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1891 - Chapter 1900

1903 Chapters

제1891화

“게다가 지율 씨의 실종과 위장 사망까지 겹치면서 예전에 진행했던 최면 치료가 효과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용화 씨를 치료할 방법은 다시 최면을 거는 것뿐입니다.”여기까지 말한 진소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 입가에는 자조가 섞인 옅은 웃음이 스쳤다.“용화 씨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아마 저희보다도 훨씬 일찍 자기 상태를 알아차렸을 겁니다. 그래서 끝까지 숨기기로 한 거겠죠. 용화 씨가 자기 병을 모를 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저희보다 자기 상태를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겁니다.”진소현은 천천히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주씨 가문의 유전병은 처음부터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역대 가주들은 모두 증상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치료법이나 진행을 늦출 방법을 찾으려 했어요. 용화 씨도 병을 숨기기로 결심한 순간에는 유일한 치료법이 최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시 최면을 받고 싶지 않았겠죠. 지율 씨를 잊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모두를 속이는 쪽을 선택했을 겁니다.”하지율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렇지만 계속 숨긴다고 해서 화야 씨한테 좋은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병만 더 악화할 텐데요. 화야 씨처럼 똑똑한 사람이 그걸 모를 리도 없고요.”진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용화 씨도 지율 씨와 함께하고 싶을 테니, 이대로 병이 더 악화하도록 둘 수는 없었겠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다른 방법이요? 무슨 방법인데요?”진소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지율 씨는 용화 씨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끼지 못하셨나요?”하지율은 순간 숨이 멎는 듯 몸이 굳어졌다. 진소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되면서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이어진 진소현의 설명은 하지율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용화 씨는 스스로 더는 자극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챘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이나 사람을 미리 없애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은 함우민 씨였고, 그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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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2화

하지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최면 말고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진소현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의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도 처음에는 용화 씨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젊었고 자신감도 넘쳤어요. 무엇을 배우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고 용화 씨 역시 제가 반드시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주씨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치료법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죠.”진소현은 시선을 떨군 채 잠시 말을 멈췄다.“하지만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깨달은 건, 제 노력이 결국 아무 소용도 없었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결국 다시 주씨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던 치료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최면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입니다. 게다가 용화 씨가 최면을 받겠다고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최면은 처음보다 훨씬 어려운 데다 용화 씨가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요.”진소현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그러니 지율 씨가 정말 최면 치료를 결심하신다면 저보다 훨씬 뛰어난 최면 전문가를 찾아야 합니다. 최면은 원래부터 주씨 가문에서 계속 이어져 온 치료법입니다. 반대로 지율 씨가 용화 씨와 함께해 온 비최면 치료는 제가 직접 연구해서 만든 치료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방법도 무의미해졌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제 말을 믿기 어려우시다면 용화 씨 곁에 있는 최 교수님께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최 교수님은 용화 씨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분이니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예전의 진소현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길게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진소현은 믿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소현은 자신의 자존심이나 감정 때문에 주용화의 병을 외면할 수 없었다.하지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진소현은 주용화의 오랜 인연과 한때 부부였던 과거 때문에 하지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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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3화

“그리고 주씨 가문의 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치열한 경쟁과 압박을 견뎌야 합니다. 그 자리에 앉을 때쯤이면 이미 정신 상태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외부 자극까지 더해지면 무너지거나 폭주할 확률도 커질 수밖에 없겠죠.”정기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거기에 주씨 가문 사람들은 유전자 자체에 결함을 안고 있으니, 역대 가주마다 정신 질환에 걸리는 듯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반대로 가주가 되지 못한 평범한 주씨 가문 사람들은 왜 대체로 무사한지도 설명할 수 있겠죠. 그들은 그런 경쟁에 끼어들 필요도, 피를 묻힐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하지율의 마음 한편에 희미한 희망이 피어올랐다.“기석 씨는 화야 씨의 병이 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세요?”정기석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율 씨, 그 질문에는 대답드리기가 어렵네요. 전부 제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게다가 누나의 일 때문에 제가 주씨 가문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정기석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물론 저도 주씨 가문 사람들의 병을 나름대로 조사하고 연구해 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걸 단순히 유전적인 병이라는 말로만 정리하는 건 지나친 축소 해석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오히려... 타고난 본성에 가깝다고 봅니다.”하지율은 나직이 되뇌었다.“본성이요?”정기석이 말했다.“어쩌면 그 모습이 원래의 주용화 씨일지도 모릅니다.”하지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기석은 다시 물었다.“만약 그게 원래의 주용화 씨라면... 지율 씨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지난번 만남 이후에도 정기석은 주용화가 자신에게 했던 경고를 하지율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율에게 따로 주의를 주지도 않았다.주용화가 어떤 사람인지를 평가하기에는 개인적인 추측과 주씨 가문을 향한 편견이 섞여 있었다. 그렇기에 정기석은 하지율에게 확실한 조언을 건넬 수 없었다.하지율의 혼란을 눈치챈 듯, 정기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실은 주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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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4화

