남시온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그 기억들은 분명 최면으로 봉인돼 있던 과거였다.그런데 주용화가 지금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고 있다는 건, 어쩌면 이미 기억을 되찾았다는 뜻일지도 몰랐다.“보현 씨를 저대로 죽게 둘 거야?”유민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바로 부하에게 지시해 사자를 향해 마취총을 몇 발 쏘게 했다.금방이라도 단보현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 날뛰던 사자는 약효가 돌자마자 그대로 휘청거리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주용화는 흥미를 잃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시시하군요.”주용화는 철창 안을 한 번 내려다본 뒤 무심하게 말을 덧붙였다.“의사 불러서 단보현 씨 제대로 치료받게 해.”주용화가 완전히 자리를 뜬 뒤에야 유민재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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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6화

모든 일이 끝난 뒤, 하지율은 깊은 잠에 빠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바깥이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하지율은 휴대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가 벌써 밤 11시라는 걸 깨달았다.하지율은 피곤한 듯 미간을 문질렀다.설마 주용화와 오후 내내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 줄은 몰랐다.주위를 둘러보니 주용화는 방 안에 없었다.요즘 주용화는 어딘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하지율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하지율은 분명 주용화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침대 위에서였다.처음처럼 한없이 조심스럽고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봉인과 제한이 풀린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침없어졌다.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 몇 통과 읽지 않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하지율은 하나씩 확인하다가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정기석이 전화를 걸어 온 걸 보았다.하지율이 전화를 받지 않자 정기석은 문자도 남겨 두었다.[지율 씨, 바쁘지 않으면 전화 좀 줘요.]하지율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꽤 늦은 시간이라 정기석이 잠들었을지도 몰랐다.잠시 생각한 뒤, 하지율은 정기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미안해요. 아까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네요. 무슨 일이 있나요?]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기석에게서 답장이 왔다.[지율 씨, 지금 통화 괜찮아요?]하지율은 답장했다.[괜찮아요.]곧 정기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지율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 안 잤어요?”하지율은 방금 깼다고 말하기가 민망해서 대충 얼버무렸다.“네. 아직 별로 안 졸려서요.”정기석은 더 캐묻지 않고 대신 부드럽게 물었다.“지율 씨, 얼마 전에 단씨 가문에 일이 생긴 거 알고 있어요?”그러자 하지율이 되물었다.“단씨 가문이요? 무슨 일이요?”정기석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단보현이 갑자기 실종됐어요.”“실종된 지는 얼마나 됐어요?”“오래되진 않았어요. 하루 정도...”그러자 하지율이 말했다.“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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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7화

“화야 씨?”“네.”문가에 서 있던 주용화가 짧게 대답하더니 이내 천천히 걸어왔다.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어둠 속에서 희미한 조명이 남자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그 탓에 주용화의 모습은 더욱 음침하고 어둡게 보였다.하지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 이상한 위화감이 또다시 밀려왔다.“화야 씨, 아까 어디 갔었어?”주용화는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내밀었다.“깨어나면 목마를까 봐 물 가지러 갔어요.”하지율은 물컵을 받으며 말했다.“언제 들어왔어요? 들어왔으면 말이라도 하죠.”하지율은 작게 투덜거렸다.“방금 갑자기 문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잖아요.”주용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지율 씨가 통화한 지 얼마 안 돼서 들어왔어요.”주용화의 시선이 하지율에게 머물렀다.“근데 통화에 너무 집중하느라 제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은 거겠죠.”하지율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정기석에게 단보현의 실종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지율은 확실히 정신이 그쪽으로 쏠려 있었고 문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났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방 안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일까.주용화의 눈동자는 검은 안개가 가득 찬 것처럼 짙고 깊어 보였다.그 시선은 한순간도 하지율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하지율은 왠지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싶어졌다.하지율은 어색함을 감추려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때 주용화가 조용히 물었다.“내일 정기석 씨를 만나는 거예요?”그러자 하지율의 손이 잠시 멈췄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기석 씨랑 너무 오랜만이라서요.”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덧붙였다.“화야 씨도 내일 별일 없으면 같이 갈래요?”주용화의 입가가 느릿하게 휘어졌다.“좋아요.”주용화가 선뜻 승낙하자 하지율은 왠지 모르게 안도했다.단보현의 실종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주용화가 손을 뻗었다.눈처럼 희고 긴 손가락이 하지율의 입가를 스쳤다.주용화는 하지율의 입술 끝에 남은 물기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참으로 부드럽고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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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8화

