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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apítulo 521 - Capítulo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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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하원영은 주시언의 맑고 반듯한 얼굴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아직 얼굴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안경을 벗은 눈매는 보기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아릴 만큼 부드러웠다.지금껏 수많은 남자의 눈을 봐왔지만, 주시언의 눈만큼은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방법이 뭔데?”주시언이 진지하게 묻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 방법이란 결혼이었다.주시언과 결혼한다면 하씨 가문에서 명분 있게 벗어날 수 있었다. 부모의 간섭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집안이 그녀의 연애와 혼사를 필사적으로 막아온 이유도 결국 그것 때문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해원시에서 하씨 가문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상대는 주씨 가문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시언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결혼 상대였다.어릴 때부터 하씨 가문은 주시언을 경계했다. 그들은 하원영에게 끊임없이 주입했다. 주시언은 절대 네 곁에 머물 사람이 아니라고. 주씨 가문에 기대려 해 봤자 망신만 당할 뿐이라고.겉으로는 당차 보였지만 사실 하원영은 겁이 많았다. 특히 감정 문제에서는 더더욱 그랬다.주시언이 지금처럼 다정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마음 흔들릴 틈조차 주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를 의식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왜 대답이 없어?”답을 기다리던 주시언이 다시 물었다.“내가 도와줄 일 있어? 말만 해. 뭐든 최선을 다할게.”주시언이라면 정말 말한 대로 할 사람이었다. 설령 가짜 결혼이라 해도 부탁하면 끝내 들어줄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다정한 눈빛을 마주하자 혀끝까지 올라왔던 말이 다시 목구멍 안으로 가라앉았다.두 사람의 오랜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주시언은 자신이 하원영의 불안을 전부 채워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그녀를 위해 달려와 주었다. 온몸에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매번 그랬다.그를 생각하자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예전에도 그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때와 달랐다.한 발 다가가면 관계가 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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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주시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원영이 자신을 집요하게 매달리는 사람으로 여길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그의 입에서 ‘오해’라는 말이 거듭 나오자, 하원영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주시언은 급히 화제를 돌리며 아까 다 하지 못한 질문을 이어갔다.“또 다른 방법은 뭔데?”하원영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방법은 하나 더 있어요. 내가 결혼하는 거.”주시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하원영이 먼저 그의 팔을 톡 건드렸다.“그러니까 주시언 씨, 혹시 괜찮은 사람 있으면 알아봐 줄래요? 나 좀 소개해줘요.”“조건은 까다롭지 않아요. 딱 하나면 돼요. 해원시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사람. 적어도 우리 집안이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어야 해요.”하원영은 웃고 있었지만, 주시언은 말 한마디마다 가슴을 얻어맞는 기분이었다.그는 잠시 굳어 있다가,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사람처럼 물었다.“그럼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도 다 결혼하려고 만난 거였어?”“그렇죠.”하원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그럼, 그 남자들한테는 아무 감정도 없었던 거야?”주시언이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당연하죠. 내가 사랑에 눈먼 애도 아니고,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감정이 생기겠어요?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이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 리도 없고.”주시언은 이를 악물었다. 가슴속에 오래도록 얹혀 있던 답답함이 훅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에 밀려온 감정은 몹시 씁쓸했다.“그럼 왜 지난 몇 년 동안은 결혼 상대를 안 찾은 거야?”그가 사고를 당한 뒤로 하원영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었다. 한때 주시언은 하원영이 지난날의 방황을 끝내고 정신을 차린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기도 했다.“마땅한 사람을 못 찾았거든요. 전에는 어려서 몰랐는데, 다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무너지더라고요.”상대는 겁이 많아 집안의 압박에 금세 도망치거나, 힘이 없어 조금만 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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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하원영은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채, 당황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창밖에서 쏟아진 햇살이 두 사람의 옆모습을 따스하게 감쌌다. 주시언이 성큼 다가와 몸을 살짝 숙이자, 하원영 앞에 내려앉아 있던 햇빛이 반쯤 가려졌다.달빛처럼 맑고 깨끗하기만 하던 예전의 주시언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곁에도 어둠이 스며 있었다.하원영은 숨을 들이켜며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오빠...”“가짜 결혼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건 싫어.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결혼하면 네 고민은 해결될 거야. 그냥 결혼하자.”