유소린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지율아, 일단 같이 가 볼래?”하지율은 강병주와 심다희를 이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주용화의 병에 대해 알아보느라 두 사람과 만날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게다가 강병주와 심다희는 주용화가 말했던 것처럼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이 아니었다. 서두를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그래서 하지율은 두 사람이 갑자기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소린이가 혼자 처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던 거구나. 정말 쉽게 결론 내릴 일이 아니네...’하지율은 곧바로 말했다.“주소 보내 줘. 바로 갈게.”유소린에게 주소를 받은 하지율은 서둘러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그때 마침 주용화가 밖에서 돌아왔다.주용화는 걸음을 멈추고 하지율을 바라봤다.“지율 씨, 어디 나가세요?”하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네. 병주 선배랑 다희한테 일이 좀 생겼대요. 소린이가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제가 가 보려고요.”주용화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무슨 일인데요?”하지율은 난처한 표정으로 에둘러 말했다.“선배랑 다희가...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하지율은 지금도 강병주와 심다희가 어떻게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주용화는 길게 내려온 속눈썹 아래로 눈빛을 감춘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부탁드릴게요.”30분쯤 뒤, 하지율과 주용화는 현장에 도착했다.미리 연락을 받고 현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소린은 하지율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하지만 유소린은 이미 객실 밖에서 발이 묶인 상태였다.복도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취재용 카메라를 든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하지율은 기자들을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곧바로 자신을 경호하던 경호원들에게 사람들을 밖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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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5화

하지율은 복잡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선배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다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심다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선배도 저 때문에 휘말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일에 대해 선배가 책임지실 필요는 없어요.”하지만 유소린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그래도 이미 일이 너무 커졌잖아. 기사도 다 퍼졌고 사람들도 다 알게 됐어. 두 사람이 연인이라고 인정하면 그나마 괜찮아질 수도 있지만, 그냥 여기서 끝내 버리면 너만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어.”지금 상황은 사실상 여론이 사건 현장을 덮친 것이나 다름없었다.유소린은 답답한 듯 혀를 찼다.“다희야, 네 그 가식적인 친구는 진짜 독하기도 하다. 너 하나 제대로 망신 주려고 작정한 거잖아.”세상은 아직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더 가혹했다.심다희가 연재영과 파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른 남자와 호텔에 들어간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설령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쉽게 믿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연인 사이라면 그나마 이해하려고 하겠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얼마나 험한 말들이 쏟아질까...’하지율은 강병주를 바라봤다.“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강병주는 하지율과 눈을 마주한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긴 침묵 끝에 강병주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는... 책임지고 싶어.”강병주는 천천히 심다희를 바라봤다.“다희야, 나랑 결혼해 줄래?”다음 날, 강씨 가문은 심씨 가문과의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깊은 밤, 어둠이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가느다란 여인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에 희미하게 어른거렸다.김경환의 안내를 받은 하은아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객실 안에는 젊고 수려한 외모의 남자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남자는 두통을 참는 듯 눈을 감은 채 미간을 가볍게 문지르고 있었다.느긋한 자세였지만 몸짓 하나하나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배어 있었고, 존재감만으로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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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6화