하지율의 마음속을 스치는 듯한 미묘한 의문이 떠올랐다.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너무 순식간이라 붙잡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하지율은 너무 지치고 피곤했다.몽롱한 정신으로는 그 어색함의 정체를 곱씹을 여유조차 없었다.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듯, 주용화가 하지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이불을 정성스럽게 끌어 올려 덮어주었다.“자요. 제가 오후에 깨워드릴 테니 외출 일정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하지율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눈을 감자마자 다시 잠들었다.주용화는 그런 하지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주용화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고 검은 눈동자 아래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천천히 떠올랐다.주용화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하지율을 깨워줬다.정기석과의 약속은 저녁이었다.오후 내내 충분히 쉰 덕분에 하지율은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고 전날처럼 기운이 빠진 상태도 아니었다.두 사람이 정기석을 만나러 출발하려던 순간, 하지율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인은 단종건이었다.“지율아, 너랑 주용화 그 녀석 지금 잠깐 나한테 올 수 있겠어?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하지율은 어젯밤 정기석이 말했던 단보현 실종 사건을 떠올렸다.그 늦은 시간에 굳이 전화를 걸었던 건, 분명 무언가를 암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알겠어요. 화야 씨랑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뒤 하지율은 곧바로 정기석에게 연락했다.단종건이 자신을 찾는다고 하자 정기석은 곧바로 말했다.“저도 단 어르신을 뵌 지 오래됐네요.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죠?”하지율은 잠시 멈칫했다.“네. 괜찮아요.”그들은 단종건의 저택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약 40분 뒤, 하지율과 주용화는 단종건의 저택에 도착했고 정기석은 이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정기석은 두 사람을 보자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지율 씨, 화야 씨, 오랜만입니다.”주용화도 미소를 지었다.“기석 씨, 오랜만이네요.”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세 사람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단종건을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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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9화

주용화는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가사도우미들이 단보현 씨가 돌아오는 걸 봤고 물건들도 전부 서재에 있었다면... 단보현 씨는 높은 확률로 집 안에서 사라진 겁니다.”단종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단씨 가문 저택은 경비가 삼엄해. 설령 누군가 숨어 들어왔다 해도 멀쩡한 사람 하나를 아무도 모르게 저택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단종건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감시카메라가 망가졌다고 해도 단씨 가문에는 사람이 많아. 상대가 단씨 가문 사람들을 전부 처리할 수는 없었을 테고 결국 누군가의 눈에 띄었어야 해. 그렇다면 상대는 어떻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보현을 납치한 거지?”주용화는 고개를 들어 단종건을 바라봤다.“단 어르신께서 계신 이 저택에도 밀실이나 비밀 통로 같은 게 있지 않아요?”그러자 단종건은 순간 눈빛이 가라앉았다.단종건은 이미 주용화의 뜻을 알아차렸다.주용화가 계속 말했다.“단씨 가문 같은 대가문이라면 반드시 외부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있을 겁니다. 위급한 상황에 도망치거나 몸을 피하기 위해서죠. 상대가 단씨 가문의 비밀 통로를 통해 숨어 들어왔다면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가능했겠죠.”단종건은 깊은 눈빛으로 주용화를 바라봤다.“용화야, 넌 확실히 영리하구나.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곳까지 짚어내네.”주용화는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잔재주가 조금 있을 뿐입니다.”단종건의 말투에는 묘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네 머리가 잔재주라면 이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없겠지.”그러다가 단종건은 말끝을 돌렸다.“하지만 대가문마다 자기들만 아는 비밀 통로가 있다고 해도 단씨 가문의 밀도를 풀고 보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아.”단종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이 세상에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건 너처럼 머리가 비상한 사람뿐일지도 모르지.”주용화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단 어르신께서 저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단종건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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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0화

단성훈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주용화 씨, 정말 사실을 뒤집는 데는 선수시군요. 삼촌을 납치한 건 분명 주용화 씨인데 그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 하다니요!”단성훈은 이를 악물고 주용화를 노려봤다.“제가 주용화 씨의 속셈을 모를 줄 압니까? 이 일을 제게 뒤집어씌워 단씨 가문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고 당신은 뒤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거잖아요!”주용화는 웃었다.“단성훈 씨, 제가 알기로 당신은 단씨 가문에서 실권을 쥐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정말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면 왜 차기 가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겠습니까? 굳이 단성훈 씨에게 뒤집어씌워서 제가 얻을 이득이 뭐죠?”단성훈은 단보현만큼 침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었다.단성훈은 주용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하지율 씨를 위해 복수하려는 거잖아요?”주용화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복수요? 무슨 복수 말이죠? 단성훈 씨가 지율 씨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한 적 있습니까?”그 순간 단성훈은 주용화를 확실히 몰아붙이기 위해 더 이상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단성훈은 주용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해의 일을 그대로 폭로했다.“주용화가 저를 미워하는 건, 제가 예전에 하지율 씨의 신뢰를 일부러 얻은 뒤 생일 파티에서 하지율 씨와 한방에 있게 했고 그 일로 하지율 씨의 명예를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용화는 저한테 복수하려고 삼촌을 납치하고 그 죄를 저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겁니다! 목적이 너무도 뻔하지 않아요?”단씨 가문 가주 납치와 명예 훼손은 죄의 무게가 전혀 달랐다.만약 주용화의 말이 사실로 굳어져 버린다면 단성훈은 단씨 가문의 죄인이 될 것이다.어쩌면 가문에서 제명될 수도 있었다.하지만 단성훈의 말이 끝난 뒤, 현장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예전에 하지율은 단종건에게 단성훈이 자신의 명예를 망가뜨린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단성훈이 끝까지 발뺌했고 하지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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