주시언은 하원영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볍게 가져다 댔다. 어젯밤 생긴 멍은 제법 가라앉아 희미한 흔적만 남았지만 햇빛 아래에서는 아직도 선명하게 보였다.“잠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설마 아직 나한테...”하원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주시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돕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다른 마음이 있는 건지 말이다.주시언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뺨에서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오해하지 마. 너를 이용하려는 것도 아니고, 평생 너랑 함께하겠다는 뜻도 아니니까.”“그냥 나는 지금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아버지는 계속 결혼하라고 성화시잖아. 어차피 우리 둘 다 당장 마땅한 상대를 찾기도 어려우니, 서로 돕고 사는 건 어때?”말을 마친 주시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는 곧바로 사라졌다. 속은 이미 씁쓸한 감정으로 엉망이었다.방금 전 하원영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감정 조절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이미 얼굴을 굳힌 채 하원영을 몰아세우며 따졌을 것이다.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을 쏟았는데,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했다.그런데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주시언은 하원영을 향한 마음이 진작 정리되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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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강지현은 곧바로 하석철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원영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주시언이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하원영의 부모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주단우와 하원영이 회사에서 정면으로 부딪치며 큰 소란을 일으킨 터라, 하씨 가문 사람들이 그 일을 빌미로 하원영을 몰아세울 가능성이 컸다.강지현은 하마터면 엄경미를 놓칠 뻔했다. 하원영은 이미 주시언 일로 엄경미의 심기를 건드린 적이 있었다.강지현은 하씨 가문 사람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건 아니었다. 하원영이 잘못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공을 세운 셈이라는 식으로 말을 끌고 가, 그들이 딸을 몰아붙일 명분부터 막아버렸다.강지현은 대화 내내 강하게 밀어붙였다. 겉으로는 예의를 갖췄지만 실상은 날 선 경고나 다름없었다.예전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어디에도 없었다.주상 그룹의 판도는 이미 달라졌다. 엄경미조차 강지현의 사람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마당에, 하씨 가문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하원영의 부모는 그동안 강지현을 경험 없는 풋내기로 여겼다. 엄경미를 이기지 못할 테고 그 자리도 오래 지키지 못할 거라며 뒤에서 비웃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강지현의 태도 앞에서 제풀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주시언이 하원영을 그토록 감싸고, 강지현까지 앞장서서 나서자 하석철 내외도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서둘러 한발 물러서며, 이번 일을 단순한 오해였던 것처럼 덮었다.“집안에는 다 얘기해 뒀어요. 인턴 기간이라 일이 많아서 당분간 회사 근처에서 지내겠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강지현은 전화 너머로 하원영에게 상황을 전했다.그녀는 회사 근처 비즈니스 호텔에 하원영이 머물 방까지 미리 잡아둔 상태였다.하원영은 집안의 보호라는 명목 탓에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래도 강지현은 이번에 하원영이 당한 억울한 일을 앞세워 하씨 가문에서 정당한 양보를 받아냈다.덕분에 하원영은 당분간이나마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지현 씨, 정말 고마워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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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우리 남편 몸 상태는 어때요? 회복은 잘 되고 있나요?”강지현은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었다.의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검사 결과를 하나씩 설명했다. 대체로 모든 수치는 정상이었고 몸속에 남아 있던 어혈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기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근육 손상이 아직 남아 있어, 무리하지 말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강지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김태하를 바라봤다.“들었지? 당분간은 푹 쉬어야 해.”“응, 들었어.”김태하가 나직이 대답하며 강지현을 품 안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강지현은 다시 의사에게 물었다.“그럼 가끔 열이 나는 건 정상인가요? 혹시 몸 안에 염증이 아직 심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의사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강지현이 더 묻기 전에, 김태하가 그녀를 안아 일으켰다.“가자.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잠깐만.”강지현은 어딘가 미심쩍었지만 김태하는 그녀를 거의 끌다시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사실 김태하는 진찰을 받기 전부터 의사들에게 기본 검사만 해달라고 부탁해 둔 상태였다. 전문의들은 최대한 빨리 위내시경과 조직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지만 김태하는 강지현이 출국한 뒤에 하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알았다. 검사 이야기를 알게 되면 분명 옆에 남겠다고 고집을 피울 게 뻔했다.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 김태하는 그녀를 미리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원래는 지순옥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고 강지현도 그러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김태하가 끝까지 거절했다.모레 아침이면 강지현은 떠나야 했다. 