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영은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채, 당황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창밖에서 쏟아진 햇살이 두 사람의 옆모습을 따스하게 감쌌다. 주시언이 성큼 다가와 몸을 살짝 숙이자, 하원영 앞에 내려앉아 있던 햇빛이 반쯤 가려졌다.달빛처럼 맑고 깨끗하기만 하던 예전의 주시언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곁에도 어둠이 스며 있었다.하원영은 숨을 들이켜며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오빠...”“가짜 결혼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건 싫어.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결혼하면 네 고민은 해결될 거야. 그냥 결혼하자.”주시언은 하원영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볍게 가져다 댔다. 어젯밤 생긴 멍은 제법 가라앉아 희미한 흔적만 남았지만 햇빛 아래에서는 아직도 선명하게 보였다.“잠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설마 아직 나한테...”하원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주시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돕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다른 마음이 있는 건지 말이다.주시언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뺨에서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오해하지 마. 너를 이용하려는 것도 아니고, 평생 너랑 함께하겠다는 뜻도 아니니까.”“그냥 나는 지금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아버지는 계속 결혼하라고 성화시잖아. 어차피 우리 둘 다 당장 마땅한 상대를 찾기도 어려우니, 서로 돕고 사는 건 어때?”말을 마친 주시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는 곧바로 사라졌다. 속은 이미 씁쓸한 감정으로 엉망이었다.방금 전 하원영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감정 조절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이미 얼굴을 굳힌 채 하원영을 몰아세우며 따졌을 것이다.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을 쏟았는데,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했다.그런데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주시언은 하원영을 향한 마음이 진작 정리되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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