강병주와 심다희의 일은 일단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마무리됐다.하지만 하지율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유소린은 하지율의 표정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율아,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원래도 선배랑 다희를 이어 주려고 했었잖아.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됐으니 좋은 일 아니야?”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두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함께하게 된 거라면 분명 좋은 일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한 선택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마냥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유소린은 하지율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하지율과 고지후 역시 처음에는 서로 사랑해서 시작한 관계가 아니었다. 상황에 떠밀려 맺어진 관계였기에 서로에 대한 마음도 없었다.유소린이 부드럽게 말했다.“그래도 선배랑 다희는 우리 둘 다 오래 봐 온 사람들이잖아. 두 사람 인품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고. 무엇보다 선배나 다희는 과거 문제도 없잖아. 고지후랑 임채아 때처럼 골치 아픈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다희 입장에서도 선배와 결혼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인 건 맞아.”유소린은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잊지 마. 지금 연정미는 다희 새언니가 될 사람이잖아. 게다가 아이까지 가졌고. 혹시라도 연정미가 다희 오빠한테 무슨 말이라도 하면 다희만 곤란해질 수도 있어. 그런 걸 생각하면 이번 일은 오히려 잘된 거라고 봐.”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간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그런데도 이상해.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번 일은 뭔가 석연치가 않아.”유소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뭐가?”하지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딱 집어서 설명은 못 하겠는데... 자꾸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유소린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됐어. 이제 남 일은 그만 신경 쓰고, 너랑 화야 씨 결혼식이나 차질 없이 준비해야지.”주용화 이야기가 나오자, 하지율의 표정은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오랜 세월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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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7화

손 수술을 받은 뒤로 하지율은 오랫동안 직접 요리를 하지 못했다. 특히 주용화를 위해 식사를 챙기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하지율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채소를 다듬고 재료를 손질한 뒤 하나씩 볶아 나갔다. 어느새 집 안에는 따뜻한 음식 냄새가 가득 퍼졌다.마지막 요리까지 식탁에 올려놓은 하지율은 시간을 확인했다.‘화야 씨도 이제 곧 오겠지...’그렇게 생각한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주용화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본 주용화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식탁 앞으로 다가섰다. 하나하나 음식을 살펴본 주용화가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오늘은 어떤 음식을 준비해 주신 거예요?”주용화는 분위기를 깨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평소 같았으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하지율의 손을 걱정해 절대로 부엌에 서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하지율이 정성껏 음식을 다 준비한 이상, 하지율을 위한다는 이유로 마음을 상하게 할 말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하지율은 주용화가 조금도 놀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화야 씨, 또 경호원한테 제 일정을 미리 들으신 거예요?”주용화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지율 씨 반지에 있는 위치 정보를 보고 알았어요.”“...”하지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그게 그거잖아요.’하지율은 작게 투덜거렸다.“앞으로는 화야 씨한테 서프라이즈도 못 하겠어요.”주용화는 다가와 하지율을 품에 안았다.“저는 지율 씨만 볼 수 있으면 하루하루가 서프라이즈예요.”하지율은 더는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우선 식사부터 해요. 조금 있으면 음식이 다 식겠어요.”“그래요.”식사하는 동안 하지율은 주용화의 병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평소처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저녁을 마쳤다.식사를 마친 뒤 하지율이 주용화를 바라보며 말했다.“화야 씨, 잠깐 저를 따라오실래요?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주용화는 하지율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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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8화