그전까지 그는 누구에게도 그녀의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조차 예외는 아니었다.강지현은 아침에 나가는 길에 잠시 할머니 댁에 들르는 것으로 대신했다.지순옥과 김윤석은 늘 두 사람을 걱정했다. 두 사람이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저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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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김태하는 강지현이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자연스럽게 저장했다. 그러고는 몇 년 전 대충 찍어 SNS 배경으로 걸어두었던 풍경 사진을 그 사진으로 바꿨다.강지현을 만나기 전에도 김태하는 풍경 보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시간을 내어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고 그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기록하듯이.세상은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는 풍경을 보며 감탄할 뿐, 마음이 설레지는 않았다.그런데 강지현의 눈을 통해 다시 바라본 풍경은 달랐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이상하리만큼 애틋하게 다가왔다.음식은 천천히 나왔고 식사를 마치는 데만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사이 노을이 하늘을 가득 채우며 사방의 유리창을 붉게 물들였다.식당 전체가 주황빛으로 물들자, 강지현은 짧게 감탄하며 김태하의 손을 잡아끌었다.두 사람은 창가 전망대에 나란히 앉아 노을을 바라봤다. 김태하는 오늘 스카이 타워 전체를 빌려두었기에,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한참을 구경하던 강지현은 지쳤는지 김태하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다.김태하와 함께 있으면 할 말이 끊이지 않았다. 김태하는 평소 말수가 적었지만 강지현이 무슨 말을 하든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 사소한 말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었고 언제나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날이 완전히 저문 뒤에야 두 사람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섰다. 스카이 타워에서 내려다보는 야경도 무척 아름다웠다.하지만 김태하가 미리 약속해둔 변호사가 회사에서 오랫동안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강지현은 내내 불편해했지만 김태하는 고집스럽게 재산 공증을 밀어붙였다. 변호사는 이미 김태하의 요청에 따라 모든 서류를 준비해두었고, 절차는 금방 끝났다.이제부터 김태하 명의의 주식, 펀드, 투자금, 국내 부동산을 비롯한 개인 자산은 물론, 미래 그룹이 보유한 모든 지분까지 강지현과 함께 소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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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두 공간을 합치면 사실상 그의 제2의 집이나 다름없었다.“점심은 보통 최 비서가 골라준 도시락을 먹어. 작은 주방이 있긴 한데, 나는 간단한 게 좋아서.”김태하가 강지현의 질문에 대답했다.회사 곳곳에 남은 김태하의 흔적을 보자, 강지현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시절의 그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의 사소한 일상까지 하나하나 물었다. 그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작은 습관까지 모두 알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집무실이 정말 넓네. 꼭 스위트룸 같아. 여기랑 비교하니까 주상 그룹 사무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네.”김태하의 집무실에 들어선 강지현이 감탄했다. 과연 세계적인 대기업다운 규모였다.그녀는 소파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김태하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넓고 차가운 검은색 상판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여기야.”김태하는 강지현의 손을 잡고 집무실 한쪽 테라스로 이끌었다.강지현은 밖을 내다보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어, 저기 우리 집 아니야?”예전에 그 집을 계약할 때, 하지유가 강지현과 볼썽사납게 다퉜던 이유가 바로 이 전망 때문이었다. 김태하의 집무실 테라스에서 직선거리로 몇 블록만 지나면 강지현이 사는 집 거실 창문이 보였다.“맞아. 그래서 네가 그 집을 골랐을 때, 우리 사이에도 인연이 있구나 싶었어.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김태하는 말을 흐렸다. 하지만 강지현을 알고 난 뒤로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보고 싶으면 곧장 달려가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손을 잡고, 품에 안고 입 맞추고 싶었다.이제 그는 더 이상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그러게. 돌아보면 사람 인연은 다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나중에 서운각으로 이사 가더라도 가끔 여기 들러야겠어. 혹시 알아? 갑자기 들이닥쳐서 감시할지.”강지현은 웃으며 고개를 젖혀 김태하의 가슴팍에 기댔다.고운 눈매가 사람 마음을 홀릴 만큼 매혹적이었다.김태하가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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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그중 한 명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김 대표, 너무 긴장하지 마. 우연히 마주친 김에 인사나 한번 하려던 것뿐이야. 어쨌든 아는 사람의 자제분인데, 그냥 지나치면 예의가 아니지 않나.”“물러서.”김태하의 경호원들은 모두 퇴역 용병 출신이었다. 실력은 물론이고 직감도 날카로웠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려 하자마자 곧장 경고했다.김태하가 아직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이미 팔이 꺾인 채 제압당했을 것이다.“허허.”두 남자는 경호원들이 삼엄하게 막아서자 어쩔 수 없이 몸을 물렸다.“너무 경계하지 마. 김무언 선생께 안부나 전해 주겠어? 옛 친구들이 아주 그리워한다고 말이야.”그 말을 듣는 순간, 김태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두 남자는 비릿하게 웃더니 곧장 돌아서 사라졌다.경호원이 김태하에게 물었다.“뒤를 쫓아 정체를 파악할까요?”“차 번호부터 확인해요.”김태하가 낮게 지시했다.차창이 닫히자, 강지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저 사람들 대체 뭐야? 아버님 지인들이 왜 너를 찾아와?”한눈에 봐도 험악한 인상들이었다. 인사하러 왔다고는 했지만 말투는 꼭 원수를 찾아온 사람 같았다.강지현은 김무언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부류와 엮일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 김태하의 안색도 무척 좋지 않았다.