주용화는 언제나 분위기를 깨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하지율의 기대를 누구보다 잘 헤아렸고 바라는 반응과 인정도 아낌없이 건넸다.그래서 하지율은 늘 주용화가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품에 안은 채 온기를 나눴다.그러다 하지율이 먼저 입을 열며 고요한 침묵을 깼다.“화야 씨... 지금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주용화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괜찮아요.”하지율은 고개를 들어 조각 같은 주용화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화야 씨,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병이 더 심해진 거 맞죠? 전에 서재에서 기록하고 계시던 일지도... 병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거예요?”주용화의 눈빛이 깊어졌다.주용화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살짝 숙여 하지율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띤 채 말했다. 하지만 깊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기색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지율 씨는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누가 이상한 이야기라도 했나요?”하지율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주용화가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이미 여러 번 주용화에게 속마음을 들켜 본 하지율은 예전처럼 무턱대고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하지율은 침착하게 말했다.“화야 씨, 저 그렇게 둔감하지 않아요. 화야 씨가 말해 주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고요.”하지율은 말을 마치며 주용화의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목소리도 한결 부드럽고 다정해졌다.“만약 소현 씨가 제안한 치료 방법이 효과가 없다면 다른 치료법을 함께 찾아봐요. 더 뛰어난 전문의를 찾아보는 것도 좋고요. 화야 씨, 저희 이제 곧 결혼하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거고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저는 언제나 화야 씨 곁에 있을게요. 끝까지 함께 병을 치료해 나가요. 네?”주용화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칠흑처럼 짙은 검은 눈동자는 그저 조용히 하지율만 바라보고 있었다.하지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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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9화

정시온은 원래부터 강한 아이라서 좀처럼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그런 정시온이 울고 있다는 사실에 하지율은 곧바로 다급하게 물었다.“시온아,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었어?”정시온은 훌쩍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이모... 저, 곧 떠날 것 같아요. 거기로 가면... 이제 다시는 이모를 못 만날지도 몰라요...”하지율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떠난다고? 어디로?”정시온은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요즘 집에 낯선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요. 아빠는 제 친아빠가 아니고, 자기들이 제 친가 쪽 가족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진짜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어요. 아빠는 절 보내려고 하지 않는데... 그 사람들은 매일 집으로 찾아와 아빠를 괴롭히고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정시온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저는 가기 싫어요. 하지만 아빠한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정말 아빠가 제 친아빠가 아니라면... 그냥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하지율은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시온이 친부 쪽 가족이라면... 주씨 가문이라는 뜻이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주씨 가문에서 시온이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지?’하지율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시온아, 울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이모가 지금 바로 갈게.”상대가 수적으로 우세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지율은 나현우와 강원희는 물론, 실력이 뛰어난 경호원들까지 데리고 정씨 가문으로 향했다.연경 그룹에서 하지율의 입지가 높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었다.게다가 이곳은 연씨 가문의 영향력이 닿는 M국이었다.적어도 M국에서만큼은 하지율이 정기석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정기석이 그동안 하지율을 여러 번 도와줬으니, 이제는 하지율이 그 은혜를 갚을 차례였다.하지율은 사람들을 이끌고 빠르게 정씨 가문에 도착했다.하지율은 처음에는 정시온을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무력을 사용할 생각으로 찾아온 줄 알았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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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0화

주용화가 도착하자 하지율은 정시온에게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하지율은 대문 앞에서 간절히 애원하고 있는 노부인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화야 씨, 저분 아세요? 정말 주씨 가문 사람이 맞나요?”주용화는 하지율의 시선을 따라 노부인을 바라봤다.“네. 알고 있습니다. 셋째 숙모님이 맞아요.”주대현은 주씨 가문의 핵심 인물이었던 만큼 노자현 역시 주용화와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였다.하지율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온이를 정씨 가문에서 키우라고 한 건 시온이 아빠가 직접 남긴 뜻이었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분이 이제 와서 시온이를 데려가겠다고 찾아오셨어요. 기석 씨는 시온이 때문에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고...”잠시 말을 멈춘 하지율은 주용화를 바라봤다.“그동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시온이를 친자식처럼 키워 왔잖아요. 그러니 기석 씨는 시온이를 주씨 가문으로 보내는 일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실 거예요. 아무래도 같은 주씨 가문 사람이시니까... 화야 씨가 말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하지율에게는 노자현 일행을 내보낼 방법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주용화의 친척들이었기에 하지율은 일을 너무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주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주용화는 곧 하지율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노부인 앞으로 걸어갔다. 옅은 미소를 띤 주용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셋째 숙모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주용화의 목소리를 들은 주대현의 어머니 노자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앞에 선 주용화를 바라봤다.노자현은 주용화보다 훨씬 연상이었지만, 주용화를 마주한 순간 어른다운 여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가... 가주님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주용화는 옅게 미소 지었다.“친구한테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한 번 와봤습니다.”주용화는 정씨 가문 쪽을 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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