대체 무슨 일인 걸까.“잘 모르겠어.”김태하가 나직이 답했다.“어릴 때 아버지가 해외의 큰 거물들과 얽힌 적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 하지만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알다시피 우리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는 말하지 않는 분이니까.”김무언이 자신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으니, 김태하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부자는 어려서부터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하지만 김태하에게 저런 부류의 사람들은 트라우마나 다름없었다.어릴 적 납치당했을 때 처음 그를 노렸던 자들도 저런 조직폭력배 같은 이들이었다.당시 김태하는 너무 어렸다. 사건의 배후는 결국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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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김태하는 본능적으로 강지현을 품 안으로 끌어당겨 감쌌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 탓에 강지현은 놀랄 틈조차 없었다.“뭡니까?”김태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말투에는 짙은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운전기사가 곧바로 대답했다.“타이어가 터진 것 같습니다.”경호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곧장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확인했다.김태하의 차량은 운행 전마다 철저하게 점검하고 정비했다.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 주변은 험한 길도 아니었다.김태하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강지현도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설마 아까 그 사람들 때문이야?”차량을 확인하고 돌아온 경호원이 보고했다.“대표님, 오른쪽 뒷바퀴입니다. 공기 주입구가 사라졌고 절단면이 아주 깨끗합니다. 전문 도구로 손댄 게 확실합니다.”차 안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김태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강지현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언제 손댔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김태하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내뱉는 말마다 얼음처럼 차가웠다.경호 대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사실대로 대답했다.“대표님과 사모님을 모시러 오기 전부터 따지면 네 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그사이 타이어 바람이 조금씩 빠진 것 같습니다. 상대는 저희가 돌아갈 시간까지 계산한 모양입니다. 만약 아까 그들 때문에 잠시 멈추지 않았다면,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는 순간 차가 완전히 제어를 잃었을 겁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졌다면 결과는 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금 길을 막아선 그 두 사람이 오히려 사고를 막아준 셈이었다.하지만 이것이 경고인지, 아니면 조언인지는 알 수 없었다.“태하야, 저 사람들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상대는 숨어 있었고, 두 사람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누군가 김씨 가문, 아니 김태하 본인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에 강지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차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보다 김태하의 몸 상태가 먼저 걱정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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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김태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본능적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속에서 강지현만 무사하면,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강지현은 울컥하면서도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그럼 너는? 내 앞을 막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그녀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산에서 겪었던 사고를 떠올리면, 다시는 그 공포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떠날 뻔했던 기억은 평생 딱 한 번이면 충분했다.“나는 괜찮아.”김태하는 강지현의 마음을 꿰뚫듯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의 얼굴이 그녀의 뺨과 목덜미에 스치며 입술이 닿았다. 하지만 강지현은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그를 밀어냈다.“어떻게 괜찮아? 네가 강철로 만들어졌어? 설령 그렇다 해도 하늘이 무너지면 조각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야. 너 그 아이 구하려다가...”그는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세상을 떠난다면, 남겨진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강지현은 김태하의 가슴속에 담긴 정의감을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보호’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의 올곧음과 진심을 사랑했지만 때로는 그가 이기적으로 먼저 자신을 챙기기를 바랐다.“나랑 약속해. 앞으론 무조건 희생부터 생각하지 않겠다고.”“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너 자신을 지키는 게, 그게 바로 나에 대한 사랑이야.”강지현은 다시 한번 김태하에게 강조했다. 그녀가 손가락을 걸며 그를 바라보았다.“약속해. 앞으로 우리가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너 자신부터 생각해. 우리가 부부라도...”“난 못 해.”평소라면, 강지현이 그렇게 말하면 김태하는 곧바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아내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런 위기가 현실로 닥칠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김태하는 자신이 아니라 강지현을 먼저 지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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